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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위의 딸 (양장)
알렉산드르 세르게비치 푸시킨 지음, 이영의 옮김 / 새움 / 2017년 7월
평점 :
품절
제목 : 작가의 시대적 사명감에 대하여
대위의 딸(2017), 알렉산드르 세르게예비치 푸시킨, 새움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 슬픔의 날을 참고 견디면 / 기쁨의 날이 오리니. // 마음은 언제나 미래에 살고 / 오늘은 언제나 슬픈 것 / 모든 것은 순간에 지나고 / 지나간 것은 그리워지나니."(1825)
한국인에게 너무나 익숙한 '시'이다. 이 국민시는 <대위의 딸>(1836)의 저자 알렉산드로 세르게예비치 푸시킨(1799~1837)의 작품이다. 그는 그의 조국 러시아에서 '가장 사랑받는 국민 시인' 중 한 명이자 또 소설가이다. 청년 시절 주로 운문 형식으로 자유와 휴머니즘을 노래했던 그는 다양한 문학 장르를 실험한 작가로도 유명하다. 그리고 그 장르마다 빼어난 작품들을 남겼으며 특히, 러시아 산문 중 유일한 운문 소설인 <예브게니 오네긴>을 남기기도 했다. 1830년, 민중의 말을 문학어로 도입한 산문 <벨킨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았으며, 이후 "러시아 산문의 역사에서 최고 걸작의 하나"(p.281)라 평가받는 <스페이드 여왕>(1833), 그리고 그가 죽기 1년 전 '19세기 러시아 사실주의 문학의 선구적 작품'이라 인정받는 그의 유일한 장편소설 <대위의 딸>을 발표한다.
유시민의 표현을 빌리자면 <대위의 딸>은 '로맨스를 빙자한 역사소설이며 정치소설'이다. 정확한 표현이다. 이 소설은 남녀주인공의 사랑과 그들의 성장 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니 연애소설이다. 그리고 러시아 전국을 공포 속에 몰아넣었던 농민반란 '푸가초프의 반란'(1773~1775)이 주배경이므로 또한 역사소설이다. 그 반란에 앞서 일어났던 바시키르나 카자크 반란과 거기 참가했던 사람들의 "코와 귀를 베고 혀를 자르는" 등 제정러시아 정부가 저질렀던 야만적 보복 행위를 비판적으로 서술하고 있으니 정치소설이다. 그렇다고 해서 절대 무겁지는 않다. 오히려 가볍디 가볍다고 해야할까, 경쾌하고 때론 엉뚱하고 또 코믹하다. 따뜻하고 아름답기까지 하다. 이것이 천재 푸시킨의 위대함이리라.
“오늘날에도 이런 야만적인 관습의 폐지를 유감스럽게 생각하는 늙은 법관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곤 한다”(p.104)
열일곱 살, 안드레이 페트로비치(표토르)는 평온한 자신의 보금자리를 벗어나 국경 지역 벨로고로드에서 장교 생활을 시작한다. 부대라고는 하지만 모든 것이 허술했고, 사령관(대위) 이반 쿠즈미치는 따뜻한 심성을 가진 상사였다. 부인 바실리사 예고로브나는 부대 일을 집안일 꾸리듯 챙기는 주체적인 여성이었으며 그들의 딸은 얌전하고 사랑스러웠다. 그리고 표트르는 그녀와 곧 사랑에 빠진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게 있다면 시바브린이라는 존재였다. 그는 마리야에게 청혼하지만 거절당한 전력을 가지고 사사건건 그들을 방해한다. 소설 막바지까지 쭈욱. 철이 없고 방탕한 듯, 귀족 도련님 티를 곳곳에서 드러내고 있지만 언제나 따뜻한 심성으로 사벨리치에게 백기를 들고마는 표도르, 시를 사랑하던 그와, 수줍으면서도 당당한 마리야가 막 사랑을 시작하였을 즈음 전쟁이 일어난다.
"이보게, 사벨리치! 그만하면 됐네.(...)앞으로는 바르게 처신하고 자네 말도 잘 듣겠다고 약속하겠네. 자아, 어서 화를 풀고 화해하세."(p.28)
표토르는 부대를 향해 집을 떠날 때 베푼 작은 호의로 목숨을 건지게 되고(호의를 베푼 사람이 바로 반란군 참칭 황제 푸카초프였다. "그때 그대가 베푼 한 잔의 술과 토끼가죽 외투를 기억하고 있기 때문일세."(p.188)), 다시 그의 호의로 사랑하는 마리야를 시바브린으로부터 구할 수도 있게 된다. 하지만 반란이 진압된 후 이 일이 빌미가 되어 군사법정에 서게 되는데, 하지만 사랑하는 마리야를 이 사건에 끌어들일 수 없는 일, 결국 그는 무기징역형을 선고받는다. 이같은 사실을 눈치챈 마리야는 그를 살리기 위해 예카테리나 여제를 찾아가 진실을 밝히고 그 덕분에 표토르는 석방되어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한 차례 더 소동을 겪지만 결국 그들은 해피엔딩을 맞는다.
이 소설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역사는 인간 스스로 만들어 간다는 것으로써 그것은 등장인물의 행동과 말로서 드러내고 있다. 둘째, 모든 인간은 존엄하며 평등하다는 것으로써 이것은 소설 곳곳의 숨은 표현들로 제시되고 있다. 인간 개개인은 나약하여 거대한 역사와 조우했을 때 모두 소극적이게 되지만 서로 도와서 주체적으로 대처한다면 반드시 극복해 나갈 수 있으며 그렇게 역사는 다시 만들어지고 진보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푸시킨이 이 소설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것이다. 둘째 그는 반란군의 우두머리인 참칭 황제를 인간답게 표현하는 것으로 전제 러시아를 우회적으로 비판하고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견해를 밝히고 있다. 비록 전쟁에선 적이긴 하였지만 인간적인 온기를 나눴던 표토르와 푸카초프, 두사람간의 우정을 지켜볼 수 밖에 없게 만든 것은 작가가 가지고 있는 현실의 벽에 대한 좌절, 그것을 대하는 작가의 안타까운 마음을 대변하는 것이리라.
"푸가초프는 맨 윗자리에 앉아 식탁에 팔꿈치를 괴고, 시커먼 턱수염이 난 턱을 커다란 주먹으로 받치고 있었다. 그의 용모는 매우 단정하고 호감이 가는 얼굴로 흉악한 데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교수대의 이슬로 사라질 운명을 타고난 이들이 부르는 교수대에 대한 노래는 내 마음 속에 이루 형언할 수 없는 묘한 감정을 불러 일으켰다. 그들의 험상궂은 얼굴, 화음을 이루는 노랫가락, 노래 마디마디에 배어있는 애절한 곡조, 그리고 구성진 곡조에 어우러져 더 구슬프게 들리는 노랫말 등이 모두 기이한 시적 충격으로 내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다.(p.136~p.138)
"푸가초프를 처형하는 현장에도 참석했다고 한다. 푸가초프가 군중 속에서 그를 알아보고 조금 후에는, 숨이 끊어져 피투성이가 된 채 사람들 앞에 전시될 머리를 끄덕해 보였다고 한다."(p.240)
역사 자료를 공개하지 않아 역사소설을 집필하는 자체가 용이하지 않았던 19세기 제정러시아, 황제로부터 모든 작품을 검열 받아야 했고 이동의 자유마저 억압받았던 푸시킨, 그가 그려낸 황제에 반하는 농민 반란사. 그는 소설 곳곳에 자신의 의도를 숨겨놓았다. 어떻게 그런 용기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일까? 그의 사망 6개월 전 시 <손으로 만들지 않은 나의 기념비>에 그 답이 있다. 그건 바로 글쓰는 자로서의 사명감이다. 한 작가의 역사의식,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 철학적 사고는 분명 작가 개인의 것이 아님을.
“나는 손으로 만들지 않은 나의 기념비를 세웠노라 / 그곳으로 향하는 민중의 발길은 끝없이 이어지고 / 머리를 꼿꼿이 세운 나의 기념비는 / 알렉산드르의 기념비보다 더 높이 솟아오르리라 //
그리하여, 내 모든 것은 죽지 않으리 / - 신성한 리라를 간직한 나의 영혼으로 / 나의 육신은 되살아나고 썩지 않으리 - / 나는 칭송 받으리. 달빛 아래 세상에 / 단 한 명의 시인이라도 살아 있다면. //
나의 소문은 위대한 러시아의 곳곳에 퍼져 나가리. / 그리고 모든 러시아의 진실한 말들이 나의 이름을 부르리, 당당한 슬라브의 자손도, 핀족도, 지금은 거칠기 짝이 없는 퉁구스도, 그리고 초원의 친구 칼미크도. //
나 오래도록 민중의 사랑을 받으리. / 리라로 선한 감정을 일깨우고, / 잔혹한 시대에 자유를 찬미하며 / 쓰러진 이들에게 자비를 베풀기를 호소했기에 / 오, 뮤즈여, 신의 부름에 귀 기울이라, / 모욕을 두려워 말고 왕관을 바라지 말라, / 칭찬과 중상에 초연하며 / 어리석은 자들과는 언쟁을 삼가라.”(18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