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 / 구운몽 최인훈 전집 1
최인훈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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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광장>은 1960년 발표된 이후 수차례 개작을 거듭하면서 오랜세월 스테디셀러로 군림하고 있는 학생들의 필독서이다.  이 작품은 노작가 최인훈(1936. 4. 13~)의 이십대 초반 작품으로 분단된 조국 남과북이 모두 바로서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을 철학과 3학년 학생의 시선과 철학적 사유를 통해 잘 표현해 내고 있다.

작가는 서문을 통해 혼탁한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중 순탄치 못한 길인 줄 알면서도 굳이 그 길을 마다하지 않았던 그런 류의 한 사람이라고 주인공을 소개했다. 그리고 그 주인공은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을 때 빠져나올 힘조차 없는 평범한 사람이라며, 그럼에도 그가 주인공이 된 까닭은 "되레 그렇지 못한 탓으로 많건 적건, 많은 사람들의 운명의 표징"(p.14)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람이 무엇 때문에 살며, 어떻게 살아야 보람을 가지고 살 수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p.39)며 철학적 사고를 놓치지 않고 남한의 부정부패한 당시 정치, 경제, 사회적 상황을 비판하던 철학과 3학년 이명준은 어느날 북조선에 아버지가 살아있고, 그 아버지가 고위간부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형사들의 고문, 불신, 암울한 비젼 등의 현실은 그를 북조선으로 내몬다.

​"정치? 오늘날 한국의 정치란 미군부대 식당에서 나오는 쓰레기를 받아서, 그중에서 깡통을 골라내어 양철을 만들구, 목재를 가려내어 소위 문화주택 마루를 깔구, 나머지 찌꺼기를 가지고 목축을 하자는 거나 뭐가 달라요?(...)

한국 정치의 광장에는 똥오줌에 쓰레기만 더미로 쌓였어요. 모두의 것이어야 할 꽃을 꺾어다 저희 집 꽃병에 꽂구, 분수 꼭지를 뽑아다 저희 집 변소에 차려놓구(...)

추악한 밤의 광장, 탐욕과 배신과 살인의 광장. 이게 한국 정치의 광장이 아닙니까? 선량한 시민은 오히려 문에 자물쇠를 잠그고 창을 닫고 있어요. 굶주림을 면하기 위해서 시장으로 가는 때만 할 수없이 그는 자기 방문을 엽니다. (...)

바늘 끝만 한 양심을 지키면서 탐욕과 조절을 꾀하자는 자본주의 교활한 윤리조차도 없습니다.(...)

이런 광장들에 대하여 사람들이 가진 느낌이란 불신 뿐입니다. 그들이 가장 아끼는 건 자기의 방, 밀실 뿐입니다.(...)

좋은 아버지, 프랑스로 유학 보내 준 좋은 아버지. 깨끗한 교사를 목 자르는 나쁜 장학관. 그게 같은 인물이라는 이런 역설. 아무도 광장에서 머물지 않아요. 필요한 약탈과 사기만 끝나면 광장은 텅 빕니다. 광장이 죽은 곳. 이게 남한이 아닙니까? 광장은 비어 있습니다."(p.64~67)

북으로 간 명준은 거기서도 역시 희망을 발견하지 못한다. 희망은 커녕.. 스스로 혁명하여 이룬 인민들의 공화국이 아닌 소련이 던져준 북한 체제.. 그것은 허깨비였다. 인민들의 꼭둑각시 놀음과 같은 삶에 그는 절규한다. 그리고 그나마 자유가 있었던 남쪽에서의 삶을 그리워하며 자신의 선택을 저주하고.

 

"어느 모임에서나 판에 박은 말과 앞뒤가 있을 뿐이었다. 신명이 아니고 신명난 흉내였다. 혁명이 아니고 혁명의 흉내였다(...) 월북한 지 반 년이 지난 이듬 해 봄, 명준은 호랑이굴에 스스로 걸어들어온 저를 저주하면서, 이제 나는 무얼 해야 하나?"(...)

"이게 무슨 인민의 공화국입니까? 이게 무슨 인민의 소비에트입니까? 이게 무슨 인민의 나랍니까? 제가 남조선을 탈출한 건, 이런 사회로 오려던 게 아닙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아버지가 못견디게 그리웠던 것도 아닙니다. 무지한 형사의 고문이 두려워서도 아닙니다. (...) 저는 살고 싶었던 겁니다. 보람 있게 청춘을 불태우고 싶었습니다. 정말 삶다운 삶을 살고 싶었습니다.(....)

(p.130~133)

그나마 그는 사랑하는 은혜를 만나게 되면서 숨통이 트이고 적응해서 살아보려고 죽을 힘을 다했다. 하지만 전쟁이 터지고 그마저도 가망이 없어졌다. ​전쟁은 그녀의 갸날픈 몸에 딱딱하고 거친 군복을 입히더니 급기야 목숨까지 앗아간 것이다. 그 때 은혜의 몸 속엔 그들의 아가가 자라고 있었다.

살고자 희망하는 나라를 선택할 수 있게 된 그는 남과 북 어느 쪽도 돌아가길 거부하고 중립국행을 택한다. 그리고 배 위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자신들 주위를 줄곧 떠나지 않는  어미새와 새끼새..

 

<광장>이 발표된 1960년은 이승만 정권을 척결하려던 4.19혁명이 있던 해였다. 정치, 경제, 교육, 문화 어느 한 곳도 정상인 곳이 없었고 곪다 곪다 터져버린 것이다. 이런 국면은 젊은 작가로 하여금 용기를 갖게 했을 것이다. 그는 당시 사회의 어둠을 광장으로 끌어내 까발려 버렸다. 주인공의 표현은 거침없다. '쓰레기, 찌꺼기, 똥오줌..'  당시 독자들 역시 적잖이 충격에 빠졌을 것이다. 하지만 혁명의 성공은 잠깐 동안의 환희. 모든 국민의 바램과 달리 군사정권인 전두환 독재가 들어섰다. 다시 이 책을 돌려가며 숨죽여 읽었을 투쟁동지들, 정의를 외치던 그 피끓는 청춘의 고통을 함께 했을 <광장>. 이 책이 그들의 심정을 대변해줄 수 있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남과 북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철학적 사유를 통해 진정한 자유를 향한 탈출구를 찾으려 애썼던 작가는 그 시대가 호출해낸 국민의 대변인이었다. 시대가 인물을 만든다고 하더니 정말인가보다. 두둑한 배짱과 거친 남성적 필체로 완성된 <광장>은 역시 청춘의 필독서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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