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박나무 우리 집 창비아동문고 199
고은명 지음, 김윤주 그림 / 창비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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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티비 프로그램에서 어느 동물학자가 수직선을 그어 놓고 남성과 여성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본 일이 있다. 양 끝이 지극히 여성스러운 여성과 지극히 남성스러운 남성이라면 그 양 극단의 사이에 존재하는 무수한 점들은 그만큼의 다양한 성을 의미한다고 했다. 즉 생물학적인 범위 안에서만 규정하려 들지 않았을 때 세상에는 남성과 여성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남성다운 여성, 여성다운 남성, 좀 더 남성다운 좀더 여성다운 이런 식으로… 세상에 사는 생명체의 종이 다양한 것만큼이나 성도 다양하다고 인식을 하고 그것을 인정한다면, 여자가 무슨…또는 남자는…으로 시작하는 발언들이 줄지 않을까.

<후박나무 우리집>에서 작가는 그런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이 땅에서 ‘여성과 남성으로 살기’에 대한 이야기. 그런데 사실 요즘 이 책을 읽을 만한 연령의 아이들은 그다지 성의 차별을 느끼지 못하고 사는 듯하다. 어찌 보면 실상은 오히려 여성이 득세하고 있는 느낌이 드는 것이 초등학교의 현장의 모습이다. 단지 그 아이들을 보는 어른의 시선이 예전과 다름없다는 것이지. 아무튼 <후박나무 우리집>이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자체가 반갑다. 현실은 그렇지 않은데 요지부동 고리타분 옛날 시선의 어른 들과 싸워야 하는 요즘 아이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책이다. 요즘처럼 육체와 정신의 불균형을 이룬 소년기의 아이들에게 자신을 돌아 볼만한 생각거리를 던져 준다는 점에서 그렇다.

먼저 배경묘사가 충실한데서 오는 공간감이 이 책의 첫째 매력이다. 동화지만 소설적인 재미를 맛 볼 수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방이 열 개 한옥인 후박나무 집을 그리듯이 세밀하게 묘사한 솜씨와 이야기 사이사이 아빠의 추억담을 넣어 오래 된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것은, '마당을 나온 암탉'이나 '괭이부리말 아이들'처럼 어른들이 읽어도 좋아할만한 요소이다. 같이 김장을 담궈 나눈다든가하는 상부상조의 모습에서 오래되고 낡은 것에 대한 정스러움을 아이들이 맛 볼 수 있는 것도 좋은 점이다. 그런 일상과 인물들은 자칫 따분한 공간이 될 수도 있는 후박나무 집에 생기를 불어 넣고 있다. 그런 이유로 팽팽한 긴장감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쉽게 읽는 속도를 낼 수 있는 책이다.

둘째 매력은 이 책의 전반에 흐르고 있는 순후함이다. 특히 이런 주제를 들고 나왔을 땐 거친듯 팍팍함이 느껴지기 쉬운데 <후박나무..>는 그런 걸 잘 피해 갔다. 기본적으로 작가가 가진 따뜻한 시선이 후박나무 집과 그 주변의 인물들로 순하고 두터운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있다.그러다보니 작가는 너무 많은 것을 껴안으려 했고 그래서 정작 할 이야기를 덜하고 넘어 간 듯, 결론이 너무 현실과 동떨어진 현실 타협이란 생각이 든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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