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사람이 있다 - 대한민국 개발 잔혹사, 철거민의 삶
강곤 외 지음 / 삶창(삶이보이는창)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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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adle.tistory.com/40 

지난 7월 용산참사 현장에 가서 미사에 참여했다. 그때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이란 DVD와 <여기 사람이 있다>란 책을 팔았다. 후원은 못해도 책과 DVD라도 사는 게 돕는 일이겠지 싶어서 샀다. DVD는 영상이라서 쉽게 볼 수 있었으나 책은 미루다 10월에야 다 읽었다. 이 책은 철거민들의 투쟁기가 담긴 인터뷰집이었다.

읽으면서 믿을 수 없었다. 아니 믿기 싫었다. 이것이 대한민국이라니. 내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니. 그들과 내가 다른 사람이 아니었기에 더 충격이었다. 나도 언제 저렇게 될지 알 수 없는 일이니까. 책 곳곳에 밑줄 친 부분 중 일부분을 옮겨 적어본다.


재개발하면 돈 번다! - 가옥주들의 착각

"가옥주가 세입자보다 처지가 낫긴 하지만 가만 보면 우리보다 더 불쌍한 사람도 있어요. 같이 살아봐서 알잖아요. 개발 안 됐으면 23평 정도는 되는 자기 집에서 애들 데리고 어렵게라도 살 사람들이에요. 그런 집이 건물 땅 다 해서 5600만 원 정도 보상이 나왔는데, 이거 갖고 어디 가겠어요? 못 가요, 어디든. 보상 감정은 주택공사에서 선정한 사람 두 명이랑 자기들(가옥주)이 선정한 사람 한 명이 하는데 2대 1이라 절대 이길 수도 없어요. 그렇게 보상받은 사람들은 결국 파주로 가서 살다가 빚내서 재입주 했어요. 이게 가난한 가옥주들 현실이에요.
가옥주도 물론 잘못하는 게 있죠. 처음엔 뭉쳐서 대응한다지만 실제로 가옥주 머리에는 딴 생각이 있어요. 저 사람보다 내가 조금이라도 더 보상을 받으면 그걸로 만족해요. 그래서 모여 봤자 오래 못 갔어요. 오히려 보상을 조금이라도 더 받으려고 세입자들을 나가게 하지 못해서 안달인 경우가 많았는데, 그것도 다 이해 못하는 건 아니에요. 주택공사가 가옥주를 상대로 협박을 하거든요. 전체 보상금이 2억으로 책정됐다고 했을 때, 1억 6000만 원 먼저 주고는 세입자들을 내보내야지 나머지 돈도 준다는 식으로요. 그러니까 가옥주도 기를 쓰고 세입자들을 내보내려고 하는 거예요.
진짜 나쁜 가옥주는 돈 있고 땅 많은 사람들이죠. 그들은 주택공사하고 짜서 현실적으로 보상을 잘 받아요."
(조혜원 외, (2009), 여기 사람이 있다 - 대한민국 개발잔혹사, 철거민의 삶, 삶이 보이는 창, 29쪽)

투쟁하는 이유

"우리가 법적인 데를 알아보니까 토지분할권 줘서 가옥보상비하고 주거이전비 이런 거를 다 주게 돼 있는데 일체 하나도 안 준다는 거죠. 법을 모른다고 해서 안 주고, 아는 사람도 투쟁하지 않으면 안 주기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싸우는 거예요. 우리 대에서 철거민으로서 더 이상 쫓겨나지 않는 거를 목적으로, 우리가 임대아파트라든가 이런 데를 쟁취해서 들어가야 철거민에서 해방되는 거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렇게 하는 거예요."(위의 책, 42쪽)

용역들의 폭행

"저는 초창기에 투쟁도 모를 때 "야, 씨발년아, 너 밤길 조심해" 공포스러운 말, 상스러운 말을 마구 들었어요. 어떻게, 입에 담을 수가 없어요. 진짜 귀가 더러워질 정도로 상스러운 욕을요, 내가 그런 말을 입에 담아서 해주기가 미안할 정도예요. 딸 있는 집은 "딸 조심 하라고, 딸 따먹을 거다" 니 딸 가만두지 않는다고 그랬어요. 작년에 11월 19일날 나올 때 세대에 딸이 하나 있었어요. 바깥으로 펜스 다 쳐서 용역들이 다 장악을 하고 우리는 펜스 밖으로 쫓겨났고 딸 하나만 현장에 혼자 그 안에 있었어요. 우리가 막 대항을 하니까, "야, 저 안에 니 딸 있다" 그래요, 그게 무슨 뜻이겠어요. 그러니까 엄마는 미치고 팔짝 뛰는 거지. 전쟁보다 더했어요. 전쟁은 가족 갖고는 안 하잖아요. 개개인 가지고는 안 하잖아요. 이거는 개개인 가족 갖고 위협하고 협박하는 거예요. 그러니 더 세밀하게, 더 치밀하게, 더 잔인하게 되는 거죠."(위의 책, 42-43쪽)

용역과 경찰의 관계

"11월 27일 옥상에서 집회하는데 용역이 옥상 문을 부수고 들어와서 몽둥이로 강제 진압해서 도화동에서 온 스물네 살인가 연대 온 동지 하나가 갈비뼈 여덟 대 나갔어요. 엄청나게 많이 맞았어요. 몽둥이로 닥치는 대로 패고 한 10명이 덤벼서 발로 밟고...... . 어머, 나 거기서 죽는 줄 알았어요. 옥상에서 물 엎질러서 얼음이 얼었는데 그 위에 나부러져 있는 사람을 개패듯이 패고, 굉장했어요. 그렇게 맞았는데도 증거 불충분, 혐의 없음이래요. 증거 없이 사진 없이 진단서만 첨부했으니까 그렇다네요. 용역들이 경찰을 등에 업고 만행을 그렇게 저지르는 겁니다."(위의 책, 46쪽)

"용역이 100명 정도 오면 경찰은 200~300명 들어옵니다. 꼭 2배 이상은 오는 것 같아요. 경찰은 용역이 쥐어 패도 먼 산 보듯 구경만 하고 있고 우리가 저항을 하면 경찰이 꼭 잡아갑니다. 용역 놈들을 경찰에 신고하잖아요. 그럼 '못 잡았다'가 답이에요. 증거 가져오라고 하고. 우리가 사진 찍어서 가져다 주면 '못 찾았다'가 답이야, 경찰이 찍은 것도 다 있을 텐데. 우리는 가다가 어떻게 툭 건드려도 경찰은 사진 다 제시해서 '너, 폭행이야' 하면서 다 들어가요. 철거촌 어디가서 물어봐도 다 그래요. 용역에게, 경찰에게 안 맞은 철거민 있나 물어봐요. 맞을 때 뒤에 경찰이 없었나 확인해 보세요. 언제는 새벽 5시에 용역들이 경찰과 함께 온 적이 있었는데 경찰이 먼저 압수수색을 하더라고요. 위험물질이 있다는 첩보가 들어왔다는 이유로, 실제 그땐 우리가 가지고 있던 것이 없었기 때문에 그냥 갔지요. 우리가 뭐가 있는지, 몇 명이 있는지 용역에게 미리 알려준 셈이지요."(위의 책, 115쪽)

그들이 바라는 재개발

"재개발, 재건축되면 좋죠. 깨끗한 주거환경에서 서민이 살 수 있는 주거구역을 만들어 놓고 재건축이나 재개발을 했으면 좋겠어요. 서민 아파트 옆에다 이쪽 동네는 큰 평수에 있는 사람 가서 살든지 말든지 어쨌든 서민은 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 하잖아요. 서민들은 저 멀리 밀려나라, 그거밖에 더 되냐고요. 지금 광명에서도, 아파트가 올라서서 살라 해도 못살아요. 그냥 준다 해도 관리비나 이런 게 부담스러워요. 어느 정도 생활비까지 하면 저축은 전혀 생각할 수도 없고, 그런 게 부담스럽죠."(위의 책, 49쪽)

용역에게 쓰는 몇 십억

"사업시행사인 SH공사가 우리가 투쟁을 하니까 용역을 부른 거죠. 지금까지 용역한테 쓴 돈이 몇식업 정도라고 해요. 그러면 그 돈을 왜 용역업체에 줘야 합니까. 투쟁하는 사람들한테 보상비로 주면 다 가버릴 걸, 그게 안 됐다니까요."(위의 책, 63쪽)

전철연

"남들은 전철연이 돈을 받았다 어쨌다 하는데, 그렇게 하면 못하죠. 뒷돈 챙기고, 내가 연대 가는데 얼마 주고, 그러면 못해요. 아니 돈 몇 푼 받고 목숨 걸겠습니까? 안 되죠. 그거는 정하고 의리 때문에 하는 거예요."(위의 책, 83쪽)

그들의 삶

"제가 철거민 되기 전에는 미싱공이었어요. 안양에서 오리털 파카 만드는 일을 4년 동안 하고 구로(가리봉)에 있는 회사에서 일한 적이 있는데 그때 남편을 만났습니다. 남편은 재단사였어요. 그러다가 9급 공무원시험 봐서 합격해가지고 학교 기능직공무원으로 20년 동안 일했는데 5년 전에 사퇴했습니다. 아마 구속된 제 영향도 있었을 겁니다. 공무원이다 보니까요. 그런 것 생각하면 남편에게 정말 미안하죠. 남편이 지금은 여름에는 노동 현장에서 일용직으로 일하시고 겨울에는 대리운전도 하고 그럽니다. 남편이 가끔 제가 힘들어 하거나 회의가 있어 차가 끊기면 수원에서 서울까지 데리러 옵니다. 아침에 일찍 회의가 있는데 피곤해하면 또 실어다 줍니다."(위의 책, 97쪽)

용산4구역

"용산4구역 같은 경우는 서울 한복판인데도, 예를 들어서 1억을 투자했는데 2500만 원이 나오고 2억 투자했는데 5000만 원이 나오는 거예요. 투자해서 많이 벌었다면 여유가 있으니까, 이주할 능력이 있으니까 갚겠지만, 그렇지 못한 분들이 문제죠. 2억 3000만 원 빚을 얻어서 3000만 원 갚고 2억 빚이 있는데 5000만 원이 나온 거예요. 받은 거 가지고 다른 데 가서 영업하려면 같은 수준으로 평행 이동 했을 때 빚을 또 얻어야 되는 거예요. 그러면 '여기 개발하는데 내가 왜 이런 큰 빚을 져야 하느냐, 말이 안 된다' 이럴 수밖에 없죠. 개발 지역의 실정이 그래요. 전 재산을 털어서 거기다 생계 대책 세웠는데, 이거를 파괴하는 거라서 투쟁 안 할 수 없는 거예요.
...
그런데 철거가 폭력으로 다가오니까 어쩔 수 없이, 폭력을 당하는 것도 한계가 있는 것 아닙니까? 옥상으로 올라가고 망루를 짓고, 망루를 지어 놓으면 어쨌든 폭력을 피하면서 우리 요구를 내세우고 표현할 수 있으니까요. 이번(용산4구역)에는 그걸 미리 막아야겠다, 한 겁니다. 철거민들이 화염병을 먼저 던지고, 골프공을 먼저 던졌다는데 그게 아니예요. 그 사람들이 계속 철거를 하려고 하니까 못하게 하기 위해서 방어를 한 겁니다."(위의 책, 179쪽)

조세희 작가의 말

"여섯 명이 죽었어. 내 난장이에 보면 폭력은 경찰 곤봉이나 군대 총만이 아니라고 했어. 우리 시대 어느 아이 하나가 배고파 밤에 울면, 그 아이 울음소리 그치게 하지 않고 놔두는 것도 폭력이라고 그랬다고. 어제 어마어마한 폭력이 가해졌는데도 우리가 그냥 지나간다면 우리가 죄를 짓는 거야. 철거민을 우리가 두드려 패고 화염 휩싸인 그 뜨거움 속에서 죽게 했다는 게 아냐. 우린 그런 죄는 짓지 않았어. 그런데 그 범죄행위, 학살행위를 막지 못한 게 우리 죄라는 거지. 그래서 동시대인으로서 우리는 다 같은 죄인이야. 나도 똑같은 죄인이야. 사실은 이 말을 하러 나온 거야."(위의 책, 292쪽)

"'냉소주의에 빠지지 말자' 그런 말은 또 한 번 써줘요. 냉소주의는 우리 적들이 제일 좋아하는 것이기 때문에 거기에 빠지면 안 됩니다."(위의 책, 300쪽)

조세희 작가의 마지막 말, '냉소주의에 빠지지 말라'는 잊혀지지 않는다. 난 이미 냉소주의에 발을 담그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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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폭력 대화
마셜 로젠버그 지음, 캐서린 한 옮김 / 바오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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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http://nadle.tistory.com/36  

만족스럽지 못한 대화의 원인은?

대화는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말하기이다. 혼자 말하는 연설이나 강연과는 다른 성격의 말하기다. 대화를 통해서 서로 소통하고 있다고 느끼는 경우는 얼마나 될까? 그런 경우가 드물다면 그 원인은 무엇일까?

사람들은 왜 다른 사람에게 말을 걸까?

왜 당신은 다른 사람에게 말을 걸까. 그리고 어떤 말을 들었을 때 기분이 나빴나, 어떤 때 자신도 모르게 발끈 화를 냈나 생각해보자. 왜 그런 말에 기분이 나빴는지도.

만날 때마다 늦는 친구가 있다. 날도 추운데 밖에서 보기로 했고, 역시나 예전처럼 삼십분이나 늦었다. 난 화가 났다. 그래서 말했다.
"넌 도대체 일찍 온 적이 한번도 없니!"
그 말에 친구는 발끈했다.
"뭘, 조금 늦은 걸 가지고 그래! 너도 저번에 이십분 정도 늦었잖아. 지도 늦을 때 있으면서."
흔히 이런 대화를 나누곤 한다. 이런 대화를 나누고 나면 어느 사람도 기분이 좋지 않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비폭력대화가 말하는 네 가지 대화 단계!

비폭력대화는 네 가지 대화 단계를 강조한다. 그 단계를 거친다면 우리의 대화에서 발생하는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각 단계가 무엇인지 살펴보자.

1. 관찰

첫째는 관찰이다. 주관적 판단이 아닌 관찰 말이다. 앞의 예를 다시 살펴보자. "넌 도대체 일찍 온 적이 한번도 없니!" 이 말은 객관적인 관찰일까? 아무리 자주 약속을 어기는 사람이라도 백에 한번 정도는 제 시간에 왔을 것이다. 따라서 이 말을 들은 사람은 저 말이 관찰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부정적 판단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다보니 기분이 나빠진다. 객관적 관찰은 '오늘 약속에 삼십분 늦었다는 것'이다.

2. 느낌

다음은 느낌이다. 친구가 늦는 상황에서 자신의 느낌은 어땠는가. 친구가 늦은 게 마음의 불편함의 이유는 아닐 수도 있다. 밖에서 만나기로 했고, 주변에는 들어가 있을만한 커피숍도 없고, 날씨는 추웠다. 이런 옷도 얇게 입고 왔다. 추위에 떨면서 친구가 일찍 오기를 바라고 있는데, 친구가 늦는다. 이때 '서글프다', '서운하다', '섭섭하다', '힘들다'는 등 여러 감정을 느끼게 될 것이다. 하지만 만약 친구가 좋아하는 친구이고, 그 친구와의 첫 데이트라면 어떨까? 친구가 늦지만, 친구를 만나서 무엇을 할지 고민할 수 있어서 좋게 느낄 수도 있다. 늦는 상황에 따라 느낌은 언제나 같지 않다. 그때 그때 다른 느낌을 느낀다. 자신의 느낌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서 잠깐, '강요당하다', '공격당하다', '배신당하다', '학대받다', '버림받다' 등과 같은 단어는 느낌일까? 아니면 생각일까? '강요', '공격', '배신', '학대', '버림' 등의 단어가 보여주듯 이것은 판단이다. 상대와 자신과의 관계에 대한 생각과 판단인 것이다. 상대방은 배신하지 않았는데도, 자신 스스로 배신당했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과 판단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생각과 판단만을 해서는 자신이 뭘 원하는지 알 수 없다는 점이 문제이다. 당신의 느낌에 집중해야 한다. 왜 집중해야 하냐고?

3. 욕구

느낌 뒤에는 욕구가 숨어 있기 때문이다. 느낌 뒤에 있는 욕구를 한번 찾아보자.

<느낌>                -                 <욕구>
피곤하다             -
서운하다             -
걱정된다             -
무섭다                -
창피하다             -
...

답안은 아니다. 한번 느낌 뒤에 있는 욕구를 찾아보았다.

<느낌>                -                 <욕구>
피곤하다             -                  휴식 
서운하다             -                 자기존중
걱정된다             -               사랑, 애정
무섭다                -                   안전
창피하다             -                   인정
...

느낌은 일종의 신호다. 충족되거나 충족되지 않은 욕구가 있다고 알려주는. 신호가 말하는 것을 귀 기울여 들어야 한다.

앞의 예의 경우, 친구를 기다리는데 날씨가 추웠기 때문에 '서운함'을 느꼈을 것이다. 그 '서운함'이란 느낌 뒤에는 친구가 자신을 '배려'해주기를 바라는 욕구가 있었을 것이다.

4. 부탁

마지막 단계는 부탁이다.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는 것이다. 자신이 어떤 것을 원하는지 말하는 것이다. 앞의 단계를 통해서 당신을 이해한 상대방도 당신의 부탁을 들어줄 것이다.

앞의 예에서, 만약 이렇게 말했다면 어땠을까?
"밖에서 삼십분이나 기다리니까, 너무 춥더라. 네가 제때 오지 않아서 서운하더라. 네가 날 배려해주기를 바라니까. 일찍 못오면 못 올 것 같다고 미리 알려주었다면, 카페에 들어가서 기다리고 있었을텐데 말이야."

상대방도 기분 나쁘게 듣지 않고, 당신의 느낌과 욕구를 이해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이렇게 답했을 것이다.

"미안해. 급하게 회의 끝나자마자 오니까 정신이 없어서 연락을 미리 미리 못했다."

비폭력대화의 시작은 자신과의 대화

너무나 간단한 모델이라서, 쉬워보이지만 비폭력대화는 쉽지 않다. 다른 사람과 비폭력대화를 나누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은 무엇일까? 자신과 대화를 나누는 일이다. 자기 자신의 느낌과 욕구를 찾을 수 있어야, 다른 사람에게 부탁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과 대화를 나눠보지 못한 사람은 다른 사람과의 대화도 나눌 수 없다.

자신과의 대화가 익숙해지면 이제 다른 사람의 말을 들을 때도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게 될 것이다. 친구가 당신에게 "넌 어떻게 만날 늦니?"라고 말했을 때, "야, 어제는 일찍 왔어!"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내가 오늘 늦어서 오래 기다려서 힘들었나보구나. 미안. 미리 미리 연락했어야 했는데."라면서 친구가 한 말 뒤에 숨겨 있는 느낌과 욕구를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비폭력대화의 기본원리만 간단히 설명한 글이다.
좀 더 자세한 원리나, 예들을 알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책과 강의를 추천한다.
책 <비폭력 대화>
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1428002

한국NVC센터 홈페이지이다.
http://www.krnvc.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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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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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부탁해'를 읽다

오늘 '엄마를 부탁해'를 읽었다. 하루 만에. 엄마가 읽어보라는 말에 손에 잡았는데. 스스로 놀랄만한 집중력이었다. 내가 집중력이 좋아서라기보다는 이야기가 좋았다. 계속 읽고 싶게 만드는 힘, 나를 빠져들게 만드는 힘이 이야기 속에 있었다.

누가 나에게 소설의 주제를 묻는다면

소설의 주제를 누가 물었다면 난 뭐라고 할까. 아마 짧게는 한 줄로, 길게는 한 쪽에서 수 쪽으로 압축해서 소설의 주제를 설명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잊고 지냈던 '어머니로서의 삶', 그 희생과 고통. 그것을 애써 무시하고 '어머니'라면 당연히 그래야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해온 나를 비롯한 사람들. '어머니'란 사람도 한 개인으로서 꿈이 있고, 그 꿈을 이루고 싶었을 지도 모른다는 의심조차 하지 않는 남편과 아이들. 그 아이들 중에 한 사람인 나. 왜 나는 어머니란 존재에 기생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반성했다.그리고  빨리 독립해야지, 그리고 어머니 생일 때는 꼭 내가 손수 미역국을 끓여 드려야지, 다짐도 했다.

만약 논문을 읽었다면

만약 같은 주제의 논문을 읽었다면 난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그래, 참 옳은 말이네. 그래야겠다'고 생각만 했을 것이다. 실제로 난 비슷한 주제로 쓴 논문을 읽었지만 생각만 했으니까. 우리 엄마는 어제 소설을 읽다가 엄마의 엄마인 외할머니한테 전화를 했다. 우리집에 계시다가 대전으로 내려가신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소설이 엄마를 움직였을 것 같다. 전화기 앞에 가서 전화를 하도록. 나도 오늘 소설을 읽고 외할머니가 생각나서 전화를 했다. 나까지 키워주셨던 할머니가 생각나서.

힘주어 말할수록

힘주어서 '이렇게 살아야 돼!'라고 말하는 것만큼 힘없는 말도 없는 것 같다. 부모님의, 선생님의 말씀들이 잔소리밖에 안 되는 것들도 힘주어서 말하니까 그런 것은 아닐까. 힘을 주면 줄수록 읽는 이를 움직이는 힘은 사라진다. 지은이의 주장을 담아 힘주어 말하는 논문을 읽는 사람도 드물고, 그런 논문을 읽고 인생이 바뀌었다는 사람은 더 드물다. 생각은 바뀌어도 몸까지는 잘 움직이지 않으니 삶이 바뀌기가 어려운 거겠지.

이야기의 힘!

이야기는 사람들의 머리를 바꾸는 게 아니라 가슴을 바꾸어놓는다. 사람은 머리로 움직이는 것 같지만 사실 가슴으로 말하고 행동하지 않는가. 이래야 한다고 말하지 않고 조용히 보여주고 들려주는 이야기. 그 안에서 읽는 이는 스스로 가슴으로 느끼고 깨닫는다. 굳이 힘주어 말하지 않아도 이야기가 말해주고 보는 사람들은 알아서 이해한다. 글쓴이가 말하려고 했는지 의심스러운 것조차. 글 속 어디에서도 '엄마한테 전화를 자주 하세요!'란 문장이 없어도 사람들은 전화를 한다. 더 많은 것들을 하게 만들기도 한다. 각자의 방법대로 다양하게.


덧붙임 - 당연한 전제가 있으니

물론 잘 쓴, 오랜시간 공들인 이야기만 그렇다. 힘 있는 이야기에서만 이야기가 가진 힘이 나오는 거니까. 이야기꾼이 꿈이라고 말하고 다니는 나는 어떤 이야기를 만들고 있을까. 내 이야기에 힘이 없다면 왜일까, 생각해본다. 대충 쓰고, 노력도 하지 않고, 조사도 하지 않고, 힘만 잔뜩 주고 쓰면서 내 이야기에 사람들이 읽어주기를 감동받기를 기대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 정말 사람들이 들어주면 좋겠다는 이야기가 있다면 잘 공들여서 다듬어서 써야겠다. 혼잣말을 하고, 혼자만 볼 이야기가 아니라면.

2009/04/08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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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크루그먼의 경제학의 향연 - 경제 위기의 시대에 경제학이 갖는 의미와 무의미
폴 크루그먼 지음, 김이수.오승훈 옮김 / 부키 / 199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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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0년대부터 1990년대 미국 경제를 중심으로 한 사기극 - 


I. 극 제목에 대하여

폴 크루그먼의 교수의 ‘Peddling Prosperity: Economic Sense and Nonsense in the Age of Diminished Expectations'의 책을 역자는 ’하찮은 번영: 기대 체감의 시대에 경제학이 갖는 의미와 무의미‘라고 번역하였다. 제목의 ’Peddling'을 ‘Prosperity'를 꾸며주는 형용사로 본 것이다. 하지만 책의 서론에서 볼 수 있듯이 크루그먼 교수는 3막짜리 연극처럼 구성했다. 경제학이 갖는 의미와 무의미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드는 이 한편의 시대극의 제목으로 과연 ’하찮은 번영‘이 맞는가 의문이 든다.

이 연극의 주요 등장인물들을 직업에 따라 나눠보면 정치가, 경제학자, 정책기획가이다. 이 중에서도 이야기의 주인공은 정책기획가들이다. 이야기의 주요 내용이 정책을 결정하는 정치가들에게 경제학자들과 정책기획자들이 자신들의 사상을 어떻게 선전했는지, 그 과정 속에서 정책기획자들이 어떻게 승리했는지, 그 결과 어떤 정책이 시행되었는지를 살펴보고 있기 때문이다.

극의 내용에 맞게 ’Peddling'을 동명사로 해석해보면 어떨까. 주어는 물론 주인공인 정책기획가들이다. ‘peddle'의 타동사로서 의미는 행상하다, 소매하다, 퍼뜨리다 등이 있다. 'prosperity'를 목적어로 본다면, 이 책의 제목은 번영을 행상하기, 번영을 소매하기, 번영을 퍼뜨리기 등이 될 것이다. 행상이나 소매가 떠올리게 하는 이미지와 정책기획가들의 이미지가 비슷하다. 주로 보수경제학자들이 만들어낸 사상을 정치가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재포장해서 판 사람들이 그들이기 때문이다. 보수경제학자들이 정책의 도매상이고 정책기획가들이 소매상이라고 봐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극 제목으로 ‘번영을 소매하기’란 적당해 보이지 않는다. 이런 제목을 보고 어떤 관객이 오겠는가. 조금 그럴 듯 하게 팔리게 바꾸어보자. ‘번영을 팝니다!’가 좋을 것 같다. 제목만 봐도 정책기획가들이 너도나도 나서서 번영을 판다고 난리를 벌이는 광경이 떠오르는 것 같다.

II. 배경

케인스 학파가 경제학을 평정(?)한 것 같은 시절이 있었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1970년 대까지 서유럽, 일본과 미국에서는 유례없는 지속적인 경제성장과, 이에 따른 생활수준향상이 이루어졌다. 풍요의 시대였다. 하지만 폴 크루그먼이 기대 체감의 시대의 시작이라 부른 1973년부터 생활 수준이 오랫동안 정체되기 시작했다. 이 경기 정체란 현상에 어떻게 대처해야하는가를 놓고 학자들과 정책기획가들이 나서기 시작했다. 각자 나서서 왜 현상의 원인과 처방전을 내놓기 시작했다. 이렇게 처방전을 내놓은 사람들은 누구이고 그들이 주장한 내용은 무엇일까.

III. 인물

1. 케인스 - 케인스학파

왜 경기가 후퇴할까. 모두가 동시에 현금을 축적하려고 한다면 어떤 현상이 벌어질 것인가 질문을 던진다. 답은 지출이 줄면 소득도 준다는 것이다. 상대도 구매를 하지 않고 현금을 축적하려고 하고, 나도 구매를 하지 않고 현금을 축적하려고 하니, 나도 팔지 못해 지출만 주는 것이 아니라 소득이 줄어들게 되는 것이다. 해결책은 무엇일까?

탁아 조합의 예를 들어 보자. 유통되는 쿠폰의 수가 모자란 상황이다. 조합원들이 평균적으로 원하는 쿠폰 보유량보다 적게 갖고 있기 때문에 더 쿠폰을 확보하려고 한다. 따라서 외출을 자제함으로써 쿠폰을 갖으려고 한다. 모두가 외출을 꺼려서 탁아 조합이 침체에 빠진다. 이때 한 달에 최소 두 번 외출해야 한다는 규칙을 제도화한다. 이는 사용할 쿠폰 중 2장은 이미 확보한 것과 같은 효과를 가져다준다. 쿠폰 유통량을 늘려주는 것이다. 시간이 흐르자 상황이 반전되어 유통량이 증가하여 조합원들 모두가 자주 외출할 수 있게 되었다.

쿠폰은 경제에서 통화와 같다. 그의 해결책은 통화량을 늘려주면 경기 후퇴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통화량을 늘려주었는데도 기업과 가계에서 축적하려고만 한다면, 공공사업을 확대하여 정부가 직접 지출을 하면 된다. 물론 이는 최후의 수단이지만.

2. 프리드먼 - 통화주의자들

밀턴 프리드먼의 요점은 적극적인 통화정책은 불필요한 것을 넘어 경제의 불안정을 심화시키니 단순하고 기계적인 통화 준칙으로 대체해야 한다는 것이다. 케인스의 의견처럼 불황이 통화량의 감소로 발생한다면, 통화 당국은 경제 동향을 주시할 필요가 없다. 통화공급을 꾸준히 유지하면 된다는 주장이다.

케인스 이론은 왜 경제에 해로운가. 보일러를 쓰는 온수기를 생각해보자. 보일러가 욕조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온수 수도꼭지를 돌리면 한참 뒤에 뜨거운 물이 나온다. 너무 뜨거워서 온수를 잠그니 이번에는 찬물이 나온다. 샤워를 하는 사람이 경제이고, 이에 반응하는 보일러는 통화 정책 당국이다. 통화량이 부족하다는 신호에 한참 늦게 돈을 풀어서 경기침체(찬물)를 실컷 맛보고, 이제 거꾸로 경제호황(뜨거운 물)이 되었는데도 돈을 계속 풀려서 뜨겁다 못해 델 정도가 된다. 이 과정이 계속 반복된다. 결국 정부 통화정책은 경제의 변동폭을 키우는 결과만 가져온다는 비판이다. 해결책은 수도꼭지의 온수를 일정하게 두는 것이 최선책이듯 통화량을 꾸준히 유지하는 것이다.


이에 대한 반론은 과연 프리드먼의 말처럼 통화량이 측정하기 힘든 것이고, 통화 정책 당국의 결정이 늦게 경제에 영향을 미칠 것인가하는 점이다. 연방준비은행이 실제로 발행하는 것이나 지불 수단으로 직접 쓰일 수 있는 현금에 당좌 예금을 더한 합계를 통화라 한다면 프리드먼의 주장처럼 통화정책의 반응속도가 느리지는 않다.

3. 루카스 - 합리적 기대학파

로버트 루카스는 경기 후퇴는 사람들이 혼란에 빠지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주장하였다. 자신이 현금을 보유하고 싶어하는 것은 알지만, 다른 사람도 그런지는 알지 못한다. 자신의 생산물에 대한 수요 감소가 특수한 현상인지 보편적 현상인 디플레이션인지 알기 힘들다. 따라서 경기 후퇴는 사람들이 일반적인 침체 국면임을 깨닫게 되면 자동 조절된다.

그리고 루카스는 예측 가능한 모든 통화 정책이 비효율적이라고 주장했다. 연방준비이사회가 공식 실업률이 1%증가할 때마다 통화공급을 1% 증가시키는 규칙적인 정책을 하고, 이 정책을 세간에 널리 알려졌다고 하자. 이때 기업들은 규칙적인 정책에 따라 실업률 통계 수치가 올라갈 때마다 가격을 인상하므로 통화확대는 산출물에 영향을 주지 못하고 가격에만 영향을 준다고 주장하였다. 이 같은 설명은 실업률과 물가상승률이 모두 증가하는 스태그플레이션에 대한 이론적 설명으로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한 반론은 과연 기업이 가격을 결정할 때 통화 정책과 통화 정책을 예측할 정도로 거시 경제 지표를 주의 깊게 살펴보냐는 것이다.

4. 공급 중시 경제학파

공급 중시 경제학자들은 통화 정책과 같은 수요 측면의 정책은 비효율적이라고 주장한다. 그보다는 조세 감면이 주는 인센티브 효과가 크기 때문에 세금을 인하하면 경제활동이 비약적으로 증가하여 세수가 떨어지기보다는 오히려 늘어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들은 수요 측면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믿었다. 그리고 통화 공급이 갖는 현실적 중요성을 간과하였다. 경제 전체의 신용량에 비해서 통화 공급에 해당하는 양은 너무 적다는 것이다.

5. 신 케인즈학파

루카스의 말처럼 기업과 가계는 합리적일까. 보스턴 주택시장을 보자. 이곳에서는 팔리지 않는 집들로 몇 년 동안이나 넘쳐났다. 왜 사람들은 주택 가격을 내리지 않았던 것일까. 답은 파는 사람들이 가격을 내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밀처럼 동질적 상품이 아니라 주택시장이나 노동시장 같은 경우 차별화된 자산을 갖고 있다. 가격이 낮을수록 잘 팔리지만 팔릴 수 있는 정해진 가격은 없다. 운 좋으면 서두르는 사람한테 비싼 가격에 팔지도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 가격을 내리지 않는다고 비합리적이라고 판매자들을 볼 수 있을까. 그들은 어느 정도 합리적일 뿐이다.

이런 시장의 특징은 매우 불완전하다는 점이다. 보스턴 주택시장의 침체처럼 시장이 불완전 경쟁 시장이고, 완전하게 합리적이지는 못한 개인들이 있다면 시장은 비합리적인 결과인 장기 침체를 가져올 수도 있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불황이 경제 전체에 걸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도 즉각 대폭 가격과 임금을 하락시키지는 않는다. 따라서 정부의 정책, 화폐의 공급의 증가를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6. 전략적 무역론자

전략적 무역론자들은 미국 기업들이 국제 경쟁력을 잃었기 때문에 경제가 침체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를 항공산업의 예를 통해서 설명한다. 항공산업에서 유럽의 지원으로 에어버스 회사가 등장하였기 때문에 보잉사가 독차지할 수 있는 이익이 감소했다는 논리이다. 유럽의 지원으로 에어버스가 성장했듯이 전략 산업에 국가 지원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즉, 고용 당 부가가가치가 큰 사업에 노동과 자본의 투입량을 늘이고, 국제적 경쟁자들보다 우월한 위치에 있는 사업을 유지해나가야만 실질 소득이 상승한다는 논리이다.

반론은 국제 경쟁을 승자가 엄청난 이윤을 보장받는 두 나라 대표기업간의 투쟁으로 볼 수 없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산업은 그렇게 경직되어 있지 않으며, 미국이 승리해도 국내 기업들 간의 경쟁으로 가격과 이윤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 어떤 산업에 지원을 해야할지 결정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특정 산업에 보조금 형식의 지원을 한다면 다른 산업의 자본과 노동은 배제하게 되는데 정부가 그런 업무를 수행할만큼 객관적일 수 있는가하는 의문이 생긴다. 실제 미국 경제에서 1991년 기준 수출은 미국 국내 총생산의 10%, 수입은 11%였다. 또 1991년 미국의 산출물의 76%는 재화가 아닌 서비스로 구성되었다. 이 서비스 분야는 국제 경쟁으로부터 차단되어 있다.

IV. 사건과 비극적 결말

여섯 명의 주요 인물들과 주장을 소개했다. 과연 1970년대 이후 누가 정치가들과 손을 잡고 경제 정책을 이끌었을까. 극의 제목을 보고 눈치챘을 것이다. 미국의 경우, 자유주의 경제학을 대변한 케인즈학파도 아니고 보수주의 경제학을 대변하는 통화주의자들, 합리적 기대학파 사람들도 아니다. 번영을 판다고 외친 공급 중시 경제학파 사람들이었다. 과연 실제로 그들은 번영을 팔았을까.

그들은 근본적이고 대규모적 고도 성장을 약속하였다. 그들 뜻대로 미국에서는 레이건 집권 기에 대규모 감세가 행해졌다. 이들의 감세는 사람들이 벌어들이는 부가적인 소득에 지불하는 세율인 한계 세율을 낮추는 것이었다. 하지만 불균형하게 고소득층 가계의 세율을 낮추어버리는 결과를 낳았다.

1977년부터 1989년까지 12년 동안에 최상위 1%의 가계는 소득이 두배가 되었다. 6%의 성장률에 해당하는 결과이다. 잘 사는 사람들에게 1980년대는 말그대로 좋은 시절이었다. 1979년부터 1989년까지 평균 가계 소득은 11% 증가하였지만, 중간 소득은 불과 4% 증가했다. 소득의 양극화, 불균형 문제가 심화된 것이다. 여기에 민간 저축률은 급격히 떨어졌다. 1980년에 가처분 소득의 9.1%였던 것이 1987년에는 5.1% 수준으로 떨어졌다. 동시에 재정적자가 급속히 불어났다.

소득 양극화, 정부 재정 적자 심화 등의 문제가 있었지만 그들이 말했던 고도 성장은 왔는가. 성장률은 연도에 따라 변화가 심하다. 어느 시기의 평균 성장률을 계산할지에 따라서 그 결과가 크게 달라진다. 만약 보수주의의 실패를 보여주고 싶다면 1980년말부터 1992년말까지 공화당이 집권했던 전 기간의 평균 성장률 2.1%를 전호 호시절이었던 1947년부터 1973년까지 평균 성장률 3.4%와 비교하면 된다.

그렇다면 레이건의 집권시기와 맞물려 이루어진 경기 회복은 어떻게 일어난 것일까. 정부와 준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연방준비이사회의 통화 정책에 따른 것이었다. 1979년 인플레이션을 진정시키기 위해서 통화를 죄자 1930년대 이래 최악의 경기 침체가 야기되었다. 그 뒤 1982년 연방준비이사회가 정책을 바꾸자, 경제도 급속도로 회복되기 시작했다. 경기 회복의 숨은 주인공은 연방준비이사회의 통화 정책이었던 셈이다.

결국 그들은 자기들이 하지 않은 일을 자기들이 했다고 사기를 친 꼴이다. 그들의 뒤를 이어 클린턴 행정부에서는 전략적 무역론자들이 다음 공연을 준비하고 있었다. 제목은 여전히 비슷했다. 클린턴 버전의 ‘멍청아, 문제는 경제야!’.

V. 한국판“번영을 팝니다!”절찬리 상연 중

인터넷으로 실시간 세계뉴스가 전해지지만 경제사상은 꼭 뒤늦게야 한국에 온다. 미국 유학파 학자들이 세력을 형성하고 자리를 잡기까지 걸리기 때문에 발생하는 시차일까.

이명박 정부의 정책은 레이건의 정책과 닮았다. 레이건이 미국에서 집권했던 시기가 20년도 더 지났지만, 한국에서는 그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공급 중시 경제학파의 목소리 말이다(이른바 신자유주의라고 불리는 정책을 만들어낸 주인공이 공급 중시 경제학파 사람들이었다는 것은 크루그먼의 이 극을 보고 나서야 알았다). 하는 말도 같다. 매년 7% 고성장을 약속한다. 그 방법으로는 감세를 말한다. 한국이라고 특별해서 결과는 다를 것인가. 미국에서 벌어진 일은 보편적인 현상이 아니라 특수한 현상이라고 보는 완전하게 합리적이지 못한 사람들이 한국 정책을 집행하고 있는 것일까. 결과도 미국과 비슷할 것이다. 소득세, 법인세, 상속.증여세, 부동산세 감세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2008년 세제개편안’을 9월 1일에 기획재정부는 이미 내놓았다. 소득 불균형에 따른 양극화는 더욱 심해질 것이 뻔하다.

경제학의 해결 난망의 미스터리라는 경제 성장률이 시대와 국가에 따라 왜 다른가하는 문제는 한국 정부에게는 미스터리가 아닌 것 같다. 해결책이라도 예전 미국식 정책과 다르다면 의심쩍기는 하지만 조금이라도 믿어보겠으나 해결책도 똑같다.

한걸음 더나아가 기존에 있었던 모든 신자유주의 정책의 종합편을 상연할 계획인 것 같다. 영국에서 실패로 끝난 공기업 민영화를 시행할 계획을 짜고 있다. 주로 자연 독점 시장에서 영업하는 공기업들을 대거 민영화할 경우 그 결과는 영국과 같을 것이다.

VI. 기대체감 시대의 경제학의 의미

단순한 정책 기획가들의 생각이 팔리고, 학자들의 훌륭한 생각은 팔리지 않는 이 시기에 경제학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을까. 그의 공연의 부제인 ‘기대 체감의 시대에 경제학이 갖는 의미와 무의미’를 다시 떠올리게 된다. 그의 극을 통해 경제학이 보여준 의미를 정리해본다.

● 경제 성장의 근본 원인은 아직 정확히 알지 못한다.
● 시장은 만능이 아니다. 시장에서는 경기 침체, 독점 시장 등의 문제가 발생한다.
● 국가도 만능은 아니다. 따라서 시장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지만 줄일 수는 있다.

이런 의미들이 단순한 경제학들에 묻혀 정책에 적용되지 않을 때 경제학은 무의미한 것인가 고민하게 된다. 그래도 “장기적으로 우리 모두는 죽지만, 훌륭한 사상은 영원하다”는 신념을 가져야 한다는 크루그먼의 말처럼, 언젠가는 그 의미가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때가 오기를 희망한다. 되도록 빠른 시일 안에.

참고자료

폴 크루그먼, <경제학의 향연>, 김이수,오승훈 옮김, 부.키, 1997. 
 

2008/09/25 22:38 http://blog.hani.co.kr/noriteo/17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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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
프란츠 카프카 지음, 이영희 옮김 / 좋은생각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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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레 같은 삶

대학교를 졸업한 다음날 아침, 어수선한 꿈에서 깨어난 엉뚱뚱이는 자신이 무시무시한 벌레로 변한 채 침대에 누워 있는 것을 보았다.

벌레로 변한 그를 처음에는 애정어린 시선으로 가족들은 대했다. 때되면 밥 먹으라고 말도 해주고. 시간이 지나자 그가 무엇을 먹든 신경쓰지 않았다. 다른 이웃 사람들에게 그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꺼렸고, 그는 집 안에 없는 사람 같았다. 손님들이 왔을 때 그가 방에서 기어나오자 가족들은 그를 망신스러워했다.

그는 결국 멸시 속에 삶을 마감했다. 가족들은 그가 없는 아름다운 삶을 꿈꾸기 시작했다.

카프카의 '변신'을 현대에 맞게 재구성해 보면 위 이야기와 같을 것이다. 변신의 처음과 끝을 보자.

카프카의 '변신'

어느 날 아침, 어수선한 꿈에서 깨어난 그레고르 잠자는 자신이 무시무시한 벌레로 변한 채 침대에 누워 있는 것을 보았다. (변신, 카프카, 좋은생각, 2004, 9쪽.)

자세히 살펴보니, 앞날의 전망이 썩 나쁜 것도 아니었다. 이제까지는 서로 상세히 물어보지 않았지만, 세 사람 모두 상당히 훌륭한 직장에 취직했으며, 특히 앞으로의 전망이 좋았다. 또 이사를 하면 상황을 당장 쉽게 개선할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들은 그레고르가 골랐던 지금의 집보다 작고 값싸지만 위치가 좋고 무엇보다도 실용적인 집을 원했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동안, 잠자 부부는 점점 활기를 띠는 딸의 모습을 바라보며, 딸이 최근 얼굴빛이 창백해지도록 고생을 했지만 어느새 토실토실 예쁜 처녀로 피어났음을 거의 동시에 느꼈다. 잠자 부부는 점점 조용해지며 거의 무의식적으로 서로 눈길을 나누며 이제는 딸을 위해 훌륭한 신랑감을 찾아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전차가 목적지에 도착하자 딸이 제일 먼저 일어나 기지개를 폈다. 그런 딸의 모습을 통해 잠자 부부는 새로운 꿈과 아름다운 계획들이 확인 받는 느낌이었다. (변신, 카프카, 좋은생각, 2004, 97~98쪽.)


그레고르 잠자가 벌레로 변한 뒤 가족들은 처음에는 놀랐다. 그레고르가 벌레로 변한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다. 그레고르는 방에서 뒹굴뒹굴 놀다가 아버지의 폭력으로 다치고, 그의 방마저 창고로 쓰이다가 끝에 가서는 쓸쓸한 죽음을 맞는다. 그가 죽은 뒤 가족들은 슬퍼하기 보다는 새로운 꿈과 아름다운 계획들을 생각하며 기뻐한다. 냉혹한 가족들. 자신의 아들과 오빠가 죽고 난 뒤 도리어 기뻐하는 가족들. 끔찍하다.

당신도 변신하고 싶다면

벌레가 되는 방법은 간단하다. 백수가 되는 것이다. 백수가 되어 한 해, 두 해만 놀면 온갖 억압과 강요, 천대 속에서 그레고르처럼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 변신의 방법치고는 너무 간단하다고? 믿지 못하겠으면 해봐라. 가족들은 이름을 부르지 않고 이렇게 말할 것이다.
"버러지보다 못한 놈 같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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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소설을 읽는 다른 두 눈

변신을 처음 읽었을 때 난 이런 생각을 갖지 못했다. 변신을 읽고 나서 해답지(?)를 엿보는 마음으로 책의 끄트머리에 있는 해설을 읽었다.

작품해설

우선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 ‘변신’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잠을 자고 일어났는데 커다란 벌레로 변해버린 어느 ‘평범한’ 청년의 이야기이다.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한 뒤부터 가족을 위해 밤낮없이 일만 했던 그가 왜 벌레가 되어야 한단 말인가! 더 기가 막힌 것은 가족을 위해 희생했던 그가 결국은 가족으로부터 철저하게 버림을 받고 방에 갇힌 채 쓸쓸히 죽어갈뿐만 아니라 그가 죽은 뒤에도 가족은 잠깐 슬픔에 잠길 뿐 곧 홀가분한 기분이 되어 밝은 미래를 꿈꾼다는 이야기의 결말이다. 카프카의 세계에는 ‘정의’가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대략의 줄거리 진행만 보자면 변신의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는 너무도 부당한 일을 겪은 것처럼 보이지만 좀더 자세히 읽어보면 반드시 그런 것만도 아니다. 우선 잠자는 가족을 위해 희생적으로 일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 희생이 정말 반드시 필요했던 것일까? 그 희생의 대가로 그가 권력을 누리지 않았던가? 그의 희생은 결과적으로 자신과 다른 가족들의 삶까지 망치지는 않았던가? 만약 이 질문들에 대한 대답이 잠자에게 부정적으로 내려진다면 잠자가 벌레의 모습으로 죽음을 맞은 것은 끔찍하긴 하지만 ‘정의로운’ 결말일 수 있다. 이 질문들에 대한 답변을 이야기의 결말 부분에서부터 찾아보자. 잠자가 죽은 뒤 남은 가족은 오랜만에 전차를 타고 교외로 소풍을 간다. 세 사람의 모습은 다음과 같이 서술되어 있다.

“자세히 살펴보니, 앞날의 전망이 썩 나쁜 것도 아니었다. 이제까지는 서로 상세히 물어보지 않았지만, 세 사람 모두 상당히 훌륭한 직장에 취직했으며, 특히 앞으로의 전망이 좋았다. 또 이사를 하면 상황을 당장 쉽게 개선할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들은 그레고르가 골랐던 지금의 집보다 작고 값싸지만 위치가 좋고 무엇보다도 실용적인 집을 원했다. (...) 잠자 부부는 새로운 꿈과 아름다운 계획들이 확인 받는 느낌이었다.”

이것이야말로 해피엔딩이 아닌가? 잠자는 자신만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질 수 있는 유일한 ‘능력자’로, 남은 가족을 ‘무능력자’로 믿고 행동함으로써 실제로 그렇게 만들었다. 하지만 잠자가 죽고 난 뒤 세 사람의 행복한 모습은 잠자의 믿음이 잘못되었음을 말해 준다. 가족은 잠자가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훌륭한 직장에 취직했고 또 무엇보다도 갑자기 닥친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을 만큼 실용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그간 잠자의 희생을 불필요했을 뿐만 아니라 가족을 오히려 무능하게 만들었을 뿐이다.(변신, 카프카, 좋은생각, 2004, 272~274쪽.)

잠자는 가족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가족을 무능하게 만들고 그 과정에서 유능한 자의 권력을 맛보기는 하지만 오직 돈만을 위해 일하는 일벌레의 삶을 산 것이다. 이렇게 볼 때 그가 벌레로 변한 것도 우연만은 아니며 죽음을 통해 가족들의 삶에서 사라진 것은 - 물론 대단히 엄격하긴 하지만 - 부당한 판결로만 볼 수는 없다.(변신, 카프카, 좋은생각, 2004, 275쪽.)

문화정치론 선생님의 이야기

변신은 1912년 카프카가 쓴 작품(간행 1916년)이다. 시대적 배경이 된 산업사회에서 어떻게 인간이 소외되고 있는지 보여준다. 열심히 일했다해도 일하지 않는 순간부터 벌레처럼 취급당할 수밖에 없는 사회상을 풍자한다는 뜻이었다. 인간이 인간으로서 존엄한 것이 아니라 돈을 벌어오는 인간만이 존엄한 사회를 보여준다면 지나친 해석일까.

누구의 이야기가 맞는 것일까. 두 이야기 모두 설득력 있다. 선택은 자유. 난 뒤엣것을 택했다.

그가 돈만을 위해 일벌레로 살았다는 판결은 너무 가혹하다. 그레고르 자신은 계속 일해서 음악에 재능이 있는 여동생을 음악학교에 보내고 싶은 꿈을 갖고 있었다. 여동생은 아직 어린 나이였고, 잠자가 벌레로 변함으로써 여동생은 일을 해야만 했다. 피곤한 창백한 여동생의 얼굴은 고단한 그의 삶을 보여준다. 일벌레로 살았다해도 그에게 의존해서 살아가던 가족들이 그렇게 냉혹하게 그를 저버리는 것은 정당한가 의문이 남는다. 
 

2008/09/09 09:00 http://blog.hani.co.kr/noriteo/17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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