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 ㅣ 소설, 향
김이설 지음 / 작가정신 / 2020년 10월
평점 :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0/1029/pimg_7197561742715065.jpg)
소설, 향 시리즈 세 번째 『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_ 김이설
넉넉하지 않은 집안에서 40대이자 여동생보다 잘하는 것도 없고 딱히 하고 싶은 것도 없는 장녀. 그녀의 동생이 가정폭력때문에 두 자녀와 집으로 들어와 함께 지낸다. 아버지와 엄마와 조용히 살던 그녀에게 조카를 돌보고 집안일을 도맡아 해야하는 상황에 이르게 되는데.... 동생에 비해 무언가가 되기위해 노력을 해 본 적이 없는 그녀는 '시'를 쓰고 싶다는 마음은 강해진다. 하지만 동생이 집으로 들어와 살면서 육아와 집안일로 인해 일상은 무너졌고 3년 동안 시를 쓰지 못한다.
연필을 잡는 법을 잊어버린 것 같다고, 벙어리가 된 것 같다고, 생각하는 방법을 잊어버린 것 같다고 누구에게든 털어놓으면 이 갑갑증이 좀 나아질까. 마음처럼 되지 않는 글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나의 전공이, 마흔 살이라는 중압감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조카들에게 꼼짝없이 손발이 묶인 나의 현실이, 내가 자처한 족쇄에 엉켜 탈출할 수도 없는 이 집이, 나에게는 육중한 관처럼 느껴졌다. 내 안의 언어를 꺼내지 못한 실패자가 된 나는 필사 노트를 펼쳐 시집의 한 페이지를 한 글자 한 글자 아주 천천히 베껴 써 내려갔다. (p.42~43)
동생을 위해 스스로 자처한 일인 했으나.. 자신의 일을 하며 돈을 버는 동생이, 그와중에도 연애를 하는 것 같은 동생이.. 벌이를 하고 있는 엄마와 아버지. 가족들과 다른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그녀.. 부러워하지만 그 감정조차도 외면해버리는 그녀.. 그리고 사랑하는 이가 있지만 가지고 있는 짐을 나누기 싫어 헤어지고 문득문득 그 사람을 그리워하기도 하는 그녀.. (하아.. 너무 아프다잉..)
살면서 주인공이었던 적이 없었던 것처럼, 애초에 보통의 삶에 어울리지 않았던 것처럼, 어쩌면 이제야 나와 잘 어울리는 상황에 놓인 것 같다는 기분마저 들었다. (p.92)
가족이라서 더한 상처가 쌓여가는 일상의 그녀는 견디기 위해 필사를 한다. 그렇게라도 하지않으면 안되겠다는 절박함으로..
네 인생이 실패한 것이 아니라 그저 터널을 통과하는 중이라고. 터널은 결국 끝이 있고, 그 끝은 환하다고 (p.78)
그리고 어느 날 전화기 너머로 전한 아버지의 한 마디..
인생은 길고, 넌 아직 피지 못한 꽃이다. 주저앉지 마. 엄마가 하란 대로 하지도 말고. (p.117)
간간이 들리는 지인들의 등단 소식. 그럴때마다 그녀는 시인이 되는 운명이 아니었다면 시인이 되기 위해 가지지 못한 것이 무엇인지 찾고싶어했다. 패배자도 실패자도 아닌데.. 자꾸 움츠러드는 마음의 그녀가 너무 안쓰러웠다.. 그나저나 왜 운명은 비껴가는 것인지.... 공부든, 재능이든, 사랑이든 하나쯤은 줘야하는거 아니냐! ㅠ (내 얘긴가....) 이쯤되니 소리질러본다. 신이 있다면 신은 왜 그러는 것이냐유!! 공평하게 나눠주시라고요, 좀...!!
뭐든 다 때가 있는 법인데. 공부를 할 때, 결혼을 할 때, 아이를 낳고, 여행을 떠나고, 누군가와 헤어지고 새로 만나는 것 모두가 그 시기에 걸맞은 때에 행하는 것이 보편의 삶인데. 내가 보편의 삶을 살지 못해서 나에게는 늦거나 이른 건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 현실적인 벽에 맞닿으면 자꾸 잘못된 결과가 되고 말았다. 그걸 깨닫는 것조차 너무 늦어버려서 나는 길을 잃은 아이처럼 자꾸 어쩌지 못했다. (p.120~121)
요즘의 내가 제일 많이하는 생각과 거의 비슷해서 놀라웠던 페이지.. 때를 놓쳐버려서.. 나는 너무 보편도 평범도 아닌 삶을 살고 있는건가.. 내가 좀 편해지자고 그 때를 지나쳐서 내가 나를 오히려 힘들게 만들고 있는건가.. 왜 또 이렇게 지나침을 후회하고 있는 것인가... 그래서 이렇게 계속 헤매고 있는건가... 뭐 이런 생각을 끄적였었는데.. ㅠ
책 속에서 생각을 마주하니 어쩐지 더 아프다.. ㅠㅠ 흐엉-
■ 책 속으로
"한 번이라도 좋으니 제발 내 마음대로 살아봤으면 좋겠네."
"누가 살지 말래?" (p.36)
나는 왜 하고 싶은 게 없는 아이였을까. 넉넉하지 않은 집의 장녀로 자랐으면 다른 세상으로 나아가려는 욕망을 품었음 직도 한데, 그도 아니면 답답한 집을 떠나 혼자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해봤을 법도 한데, 나는 그저 가만히 있는 걸 좋아하는 아이일 뿐이었다. (p.57)
"알아서 더 겁나는 것도 있는 거야." (p.66)
그 사람은 다 하라고 했다. 눈치 볼 것도 없이, 기죽을 것도 없이 천천히 다 해보라 했다. 그러다 지치면, 재미없어지면, 지루하거나 외로워지면 자기에게 오라 했다. 늘 같은 자리에 있을 것이라고, 언제든지 나를 맞이할 거라고 했다. 그동안 기다렸던 것처럼 앞으로도 계속 기다리겠다 했다. 더없이 따뜻한 청혼이었다. (p.163)
잠시만이라도 나는 나로 살고 싶었다. (p.170)
혼자만의 공간에서 필사 노트를 계속 늘어나지만.. 온전히 나 자신에게 몰입할 수 있게 된 그녀..
그리고..
소설을 쓰는 일은 삶과 같아 시간이 흐를수록 여물고 단단해져야 하는데, 아니 사는 일이 소설 쓰는 것을 닮아 시간이 지날수록 성숙하고 견고해야 할 것인데, 일상도 소설도 늘 미진하기만 한 나는 그 시절처럼 매일 시집을 펼쳐 든다. 다시는 언어를 잃지 않기 위해서, 나의 정체성을 잊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p.192) _ 작가의 말
김이설 작가의 한마디에 나를 좀 살짝 되돌아보았다. 내가 나를 단단하게 하기 위해. 나를 위해 내가 하는 것은 무언인지.... 나로 살기위해 나의 정류장을 잘 지나가고 있는지...
『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 이 책은 좀 아프게 읽었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너무 많은 짐과 상처를 그냥 당연하게 툭 얹어놓는 것 같아서.. 왜 꼭 유독 한 사람에게만 그러는가 싶어서.. 그게 또 왜 장녀인가 싶어서.. 왜 하필 장녀는 '삶의 힘'이 없어서는 그대로 그것들을 다 안아버리는 것 같아서.. 40대 비혼의 그녀에게 달려가 괜찮다고.. 늦지않았다고.. 할 수 있을거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소설 향 시리즈 세 번째. 『우리의 정류장과 필사의 밤』
소설 속 언급된 '시'도 참 좋았는데.. 찾아서 보고싶다.. 개인적으로 앞서 나온 책들보다 가장 닿음이 좋았던 이 책. :D
#우리의정류장과필사의밤 #김이설 #작가정신 #소설향 #소설향시리즈 #추천도서 #장편소설 #희망 #가족 #가족관계 #추천책
*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으나 아주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