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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서문
버크.베카리아.니체 외 27인 지음, 장정일 엮음 / 열림원 / 2017년 12월
평점 :
제목 : '서문'의 역할 대상은 저자와 독자 모두이다
<위대한 서문>(2017.12)의 저자 장정일(1962년~)은 시, 소설, 희곡, 서평, 해설, 에세이, 비평 등 다양한 장르에서 폭넓은 독자층을 거느리고 있는 인기 작가이다
. 그리고 그는 독서가이기도 하다. 그의 독서에 대한 깊이와 철학적 사유는 그의 작품 뿐 아니라 20년 째 이어지고 있는 독서 후기 모음집 '장정일의 독서일기'(7권)와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3권)을 통해서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는 독서가로서 함께 책을 읽고 쓰는 이들에게 '서문의 중요함'을 일깨우고자 이 책을 집필하였다.
<위대한 서문>은 스피노자의 '신학정치론', 니체의 '도덕의 계보학' 외 28편의 서문을 원문 그대로 수록하고 있다. 문학, 철학, 역사, 예술, 과학 등 다양한 분야의 명저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서문 첫머리에는 해당 작품과 작가를 간단하게 소개해 독자들이 알아야할 기초 지식을 제시하고 있다.
'서문'의 역할 대상은 저자와 독자 모두이다. 독자가 서문이 필요한 이유는 '압축파일을 푸는 암호'이기 때문이며, 저자에게 그것이 필요한 이유는 '작품을 쓰게 된 배경, 작품에 담고자 했던 것, 때로는 뒷 얘기, 독자들에게 전하는 당부'까지도 모두 담아낼 수 있는 그릇이 되어 주기 때문이다.
간절한 호소를 담은 서문 한 편을 소개한다. 아래 발췌는 미국헌법의 토대가 되었고 입헌군주제와 삼권분립, 양원제 등을 주장했던 샤를 루이 드 스콩다 몽테스키외(1689~1755)의 '법의 정신'(1748) 서문 일부이다. 저자는 20년 동안 혼신을 다해 쓴 책이니 부디 가벼이 여기지 말고 끝까지 다 읽은 다음 판단해주길 호소하고 있다.
"한 가지 양해를 구할 점이 있는데, 혹시라도 사람들이 양해를 안 해줄까봐 걱정된다. 20년에 걸쳐 이루어진 작업을 잠깐 동안 읽고 판단하지 말아달라는 것이다."(p.111)
20세기 이전 여성의 권리와 자유를 위해 노력한 최초의 여권운동가인 메리 울스턴크래프트(1759~1797)의 '여권의 옹호'(1792) 서문에서는 "여성이 이렇게 아름답지만 무익한 존재로 전락한 것은 잘못된 교육 때문이'(p.157)라며 "좀더 강한 어조로 중산층 여성을 주로 다루려고 한다."(p.159)고 서문을 활용해 선전포고 겸 주의를 당부하기도 한다.
그리고 사드 후작(1740~1814)의 '사랑의 범죄'(1800)는 소설을 쓰는 이유와 소설을 쓰는 사람들의 태도를 배울 수 있다. 서문의 내용은 본문에 대한 강한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기도 한다.
"소설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위선적이고 타락한 자들이여, 당신들만이 이런 우스꽝스런 질문을 한다. 소설은 당신들을 그리는 데, 붓이 가져올 결과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그로부터 벗어나길 원하는 거만한 인간들인 당신들을 있는 그대로 그리는 데 쓰인다.(p.187)
"소설의 붓은 인간을 내면에서 파악하기 때문에... 가면을 벗은 순간의 인간을 포착한다. (...) 이것이 바로 소설의 유용성이다.(p.187)
"끝으로, <알린과 발쿠르> 출판 당시 나에게 쏟아진 비난에 대해 답하고자 한다. 사람들은 나의 붓이 지나치게 강했다고, 죄악을 과도하게 끔직한 모습으로 그렸다고 했다. 그 이유를 알고 싶은가? 죄악을 좋아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p.198)
데시데리위스 에라스뮈스 로테로다뮈스(1466~1536)의 '격언집'(1500) 서문 길이는 가히 압도적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대단한 것은 그 서문이 가지고 있는 원문에 대한 기대감이다. 서문에서 소개하는 다양한 표현들과 그 해석만으로도 '고품격 언어 표현 사전'이라 불릴 만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천년이 지난 후 군사 개혁의 기본서가 되었고, 오늘날 군사학의 초석을 마련했던 클라비우스 베개티우스 레나투스(301?~400?)의 '군사학 논고'(378?~392?)를 보면 서문의 변천사를 짐작할 수 있다. 아래 발췌를 본다면 다소 우습게 여겨질 수 있겠지만 당시로서는 서문이 갖추어야 할 요식이었다고 하니 저자를 아부쟁이로 오해하지는 말아야겠다.
"저는 뻔뻔하게도 고대의 저술가들에 비해 턱없이 무능한 저 자신을 망각해버렸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연구에서 감히 한 가지 다른 특징을 내놓고자 합니다. (...) 저는 감히 제 연구의 상세한 내용을 폐하께서 잘 모르시리라 생각하고 제출하는 것은 아닙니다."(p.23)
수록된 서문 30편은 그야말로 기념비적인 명저들의 것이다. 그러한 작품들을 서문 한 편 읽는 것만으로 대략이나마 파악할 수 있다니 실로 대단한 일이 아닌가. 이는 '서문'이 독자들을 위해서도 존재함을 증명해주는 것이다. 저자는 "내가 읽고 있는 책을 해설해주는 최고의 참고서는 비평가의 해설도 서평가의 독후감도 아닌, 서문이라는 것을 명심해야한다."(p.12)며 책을 읽을 때 서문을 매번 펼쳐보기를 권유한다. 그런 서문을 놓친다면 책을 다 읽고도 읽은 것이 아닌 것이다.
"제목은 압축 파일과 같다. (...) 언제나 제목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제목은 독자의 이해가 올바른 방향으로 전진하도록 인도해주는 돛과 같다. 그 다음으로 일별해야 하는 것은 많은 독자들이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목차다. (....) 제목이 압축파일이라면 서문은 그것을 푸는 암호다. (....) 서문은 늘 짧지만, 저자의 욕망이 고스란히 투영된 서문은 그것의 실현물인 본문보다 크다. 어쩌면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계속 글을 쓰게 되는지도 모른다. 자신의 서문을 끝내 완성하기 위하여."(서문 p.11~13)
독자들로 하여금 명저 30편을 다소나마 파악할 수 있게 만든 저자 장정일의 뚝심 또한 대단하다. 30편 중 단 몇 편을 제외하고는 모두 강도 높은 책들이기 때문이다. 독자들 중에는 아마도 좀더 쉬운 책을 예제로 사용해주었더라면하고 여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읽고마는 책이 아니라 소유해서 두고두고 볼 책이라면 달리 생각해보아야하지 않을까. 한번 읽고 이해되지 않는다면 두번, 세번 다시 읽어보자. 그래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사유하고 또 토론도 해보자. 그것이 독서가 갖는 진정한 의미가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