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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 에셔, 무한의 공간 ㅣ 다빈치 art 14
모우리츠 코르넬리스 에셔 외 지음, 김유경 옮김 / 다빈치 / 2004년 2월
평점 :
품절
에셔의 그림을 처음 본 것은 과학책에서지만, 그의 그림에서 설명하기 힘든 신비함을 느꼈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그의 팬이 되었다. 나는 스스로를 불분명하고 어중간하며 해석의 여지가 많은 인간이라고 생각하는데 에셔의 그림은 그런 나의 특성들과는 상충하는 면이 많다. 언뜻 보면 비슷한 것 같은데 그것은 작가의 내면이지 드러난 작품의 세계는 아니기 때문이다.그런데도 그의 그림에 끌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에셔의 작품들은 정확하고 아주 치밀한데 그것이 아주 직관적이어서 나는 그의 그림 앞에서 또 한 번 좌절한다. 그리고 경외감을 가지고 꼼꼼히 분석한다. 구도의 기분으로. 그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예술을 향유 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을 탐구하는 기분이 든다. 내 안의 우주, 내 밖의 우주, 이생과 전쟁, 돌고 도는 삶과 죽음의 고리들이 한 장의 그림 안에 모두 들어있다.
단순한 종이 한 장의 표면에 불과한 그의 그림은 공간 속으로 독자를 끌어들이 마력이 있다. 버티어도 들어갈 수 밖에 없는 신비하고 강렬한 흡입력. 내가 숨쉬는 곳은 여기 지금이지만 에셔의 그림을 보면 현실의 내가 시간의 띠가 되어 우주를 여행하는 듯한 환타지를 경험하게 된다. 현실과 과거 미래라는 시간의 영속성, 만져지지 않는 공간들을 이중 삼중으로 시각적으로 느끼게 해주는 그의 그림에서 육신이 가벼워지는 자유로움까지 맛볼 수 있었다. 조금 거창하게 말한다면 천지창조의 신비를 체험하는 기분이라고 할까.
자신의 그림을 설명하는 강의록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이 책은, 눈으로 보는 감상에 더해서 작가가 직접 그림을 설명하는 어휘에 대한 신선함도 아주 매력적인, 재미있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