내가 마타리를 처음 만난 것은 황순원의 <소나기>에서 였다. 아마도 교과서 였던 것 같은데, 중학교 때인지 고등학교 때인지는 가물가물하다. 그 때의 나는 소녀시절이었음에도 소설 속 소년 소녀의 감정을 느끼기 버거운 얼치기였다. 다만 그 때 <소나기>에서 오래도록 마음에 남아 있던 정경이 있었는데 그것은 소년과 소녀가 걷던 들판을 묘사한 부분이었다. 그리고 마타리. 왠지 우리말 같지 않은,이물스러웠던 이름. 그 후 몇 년이 지났을까. 나는 늦여름의 노란꽃 마타리의 실물을 보게 되었다. 키가 늘씬하고 상큼한 미모. 방사형으로 뻗은 여러 줄기 끝에서 작은 꽃들이 모여서 피어 귀여움을 발산하는 꽃. 개나리의 노란 색보다 밝고 환한 꽃. 한 번 본 꽃은 절대 잊혀지지 않았다. 꽃이라는 것은 시기가 있어 그 시기에 내가 산에 가지 않는다면, 시골길을 걸어 볼 기회가 없다면 몇 해가 가도록 만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몇 해동안 마타리를 보지 못했다.

 

올 해 여름. 나는 마타리가 그렇게 흔한 꽃인줄 처음 알았다. 차도 옆에도 산길에서도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에서도 어디에서도 마타리가 있었다. 8월 초 태백으로 가는 버스 안, 길가에는 구릿대와 마타리가 지천이었다. 여름을 지내면서 멋드러지게 키를 키운 건장한 구릿대와 비록 갸냘프지만 튼튼하고 늘씬했던 마타리. 창밖으로 시선을 주는 눈길이 참 시원했다. 밥을 먹으러 들어간 순두부집 초입에도. 이후의 열정이 남아 다시 찾은 바우길에서도 마타리는 산 길 곳곳에서 살랑 살랑 다정한 모습으로 피어 있었다. 소나무와 참나무만 빽빽한 산길에서  소녀처럼 화사하게 빛나던 마타리. 명절을 앞두고 갑자기 내려 간 고향집가는 길에서도 마타리가 '어서 와'했다. 아직 덜 여문 새파란 밤송이와 묘하게 잘 어울렸던 노란 마타리. 꽃무릇을 보겠다고 간 길상사 한 켠엔 아예 마타리 밭이 있었다. 이제는 정말 키가 나만큼 크고 수분이 끝난 듯 색도 좀 바랬지만, 가는 가지들이 얼기설기 한 무리의 노란 꽃 밭을 이루고 있었다. 올 여름은 8월 한 달 내내 9월을 넘겨 가면서 까지 마타리를 보는 호사를 누렸다. 노란 색이 이렇게 행복한 느낌을 주는 색이 었나? 나는 이렇게 복이 많아도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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