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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북소리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윤성원 옮김 / 문학사상사 / 2004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어디선가 멀리서 북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왠지 긴 여행을 떠나야만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북소리에 이끌려 3년간 유럽을 떠돈 무라카미 하루키. 정말 그럴 때가 있다. 머리가 고장 난 사람처럼 멍하고, 너무 지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무작정 어디론가 떠나고 싶고 떠나야만 할 것 같을 때 말이다. 그래서 이 책을 다시 꺼내 들었다.
《먼 북소리》(문학사상사, 2004)는 1986년 가을부터 89년 가을까지 하루키가 이탈리아와 그리스에서 '상주하는 여행자'로 지내면서 느끼고 관찰한 것을 쓴 책이다. 이 기간에 그는 "마음에 드는 곳이 있으면 그곳에 부엌이 있는 아파트를 빌려 몇 개월간 생활하고, 또 다른 곳으로 가고 싶으면 장소를" 옮겨가며 번역도 하고, 소설도 쓰면서 보냈다. <상실의 시대>와 <댄스 댄스 댄스>도 이 기간에 쓴 책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 책 곳곳에 자신기 생각을 털어놓았다.
"매일 계속해서 소설을 쓰는 일은 고통스러웠다. 때때로 자신의 뼈를 깎고 근육을 씹어 먹는 것 같은 기분조차 들었다. 그렇지만 쓰지 않는 것은 더 고통스러웠다. 글을 쓰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글은 써지기를 원하고 있다. 그럴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집중력 이다. 그 세계에 자신을 몰입시키는 집중력, 그리고 그 집중력을 가능한 한 길게 지속시키는 힘이다. 그리고 자신을 믿는 것. 나는 이것을 완성 시킬 능력을 갖고 있다고 믿는 것이 중요하다."
"자기 눈으로 본 것을 자기 눈으로 본 것처럼 쓴다. 이것이 기본적인 자세이다. 자신이 느낀 것을 되도록 있는 그대로 쓰는 것이다. 안이한 감동이나 일반회된 논점에서 벗어나, 되도록 간단하고 사실적으로 쓸 것. 다양하게 변해가는 정경 속에서 자신을 어떻게든 계속 상대화할 것.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마음먹은 대로 잘 써질 수도 있고 잘 안 써질 수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글을 쓰는 작업을 자기 존재의 수준기로 사용하는 것이며 또한 계속 그렇게 사용해 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하루키는 자신의 눈으로 보고 느낀 이탈리아와 그리스의 일상적인 풍경, 현지인들에 대해서 되도록 있는 그대로 써 내려간다. 그가 경함한 이탈리아 팔레르모의 겨울은 "자동차 에어컨이 고장 나서 엉뚱하게 따뜻한 바람이 나오고 있는데 어떻게 해야 바람을 멈출 수 있는지 모를 때와 같은, 조금은 곤란한 따뜻함"이었고, 만난 유럽인들은 "행동이 민첩할 것 같고 어딘지 모르게 냉소적인 인성을 주는 얼굴은 프랑스 사람이고, 그러면서도 약간 붙임성 있을 것 같으면 네덜란드나 벨기에 사람이다. 그런 사람들 사이에 약간 불편해(본인은 즐겁겠지만) 보이는 것은 영국 사람"이었다. 이외에도 하루키 특유의 시선과 탁월한 글솜씨에 감탄하며 읽은 부분이 꽤 많다.
같은 장소에서 같은 사람을 만나고 같은 것을 본다고 해도 사람마다 보고 느끼는 점은 다를 것이다. 하루키는 너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주변 풍경과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반응를 관찰하며 여행한다. 그러면서 "쓴 스케치를 모아 새로운 글을 덧붙여서" <먼 북소리>를 완성했고, 소설도 두 권 완성했다. 처음에 가졌던 자기의 사고방식에 무언가를 '삭제'하고 거기에 무언가를 '삽입'하고 '복사'하고 '이동'하여 새롭게 '저장' 할 수 있어 글 쓰는 게 좋다는 하루키. 천상작가다.
여전히 먼 북소리가 들린다며 막무가내로 다시 여행을 떠나고 싶다고 밝힌 그는 책을 읽는 독자들도 막무가내로 떠나고 싶게 만든다. 멀리서 들려오는 북소리를 따라 긴 여행을 떠나고 싶고, 마음먹은 대로 잘 써질 수도 있고 잘 안 써질 수도 있겠지만 보고 듣고 느낀 것을 그대로 적어보고 싶다. 몇 번을 다시 읽어도 읽을 때마다 둥둥둥! 북소리가 들려온다. 긴 여행을 떠나야만 할 것 같다.
나이를 먹는 것은 그다지 두렵지 않았다. 나이를 먹는 것은 내 책임이 아니다. 누구나 나이는 먹는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내가 두려웠던 것은 어느 한 시기에 달성해야 할 무엇인가를 달성하지 않은 채로 세월을 헛되이 보내는 것이었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다.
내가 방황하는 것은 내가 고향을 멀리 떠나왔기 때문이 아니다. 내가 방황하는 것은 내가 내 자신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영원한 삶도 아니고 불멸의 걸작도 아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바로 지금 현재의 일이다. 이 소설을 다 쓸 때까지 어떻게든 살아 있게만 해달라는 것뿐이다.
내게는 지금도 간혹 먼 북소리가 들린다. 조용한 오후에 귀를 기울이면 그 울림이 귀에서 느껴질 때가 있다. 막무가내로 다시 여행을 떠나고 싶어진 때도 있다. 하지만 나는 문득 이렇게도 생각한다. 지금 여기에 있는 과도적 이고 일시적인 나 자신이, 그리고 나의 행위 자체가, 말하자면 여행이라는 행위가 아닐까 하고. 그리고 나는 어디로든지 갈 수 있고 동시에 어디에도 갈 수 없는 것이다.
나는 말하자면 상실된 상태여서 이 나라를 떠났다. 그리고 마흔살이 되어 돌아온 지금도 여전히 그때처럼 나는 상실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무력감은 무력감으로써, 피폐는 피폐로써 그대로 남아있다. 그들이 예언했던 것처럼 그저 나이만 먹었을 뿐이고 아무것도 해결되지는 않은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도 한다. 다시 한번 본래의 위치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만도 다행이 아닌가, 훨씬 안좋은 상황이 될 수도 있었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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