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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그네 ㅣ 오늘의 일본문학 2
오쿠다 히데오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5년 1월
평점 :
<공중그네>는 베스트셀러인 <무코다 이발소>(2017), 스테디셀러인 <남쪽으로 튀어>(2006) 등으로 일본 뿐 아니라 한국에도 잘 알려진 인기 작가 오쿠다 히데오의 장편소설이다.
오쿠다 히데오(1959~)는 40세(1997년) 때 《우람바나의 숲》로 데뷔했다. 늦은 등단이었지만 2002년 <방해>로 제4회 오야부 하루히코상을, 2004년 <공중그네>로 제131회 나오키상을 수상했다. 한국에 소개된 작품만도 20여편이 넘고 <남쪽으로 튀어>, <인더풀>, <걸> 등은 영화로 제작되었다. 그의 작품은 대체로 사회 문제를 다루며 그 안에서 치유하는 과정을 함께 담고 있다.
<공중그네> 또한 다소 무거울 수 있는 사회적 모순을 코믹하게 잘 그려낸 수작으로 지금까지도 꾸준히 사랑받는 스테디셀러이다.
<공중그네>는 다섯 편의 에피소드로 나누어져 있으나 실상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장편소설이다. 각 에피소드의 주인공이 모두 이라부 이치로라는 요절복통 엽기 의사 이라부를 만나는 것으로 스토리가 전개되기 때문이다. 그들 주인공이 서로 관련이 없으므로 이라부 신경정신과의 에피소드 모음집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각 에피소드 주인공은 각자 최근 심각한 정신질환의 일종인 우울증, 강박증에 시달리고 있다. 선단공포증, 강박신경증, 입스, 심인성 구토증 등의 병명으로..
그들은 이라부 종합병원 신경정신과 의사 이라부를 찾는다. 결론적으로 모두 그로 인해 치유받고, 글쎄~ 치유받았다고 해야할지? 그의 비타민 주사 때문인지, 아니면 역치료 덕분인지는 몰라도 모두 각자 나름의 방법을 스스로 찾아 치유에 성공한다.
환자보다 더 환자 같은, 이 소설의 중심에 있는 호기심 많고 안하무인 미운 짓만 일삼는, 그러나 결코 밉지 않은, 타인의 눈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 딱 초딩 수준의 정신연령을 가진 엽기 의사 이라부를 만나보자. 그러려면 우선 그를 만나게 된 환자들이 왜 강박증세에 시달리는지 들여다 보아야 할 것이다. 그들은 왜 강박증세에 시달리게 되었을까? 체면을 중시하는 일본 국민성이 피해자들을 스스로 만들어 낸 건 아닐까?
선단공포증을 가지고 있는 1호 환자는 일본 야쿠자 중간 보스이다. 그런데 이 사람은 날카롭고 뾰족한 물체만 보면 극도의 공포감을 느끼며, 땀이 비 오듯하고 몸이 굳어버린다. 야쿠자가 이런 증상이라니,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사연 속으로 들어가보니 그는 애초 깡패가 체질에 맞지 않은 사람이었는데 지금까지 온 힘을 다해 자신의 본성을 저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만 은혜를 갚기 위해 자신도 느끼지 못한 채 그 역할에 충실했던 것. 이런 류의 병을 앓는 사람이 과연 세이지 한 사람뿐이었을까? 아니었다. 세이지를 돕기 위해, 아니 세이지를 돕는다는 구실로 재미꺼리를 찾아 나선 의사 이라부가 그의 삶에 끼여들고 거기서 그는 자기와 대척점에 있는 다른 중간보스가 ‘블랭킷 증후군’을 앓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로써 세이지는 세상을 달리 보게 되고, 자기만이 겪는 고통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두려움보다는 안타까움이 드는 순간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이것을 인정하고 나니 병세 또한 호전이 되었다.
이라부는 야쿠자를 대하면서도 겁을 먹지 않았고 오히려 재미있는 놀이 정도로만 생각하는 듯 했다. 여자 간호사와 합심해 세이지를 제압해 비타민 주사를 놓는데 성공하는가 하면 세이지와 정치인처럼 차려입고 또다른 야쿠자를 만나는 데 동행하기도 하고.. 이 외에도 수많은 기행을 일삼는다. 환자를 치료한다는 미명하에(아니, 그냥 하고 싶어서) 그 뚱뚱하고 둔한 몸으로 공중그네 서커스에 도전하기도 하고, 일탈충동에 시달리는 환자를 꼬드겨 수리공인척 하며 육교에 매달려 이정표를 고치게 해서 황당한 뜻으로 만들어놓기도 한다.(‘곤노우 신사 앞(金王神社前)’이 ‘불알(金玉) 신사 앞’으로, ‘오이 1가(大井一丁目)’가 ‘튀김덮밥(天?) 1가’로)
여러 가지 원인으로 사람들은 신경정신과를 찾는다. 상대를 인정해주기 싫어서 자신도 모르게 정신병을 앓기도 하고, 자신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고슴도치가 되기도 한다. “그럴 리가 없지. 몇 년째 하는 일인지 알기나 해?”라며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려 하지 않고 자신의 몸이 자기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기도 한다.
그러나 이라부 의사는 이런 환자들과180도 다른 사고를 가진 사람이었고, 대부분의 인간이 추구하는 돈과 명예, 체면, 건강 등 어디에도 걸림이 없는 사람이었다. 극과 극 캐릭터이다. 남의 눈치는 1도 보지 않고 하고 싶은 게 있으면 그냥 저지른다. 체면 따위는 ‘개나 줘버려라’ 하는 식이다. 두려움도 없고 호기심만 있을 뿐이다. 돈을 벌려고 애쓰지도, 명예를 얻기 위한 노력도,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행동도 하지 않는다. 그렇게 행동함으로써, 그리고 그것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그는 환자들에게 적재적소에 현답을 던진다. 그의 황당무계 치료행위는 불안불안하기도 하고, 웃기다 못해 눈물이 날 지경이다. 결과는 늘 성공이라 통쾌하고 속이 시원해진다.
"환자한테 이런 짓을 하고도 순순히 넘어갈 거 같아, 엉?"
"치료인 걸 어쩌나. 하는 수 없지." 이라부가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치료는 무슨 치료야. 환자 결박시키고 주사나 놓는 주제에."
“이런 치료도 있는 거지, 뭘. 고름은 째서 짜버려야 빨리 낫는 법이야. 피도 조금 같이 나오긴 하지만.”(p.20)
소설은 한 마디로 재미있다. 황당하고 좀 억지스럽기도 하다. '뭐야? 저런 의사가 어딨어? 말이 되는 얘기야?'를 연발할 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혹 독자들 중에서도 소설의 환자들과 비슷한 증상을 가진 이가 있지는 않은지 말이다. 어쩌면 소설 속 주인공 뿐 아니라 우리 또한 이런 증상에서 자유롭지 못할 수도 있겠다. 그래서 이 짧지만 긴 소설을 읽고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이유이다. 사회의 아픔을 담고 있는 소설이 답도 함께 제시하고 있다.
‘적당히 살자, 너무 애쓰지 말자, 돈이 없어도 살고, 명예가 없어도 산다. 그러니 즐겁게 함께 웃고 살자, 외롭지 않게 함께 하자, 그리고 하기 싫은 것만 하지말고 하고 싶은 것도 좀 하면서 살자’라고.
이렇게 웃음과 해학으로 위로를 담고 있는 <공중그네>, 위로받고 싶다면, 또 누군가를 위로해주고 싶다면 이 책을 읽고 또 권해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