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그네 오늘의 일본문학 2
오쿠다 히데오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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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그네>는 베스트셀러인 <무코다 이발소>(2017), 스테디셀러인 <남쪽으로 튀어>(2006) 등으로 일본 뿐 아니라 한국에도 잘 알려진 인기 작가 오쿠다 히데오의 장편소설이다. 

오쿠다 히데오(1959~)는 40세(1997년) 때 《우람바나의 숲》로 데뷔했다. 늦은 등단이었지만 2002년 <방해>로 제4회 오야부 하루히코상을, 2004년 <공중그네>로 제131회 나오키상을 수상했다. 한국에 소개된 작품만도 20여편이 넘고 <남쪽으로 튀어>, <인더풀>, <걸> 등은 영화로 제작되었다. 그의 작품은 대체로 사회 문제를 다루며 그 안에서 치유하는 과정을 함께 담고 있다. 

<공중그네> 또한 다소 무거울 수 있는 사회적 모순을 코믹하게 잘 그려낸 수작으로 지금까지도 꾸준히 사랑받는 스테디셀러이다.  

<공중그네>는 다섯 편의 에피소드로 나누어져 있으나 실상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장편소설이다. 각 에피소드의 주인공이 모두 이라부 이치로라는 요절복통 엽기 의사 이라부를 만나는 것으로 스토리가 전개되기 때문이다. 그들 주인공이 서로 관련이 없으므로 이라부 신경정신과의 에피소드 모음집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각 에피소드 주인공은 각자 최근 심각한 정신질환의 일종인 우울증, 강박증에 시달리고 있다. 선단공포증, 강박신경증, 입스, 심인성 구토증 등의 병명으로..   

  

그들은 이라부 종합병원 신경정신과 의사 이라부를 찾는다. 결론적으로 모두 그로 인해 치유받고, 글쎄~ 치유받았다고 해야할지? 그의 비타민 주사 때문인지, 아니면 역치료 덕분인지는 몰라도 모두 각자 나름의 방법을 스스로 찾아 치유에 성공한다.  

 환자보다 더 환자 같은, 이 소설의 중심에 있는 호기심 많고 안하무인 미운 짓만 일삼는, 그러나 결코 밉지 않은, 타인의 눈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 딱 초딩 수준의 정신연령을 가진 엽기 의사 이라부를 만나보자. 그러려면 우선 그를 만나게 된 환자들이 왜 강박증세에 시달리는지 들여다 보아야 할 것이다. 그들은 왜 강박증세에 시달리게 되었을까? 체면을 중시하는 일본 국민성이 피해자들을 스스로 만들어 낸 건 아닐까?  

 선단공포증을 가지고 있는 1호 환자는 일본 야쿠자 중간 보스이다. 그런데 이 사람은 날카롭고 뾰족한 물체만 보면 극도의 공포감을 느끼며, 땀이 비 오듯하고 몸이 굳어버린다. 야쿠자가 이런 증상이라니,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사연 속으로 들어가보니 그는 애초 깡패가 체질에 맞지 않은 사람이었는데 지금까지 온 힘을 다해 자신의 본성을 저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만 은혜를 갚기 위해 자신도 느끼지 못한 채 그 역할에 충실했던 것. 이런 류의 병을 앓는 사람이 과연 세이지 한 사람뿐이었을까? 아니었다. 세이지를 돕기 위해, 아니 세이지를 돕는다는 구실로 재미꺼리를 찾아 나선 의사 이라부가 그의 삶에 끼여들고 거기서 그는 자기와 대척점에 있는 다른 중간보스가 ‘블랭킷 증후군’을 앓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로써 세이지는 세상을 달리 보게 되고, 자기만이 겪는 고통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두려움보다는 안타까움이 드는 순간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이것을 인정하고 나니 병세 또한 호전이 되었다. 

 

이라부는 야쿠자를 대하면서도 겁을 먹지 않았고 오히려 재미있는 놀이 정도로만 생각하는 듯 했다. 여자 간호사와 합심해 세이지를 제압해 비타민 주사를 놓는데 성공하는가 하면 세이지와 정치인처럼 차려입고 또다른 야쿠자를 만나는 데 동행하기도 하고.. 이 외에도 수많은 기행을 일삼는다. 환자를 치료한다는 미명하에(아니, 그냥 하고 싶어서) 그 뚱뚱하고 둔한 몸으로 공중그네 서커스에 도전하기도 하고, 일탈충동에 시달리는 환자를 꼬드겨 수리공인척 하며 육교에 매달려 이정표를 고치게 해서 황당한 뜻으로 만들어놓기도 한다.(‘곤노우 신사 앞(金王神社前)’이 ‘불알(金玉) 신사 앞’으로, ‘오이 1가(大井一丁目)’가 ‘튀김덮밥(天?) 1가’로)


여러 가지 원인으로 사람들은 신경정신과를 찾는다. 상대를 인정해주기 싫어서 자신도 모르게 정신병을 앓기도 하고, 자신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고슴도치가 되기도 한다. “그럴 리가 없지. 몇 년째 하는 일인지 알기나 해?”라며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려 하지 않고 자신의 몸이 자기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기도 한다.

  

그러나 이라부 의사는 이런 환자들과180도 다른 사고를 가진 사람이었고, 대부분의 인간이 추구하는 돈과 명예, 체면, 건강 등 어디에도 걸림이 없는 사람이었다. 극과 극 캐릭터이다. 남의 눈치는 1도 보지 않고 하고 싶은 게 있으면 그냥 저지른다. 체면 따위는 ‘개나 줘버려라’ 하는 식이다. 두려움도 없고 호기심만 있을 뿐이다. 돈을 벌려고 애쓰지도, 명예를 얻기 위한 노력도,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행동도 하지 않는다. 그렇게 행동함으로써, 그리고 그것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그는 환자들에게 적재적소에 현답을 던진다. 그의 황당무계 치료행위는 불안불안하기도 하고, 웃기다 못해 눈물이 날 지경이다. 결과는 늘 성공이라 통쾌하고 속이 시원해진다.    

"환자한테 이런 짓을 하고도 순순히 넘어갈 거 같아, 엉?" 

"치료인 걸 어쩌나. 하는 수 없지." 이라부가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치료는 무슨 치료야. 환자 결박시키고 주사나 놓는 주제에."  

“이런 치료도 있는 거지, 뭘. 고름은 째서 짜버려야 빨리 낫는 법이야. 피도 조금 같이 나오긴 하지만.”(p.20)

 소설은 한 마디로 재미있다. 황당하고 좀 억지스럽기도 하다. '뭐야? 저런 의사가 어딨어? 말이 되는 얘기야?'를 연발할 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혹 독자들 중에서도 소설의 환자들과 비슷한 증상을 가진 이가 있지는 않은지 말이다. 어쩌면 소설 속 주인공 뿐 아니라 우리 또한 이런 증상에서 자유롭지 못할 수도 있겠다. 그래서 이 짧지만 긴 소설을 읽고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이유이다. 사회의 아픔을 담고 있는 소설이 답도 함께 제시하고 있다. 

 

‘적당히 살자, 너무 애쓰지 말자, 돈이 없어도 살고, 명예가 없어도 산다. 그러니 즐겁게 함께 웃고 살자, 외롭지 않게 함께 하자, 그리고 하기 싫은 것만 하지말고 하고 싶은 것도 좀 하면서 살자’라고.

 

이렇게 웃음과 해학으로 위로를 담고 있는 <공중그네>, 위로받고 싶다면, 또 누군가를 위로해주고 싶다면 이 책을 읽고 또 권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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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 / 구운몽 최인훈 전집 1
최인훈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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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광장>은 1960년 발표된 이후 수차례 개작을 거듭하면서 오랜세월 스테디셀러로 군림하고 있는 학생들의 필독서이다.  이 작품은 노작가 최인훈(1936. 4. 13~)의 이십대 초반 작품으로 분단된 조국 남과북이 모두 바로서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을 철학과 3학년 학생의 시선과 철학적 사유를 통해 잘 표현해 내고 있다.

작가는 서문을 통해 혼탁한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중 순탄치 못한 길인 줄 알면서도 굳이 그 길을 마다하지 않았던 그런 류의 한 사람이라고 주인공을 소개했다. 그리고 그 주인공은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을 때 빠져나올 힘조차 없는 평범한 사람이라며, 그럼에도 그가 주인공이 된 까닭은 "되레 그렇지 못한 탓으로 많건 적건, 많은 사람들의 운명의 표징"(p.14)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람이 무엇 때문에 살며, 어떻게 살아야 보람을 가지고 살 수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p.39)며 철학적 사고를 놓치지 않고 남한의 부정부패한 당시 정치, 경제, 사회적 상황을 비판하던 철학과 3학년 이명준은 어느날 북조선에 아버지가 살아있고, 그 아버지가 고위간부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형사들의 고문, 불신, 암울한 비젼 등의 현실은 그를 북조선으로 내몬다.

​"정치? 오늘날 한국의 정치란 미군부대 식당에서 나오는 쓰레기를 받아서, 그중에서 깡통을 골라내어 양철을 만들구, 목재를 가려내어 소위 문화주택 마루를 깔구, 나머지 찌꺼기를 가지고 목축을 하자는 거나 뭐가 달라요?(...)

한국 정치의 광장에는 똥오줌에 쓰레기만 더미로 쌓였어요. 모두의 것이어야 할 꽃을 꺾어다 저희 집 꽃병에 꽂구, 분수 꼭지를 뽑아다 저희 집 변소에 차려놓구(...)

추악한 밤의 광장, 탐욕과 배신과 살인의 광장. 이게 한국 정치의 광장이 아닙니까? 선량한 시민은 오히려 문에 자물쇠를 잠그고 창을 닫고 있어요. 굶주림을 면하기 위해서 시장으로 가는 때만 할 수없이 그는 자기 방문을 엽니다. (...)

바늘 끝만 한 양심을 지키면서 탐욕과 조절을 꾀하자는 자본주의 교활한 윤리조차도 없습니다.(...)

이런 광장들에 대하여 사람들이 가진 느낌이란 불신 뿐입니다. 그들이 가장 아끼는 건 자기의 방, 밀실 뿐입니다.(...)

좋은 아버지, 프랑스로 유학 보내 준 좋은 아버지. 깨끗한 교사를 목 자르는 나쁜 장학관. 그게 같은 인물이라는 이런 역설. 아무도 광장에서 머물지 않아요. 필요한 약탈과 사기만 끝나면 광장은 텅 빕니다. 광장이 죽은 곳. 이게 남한이 아닙니까? 광장은 비어 있습니다."(p.64~67)

북으로 간 명준은 거기서도 역시 희망을 발견하지 못한다. 희망은 커녕.. 스스로 혁명하여 이룬 인민들의 공화국이 아닌 소련이 던져준 북한 체제.. 그것은 허깨비였다. 인민들의 꼭둑각시 놀음과 같은 삶에 그는 절규한다. 그리고 그나마 자유가 있었던 남쪽에서의 삶을 그리워하며 자신의 선택을 저주하고.

 

"어느 모임에서나 판에 박은 말과 앞뒤가 있을 뿐이었다. 신명이 아니고 신명난 흉내였다. 혁명이 아니고 혁명의 흉내였다(...) 월북한 지 반 년이 지난 이듬 해 봄, 명준은 호랑이굴에 스스로 걸어들어온 저를 저주하면서, 이제 나는 무얼 해야 하나?"(...)

"이게 무슨 인민의 공화국입니까? 이게 무슨 인민의 소비에트입니까? 이게 무슨 인민의 나랍니까? 제가 남조선을 탈출한 건, 이런 사회로 오려던 게 아닙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아버지가 못견디게 그리웠던 것도 아닙니다. 무지한 형사의 고문이 두려워서도 아닙니다. (...) 저는 살고 싶었던 겁니다. 보람 있게 청춘을 불태우고 싶었습니다. 정말 삶다운 삶을 살고 싶었습니다.(....)

(p.130~133)

그나마 그는 사랑하는 은혜를 만나게 되면서 숨통이 트이고 적응해서 살아보려고 죽을 힘을 다했다. 하지만 전쟁이 터지고 그마저도 가망이 없어졌다. ​전쟁은 그녀의 갸날픈 몸에 딱딱하고 거친 군복을 입히더니 급기야 목숨까지 앗아간 것이다. 그 때 은혜의 몸 속엔 그들의 아가가 자라고 있었다.

살고자 희망하는 나라를 선택할 수 있게 된 그는 남과 북 어느 쪽도 돌아가길 거부하고 중립국행을 택한다. 그리고 배 위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자신들 주위를 줄곧 떠나지 않는  어미새와 새끼새..

 

<광장>이 발표된 1960년은 이승만 정권을 척결하려던 4.19혁명이 있던 해였다. 정치, 경제, 교육, 문화 어느 한 곳도 정상인 곳이 없었고 곪다 곪다 터져버린 것이다. 이런 국면은 젊은 작가로 하여금 용기를 갖게 했을 것이다. 그는 당시 사회의 어둠을 광장으로 끌어내 까발려 버렸다. 주인공의 표현은 거침없다. '쓰레기, 찌꺼기, 똥오줌..'  당시 독자들 역시 적잖이 충격에 빠졌을 것이다. 하지만 혁명의 성공은 잠깐 동안의 환희. 모든 국민의 바램과 달리 군사정권인 전두환 독재가 들어섰다. 다시 이 책을 돌려가며 숨죽여 읽었을 투쟁동지들, 정의를 외치던 그 피끓는 청춘의 고통을 함께 했을 <광장>. 이 책이 그들의 심정을 대변해줄 수 있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남과 북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철학적 사유를 통해 진정한 자유를 향한 탈출구를 찾으려 애썼던 작가는 그 시대가 호출해낸 국민의 대변인이었다. 시대가 인물을 만든다고 하더니 정말인가보다. 두둑한 배짱과 거친 남성적 필체로 완성된 <광장>은 역시 청춘의 필독서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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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서문
버크.베카리아.니체 외 27인 지음, 장정일 엮음 / 열림원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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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서문'의 역할 대상은 저자와 독자 모두이다

 

<위대한 서문>(2017.12)의 저자 장정일(1962년~)은 시, 소설, 희곡, 서평, 해설, 에세이, 비평 등 다양한 장르에서 폭넓은 독자층을 거느리고 있는 인기 작가이다

. 그리고 그는 독서가이기도 하다. 그의 독서에 대한 깊이와 철학적 사유는 그의 작품 뿐 아니라 20년 째 이어지고 있는 독서 후기 모음집 '장정일의 독서일기'(7권)와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3권)을 통해서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는 독서가로서 함께 책을 읽고 쓰는 이들에게 '서문의 중요함'을 일깨우고자 이 책을 집필하였다. 

<위대한 서문>은 스피노자의 '신학정치론', 니체의 '도덕의 계보학' 외 28편의 서문을 원문 그대로 수록하고 있다. 문학, 철학, 역사, 예술, 과학 등 다양한 분야의 명저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서문 첫머리에는 해당 작품과 작가를 간단하게 소개해 독자들이 알아야할 기초 지식을 제시하고 있다. 

'서문'의 역할 대상은 저자와 독자 모두이다. 독자가 서문이 필요한 이유는 '압축파일을 푸는 암호'이기 때문이며, 저자에게 그것이 필요한 이유는 '작품을 쓰게 된 배경, 작품에 담고자 했던 것, 때로는 뒷 얘기, 독자들에게 전하는 당부'까지도 모두 담아낼 수 있는 그릇이 되어 주기 때문이다.

간절한 호소를 담은 서문 한 편을 소개한다. 아래 발췌는 미국헌법의 토대가 되었고 입헌군주제와 삼권분립, 양원제 등을 주장했던 샤를 루이 드 스콩다 몽테스키외(1689~1755)의 '법의 정신'(1748) 서문 일부이다. 저자는 20년 동안 혼신을 다해 쓴 책이니 부디 가벼이 여기지 말고 끝까지 다 읽은 다음 판단해주길 호소하고 있다.

 

"한 가지 양해를 구할 점이 있는데, 혹시라도 사람들이 양해를 안 해줄까봐 걱정된다. 20년에 걸쳐 이루어진 작업을 잠깐 동안 읽고 판단하지 말아달라는 것이다."(p.111)

20세기 이전 여성의 권리와 자유를 위해 노력한 최초의 여권운동가인 메리 울스턴크래프트(1759~1797)의 '여권의 옹호'(1792) 서문에서는 "여성이 이렇게 아름답지만 무익한 존재로 전락한 것은 잘못된 교육 때문이'(p.157)라며 "좀더 강한 어조로 중산층 여성을 주로 다루려고 한다."(p.159)고 서문을 활용해 선전포고 겸 주의를 당부하기도 한다.

그리고 사드 후작(1740~1814)의 '사랑의 범죄'(1800)는 소설을 쓰는 이유와 소설을 쓰는 사람들의 태도를 배울 수 있다. 서문의 내용은 본문에 대한 강한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기도 한다.

 

"소설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위선적이고 타락한 자들이여, 당신들만이 이런 우스꽝스런 질문을 한다. 소설은 당신들을 그리는 데, 붓이 가져올 결과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그로부터 벗어나길 원하는 거만한 인간들인 당신들을 있는 그대로 그리는 데 쓰인다.(p.187)

"소설의 붓은 인간을 내면에서 파악하기 때문에... 가면을 벗은 순간의 인간을 포착한다. (...) 이것이 바로 소설의 유용성이다.(p.187)

"끝으로, <알린과 발쿠르> 출판 당시 나에게 쏟아진 비난에 대해 답하고자 한다. 사람들은 나의 붓이 지나치게 강했다고, 죄악을 과도하게 끔직한 모습으로 그렸다고 했다. 그 이유를 알고 싶은가? 죄악을 좋아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p.198)


데시데리위스 에라스뮈스 로테로다뮈스(1466~1536)의 '격언집'(1500) 서문 길이는 가히 압도적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대단한 것은 그 서문이 가지고 있는 원문에 대한 기대감이다. 서문에서 소개하는 다양한 표현들과 그 해석만으로도 '고품격 언어 표현 사전'이라 불릴 만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천년이 지난 후 군사 개혁의 기본서가 되었고, 오늘날 군사학의 초석을 마련했던 클라비우스 베개티우스 레나투스(301?~400?)의 '군사학 논고'(378?~392?)를 보면 서문의 변천사를 짐작할 수 있다. 아래 발췌를 본다면 다소 우습게 여겨질 수 있겠지만 당시로서는 서문이 갖추어야 할 요식이었다고 하니 저자를 아부쟁이로 오해하지는 말아야겠다.

"저는 뻔뻔하게도 고대의 저술가들에 비해 턱없이 무능한 저 자신을 망각해버렸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연구에서 감히 한 가지 다른 특징을 내놓고자 합니다. (...) 저는 감히 제 연구의 상세한 내용을 폐하께서 잘 모르시리라 생각하고 제출하는 것은 아닙니다."(p.23)

수록된 서문 30편은 그야말로 기념비적인 명저들의 것이다. 그러한 작품들을 서문 한 편 읽는 것만으로 대략이나마 파악할 수 있다니 실로 대단한 일이 아닌가. 이는 '서문'이 독자들을 위해서도 존재함을 증명해주는 것이다. 저자는 "내가 읽고 있는 책을 해설해주는 최고의 참고서는 비평가의 해설도 서평가의 독후감도 아닌, 서문이라는 것을 명심해야한다."(p.12)며 책을 읽을 때 서문을 매번 펼쳐보기를 권유한다. 그런 서문을 놓친다면 책을 다 읽고도 읽은 것이 아닌 것이다.

 

"제목은 압축 파일과 같다. (...) 언제나 제목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제목은 독자의 이해가 올바른 방향으로 전진하도록 인도해주는 돛과 같다. 그 다음으로 일별해야 하는 것은 많은 독자들이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목차다. (....) 제목이 압축파일이라면 서문은 그것을 푸는 암호다. (....) 서문은 늘 짧지만, 저자의 욕망이 고스란히 투영된 서문은 그것의 실현물인 본문보다 크다. 어쩌면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계속 글을 쓰게 되는지도 모른다. 자신의 서문을 끝내 완성하기 위하여."(서문 p.11~13)

​독자들로 하여금 명저 30편을 다소나마 파악할 수 있게 만든 저자 장정일의 뚝심 또한 대단하다. 30편 중 단 몇 편을 제외하고는 모두 강도 높은 책들이기 때문이다. 독자들 중에는 아마도 좀더 쉬운 책을 예제로 사용해주었더라면하고 여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읽고마는 책이 아니라 소유해서 두고두고 볼 책이라면 달리 생각해보아야하지 않을까. 한번 읽고 이해되지 않는다면 두번, 세번 다시 읽어보자. 그래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사유하고 또 토론도 해보자. 그것이 독서가 갖는 진정한 의미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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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위의 딸 (양장)
알렉산드르 세르게비치 푸시킨 지음, 이영의 옮김 / 새움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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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작가의 시대적 사명감에 대하여

 

대위의 딸(2017), 알렉산드르 세르게예비치 푸시킨, 새움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 슬픔의 날을 참고 견디면 / 기쁨의 날이 오리니. // 마음은 언제나 미래에 살고 / 오늘은 언제나 슬픈 것 / 모든 것은 순간에 지나고 / 지나간 것은 그리워지나니."(1825)

 

한국인에게 너무나 익숙한 '시'이다. 이 국민시는 <대위의 딸>(1836)의 저자 알렉산드로 세르게예비치 푸시킨(1799~1837)의 작품이다. 그는 그의 조국 러시아에서 '가장 사랑받는 국민 시인' 중 한 명이자 또 소설가이다. 청년 시절 주로 운문 형식으로 자유와 휴머니즘을 노래했던 그는 다양한 문학 장르를 실험한 작가로도 유명하다. 그리고 그 장르마다 빼어난 작품들을 남겼으며 특히, 러시아 산문 중 유일한 운문 소설인 <예브게니 오네긴>을 남기기도 했다. 1830년, 민중의 말을 문학어로 도입한 산문 <벨킨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았으며, 이후 "러시아 산문의 역사에서 최고 걸작의 하나"(p.281)라 평가받는 <스페이드 여왕>(1833), 그리고 그가 죽기 1년 전 '19세기 러시아 사실주의 문학의 선구적 작품'이라 인정받는 그의 유일한 장편소설 <대위의 딸>을 발표한다.

 

유시민의 표현을 빌리자면 <대위의 딸>은 '로맨스를 빙자한 역사소설이며 정치소설'이다. 정확한 표현이다. 이 소설은 남녀주인공의 사랑과 그들의 성장 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니 연애소설이다. 그리고 러시아 전국을 공포 속에 몰아넣었던 농민반란 '푸가초프의 반란'(1773~1775)이 주배경이므로 또한 역사소설이다. 그 반란에 앞서 일어났던 바시키르나 카자크 반란과 거기 참가했던 사람들의 "코와 귀를 베고 혀를 자르는" 등 제정러시아 정부가 저질렀던 야만적 보복 행위를 비판적으로 서술하고 있으니 정치소설이다. 그렇다고 해서 절대 무겁지는 않다. 오히려 가볍디 가볍다고 해야할까, 경쾌하고 때론 엉뚱하고 또 코믹하다. 따뜻하고 아름답기까지 하다. 이것이 천재 푸시킨의 위대함이리라.

 

“오늘날에도 이런 야만적인 관습의 폐지를 유감스럽게 생각하는 늙은 법관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곤 한다”(p.104)

 

열일곱 살, 안드레이 페트로비치(표토르)는 평온한 자신의 보금자리를 벗어나 국경 지역 벨로고로드에서 장교 생활을 시작한다. 부대라고는 하지만 모든 것이 허술했고, 사령관(대위) 이반 쿠즈미치는 따뜻한 심성을 가진 상사였다. 부인 바실리사 예고로브나는 부대 일을 집안일 꾸리듯 챙기는 주체적인 여성이었으며 그들의 딸은 얌전하고 사랑스러웠다. 그리고 표트르는 그녀와 곧 사랑에 빠진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게 있다면 시바브린이라는 존재였다. 그는 마리야에게 청혼하지만 거절당한 전력을 가지고 사사건건 그들을 방해한다. 소설 막바지까지 쭈욱. 철이 없고 방탕한 듯, 귀족 도련님 티를 곳곳에서 드러내고 있지만 언제나 따뜻한 심성으로 사벨리치에게 백기를 들고마는 표도르, 시를 사랑하던 그와, 수줍으면서도 당당한 마리야가 막 사랑을 시작하였을 즈음 전쟁이 일어난다.

 

"이보게, 사벨리치! 그만하면 됐네.(...)앞으로는 바르게 처신하고 자네 말도 잘 듣겠다고 약속하겠네. 자아, 어서 화를 풀고 화해하세."(p.28)

 

표토르는 부대를 향해 집을 떠날 때 베푼 작은 호의로 목숨을 건지게 되고(호의를 베푼 사람이 바로 반란군 참칭 황제 푸카초프였다. "그때 그대가 베푼 한 잔의 술과 토끼가죽 외투를 기억하고 있기 때문일세."(p.188)), 다시 그의 호의로 사랑하는 마리야를 시바브린으로부터 구할 수도 있게 된다. 하지만 반란이 진압된 후 이 일이 빌미가 되어 군사법정에 서게 되는데, 하지만 사랑하는 마리야를 이 사건에 끌어들일 수 없는 일, 결국 그는 무기징역형을 선고받는다. 이같은 사실을 눈치챈 마리야는 그를 살리기 위해 예카테리나 여제를 찾아가 진실을 밝히고 그 덕분에 표토르는 석방되어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한 차례 더 소동을 겪지만 결국 그들은 해피엔딩을 맞는다.

이 소설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역사는 인간 스스로 만들어 간다는 것으로써 그것은 등장인물의 행동과 말로서 드러내고 있다. 둘째, 모든 인간은 존엄하며 평등하다는 것으로써 이것은 소설 곳곳의 숨은 표현들로 제시되고 있다. 인간 개개인은 나약하여 거대한 역사와 조우했을 때 모두 소극적이게 되지만 서로 도와서 주체적으로 대처한다면 반드시 극복해 나갈 수 있으며 그렇게 역사는 다시 만들어지고 진보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푸시킨이 이 소설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것이다. 둘째 그는 반란군의 우두머리인 참칭 황제를 인간답게 표현하는 것으로 전제 러시아를 우회적으로 비판하고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견해를 밝히고 있다. 비록 전쟁에선 적이긴 하였지만 인간적인 온기를 나눴던 표토르와 푸카초프, 두사람간의 우정을 지켜볼 수 밖에 없게 만든 것은 작가가 가지고 있는 현실의 벽에 대한 좌절, 그것을 대하는 작가의 안타까운 마음을 대변하는 것이리라.

 

"푸가초프는 맨 윗자리에 앉아 식탁에 팔꿈치를 괴고, 시커먼 턱수염이 난 턱을 커다란 주먹으로 받치고 있었다. 그의 용모는 매우 단정하고 호감이 가는 얼굴로 흉악한 데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교수대의 이슬로 사라질 운명을 타고난 이들이 부르는 교수대에 대한 노래는 내 마음 속에 이루 형언할 수 없는 묘한 감정을 불러 일으켰다. 그들의 험상궂은 얼굴, 화음을 이루는 노랫가락, 노래 마디마디에 배어있는 애절한 곡조, 그리고 구성진 곡조에 어우러져 더 구슬프게 들리는 노랫말 등이 모두 기이한 시적 충격으로 내 마음을 뒤흔들어 놓았다.(p.136~p.138)

 

"푸가초프를 처형하는 현장에도 참석했다고 한다. 푸가초프가 군중 속에서 그를 알아보고 조금 후에는, 숨이 끊어져 피투성이가 된 채 사람들 앞에 전시될 머리를 끄덕해 보였다고 한다."(p.240)

 

역사 자료를 공개하지 않아 역사소설을 집필하는 자체가 용이하지 않았던 19세기 제정러시아, 황제로부터 모든 작품을 검열 받아야 했고 이동의 자유마저 억압받았던 푸시킨, 그가 그려낸 황제에 반하는 농민 반란사. 그는 소설 곳곳에 자신의 의도를 숨겨놓았다. 어떻게 그런 용기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일까? 그의 사망 6개월 전 시 <손으로 만들지 않은 나의 기념비>에 그 답이 있다. 그건 바로 글쓰는 자로서의 사명감이다. 한 작가의 역사의식,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 철학적 사고는 분명 작가 개인의 것이 아님을.

 

“나는 손으로 만들지 않은 나의 기념비를 세웠노라 / 그곳으로 향하는 민중의 발길은 끝없이 이어지고 / 머리를 꼿꼿이 세운 나의 기념비는 / 알렉산드르의 기념비보다 더 높이 솟아오르리라 //

 

그리하여, 내 모든 것은 죽지 않으리 / - 신성한 리라를 간직한 나의 영혼으로 / 나의 육신은 되살아나고 썩지 않으리 - / 나는 칭송 받으리. 달빛 아래 세상에 / 단 한 명의 시인이라도 살아 있다면. //

 

나의 소문은 위대한 러시아의 곳곳에 퍼져 나가리. / 그리고 모든 러시아의 진실한 말들이 나의 이름을 부르리, 당당한 슬라브의 자손도, 핀족도, 지금은 거칠기 짝이 없는 퉁구스도, 그리고 초원의 친구 칼미크도. //

 

나 오래도록 민중의 사랑을 받으리. / 리라로 선한 감정을 일깨우고, / 잔혹한 시대에 자유를 찬미하며 / 쓰러진 이들에게 자비를 베풀기를 호소했기에 / 오, 뮤즈여, 신의 부름에 귀 기울이라, / 모욕을 두려워 말고 왕관을 바라지 말라, / 칭찬과 중상에 초연하며 / 어리석은 자들과는 언쟁을 삼가라.”(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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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박한 마음 쏜살 문고
귀스타브 플로베르 지음, 유호식 옮김 / 민음사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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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박한 마음(2017), 귀스타브 플로베르, 민음사

 

<순박한 마음>은 ‘순박한 마음’, ‘구호 성자 쥘리앵의 전설’, ‘헤로니아’ 등 세 편의 단편소설로 구성된 귀스타브 플로베르(프랑스 자연주의 소설가, 1821~1880), 그의 생전 마지막 단편소설집이다. 이 작품은 그가 ‘<부바르와 페퀴셰>(1881, 미완성 유작)를 집필하는 도중 잠시 휴식을 취하기 위해 약 십오 개월 동안 쓴 작품집’(p.153)이다. 그렇게 짧은 시간 동안 이렇게 소재가 다른 세 편의 소설을 완성한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다. 더구나 단편들 중 ‘순박한 마음’을 제외하고는 모두 역사 고증을 바탕으로 한 것들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저자 플로베르는 ‘열여덟 살에 법학을 공부하기 위해 파리로 떠났으나, 신경질환으로 인해 삼 년 뒤 학업을 중단하고 고향 마을로 돌아와 홀로 된 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글쓰기에 전념했다.’고 한다. 삶이 방향을 잃었을 때 우리는 곧잘 실망하고 실의에 빠지기도 하고 간혹 인생의 마지막 선택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저자와 같은 성공 사례를 보면 반드시 그렇지 않다는 것을 잘 증명해 보여주고 있다. 오히려 그것이 더 나은 길을 안내하는 나침반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표제작 ‘순박한 마음’은 “폴레베크의 가정주부들은 펠리시테를 하녀로 데리고 있는 오뱅 부인을 오십 년 동안 부러워했다.”(p.9)라는 첫 문장으로 시작한다. 이 문장은 많은 것을 담고 있다. 짧지 않은 세월 동안 한결같이 모든 가정주부들이 부러워했다면 도대체 어떤 사람일지 궁금해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녀는 “1년에 100프랑을 받으며 요리와 집 안 살림, 바느질과 빨래와 다리미질을 했고, 말에 굴레를 씌우고 닭을 통통하게 살찌우고 버터를 만들 줄도 알았고, 상냥하지 않은 여주인에게도 충실”(p.9)한 하녀 신분이다. 그녀는 집안 일을 잘 할 뿐만 아니라, 그녀는 모든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한다. 아니, 사람 뿐 아니라 사물도 사랑한다.

 

그녀는 무식하지만 그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무식하다고 해서 그녀가 살아가는데 그다지 불편함을 느끼지도 않는다. 오히려 대조적으로 유식하고 잘난 사람들은 온갖 허례허식으로 훨씬 더 불편하게 살아간다.

 

그녀의 열정적인 사랑은 그녀를 귀머거리로 만들기도 하지만 원망하기는 커녕 그 사랑은 더욱 깊어진다. 애초 원망이라고는 없는 사람이다. 그 누구도, 그 무엇도 탓하지 않는다. 그녀 안에는 사랑만이 존재한다. 그녀는 그렇게 오래오래 살다 아주 편안하게 미소 지으며 눈을 감는다. 그런 사람이 세상에 어디에 있을까 싶지만 있을 것도 같다. 그런 순박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독토리더(민영샘)의 평과 함께 이 서평을 갈무리하려한다.

 

“시적인 언어로 소설을 썼다.”, “소설을 쓰는데 음악적, 리듬감이 중요함을 느꼈다.”, “작가는 자신이 누군지 일찍 발견한 사람이다. 그것을 강하게 느끼게 해준 소설이었다.”, “순박함은 우리 모두 안에 들어있는 마음이다. 다만 우리가 사회에 길들여져서 그것을 발견 못하는 것 뿐이다. 순박함이란 우리 인간의 원초적 자아 모습이 아닐까. 분명히 우리 안에 있는데 왜 낯설어할까? 우리는 그만큼 길들여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아닐까?”

 

저자 플로베르가 지극히 평범한 하녀 펠리시테를 주인공으로 세운 것은 ‘자아를 발견하는 것’이 그리 어려운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주려 함일 것이다. 우리 안에 이미 존재하고 있는 원초적 자아를 보여주는 것으로 불안 속에 살아가고 있는 인간들에게 희망을 던져주려 한 것이다. ‘삶이라는 게 뭐 그리 까다롭겠는가. 그저 순박한 마음으로 잘 살다가 그 마음 그대로 간직하고 눈을 감는 것 아니겠는가’ 하고.

 

발췌 :

“그녀는 콧구멍을 내밀며 연기를 들이마시고 신비로운 쾌감을 느꼈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그녀의 입술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녀의 심장 박동이 조금씩 느려졌고, 샘물이 마르듯 메아리가 사라지듯 매번 더 희미해지고 더 가늘어졌다. 마지막 숨을 내빝으며 그녀는 열린 하늘에서 거대한 앵무새 한 마리가 자기 머리 위를 나는 모습을 얼핏 본 듯했다.”(p.58)

 

"교리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고 이해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사제가 강론하고 아이들이 암송하면 그녀는 잠들고 말았다. 아이들이 돌아가면서 대리석 바닥에 나막신 부딪히는 소리를 내면 그제서야 깜짝 잠에서 깨어났다."(p.25)

 

진정한 애정에서 나오는 상상력 덕분에 그녀 자신이 비르지니가 된 것 같았다. 그 아이의 얼굴이 자기 얼굴이었으며, 아이의 옷을 자신이 입었고, 아이의 심장이 자기 가슴에서 뚜었다. 비르지니가 입을 벌리는 순간, 그녀는 눈을 감으며 하마터면 정신을 잃을 뻔했다.(p.26)

 

그의 부모는 언제나 흑설탕 한 통, 비누, 브랜디 같은 것들, 가끔은 심지어 돈지 얻어 오라고 시켰다. 수선해야 할 허접한 옷들을 빅토르가 가져오기도 했다. 그가 옷을 받으려 다시 올 것을 기뻐하며 그녀는 그 귀찮은 일을 떠맡았다.(p.28)

 

그때부터 펠리시테는 오직 조카 생각만 했다. 해가 내리쬐는 화창한 날이면 그녀는 갈증으로 괴로웠고, 폭풍우가 들이치는 날이면 조카 때문에 천둥을 두려워했다. 바람이 굴뚝에서 요란하게 윙윙대면서 지붕 타일을 날리면, 온몸을 뒤로 젖힌 조카가 부러진 돛 꼭대기에서 똑같은 폭풍우에 후려 맞고 식탁보처럼 펼쳐진 파도 거품 아래로 가라앉는 모습이 그녀에게 보였다.(p.30)

 

긴 털이 달린 작은 밤색 천 모자를 찾아냈는데, 좀이 잔뜩 슬어 있었다. 펠리시테가 그 모자를 달라고 했다. 서로 바라보던 그녀드의 눈에 눈물이 가득 차올랐다. 마침내 여주인이 팔을 벌렸고 하녀가 품속으로 뛰어들었다. 주인과 하녀의 신분을 잊고 평등한 가운데 꼭 껴안고 입을 맞추며 서로의 고통을 달랬다. 오뱅부인이 외향적인 성격이 아니었기에 그리한 것은 그들의 인생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펠리시테는 은혜라도 입은 것처럼 부인에게 고마움을 느꼈고, 그 후로는 동물적인 헌신과 종교적인 경배심을 품고 부인을 지극히 소중이 여겼다. 그녀의 마음 속에 깃들어 있던 선의가 점점 커졌다.(p.40)

 

그녀는 룰루를 잃어버릴 뻔한 일을 쉽게 잊지 못했다. 어찌 보면 결코 잊지 못했다. 감기 끝에 그녀는 목에 급성 염증이 생겼고 곧이어 귀가 아팠다. 삼 년 뒤에는 귀머거리가 되었다. (...) 그렇쟎아도 협소하던 그녀의 생각이 더 협소해졌다. 시끄러운 종소리, 황소의 울음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모든 존재들이 유령처럼 조용히 움직였다. 이제 그녀 귀에 들리는 소리는 하나밖에 없었다. 앵무새가 내는 소리였다. (....)그녀가 외롭게 살아가는 동안 룰루는 거의 아들이자 연인이었다.(p.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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