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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베일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7
서머셋 모옴 지음, 황소연 옮김 / 민음사 / 2007년 2월
평점 :
1925년 영국, 사교 모임을 즐기는 젊고 아름다운 키티는 영국 정부에 소속된 세균학자인 남편 월터를 따라 상하이로 건너간다. 월터의 사랑은 깊지만, 감정을 표현하는 데 서툴러 키티에게 아무 감흥도 주지 못한다. 열정 없는 결혼 생활을 이어가던 키티는 그곳에서 매력적인 외교관 찰리 타운센드와 사랑에 빠진다. 키티 자신은 사랑이라 말하지만, 사실은 바람둥이를 만나 육체적 욕망에 빠진 것일 뿐이다. 아내의 외도 사실을 알고 배신감을 느낀 월터는 콜레라가 창궐한 중국 오지로 발령을 자원한다. 그곳에서 월터는 콜레라에 걸리고, 죽음 앞에서도 자신의 사랑을 저버린 키티를 용서하지 못한다.
"나 자신을 경멸해. 당신을 사랑했으니까."
배신감이 그토록 끔찍했던 걸까? 사랑이 증오심으로 바뀌면 이토록 잔인해질 수 있는 걸까? 죽음은 모든 것을 시시하게 만들어 버린다는데 모든 것이 덧없고 아무것도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때 사소한 문제에 터무니없이 집착하고 그 자신과 다른 사람까지 불행하게 만드는 월터. 그가 안타깝다. 키티 또한 그런 그를 짜증스럽게 생각한다.
"그녀는 그런 그가 짜증스럽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들의 머리 위에 드리운 암울한 죽음의 공포에 비하면, 그날 그녀가 언뜻 엿본 숭고한 아름다움에 비하면 그들의 문제는 하찮다는 것이 그녀에게는 돌연 이토록 명백하게 다가왔는데, 그는 어째서 깨닫지 못하는 것일까? 어리석은 여자가 부정을 저질렀다고 해서 무엇이 그토록 중요하단 말인가? 왜 그녀의 남편은 숭고함과 마주하고서도 그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할까? 월터가 그의 모든 명석함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균형 감각이 없었다니 이상했다."
월터가 죽은 뒤, 그려진 키티의 모습을 사랑과 욕망에 가려진 인간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다. 마치 사랑이란 이름의 '베일'이 벗겨진 것처럼 말이다.
"물론 월터의 죽음은 그녀에게 충격이었다. 하지만 어쨌든 그녀는 그를 사랑하지 않았고 사랑한 적도 없었다. 그래도 슬픔에 젖는 것이 그녀에게 합당한 행동이었다. 월터가 그렇게 비극적인 방식으로 죽었다는 게 그녀도 안타깝기는 했지만 그것은 그가 알고 지내던 사람이었다고 해도 느꼈을 법한 순전히 인간적인 차원의 슬픔이었다. 그의 죽음이 그녀에게 안식을 가져왔다고 한다면 억지겠고, 그녀의 말 한마디에 그가 다시 살아 돌아온다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그것도 아닌 바에야 그의 죽음이 그녀의 글을 어느 정도는 수월한 쪽으로 돌려놓았다는 느낌이 어쩔 수 없이 드는게 그녀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들은 함께 있어 행복한 적이 없었고 헤어짐조차도 끔찍하고 어려웠다. 그녀는 이런 생각을 하는 자신이 놀라웠다. 사람들이 실상을 안다면 나를 무자비하고 잔인하다고 생각하겠지. 글쎄, 그들이 어떻게 알겠나. 그녀는 다른 친구들도 각자의 가슴에 수치스러운 비밀을 품고서 호기심 어린 시선들을 피해 평생을 살아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의 죽음은 알고 지내던 사람이 죽었을 때와 같은 차원의 슬픔이고, 오히려 자신을 수월한 쪽으로 돌려놓았다고 생각하는 키티. 그리고 그녀는 육체적 욕망 앞에 재차 무너진다. 작가는 키피를 매춘부보다 더 형편없다며 최소한 매춘부들은 빵을 위해 자신을 내준다면서 키티는 나약하고, 한심하고, 가망없는 노예에 불과하다고 평한다. 나약하다, 이보다 더 정확하게 키티를 묘사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아니, 어쩌면 키티는 그저 욕망에, 자기 몸이 원하는 것에 충실한 건지 모르겠다. 그러면 그렇다고 해서 그녀를 비난할 수 있을까? 사랑, 배신, 욕망 앞에 나는 키티와 월터와는 다르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우리가 꿈꾸는 완벽한 사랑이란, 인생이란 환영이 아닐까? 《인생의 베일》은 사랑, 배신, 용서 그리고 가족에 대해 많은 걸 생각게 한다. 지금 사랑을 하고 있거나, 기다리고 있는 이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란 얼마나 이상한가! 자식이 어릴 때 부모들은 아이들을 애지중지하고 그맘때 흔히 치르는 가벼운 병치레에도 노심초사하며 아이들은 부모에게 사랑과 애정으로 매달린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서 아이들이 성장하면 피붙이가 아닌 사람들이 아버지나 어머니보다 자신들의 행복을 위해 더 중요해진다. 그리고 무관심이 과거의 맹목과 본능적인 사랑의 자리를 대신한다. 부모와 자식의 만남은 지루함과 짜증의 장으로 변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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