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잎 열린책들 세계문학 167
월트 휘트먼 지음, 허현숙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하늘을 보며 기뻐한 적 있는가? 시에서 기쁨을 얻은 적 있는가? 만약 당신이 이 모든 기쁨을 잊고 산다면, 당신과 가장 가까운 사람들 속의 아름다움을 잊고 있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행복은 다른 곳이 아니라 바로 이곳에, 다른 시간이 아니라 바로 이 시간에 있음을 일깨워 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풀잎 열린책들 세계문학 167
월트 휘트먼 지음, 허현숙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풀잎》(열린책들, 2011)은 "지금 이상의 완벽함은 없을 것이며, 지금 이상의 천국이나 지옥도 없을 것이다."며 오늘의 위대함과 아름다움에 대해 말한다. 월트 휘트먼은 내가 자기 본래의 모습을 유지해야 현재를 즐거이 받아 들일 수 있고 즐거움을 기다릴 수 있다고 한다. 「나 자신의 노래」에서 시인은 오랫동안 경멸받을 만한 꿈을 키워왔더라도 괜찮다며 자신이 기꺼이 우리 "눈에서 눈곱을 씻어" 줄 거라며 눈부신 빛과 삶의 모든 순간으로 자신만의 옷을 입어야 한다고 속삭인다. "실패해도 계속 용기를 가져라."고 다독여준다. "내가 사랑하는 풀에서 자라나기 위해 나는 나 자신을 오물에 맡긴다."며 가장 낮은 곳 "구두창 밑에서" 자신을 찾으라고 한다. "나는 당신을 기다리는 곳에서 가만히 서" 있겠다고 한다. 시를 통해 위로 받는다는 건 이런 게 아닐까. 


사진 출처: http://digital-archives.ccny.cuny.edu/exhibits/whitman/book


월트 휘트먼은 또한 모든 진리는 모든 사물 속에서 기다리고 있으며, 사소한 것들 또한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대단하다며 「직업을 위한 노래」에서 빛과 그림자, 모든 원칙, 모든 정치와 문명, 모든 건축과 음악의 존재 등 우리 주변의 모든 것에 대해 노래한다. 그리고 행복은 바로 여기, 지금 이 순간에 있다고 이야기한다.  

"당신과 가장 가까운 사람들 속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강하며 가장 사랑스러운 것을 찾으며, 
다른 곳이 아니라 바로 이곳에서... 다른 시간이 아니라 바로 이 시간의 행복을 또한 찾으며, 
당신이 맨처음 만지거나 만지는 사람... 늘 당신의 친구나 형제나 가까운 이웃에서 남자를... 당신 어머니나 연인이나 아내속에서 여자를, 그리고 남자들과 여자들에게 양보하며 그 밖의 잘 아는 모든 이들을. 

얼마나 많은 기쁨이 있는지 생각하기! 
하늘을 보며 기뻐한 적 있는가? 시에서 기쁨을 얻은 적 있는가?"

월트 휘트먼은 알려주고 싶었던 것 같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저녁에 나머지 사람들과 함께 머무는 것으로 충분하며, 아름답고 호기심에 찬 숨 쉬고 웃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이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그들 사이를 지나가는 것, 어느 한 사람을 만지는 것, 그나 그녀의 목에 나의 팔을 잠시 가볍게 두르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걸 말이다. 알고 있지만, 가끔 잊고 지낸다. 이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이 이상의 기쁨은 없다는 것을 말이다. <풀잎>에 실린 「나의 신화들은 위대하다」의 구절을 빌려 말하고 싶다. 위대하다, 시인이여! 구체적이고도 신비롭다. 어디서든 누구라도. 위대하다, 시여! 그것들은 또한 내 기쁨이라고. "삶이 모든 부분을 함께 묶고 있듯 분명 죽음은 모든 부분을 함께 묶는다. 별들이 빛 속으로 녹아든 후 다시 돌아오듯, 분명 죽음은 삶처럼 위대하다." 시 또한 이 모든 것들처럼 위대하다. 


나는 이야기꾼들이 말하는 것을 들었다… 그것은 시작과 끝에 관한 이야기,
그러나 나는 시작이나 끝에 관하여 말하지 않는다.
지금 있는 것 이상의 시작은 결코 없었고,
지금 이상의 젊음이나 늙음도 없었다,
또한 지금 이상의 완벽함은 없을 것이며,
지금 이상의 천국이나 지옥도 없을 것이다.
-<나 자신의 노래> 3에서

나는 내가 존재하는 것 그대로 존재한다, 그로써 족하다,
이 세상의 다른 누구도 내가 만족스럽게 앉아 있음을 의식하지 않는다 해도,
또한 모두가 하나같이 의식한다 해도 나는 만족스럽게 앉아 있다.

한 세상이 알고 있는바, 이제까지 나에게 가장 큰 것, 그것은 바로 나 자신이다,
내가 오늘 나 자신이 되든지 만 년 혹은 수백만 년 후에 그리 되든지,
나는 지금 그것을 즐거이 받아들일 수 있다, 혹은 똑같은 즐거움으로 기다릴 수 있다.
-<나 자신의 노래> 20에서

나는 영원한 여행을 떠나고 있다,
내 표식은 비옷과 좋은 신발과 숲에서 자른 지팡이다,
내 친구 중 누구도 내 의자에서 편치 않다,
나는 의자도 교회도 철학도 없다,
나는 저녁 식탁, 도서관, 대화에 아무도 초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각각의 남자와 여자들을 나는 작은 언덕으로 이끈다,
내 왼손은 당신의 허리를 빙 두르고, 내 오른손은 대륙의 풍경들과 평평한 대로를 가리킨다.

나도, 다른 누구도, 당신을 위해 저 길을 여행할 수 없다,
당신은 당신 스스로 그 길을 여행해야 한다.
-<나 자신의 노래> 46에서

충분히 오랫동안 당신은 경멸받을 만한 꿈을 꾸어 왔다,
이제 내가 당신의 눈에서 눈곱을 씻어 주니,
당신은 눈부신 빛과 당신 삶의 모든 순간으로 당신 자신의 옷을 입어야 한다.

이미 오랫동안 당신은 흐릿하게 시들어 왔다, 해안가에서 널빤지 하나 붙들고,
이제 내가 당신을 용감히 헤엄치게 하리라,
바다의 한가운데로 뛰어들어, 다시 솟구쳐 나와 내게 고개를 끄덕이며 소리쳐라, 웃으며 당신의 머리칼을 흔들어라.
-<나 자신의 노래> 46에서

내가 사랑하는 풀에서 자라나기 위해 나는 나 자신을 오물에 맡긴다,
당신이 다시 나를 원한다면 당신의 구두창 밑에서 나를 찾아라.

당신은 내가 누구인지, 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결코 알지 못하리라,
그러나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에게 건강을 줄 것이다,
그리고 당신의 피를 거르고 섬유질을 공급할 것이다.

처음에 나를 뽑는 것에 실패해도 계속 용기를 가져라,
한 곳에서 나를 놓쳐도 다른 곳에서 찾아라,
나는 당신을 기다리는 곳에서 가만히 서 있으니.
-<나 자신의 노래> 52에서

당신은 멀리 찾아갈 것인가? 당신은 분명 결국 돌아올 것이다,
당신에게 최선으로 알려진 것에서 최선의 것이나 최선과 다를 바 없는 것을 찾으며,
당신과 가장 가까운 사람들 속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강하며 가장 사랑스러운 것을 찾으며,
다른 곳이 아니라 바로 이곳에서... 다른 시간이 아니라 바로 이 시간의 행복을 또한 찾으며,
당신이 맨 처음 만나거나 만지는 사람... 늘 당신의 친구나 형제나 가까운 이웃에서 남자를... 당신 어머니나 연인이나 아내속에서 여자를, 그리고 남자들과 여자들에게 양보하며 그 밖의 잘 아는 모든 이들을.
-<직업을 위한 노래> 6에서

나는 알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저녁에 나머지 사람들과 함께 머무는 것으로 충분하며,
아름답고 호기심에 찬 숨 쉬고 웃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이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그들 사이를 지나는 것... 어느 한 사람을 만지는 것... 그나 그녀의 목에 나의 팔을 잠시 가볍게 두르는 것... 그렇다면 이것은 무엇인가?
나는 더 이상의 기쁨은 요구하지 않는다... 나는 그속에서 마치 바닷속에서인 양 헤엄친다.
-<나는 전기 띤 몸을 노래한다> 4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먼 북소리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윤성원 옮김 / 문학사상사 / 2004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어디선가 멀리서 북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왠지 긴 여행을 떠나야만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북소리에 이끌려 3년간 유럽을 떠돈 무라카미 하루키. 정말 그럴 때가 있다. 머리가 고장 난 사람처럼 멍하고, 너무 지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무작정 어디론가 떠나고 싶고 떠나야만 할 것 같을 때 말이다. 그래서 이 책을 다시 꺼내 들었다. 

《먼 북소리》(문학사상사, 2004)는 1986년 가을부터 89년 가을까지 하루키가 이탈리아와 그리스에서 '상주하는 여행자'로 지내면서 느끼고 관찰한 것을 쓴 책이다. 이 기간에 그는 "마음에 드는 곳이 있으면 그곳에 부엌이 있는 아파트를 빌려 몇 개월간 생활하고, 또 다른 곳으로 가고 싶으면 장소를" 옮겨가며 번역도 하고, 소설도 쓰면서 보냈다. <상실의 시대>와 <댄스 댄스 댄스>도 이 기간에 쓴 책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 책 곳곳에 자신기 생각을 털어놓았다.

"매일 계속해서 소설을 쓰는 일은 고통스러웠다. 때때로 자신의 뼈를 깎고 근육을 씹어 먹는 것 같은 기분조차 들었다. 그렇지만 쓰지 않는 것은 더 고통스러웠다. 글을 쓰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글은 써지기를 원하고 있다. 그럴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집중력 이다. 그 세계에 자신을 몰입시키는 집중력, 그리고 그 집중력을 가능한 한 길게 지속시키는 힘이다. 그리고 자신을 믿는 것. 나는 이것을 완성 시킬 능력을 갖고 있다고 믿는 것이 중요하다."

"자기 눈으로 본 것을 자기 눈으로 본 것처럼 쓴다. 이것이 기본적인 자세이다. 자신이 느낀 것을 되도록 있는 그대로 쓰는 것이다. 안이한 감동이나 일반회된 논점에서 벗어나, 되도록 간단하고 사실적으로 쓸 것. 다양하게 변해가는 정경 속에서 자신을 어떻게든 계속 상대화할 것.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마음먹은 대로 잘 써질 수도 있고 잘 안 써질 수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글을 쓰는 작업을 자기 존재의 수준기로 사용하는 것이며 또한 계속 그렇게 사용해 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하루키는 자신의 눈으로 보고 느낀 이탈리아와 그리스의 일상적인 풍경, 현지인들에 대해서 되도록 있는 그대로 써 내려간다. 그가 경함한 이탈리아 팔레르모의 겨울은 "자동차 에어컨이 고장 나서 엉뚱하게 따뜻한 바람이 나오고 있는데 어떻게 해야 바람을 멈출 수 있는지 모를 때와 같은, 조금은 곤란한 따뜻함"이었고, 만난 유럽인들은 "행동이 민첩할 것 같고 어딘지 모르게 냉소적인 인성을 주는 얼굴은 프랑스 사람이고, 그러면서도 약간 붙임성 있을 것 같으면 네덜란드나 벨기에 사람이다. 그런 사람들 사이에 약간 불편해(본인은 즐겁겠지만) 보이는 것은 영국 사람"이었다. 이외에도 하루키 특유의 시선과 탁월한 글솜씨에 감탄하며 읽은 부분이 꽤 많다.  

같은 장소에서 같은 사람을 만나고 같은 것을 본다고 해도 사람마다 보고 느끼는 점은 다를 것이다. 하루키는 너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주변 풍경과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반응를 관찰하며 여행한다. 그러면서 "쓴 스케치를 모아 새로운 글을 덧붙여서" <먼 북소리>를 완성했고, 소설도 두 권 완성했다. 처음에 가졌던 자기의 사고방식에 무언가를 '삭제'하고 거기에 무언가를 '삽입'하고 '복사'하고 '이동'하여 새롭게 '저장' 할 수 있어 글 쓰는 게 좋다는 하루키. 천상작가다. 

여전히 먼 북소리가 들린다며 막무가내로 다시 여행을 떠나고 싶다고 밝힌 그는 책을 읽는 독자들도 막무가내로 떠나고 싶게 만든다. 멀리서 들려오는 북소리를 따라 긴 여행을 떠나고 싶고, 마음먹은 대로 잘 써질 수도 있고 잘 안 써질 수도 있겠지만 보고 듣고 느낀 것을 그대로 적어보고 싶다. 몇 번을 다시 읽어도 읽을 때마다 둥둥둥! 북소리가 들려온다. 긴 여행을 떠나야만 할 것 같다.


나이를 먹는 것은 그다지 두렵지 않았다. 나이를 먹는 것은 내 책임이 아니다. 누구나 나이는 먹는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내가 두려웠던 것은 어느 한 시기에 달성해야 할 무엇인가를 달성하지 않은 채로 세월을 헛되이 보내는 것이었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다.

내가 방황하는 것은 내가 고향을 멀리 떠나왔기 때문이 아니다. 내가 방황하는 것은 내가 내 자신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영원한 삶도 아니고 불멸의 걸작도 아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바로 지금 현재의 일이다. 이 소설을 다 쓸 때까지 어떻게든 살아 있게만 해달라는 것뿐이다.

내게는 지금도 간혹 먼 북소리가 들린다. 조용한 오후에 귀를 기울이면 그 울림이 귀에서 느껴질 때가 있다. 막무가내로 다시 여행을 떠나고 싶어진 때도 있다. 하지만 나는 문득 이렇게도 생각한다. 지금 여기에 있는 과도적 이고 일시적인 나 자신이, 그리고 나의 행위 자체가, 말하자면 여행이라는 행위가 아닐까 하고. 그리고 나는 어디로든지 갈 수 있고 동시에 어디에도 갈 수 없는 것이다.

나는 말하자면 상실된 상태여서 이 나라를 떠났다. 그리고 마흔살이 되어 돌아온 지금도 여전히 그때처럼 나는 상실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무력감은 무력감으로써, 피폐는 피폐로써 그대로 남아있다. 그들이 예언했던 것처럼 그저 나이만 먹었을 뿐이고 아무것도 해결되지는 않은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도 한다. 다시 한번 본래의 위치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만도 다행이 아닌가, 훨씬 안좋은 상황이 될 수도 있었다라고.


댓글(1)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붉은돼지 2015-04-17 09: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루키의 <먼 북소리> 정말 멋지죠..저는 두번 읽었습니다. 터울을 좀 두고요..
저도 어떨 때 사무실에 앉아 있으면 어디선가 아득한 곳에서 둥둥둥~~ 북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아요
엉덩이가 덜썩거려서,,,^^
 
나라 없는 사람
커트 보니것 지음, 김한영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느 국민과 마찬가지로 미국인들도 명백히 사실이 아닌 것들을 많이 믿고 있다. 그들이 믿고 있는 가장 파괴적인 허구는 미국인은 누구나 아주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돈 벌기가 사실은 굉장히 어렵다는 것을 인정하려 하지 않으며, 그러므로 돈이 없는 사람들은 매양 자신만 책망한다. 이 내적 책망은 부자들과 권력자들에게는 다시없는 보물이다. 그들은 나폴레옹 시대 이래 그 어떤 나라의 지배층보다 공사간에 자기 나라 빈곤층에게 베푸는 것이 적어도 되는 것이다. 많은 신기한 것들이 미국에서 나오고 있다. 그 중에 가장 놀라운 것은, 전례 없이 놀라운 한 가지는, 인간다운 존엄성을 상실한 대량의 빈곤층이다. 그들은 서로를 사랑하지 않는다. 그들 자신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점을 이해한다면, 독일 포로수용소에 있는 미군 사병들의 불유쾌한 행태는 더 이상 불가사의가 아닐 것이다.

우리는 하고 또 하고 하고 또 하고 또 한다. 우리가 해야하고 해야만 하고 해야만 하는 것들을 우리가 부서지고 부서지고 또 부서질 때까지.

책과 관련하여 한마디 더 하자면, 우리가 매일 접하는 뉴스 매체인 신문과 TV는 오늘날 국민 전체를 대표하기에 너무나 부실하고, 너무나 무책임하고, 너무나 비겁하다. 이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매체는 책밖에 없다.

모든 권력은 억측가들의 손에 있었다. 이번에도 그들이 승리한 것이다. 병균 같은 존재들이었다. 그렇게 해서 오늘날 우리도 똑바로 정신 차려야 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그들은 생명을 구하는 데 관심이 없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이목을 집중시키는 것, 그래서 아무리 무지하더라도 그들의 억측이 언제까지나 유지되는 것이다. 그들이 증오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현명한 사람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인생의 베일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7
서머셋 모옴 지음, 황소연 옮김 / 민음사 / 2007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925년 영국, 사교 모임을 즐기는 젊고 아름다운 키티는 영국 정부에 소속된 세균학자인 남편 월터를 따라 상하이로 건너간다. 월터의 사랑은 깊지만, 감정을 표현하는 데 서툴러 키티에게 아무 감흥도 주지 못한다. 열정 없는 결혼 생활을 이어가던 키티는 그곳에서 매력적인 외교관 찰리 타운센드와 사랑에 빠진다. 키티 자신은 사랑이라 말하지만, 사실은 바람둥이를 만나 육체적 욕망에 빠진 것일 뿐이다. 아내의 외도 사실을 알고 배신감을 느낀 월터는 콜레라가 창궐한 중국 오지로 발령을 자원한다. 그곳에서 월터는 콜레라에 걸리고, 죽음 앞에서도 자신의 사랑을 저버린 키티를 용서하지 못한다.

"나 자신을 경멸해. 당신을 사랑했으니까." 

배신감이 그토록 끔찍했던 걸까? 사랑이 증오심으로 바뀌면 이토록 잔인해질 수 있는 걸까? 죽음은 모든 것을 시시하게 만들어 버린다는데 모든 것이 덧없고 아무것도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때 사소한 문제에 터무니없이 집착하고 그 자신과 다른 사람까지 불행하게 만드는 월터. 그가 안타깝다. 키티 또한 그런 그를 짜증스럽게 생각한다. 

"그녀는 그런 그가 짜증스럽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들의 머리 위에 드리운 암울한 죽음의 공포에 비하면, 그날 그녀가 언뜻 엿본 숭고한 아름다움에 비하면 그들의 문제는 하찮다는 것이 그녀에게는 돌연 이토록 명백하게 다가왔는데, 그는 어째서 깨닫지 못하는 것일까? 어리석은 여자가 부정을 저질렀다고 해서 무엇이 그토록 중요하단 말인가? 왜 그녀의 남편은 숭고함과 마주하고서도 그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할까? 월터가 그의 모든 명석함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균형 감각이 없었다니 이상했다." 

월터가 죽은 뒤, 그려진 키티의 모습을 사랑과 욕망에 가려진 인간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다. 마치 사랑이란 이름의 '베일'이 벗겨진 것처럼 말이다. 

"물론 월터의 죽음은 그녀에게 충격이었다. 하지만 어쨌든 그녀는 그를 사랑하지 않았고 사랑한 적도 없었다. 그래도 슬픔에 젖는 것이 그녀에게 합당한 행동이었다. 월터가 그렇게 비극적인 방식으로 죽었다는 게 그녀도 안타깝기는 했지만 그것은 그가 알고 지내던 사람이었다고 해도 느꼈을 법한 순전히 인간적인 차원의 슬픔이었다. 그의 죽음이 그녀에게 안식을 가져왔다고 한다면 억지겠고, 그녀의 말 한마디에 그가 다시 살아 돌아온다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그것도 아닌 바에야 그의 죽음이 그녀의 글을 어느 정도는 수월한 쪽으로 돌려놓았다는 느낌이 어쩔 수 없이 드는게 그녀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들은 함께 있어 행복한 적이 없었고 헤어짐조차도 끔찍하고 어려웠다. 그녀는 이런 생각을 하는 자신이 놀라웠다. 사람들이 실상을 안다면 나를 무자비하고 잔인하다고 생각하겠지. 글쎄, 그들이 어떻게 알겠나. 그녀는 다른 친구들도 각자의 가슴에 수치스러운 비밀을 품고서 호기심 어린 시선들을 피해 평생을 살아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의 죽음은 알고 지내던 사람이 죽었을 때와 같은 차원의 슬픔이고, 오히려 자신을 수월한 쪽으로 돌려놓았다고 생각하는 키티. 그리고 그녀는 육체적 욕망 앞에 재차 무너진다. 작가는 키피를 매춘부보다 더 형편없다며 최소한 매춘부들은 빵을 위해 자신을 내준다면서 키티는 나약하고, 한심하고, 가망없는 노예에 불과하다고 평한다. 나약하다, 이보다 더 정확하게 키티를 묘사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아니, 어쩌면 키티는 그저 욕망에, 자기 몸이 원하는 것에 충실한 건지 모르겠다. 그러면 그렇다고 해서 그녀를 비난할 수 있을까? 사랑, 배신, 욕망 앞에 나는 키티와 월터와는 다르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우리가 꿈꾸는 완벽한 사랑이란, 인생이란 환영이 아닐까? 《인생의 베일》은 사랑, 배신, 용서 그리고 가족에 대해 많은 걸 생각게 한다. 지금 사랑을 하고 있거나, 기다리고 있는 이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란 얼마나 이상한가! 자식이 어릴 때 부모들은 아이들을 애지중지하고 그맘때 흔히 치르는 가벼운 병치레에도 노심초사하며 아이들은 부모에게 사랑과 애정으로 매달린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서 아이들이 성장하면 피붙이가 아닌 사람들이 아버지나 어머니보다 자신들의 행복을 위해 더 중요해진다. 그리고 무관심이 과거의 맹목과 본능적인 사랑의 자리를 대신한다. 부모와 자식의 만남은 지루함과 짜증의 장으로 변질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