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 (양장) -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강명순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아이러니다. 세상 누구보다 인간답고 아름다운 냄새를 가지고 싶어서 무려 스물 다섯 명을 살해한 남자. 그르누이는 자신이 사랑 받는 인간으로 군림하기 위해 가장 축복 받은 아름다움을 지닌 소녀들을 희생시켰다. 요즘, 평화를 위해 전쟁을 한다는 한 지도자가 생각났다.잠시.

이 책은 1,2,3,4부로 나뉘어져 있는데, 1부에서는 그르누이의 출생 배경과 성장 배경이 2부에서는 인간들에게 혐오를 느낀 그르누이가 인간냄새가 나는 고원 지대 동굴 속에서 7년을 고독하게 지낸 이야기, 3부에서는 그르누이가 세상의 인간들에게 이용당하고 그 또한 그런 인간들을 이용하여 자신의 목적을 이루는 이야기, 4부에서는 그르누이의 죽음이 다루어져 있다.

이 네 부분의 이야기는 상호 연결된 이야기지만 독자적으로 한 편씩 읽어도 나름의 완결성이 있고 독립적으로 읽힌다. 나는 특히 3부에서 그르누이가 죽음을 불사하고 맞섰던 고독...자기 들여다 보기, 자기 안에 침잠하기...그 처절한 외로움이 가슴에 와닿아 마음이 많이 아팠다. 더구나 그 철저한 외로움과 고독의 세월 끝에서 찾은 자기 존재감이 냄새 없는 인간이라는 자각이었다니...더구나 천재적인 후각을 가진 사람이 자신이 정작 냄새 없는 인간이라는 자각해야 했다니.

그래서일까, 장 바티스트 그르누이는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이었다. 얼핏 봐도 그가 태어난 조건, 그가 살아 온 환경은 인간이라면 견딜 수 없는 여건이었다. 그는 그렇게 동물적인 감각으로 삶을 지켜 내었고 그 맹목적인 삶의 끝에는 사랑 받지 못한 인간의 무모한 광기가 있었다.

이 이야기는 18세기 프랑스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이 글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현대를 살아가는 인간 군상의 일면들을 세세히 보여주는 리얼리티가 있다. 글의 곳곳에는 현대인의 물질문명을 추구하는 맹목성과 인간의 이기성을 비판하는 작가의 목소리가 담겨 있다. 우리는 그르누이를 보면서 피도 눈물도 없는 인간이라고 욕을 할 지 모른다. 그러나 그르누이는 우리를 보면서 '너희는 더해!' 이렇게 비웃고 있는 듯 하다.

결국 자신의 목적인 가장 인간답고 아름다운 향기를 가지게 된 그르누이가 그 향수를 사용하였을 때 버림 받은 한 인간 앞에 펼쳐진 고매한 인간들이 행동이란...그는 드디어 비천한 인간에서 그 보다 더 비천한 인간들의 실체를 확인하고 군림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의 최후는 비참했다. 그의 향수에 대한 사랑이 맹목적이었던 만큼 그 향수 냄새를 맡고 맹목적인 사랑을 받은 결과는...?

'향수'는 냄새라는 독특한 소재를 사용한 점, 보이지 않는 소재를 생생하게 묘사함으로써 독자를 환각 속에 빠뜨릴 정도의 치밀함이 돋보이는 소설이었다. 물질 만능의 현대 사회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점차 가치를 잃어 가고 있다. 사랑이나 우정, 진실,믿음이 아니라 경제력과 직결되는 온갖 물질적인 가치들이 우선시 되고 있는 것이다. 파트리크 쥐스킨트는 향수를 통해 보이지 않는 것의 중요성을 일깨우려고 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인간들은 외모를 보고 모든 것을 판단하지만 실상 그들의 인상에 영향을 끼치는 실제는 냄새이다. 인간들은 그것을 모르고 있다는 그르누이의 말처럼, 우리는 생활 속에서 보이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 것을 판단하는 잘못을 수시로 범하고 있다.

현대는 수 많은 살인자들의 집단 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그런 광기를 가지고, 주위를 돌아보지 않는 맹목적인 목표의식으로, 오로지 물질적인 것만을 추구하면서 앞으로만 향해서 뛰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나 자신이야말로 그르누이가 아닌지, 스스로를 돌아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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