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싱커 (양장) - 제3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배미주 지음 / 창비 / 201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언제부턴가 영화와 소설이 그리는 미래는 최첨단이라는 이름 아래 차갑고, 딱딱하고, 무하게 그려지고 있다. 차가운 쇠붙이로 가득한 '시안'은 유토피아를 지향하고 있지만 실상은 나뉘어져있는 층만큼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갈라놓고 있었다. 나라로 구별되는 세상이 아닌 전세계의 단일화 속에서 이름만 들어서는 성별도 인종도 알 수 없는 '미마'가 싱크에 접속하게 되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이었던 『위저드 베이커리』의 충격 덕분에 싱커도 거리낌없이 집어들었다. 이야기가 새로운것은 아니다. 인간의 무분별한 개발로 파괴된 자연과 도피한 사람들이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모여 산다. 그곳은 하나의 거대한 기업에 의해 지배되다시피하는 구조로 차가운 외피의 기계들로 가득하며 겉으로 보기에는 평온해 보이지만 깊은 곳에서부터 곪아가고 있다. 순수한 영혼이 그 세상을 깨고 나온다는 스토리는 어디선가 많이 본듯하다. 

 싱크는 소설속 게임 이름이다. 몸은 현실에 두고 정신만 컴퓨터에 접속하여 실제 자연속의 동물과 동조되어 그 동물을 조정할 수 있다. 처음에는 호기심과 재미에 시작하지만 나중에는 동물의 마음에 동화되어 결국은 자연의 아름다움과 현실의 차가움을 깨닫고 눈뜨게 된다. 우리는 이와같은 스토리를 접한적이 있다, 그것도 요 근래에. 전 세계적으로 공전의 히트를 친 영화 『아바타』와 무척 비슷하다. 다행인것은 이 책이 영화보다 더 일찍 나왔다는 것이다. 

 기대가 너무 컸던 탓에 실망도 컸다. 소설도 영화도 데뷔작을 무척 좋아하는데 그 이유는 기상천외하며, 신선하고, 틀에 박혀있지 않고, 개성이 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작품처럼 단점도 있다. 어설프고 동감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아바타를 봤을때 '나비'족에 동화되어가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나 역시 하나가 된듯했다. 하지만 싱커속의 '미마'는 무척 무미건조하고 정적이다. 과연 쥐가 된다고 해서 쥐의 마음을 느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인간은 그보다 한없이 복잡하고 어려운 존재이기 때문이다.

 자꾸 비교해서 작가에게 미안할 지경이지만 확실히 몇십년을 다듬은 스토리와 아마추어의 데뷔작은 다른것 같다. 같은 이야기로 이렇게 다른 세상을 그릴 수 있다는것이 놀라울 지경이다. '나비'족이 강하고 아름다워 보였던것은 그들이 인간들보다 고차원의 정신세계와 자연과의 일체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인데, 작가의 아마존의 묘사나 싱커에 접속했을때 동물과의 조화는 많이 생략된듯 싶어 아쉽다. 주제가 바로 그것임에도 말이다. 책 제목은 말그대로 싱커, 동조하는 사람이지만 안타깝게도 난 이 책에 조금도 동조하지 못했다

@ 2010 07 2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글도 읽지 못하고 첫째 아들만 편애하며 남편이 바람나자 집에 쳐들어가 솥을 뒤엎어 버리는 무식한 여자와 누구보다도 자식을 사랑하고 버려지고 다친 동물을 보살펴주며 가난한 타인들을 위해 봉사와 기부를 하는 현명한 여자가 있다. 세상에서 가장 무식한 그 여자의 이름은 엄마다. 그리고 또 다른 여자의 이름은, 그 이름 역시 엄마다.

 서울역에서 엄마를 잃어 버리고 엄마를 찾기 위해 전단지를 만들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이름은 박소녀, 나이는 만 69세, 잃어 버린 장소는 서울역 그리고 더 이상 쓸 수가 없었다. 이렇게 내가 엄마를 몰랐단 말인가? 엄마를 설명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당황할 수 밖에 없는 가족들. 가장 가까이에 있었고 가장 나를 많이 알아주었던 엄마에 대해서 우리는 아는것이 너무 적었던 것이다. 친구가 가장 좋아하는 연예인이 누군지까지 시시콜콜히 알면서, 엄마에 대해서는 한줄 설명조차 힘든, 그런것이 가족이고 현실이라니.

 엄마의 부재는 오히려 엄마의 존재를 부각시키게 된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 다더니, 엄마의 실종은 비단 혼자의 실종이 아니라 전 가족의 실종이나 마찬가지였다. 서로를 엮어 주던 엄마, 전화기 울림소리에도 자식들중 누구 전화인지를 알아챌 수 있던 엄마, 그렇게 말려도 시골에서 바리바리 먹을것을 싸오시는 엄마. 그 엄마는 참 억척스러웠다. 달리 표현할 수가 없다. 몇십장의 장지문도 직접 바르고 유리창도 모조리 직접 닦고 바람난 남편을 기다리고 몇개의 입들을 먹여 살렸던 그녀는 누구보다도 억척스러웠다. 소녀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누구보다도 아줌마스러웠고 촌스러웠다.

 제목과 표지에서 느껴지는 새빨간 무거움. 책은 전체적으로 그러했다. 무겁고 답답하고 안쓰럽다. 읽다가 화가 나서 던져버리고 싶을때도 많았다. "아, 이여자는 정말 왜 이러는거야? 왜 이렇게 멍청한거야? 왜 하지 말라는 짓을 그렇게 바득바득 하는거야?" 서울로 올라올때마다 힘들게 떡을 만들어 오지만 결국 자식들은 떡을 받아다가 냉동고에 쳐박아두고 나중에 잊혀질때쯤 되서 버려버리곤 했다. 

 우리 가족이 시골에 내려갈때마다 뭐 그렇게 주시고 싶은게 많으신지 계란이며, 떡이며, 부침개며 서울에서도 충분히 구할 수 있는 그런것들을 한보따리 싸주시던 할머니가 생각났다. 바로 내 아빠의 엄마가 만들어준 음식을 맛있게 먹을때가 더 많지만 송편 같은 것은 결국 쓰레기통에 쳐박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음식들을 거절하지 못한다. 하나라도 더 챙겨주고 싶은게 엄마의 마음이라는걸 알기때문이다. 그리나 우습게 그 마음을 쓰레기통에 쳐박아 버리는기도 했다.

 시대와 세월이 그녀를, 엄마를 그렇게 무식하게 만들었다. 학교도 제대로 다닐 수 없었고 어린 나이에 시집와서 살림만 해야 했고 아는건 자식와 남편 뿐이라 맹목적일 수 밖에 없었다. 자기 생활도 없고 취미도 없고 그저 살림만 하는, 부엌에서 요리만 하는 사람. 그 사람이 가족의 엄마였다. 서울에서 나서 자란 나는 감자를 쪄먹던 추억도 장지문에 낙엽을 붙이던 낭만도 모른다. 나의 엄마는 그녀의 엄마와는 또 다르다. 아마 내 자식에게도 난 내 엄마와는 다른 엄마로 남을 것이다.

 어차피 자식 사랑은 내리 사랑이라고 했듯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적다. 엄마에게 받은 큰 은혜는 보답할 길이 없다. 그녀의 몸에서 양분을 쪽쪽 빨아내 태어난 순간부터 이미 우리는 큰 빚을 지고 세상에 첫 발을 내딛었기 때문이다. 내 사랑은 내 자식에게 이어지고 그 자식의 사랑은 손자들에게 이어질것이다. 그리고 나 역시 내 자식에게 "엄마는 그것도 몰라?"라는 소리를 듣는 무식한 엄마가 될것이다. 

 마지막에 둘째딸은 성모상에게 엄마를 부탁한다. 나 때문에 '엄마'가 되버린 여자. 20살에 시집와 남자라고는 아빠 밖에 모르고 지금 내 나이에 두 자식을 키운 내 엄마. 엄마의 이름은 아름답지만 다음에는 내 엄마가 아닌 한 여자로서 그대의 삶을 누리기를 바랍니다. 이제 우리 가족을 위해서 사는게 아니라 엄마 자신을 위해 살기를 부탁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햄릿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
윌리엄 세익스피어 지음, 최종철 옮김 / 민음사 / 1998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도와도 바꾸지 않는 다는 셰익스피어의 고전을 이제서야 읽게 되었다. 그의 유명한 4대 비극중 하나인 '햄릿'은 아버지를 죽이고 대신 왕이되어 자신의 어머니와 결혼한 삼촌에게 복수를 하는 내용이다. 그야말로 족손살인과 근친상간이 동시에 일어난 기가막힌 이 비극을 햄릿은 피의 복수로 갚았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많이 사용된 "to be or not to be"는 흔히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로 해석되어 왔다. 나 역시 의문이 들었다. 어째서 저 문장이 그렇게 해석될 수 있을까? 물론 복수에 얽힌 이야기이고 그가 복수를 하느냐 마느냐로 고민하는 부분이긴하지만 영문 해석이 너무 의역에 가깝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민음사의 번역본은 그보다 직역에 가깝게 풀었다. 있음이냐, 없음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그야말로 인간 최고의 고뇌이다.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삼촌. 자신의 어머니와 결혼한 삼촌. 자신의 왕위를 빼앗아간 삼촌. 하지만 그는 나와 피붙이 이고 내 어머니의 남편이다. 그로인해 사랑도 멀리하고 미치광이 행세를 하면서 복수의 칼을 세우는 햄릿은 인간의 모든 고뇌를 짊어지는것 마냥 독백한다. 운명의 장난이란 흔하디 흔한 표현이 이럴때를 위해 만들어진게 아닐까?

책을 읽으면서 인상깊은 문장들은 가끔 있지만 따로 적어놓지는 않는다. 하지만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읽으면서는 한구절 한구절이 모두 마음에 들어서 분량이 줄어드는 것이 아까울 정도였다. 어떻게 이런 표현을 쓸 수 있을까? 어쩌면 400년전에 쓴 사랑표현에 내 마음이 흔들릴까? 참 아름답고 애절한, 그리고 완벽한 문장들이었다. 시를 읽듯이 (햄릿은 시인으로도 유명하니까) 술술 넘어가는 문장들에 셰익스피어의 글솜씨에도 감탄했지만, 번역을 한 최종철 교수의 감각에도 칭찬을 아끼고 싶지 않다.

셰익스피어 같이 유면한 작가들의 고전은 왠지 거부감이 느껴진다. 영화제에서 작품상을 받은 작품들이 일반 대중에겐 어려운것처럼, 문학 고전들이 나에겐 그렇게 느껴졌다. 하지만 햄릿은 자신있게 재밌다고 말할 수 있다. 그의 다른 작품들도 읽어보고 싶어질 정도다. 과연 인도와도 바꿀 수 없다.

@ 2009 06 1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여자를 우울하게 하는 것들
발레리 위펜 지음, 유숙렬 옮김 / 레드박스 / 2009년 6월
평점 :
절판


최진실, 안재환 가장 최근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까지, 한동안 대한민국을 뒤흔듯 키워드는 '자살'이었다. 그리고 자살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에 절대 빼놓을 수 없는 핵심은 '우울증'이다. 우울증은 과연 왜 걸리는 것일까? 우울증에 걸린 여자가 남자보다 훨씬 많은 이유는 뭘까?

감기에 걸렸을때 감기를 치료하기 위해 병원에 가는 사람도 있고 이러다보면 낫겠지, 하고 쉽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때론 스스로 감기가 걸린지 모르는 사람도 있다. 우울증은 또 다른 감기다. 우울하지만 이것이 병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러다 말겠지라고 생각하고 어떨때는 스스로 우울증에 걸렸다는 사실도 모르고 넘어가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감기도 심해지면 죽을 수 있듯이 우울증도 심해지면 죽을 수 있다. 그것도 자살이라는 최악의 방법으로.

'주부 우울증'이라는 말은 있는데 왜 '남편 우울증'은 없을까? 남편과 아이가 있는 여자가 우울증에 가장 걸리기 쉬운 부류인 반면에 결혼한 남자는 우울증에 가장 거리가 먼 부류가 된다. 같은 결혼, 같이 아이, 그런데 왜 누군가는 우울증의 최고의 피해자가 되고 누군가는 우울증을 머리하게 되는 것일까. 이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여자가 남자보다 맡아야 하는 역할이 많기 때문이다. 
 
남편은 직장에서 인정받으면 성공한 가장이라는 타이틀을 얻게 된다. 하지만 여자는 다르다. 결혼한 여자가 직장에서 일을 훌륭히 한다고 해서 성공한 여성이 될 수 없다. 왜냐, 여자는 엄마도 아내도 직장에 다닌다면 여성으로서도 성공해야 하기 때문이다. 너무나 많은 역할 부담과 모든 면에서 완벽해야 한다는 압박감. 그것이 여자를 우울해海의 바다로 빠뜨리고있다.

보통 여자가 남자보다 더 감성적이어서 우울증에 빠지기 쉽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저자는 여자가 더 많은 역할을 부담해야 하고 더 큰 책임감을 느끼기 때문에 우울증에 걸린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 여자는 원더우먼이 되어야 했던 것이다. 가장의 어깨에 짊어진 짐은 물론 무겁다. 어깨가 휘청거리는 그 부담감. 하지만 여자의 짐은 그보다 어렵다. 산더미만한 짐을 산위에 올려놓으면 끝인 남자와 달리, 여자의 짐은 작지만 그 수가 많다. 거기다가 올려놓으면 끝이 아니라 굴러떨어지지 않게 계속 끌어 당기고 있어야 한다. 남녀의 차이는 바로 이 차이이다.

나도 한동안 우울증을 앓았다. 집 밖으로 나가기 싫고 사람도 만나고 싶지 않고 작은 일에도 툭하면 눈물이 나고 모든게 짜증나고 권태스러웠다. 누군가 이 슬픔에서 나는 구해주길 바라면서도 막상 구원의 손길을 요청하진 못했다. 관계를 회복하면 우울증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건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 회복을 위해 누군가 우울海에서 헤엄쳐 나올 수 있는 손길을 내밀어줘야 한다. 여자는 우울증에 걸리기 쉬운 약한 존재이다. 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 그렇지만 어머니도 여자다. 이제 우리 여자는 스스로를 건져내야 한다. 흠벅 젖지 않도록!

@ 2009 06 12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키아벨리의 눈물 - 한니발보다 잔인하고, 식스센스보다 극적인 반전
라파엘 카르데티 지음, 박명숙 옮김 / 예담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쓰여진지 50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화제의 책으로 오르내리는 '군주론'. 그 군주론의 저자 니콜로 마키아벨리를 누구나 알것이다. 군주는 강력하고 이상적인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서 종교적, 도덕적으로 잘못된 악행도 필요하다면 저지를 수 있어야 한다는것이 군주론의 근본적인 핵심이다. 이 얼마나 과감하면서도 무모한 발언인가. 하지만 그의 말이 무조건 틀렸다고 말할 수도 없다.

역사속의 실제 인물이나 사건에 이야기 살을 붙여 만든 팩션은 언제나 독자들의 구미를 당긴다. 다빈치 코드가 희대의 베스트셀러 성경을 이야기했고 진주귀고리소녀가 베르메르의 숨겨진 일화를 지어냈듯이 마키아벨리의 눈물은 니콜로 마키아벨리를 주인공으로 내새운다. 군주론을 쓰기 전, 정치가가 되기전의 청년 마키아벨리는 희번뜩이는 눈을 가진 야심찬 서기관이였다. 우리는 군주론을 서술하기 훨씬전의 마이카벨리를 만나볼 수 있게 된것이다. 

무명화가 라파엘로는 끔찍한 고통속에서 눈을 뜬다. 그리곤 인간으로서 느낄 수 있는 최대의 고통을 느끼면서 고문 속에 죽는다. 그리고 이어지는 수수께끼들. 누가 이 무명화가를 죽였을까? 왜 죽였을까? 우리의 청년 마키아벨리는 우연한 기회로 살인사건과 관련된 이야기를 듣게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향신료 판매상인 트레비가 같은 고문속에 죽는다. 도시는 괴담으로 술렁이고 청년 마키아벨리와 호기심 많은 친구들은 사건을 파해치기 위해 나선다. 거인과 난쟁이라는 단서만을 가지고 사건을 풀어가던중 살인사건뒤에 숨겨진 어마어마한 음모를 알게 된다. 여타 대부분의 추리 소설들이 그렇듯이 단순한 연쇄살인이 아니었던 것이다.

작가는 르네상스 시기의 피렌체 문학을 전공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가장 잘 아는 분야를 데뷔작으로 선택했다. 당시에는 추기경이 단순히 종교적 상징이 아니라 정치의 가장 깊숙한 곳까지 닿아있는 실세였다. 그런 종교와 정치간의 다툼은 어쩔 수 없는 필연이기도 했다. 마키아벨리는 야심찬 청년이었다. 살인을 알게되는데서 그치지 않고 살인의 한복판으로 뒤어들어 청렴한 개혁가 사보나롤라를 지키기위해 애쓴다. 우리가 아는 군주론의 차갑고 냉철한 철학을 지닌 마키아벨리보다는 이제 막 정치에 눈을 뜬 청년 니콜로를 만나게 된다.

제목이 뜻하는 '마키아벨리의 눈물'은 과연 무슨 뜻일까? 책의 마지막장을 덮는 순간 그 의미를 알게 된다. 한니발보다 잔인하고, 식스센스보다 극적인 반전이라는 광고카피는 진부하기 짝이었다. 책의 내용도 우리가 알아오던 추리물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살인>우연>추리>결투>반전>해결이라는 블록버스터 영화의 스토리를 그대로 답습한다. 하지만 주인공이 마키아벨리라는 것이 의미가 있다. 이 책의 다른 제목을 붙일 수 있다면 요새 유행하는 유명인의 시작을 보여주는 영화들처럼 '마키아벨리 더 비기닝'이라고 짓고 싶다. 이 책은 그의 시작이다.

@ 2009 06 0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