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베르 인명사전
아멜리 노통브 지음, 김남주 옮김 / 문학세계사 / 2003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탄생의 비화를 가진 주인공은 매혹적이다. <향수>의 그르누이가 그랬고 <로베르 인명사전>의 플렉트뤼드가 그렇다. 이야기 초반 주인공들의 엽기적인 탄생은 독자를 강렬하게 소설 속으로 빨아 들인다. 그래서 <로베르 인명사전>도 한 번 손에 쥐면 쉼 없이 읽을 수 있는 재미있는 소설이다. <향수>를 재밌다고 느끼신 분들이라면 강추 할 만하다.


냄새는 좀 다르지만 살인자의 이야기라는 점에서도 공통점이 있다. 파괴 본능이라는 것은 그것이 물질을 향해 있던 생명을 향해 있던 인간 누구에게나 잠재하는 성질이다. 그것이 적극적으로 표현되느냐 잠재해 있느냐의 차이 일 뿐. 살인이라는 행위가 소설의 구조에서 장치로 쓰였다고 했을 때, 그르누이는 존재의 정당성을 확인 받고 싶어하는 차원이었다면 플렉트뤼드의 살인은 작가의 감각에서 나온 느닷없는 행위 같은 인상을 준다.


다시 말해 나를 죽인자의 일생에 관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던 작가가 마지막에 그 부제에 맞는 결말을 부여한 것이다. 그렇지만 마지막의 행위가 없어도 그 자체로서 소설로서 완성도가 있고, 결말과 함께 읽어도 신선함이 있다.


<로베르 인명사전>이란 제목이 딱딱하고 건조하게 인생을 얘기하듯, 소설 속에서 인간을 그려나가는 작가의 문체도 냉소적이며 심플하다. 작가의 문체가 플렉트뤼드의 성격을 반영한다고 보면 딱 맞을 것이다. 자기와 자기를 포함한 우주에 대해 시니컬한 객관성을 유지하며 쿨하게 사는 아니 살아지는 플렉트뤼드의 일생이 운명과 싸움의 과정이라는 것도 모순적이다. 복잡하지 않은 스토리 속에 객관적인 묘사들은 독자와 등장인물 사이를 적당한 간격으로 유지하는 긴장감을 부여한다.


...난 내 아기가 힘껏 무한을 품었으면 좋겠어. 내 아기가 그 어떤 제약도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 아이에게 특별한 운명을 약속할 이름을 주고 싶어.


...내가 여기서 말한 미인이란 거짓 아름다움으로 다른 사람들을 경멸하고 배척하는 이들이 아니라, 자신의 모습에 소박하게 매혹되어 그 자연스러운 기쁨을 다른 이들에게도 전하고자 하는 이들을 말한다.


‘아니, 가야 해 이건 의무교육이거든. 하지만 곧 적응할거야’ 그 말에 충격을 받은 플렉트뤼드는 인간이 행복해지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로베르인명사전>은 구성이 치밀하다거나 공을 들여 잘 다듬었단 인상이 드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작가 특유의 감각이 번뜩인다. 이 글을 통틀어 어떤 주제를 찾으라고 한다면 한 가지 만을 얘기하기 힘들겠지만, 군데군데서 번득이는 인생의 짧은 고찰들만으로도 위안이 된다. 내 독백을 작가가 대신 해주었단 생각이 들 때 독자는 공감의 토대 위에서 소설의 재미를 느끼는 것이니까.

 

죽음의 곁에서 탄생한 아이, 환상 속에서 아이를 키우는 모성, 목적을 추구하는 인간의 건조한 삶에 대한 비판,아멜리 노통은 인생을 '설명'하지 않고 쿨하게 그려내는 재주가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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