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은 그가 자신의 연기를 바라보듯 자신의 몰락을 바라본 것이었다. 고통이 정말 극심했는데도 그것이 진짜인지 의심했고, 그 때문에 상황은 한층 더 악화되었다. 14쪽

무너져내리는 인물을 연기할 땐 거기엔 질서와 체계가 있다. 그러나 무너져내리는 자신을 지켜보는 건, 자신의 종말을 연기하는 건 전혀 다른 일이다. 극도의 공포와 두려움으로 가득한 일이다.14쪽

밤이면 그는 큰 소리로 비명을 지르며 깨어났고 자신의 재능도, 이 세상에서의 자기 자리도, 자신의 본모습까지도 박탈당한 남자의 역할에 갇힌, 결점만 줄줄이 모아놓은 존재에 지나지 않는 혐오스러운 남자의 역할에 여전히 갇힌 자신을 발견하곤 했다. 아침마다 그는 몇 시간씩 침대에 숨어 있곤 했는데, 그런 역할에서 숨는다기보다는 단순히 그 역할을 연기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침대에서 일어났을 때 그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이라곤 자살에 대한 게 전부였지만, 그것을 흉내내지는 않았다. 죽고 싶어하는 남자를 연기하는 살고 싶은 남자였으니까. 15쪽

한편 푸로스퍼로의 가장 유명한 대사가 그를 내버려두지 않았는데, 아마도 아주 최근에 그가 완전히 망친 대사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머릿 속에서 어찌나 자주 되풀이되었던지, 완곡한 의미조차 없고 어떤 실재도 가리키지 않았음에도 그 대사는 얼마지나지 않아 개인적인 의미가 충만한 주문 같은 힘을 지닌 아우성이 되어버렸다. ˝이제 우리의 잔치는 다 끝났다. 말한 대로 이 배우들은/모두 정령이었다/이제 다 흔적도 없이, 완전히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그는 혼란스럽게 되풀이되는 ˝흔적도 없이˝라는 두 마디를 머릿속에서 도통 몰아내지 못한 채 아침 내내 침대에 무력하게 누워있었고, 그 두 마디는 점점 의미를 잃어가면서도 뭔가 모호한 비난의 분위기를 띠었다. 그의 복잡한 전인격이 ˝흔적도 없이˝라는 말에 완전히 휘둘렸다.16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