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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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도 읽지 못하고 첫째 아들만 편애하며 남편이 바람나자 집에 쳐들어가 솥을 뒤엎어 버리는 무식한 여자와 누구보다도 자식을 사랑하고 버려지고 다친 동물을 보살펴주며 가난한 타인들을 위해 봉사와 기부를 하는 현명한 여자가 있다. 세상에서 가장 무식한 그 여자의 이름은 엄마다. 그리고 또 다른 여자의 이름은, 그 이름 역시 엄마다.

 서울역에서 엄마를 잃어 버리고 엄마를 찾기 위해 전단지를 만들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이름은 박소녀, 나이는 만 69세, 잃어 버린 장소는 서울역 그리고 더 이상 쓸 수가 없었다. 이렇게 내가 엄마를 몰랐단 말인가? 엄마를 설명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당황할 수 밖에 없는 가족들. 가장 가까이에 있었고 가장 나를 많이 알아주었던 엄마에 대해서 우리는 아는것이 너무 적었던 것이다. 친구가 가장 좋아하는 연예인이 누군지까지 시시콜콜히 알면서, 엄마에 대해서는 한줄 설명조차 힘든, 그런것이 가족이고 현실이라니.

 엄마의 부재는 오히려 엄마의 존재를 부각시키게 된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 다더니, 엄마의 실종은 비단 혼자의 실종이 아니라 전 가족의 실종이나 마찬가지였다. 서로를 엮어 주던 엄마, 전화기 울림소리에도 자식들중 누구 전화인지를 알아챌 수 있던 엄마, 그렇게 말려도 시골에서 바리바리 먹을것을 싸오시는 엄마. 그 엄마는 참 억척스러웠다. 달리 표현할 수가 없다. 몇십장의 장지문도 직접 바르고 유리창도 모조리 직접 닦고 바람난 남편을 기다리고 몇개의 입들을 먹여 살렸던 그녀는 누구보다도 억척스러웠다. 소녀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누구보다도 아줌마스러웠고 촌스러웠다.

 제목과 표지에서 느껴지는 새빨간 무거움. 책은 전체적으로 그러했다. 무겁고 답답하고 안쓰럽다. 읽다가 화가 나서 던져버리고 싶을때도 많았다. "아, 이여자는 정말 왜 이러는거야? 왜 이렇게 멍청한거야? 왜 하지 말라는 짓을 그렇게 바득바득 하는거야?" 서울로 올라올때마다 힘들게 떡을 만들어 오지만 결국 자식들은 떡을 받아다가 냉동고에 쳐박아두고 나중에 잊혀질때쯤 되서 버려버리곤 했다. 

 우리 가족이 시골에 내려갈때마다 뭐 그렇게 주시고 싶은게 많으신지 계란이며, 떡이며, 부침개며 서울에서도 충분히 구할 수 있는 그런것들을 한보따리 싸주시던 할머니가 생각났다. 바로 내 아빠의 엄마가 만들어준 음식을 맛있게 먹을때가 더 많지만 송편 같은 것은 결국 쓰레기통에 쳐박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음식들을 거절하지 못한다. 하나라도 더 챙겨주고 싶은게 엄마의 마음이라는걸 알기때문이다. 그리나 우습게 그 마음을 쓰레기통에 쳐박아 버리는기도 했다.

 시대와 세월이 그녀를, 엄마를 그렇게 무식하게 만들었다. 학교도 제대로 다닐 수 없었고 어린 나이에 시집와서 살림만 해야 했고 아는건 자식와 남편 뿐이라 맹목적일 수 밖에 없었다. 자기 생활도 없고 취미도 없고 그저 살림만 하는, 부엌에서 요리만 하는 사람. 그 사람이 가족의 엄마였다. 서울에서 나서 자란 나는 감자를 쪄먹던 추억도 장지문에 낙엽을 붙이던 낭만도 모른다. 나의 엄마는 그녀의 엄마와는 또 다르다. 아마 내 자식에게도 난 내 엄마와는 다른 엄마로 남을 것이다.

 어차피 자식 사랑은 내리 사랑이라고 했듯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적다. 엄마에게 받은 큰 은혜는 보답할 길이 없다. 그녀의 몸에서 양분을 쪽쪽 빨아내 태어난 순간부터 이미 우리는 큰 빚을 지고 세상에 첫 발을 내딛었기 때문이다. 내 사랑은 내 자식에게 이어지고 그 자식의 사랑은 손자들에게 이어질것이다. 그리고 나 역시 내 자식에게 "엄마는 그것도 몰라?"라는 소리를 듣는 무식한 엄마가 될것이다. 

 마지막에 둘째딸은 성모상에게 엄마를 부탁한다. 나 때문에 '엄마'가 되버린 여자. 20살에 시집와 남자라고는 아빠 밖에 모르고 지금 내 나이에 두 자식을 키운 내 엄마. 엄마의 이름은 아름답지만 다음에는 내 엄마가 아닌 한 여자로서 그대의 삶을 누리기를 바랍니다. 이제 우리 가족을 위해서 사는게 아니라 엄마 자신을 위해 살기를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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