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피드에 필립로스의 책들이 유난히 많길래 혹시나하고 검색을 해보았다. 설마, 그런거야? 하는 심정이었는데 설마 그런거였다.

기분에 나는 그의 책을 다 가지고 있고, 그의 책을 다 읽었다.
기분이었다. 서가를 다 뒤졌지만 집에 있는 책은 미국의 목가, 휴먼스테인, 전락이 다였다. 집에 있다고 생각한 책들은 실은 가끔 가있는 친구집 서가의 환영이었다. 그 집 서가에서 빼든 죽어가는 짐승이 로스와의 첫만남이었다.
그리고 지독한 사랑에 빠졌다. 두어 달만에, 휴먼스테인, 굿바이 콜범버스, 전락 정도를 제외한 그의 책들을 다 읽어버렸으니까.

그리고 엊그제 새벽에 조문 가봐야하는 큰아버지 장례식에 못가고 누워있는 불안하고 죄의식에 가득찬 심정으로 휴먼스테인을 빼들었다. 두 번이나 시도했지만 포기했던, 이번엔 포기하지 않고 완독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애도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휘몰아치는 심정이 되어 정신없이 읽었던 그의 다른 책들에 비해 휴먼스테인은 그런 흡입력이 없었다. 실명이 거론되는 직설적인 화법이 유난히 거슬려 책장을 덮곤 했다.

육중한 문을 억지로 밀고 들어가듯이 휴먼스테인 1권을 끝냈다. 그리고 2권으로 진입하자 아, 역시나 실재의 현실을 이렇게 다각도에서 깊이 들어갈 수 있는 소설가, 이런 소설이 진짜 소설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해결되지 않으면서 한없이 갑갑해지기만 하는 인생의 모순을 맞닥뜨리게 하는 소설을 꾸역꾸역 읽어내면서 인간에 대해, 시대의 현실에 대해 외면하지 말라는 것이 그가 얘기하려고 했던 거구나. 실재보다 더한 실재, 현실 보다 더한 현실이 있음을.

마지막 장의 연보를 보니 내가 가장 베스트로 생각하는 소설 4권이
후기작이었다. 끝에서부터 4권이다.

미국의 목가, 나는 공산주의자와 결혼했다, 휴먼스테인, 네메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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