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찢어진 공책 - 옹달샘 창작동화 1
소중애 지음, 문종성 그림 / 바른사 / 2001년 6월
평점 :
품절
아이들 눈높이에 맞춘 현장감이 살아 있는 동화. ‘찢어진 공책'은 아이들이 그들이 처한 일상에서 참다운 지혜를 배우고 공감할 수 있도록 주제가 다른 다섯 개의 에피소드로 꾸며져 있다. 그런 만큼 아이들의 생각과 행동이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다가와 끝까지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주인공들은 이제 막 학교라는 사회에 나와 친구들과 선생님, 학교의 규칙들 사이에서 좌충우돌 할 수밖에 없는 초등학교 저학년들이다. ‘2학년 장난 꾸러기들’에 나오는 운표와 친구들 그리고 선생님, 갓 입학한 1학년 강현이는 우리 아이들의 모습이고 우리 선생님의 모습이다. 선생님 말씀에 아랑 곳 하지 않고 교실 밖 입학식에 온통 신경이 가 있는가 하면 학교에서 교과서보다 실내화가 더 필요한 물건이라고 생각하며 실내화 위에 자기 이름대신 똥이라고 써 놓은 엉뚱한 아이 운표. 운표는 친구 나오미가 1학년에게서 머리핀을 빼앗자 후환이 두려워 1학년 복도에 못 내려간 소심한 아이면서도 학교에 든 도둑의 바지를 붙잡고 늘어지는 용기와 순발력을 보여 준다.
그런가 하면 숙제도 안 해오고 교과서도 안 챙겨와 선생님 입에서 내가 못 살아를 연발케 하는 이른바 찍힌 아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우리는 운표의 행동에서 이상함이나 악함을 발견할 수 없다. 오히려 너무나 그 또래다운 아이다움에 빙그레 웃음지을 뿐이다. 숙제와 책을 잘 챙기며 선생님 말씀하실 때 언제나 집중하는 아이가 운표와 같은 자유스러움이나 도둑을 잡는 대담함을 갖출 수 있을까. 이런 운표의 모습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잘 성장하고 있는 아이들을 어른들의 잣대에 끼워 맞추지 못해 안달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등학교 2학년을 부모 수준에 맞춰 자라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아이는 아이다울 때 가장 행복할 수 있는 것이다. ‘꼬마 선생님’은 학교 가기를 두려워하는 일학년 여자 아이가 지하 방에 세 사는 문맹 할머니를 통해서 학교에 적응한다는 얘기다. 범희와 할머니는 둘 다 모자람이 있는 인물이다.
범희는 초등학교 신입생인데 선생님이나 친구관계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어 학교 가기를 거부한다. 할머니는 파출부 일을 나가며 혼자 사는 외로운 노인이다. 친 할머니가 아닌데도 주위의 어른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범희는 요즘 아이들이 본 받을 점이 많다. 그리고 모자람이 있는 두 인간이 서로 기대고 의지하며 살아갈 희망을 일구는 이야기에서 흔하지 않은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찢어진 공책’의 효성이는 정말 착하고 귀여운 아이다. 이기적인 요즘 아이들에게서 찾아 보기 힘든 솔선수범의 자세를 갖고 있다.그러나 잘하고 싶은데 언제나 엉뚱한 실수를 저지르게 되는 아이. 의도와 관계 없이 벌어진 결과 때문에 야단 맞고 서 있는 내 아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우리는 인간이기에 완벽하게 태어나지 않았다. 그런 불완전함을 채우기 위해 끊임없이 번뇌하고 노력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그러면서 왜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만은 완벽함을 요구하는지, 참 모를 일이다.
아이를 잘 키우려면 먼저 아이에 대한 이해가 앞서야 한다. 그런 점에서 찢어진 공책에 나오는 아이들은 아이들의 특성을 잘 대변해 주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은 아이들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 있다는 점에서 부모나 교사가 읽어도 참 좋을 책이다. 특히 이 책에서는 아이들이 주인공이면서도 소외된 어른들의 모습이 나오고 있다. 지하 방에서 혼자 사는 할머니나 실직한 아버지가 그들이다. 그런 상황들이 생활 속에 자연스럽게 묻혀 유별나게 드러나지 않으면서 아이들이 그런 사람들을 돌아보게 만드는 여지를 제공하고 있다.
운표, 범희, 효성이, 맞벌이 부모 밑에서 자라는 아이 용이는 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아이들의 모습들이다, 다소 덤벙대고 엉뚱하고 소심하면서도 당차고 용기 있는 모습에서 우리는 아이다운 사랑스러움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어른의 시각에서 보는 늘 말썽을 일으키는 문제아가 아닌 것이다. 이런 점에서 ‘찢어진 공책’은 문제는 문제시 하는 데서 오는 거라고 믿고 있는 평소의 내 소신을 확인시켜 주는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