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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릿 아침이슬 셰익스피어 전집 1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김정환 옮김 / 아침이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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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옥같은 시적 묘사들, 매 세기마다 동시대적인 공감과 흥분을 자아내는 극적인 갈등구조는『햄릿』을 시대를 초월한 걸작으로 사랑받게 만드는 요인이다. 『햄릿』을 폄하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명백히 예술적 실패작"(T.S. 엘리어트)이라거나 "햄릿의 위장된 광증에는 어떠한 합리적 동기도 찾을 수 없다"(사무엘 존슨)는 비판이 바로 그것이다. 작품으로서의 햄릿에 대한 의문과 비판은 주인공 햄릿이라는 캐릭터가 갖고 있는 불가해성 또는 성격적 난해함과 상당 부분 일치하는 것처럼 보인다.

 부친이 횡사한 이후 급거 귀국한 햄릿은 숙부에게 왕위를 빼앗긴 처지이다. 유력한 왕위계승권자인 햄릿을 제쳐두고 왕위에 오른 데다 형수를 왕비로 맞이한 숙부 클로어디스에게 조카는 눈에 가시일 것이 뻔하다. 두 사람은 조만간 권력투쟁의 쌍방이 되어 일방을 제거할 수밖에 없는 숙명적인 상황에 처해 있다. 그런데도 햄릿은 숙부와 어머니에게 적의를 드러낼 뿐 구체적으로 어떠한 정치적 행동도 하지 못한다. 게다가 그는 유령이 되어 나타난 아버지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확인한 이후에도 복수를 실행하지 못한다. 그 와중에 미래의 장인이 될 수도 있었던 폴로니어스를 숙부로 오인하여 살해하고 부질없이 영국으로 떠나게 된다. 영국행 배에서 영국왕을 통해 자신을 제거하려는 숙부의 음모를 확인하고 나서 귀국하지만 결국 숙부와 레어트스가 획책한 음모의 희생양이 될 뻔 했다가 극적인 운명의 반전으로 복수에 성공한다.

 시종일관 햄릿은 비극적인 운명의 조연인 자신에 대한 번민에 휩싸일 뿐 주체적인 행동을 보여주지 못한다. 얄궃은 운명의 신은 그의 편이 아니었다가도 어느 때는 그의 손을 들어주기도 하는 등 변덕스럽다. 수동적이고 감정적인 햄릿은 이와 같은 상황을 매번 냉정하게 인식하지 못하고 부단한 갈등 속에 휩싸인 채로 또다른 운명의 장난에 몸을 내맡길 뿐이다. 운 좋게 합법적이고 공인된 복수에 성공했지만 그것은 주도면밀한 계획에 의한 것이 아니라 슬픈 운명의 한 장면이었을 뿐이다. 주체적 삶을 개척하지 못하고 숙명에 몸을 내맡기는 햄릿이야말로 삶의 국외자이자 주변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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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비행기 - 팝아트 소설가 죠 메노 단편집
죠 메노 지음, 김현섭 옮김 / 늘봄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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죠 메노의 단편집『유령 비행기』엔 작가의 말대로 “대형 참사에서부터 일상적인 비극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류의 재난”(9쪽)이 등장한다. 소설의 주인공들은 끊임없이 죽음을 떠올리거나 세계의 종말과도 같은 파국적인 상황에 직면하곤 한다. 그들이 종말론적인 정서에 기대고 있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진정한 비극은 세계대전이나 비행기 충돌, 혹은 블랙홀이 세상을 삼켜버리는 것처럼 일순간에 닥치는 거대한 재난이 아니다. 진정 그들을 위협하는 것은 매일 반복되는 죽음과도 같은, 즉 고통의 연속인 삶 그 자체이다. 요컨대 삶이란 “연속적인 비극”(214쪽)인 것이다.

세계의 종말은 그들에게 중대한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누군가의 개인적인 삶이다. 세계의 종말 따위는 어쩌면 단 한 번의 키스 뒤에 생길 부차적인 에피소드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 

     
우리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생각한다. 우리가 키스를 한다면, 늘 상상해 왔듯이
      세상이 끝날 수도 있다.
(47쪽)

개인적 삶의 본질은 역설적이게도 개인을 넘어서는 지점에 있다. 그렇기에 무엇보다 주인공들에게 절실한 것은 외부와의 소통이다. 그들이 좌절하게 된 것은 타인과의 소통이 중단되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형은 극심한 조울증으로 가족과 사회에서 격리된다. 혹은 사랑했던 여인은 이제 그녀가 “왔던 곳으로 돌아(48쪽)”가게 되거나 “이제 나를 바라보지도 않”(같은쪽)게 된다. 청각장애자인 딸은 담요를 덮어쓰고 유령 행세를 하며 학교생활에 부적응한 상태이다. 동물원 사육사의 아내는 그와 어린 딸을 버리고 떠나버렸다. 누군가의 사랑하는 아내는 말을 걸거나 안으려고만 해도 구름으로 변한다. 구체적이지 않은 경우라도 대개는 존재론적 불화를 암시하는 듯한 모습들이다.

애초에는 그들도 서로에게 가장 소중한 존재였었다. 그러나 점차 상대의 눈까풀 아래 흐릿한 잔상이 되고, 이제 아무 것도 아닌 단지 지나버린 추억에 지나지 않게 되어버렸다.

     
월요일이 되자마자 달은 더 이상 빛을 내지 않게 되었다. 한순간 그것
      은 밤하늘에서 가장 중요한 단 하나의 형체였는데, 그 다음에 사라져
      서는 사람들의 눈까풀 아래 불타오르는 흐릿한 잔상이 되고, 그 다음
      에는 그저 하나의 질문, 그저 한 줄기 섬광이 되고, 그 다음에는 아
      무 것도 아닌 것, 단지 추억이 되고 말았다.
      (233쪽)


돌이켜보면 그것은 얼마나 사소한 삶의 균열에서 비롯된 비극인가. 우리는 “얼마나 더 오랜 시간이 흘러야 모든 종류의 어리석”(231쪽)음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존재 사이의 균열을 치유할 수 있다는 확신을 버리지 않는다면 그것도 머지않아 가능한 일은 아닐까.

     
집에 오는 버스 안에서, 존은 다양한 정체불명의 낯선 여자들의 입술에
      대하여 몽상한다. 만일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 뜨거운 입술에 대고 무엇
      을 어떻게 할 것인지 상상한다. 버스 통로 너머를 바라보면서 그의 마음
      속에는 질문이 하나 생긴다. "만일 아내를 소유하는 것이 이토록 불가능
      한 것이 아니라면, 그래도 나는 여전히 그녀를 가질 수 있다면, 그래도
      나는 여전히 그녀를 이만큼 열렬히 사랑하고 있을까? 내가 원할 때마다
      그녀를 가질 수 있다면, 그래도 나는 그녀를 원하고 있을까?" 그는 알지
      못한다. 확신이 없다. 갑자기 그는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마도
      그녀에게 키스하는 것은 이 세상 모든 권태와 맞먹을 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138-139쪽)


그런데 개인적 삶은 세계의 종말과 정녕 무관한 것일까. “죽음은 모든 것의 종말이 아니라는 믿음”(147쪽)은 주인공들이 종종 상상하는 삶의 마지막 순간에도 죽지 않고 “어떻게든, 어떻게 해서든 ……… 서 있”을 것이라는 모종의 확신에서 비롯된다. 물론 “이것이 종말이 되기를 바라”(150쪽)긴 하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죽음 뒤에도 그들을 지탱해주는 것은 무엇일까. 죽음 이후의 그들을 상상하는 것은 가능할까.

      
도시의 소리가 우리 뒤에 있는 낯선 그림자 안에서 속삭이는 것을 생각
       한다면, 우리도 이쯤에 서서 말을 멈춘 채, 손목에서 뛰는 맥박을 셈으
       로써 우리 인생의 순간들을 헤아려 보는 것이 어떨는지. 도시의 소리에
       몰입한 채 그저 기다리는 방법도 있다. 그러다 보면 어느 특정한 순간
       의 소리를 알게 될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 순간을 정지시킨 채, 죽음
       이후에 과연 우리는 무엇이 될 것인지 생각해볼 수도 있다.
   (166쪽)


※ 죠 메노의 한국어판 서문은 2009년 10월에 쓴 것으로 되어 있다. 아직 당도하지도 않은 미래에 쓰여진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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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설 공주는 공주가 아니다?! - 발도르프 선생님이 들려주는 진짜 독일 동화 이야기
이양호 지음, 박현태 그림 / 글숲산책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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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얼마 전 개봉했던 <헨젤과 그레텔>이라는 영화를 계속 떠올렸다. (스포일러 주의)

이 영화의 주인공은 교통사고를 당했다가 한 번 들어가면 빠져나갈 수 없는 숲 속에 들어가게 된다. 그는 여기서 세 명의 어린이를 만나게 되는데, 기실 그들은 잔인하고 폭력적인 어른에게 고통받다가 신비한 힘을 얻어 어른을 물리치고 영원히 아이로 남게 된 ‘386 세대’였다. 폭력적인 어른의 세계로 진입하지 않고 영원히 성장을 멈춘 채 아이로 남고자 했던 그들의 실체, 즉 중년의 형상을 발견한 주인공은 경악하게 된다.

이미 그림 동화를 유년기에 읽었던 청소년과 부모들은 이 책을 통해 그림 동화를 아주 낯선 모습으로 조우하게 된다. 특히 부모나 어른이 되어버린 세대는 <헨젤과 그레텔>에서 성장하지 않은 채 영원히 유년기를 벗어나지 않는 ‘중년의’ 아이들이 된 심정으로 어슴푸레한 유년으로 되돌아가는 느낌을 맞게 될 것이다.

독일 유학 이전, 학생들에게 논술과 독서를 가르쳤던 저자는 그림 동화를 면밀히 분석한 선대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상세하고 치밀한 해설을 전개한다. 어원과 문헌학적 사례에 힘입어 기존의 두루뭉술한 번역이 놓치고 있었던 그림 동화의 본래 모습이 드러난다.

원문 어디에도 없는 백설‘공주’라는 명명에 대한 지적으로부터 비롯된 작품에 대한 꼼꼼한 분석과 해설, 그리고 특히 우리 교육의 구조적인 문제점인 상상력 빈곤과 문제의식의 부재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강의식 전개 방식은 고색창연하면서도 새로운 느낌이다. 왜냐하면 성장중인 청소년들이나 이미 성장해버린 어른들은 자신들의 유년기에 동화 한 편, 한 구절, 한 마디를 곰씹어 읽고 상상하고 느꼈던 원형적인 독서로부터 너무 멀리 벗어났기 때문이다. 공부란 모름지기 반복과 반추의 힘을 바탕으로 하는 것인데, 실상 우리의 독서는 단편적인 지식의 형식적 습득에 그쳐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말장난 같겠지만) 한국적 번역 풍토에 동화(同化)되었던 그림 동화(童話)의 세계는 참으로 생경한 느낌이었다. 그림 동화를 비롯한 외국의 동화가 한국에 수용되면서 많이 왜곡되었거나 본래의 느낌에서 거리를 두고 있다는 풍문은 사실 새로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지적과 보완 작업은 그림 동화의 진정한 소비자인 어린이들에게 가 닿지 못했었다. <헨젤과 그레텔>, <신데렐라>로 이어질 예정인 저자의 작업은 그림 동화의 진면목과 원형질을 맛보게 될 것이라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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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탄생 - 현상과 실재, 인식과 진리, 인간과 자연에 던지는 첫 질문과 첫 깨달음의 현장
콘스탄틴 J. 밤바카스 지음, 이재영 옮김 / 알마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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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의 철학자 콘스탄틴 J. 밤바키스의 『철학의 탄생』은 흔히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로 규정되며 탈레스로부터 데모크리토스까지 이어지는 우주론 중심의 자연철학자들의 철학적 견해를 비교적 명쾌하고 평이하게 설명하고 있는 책이다.

저자는 그리스의 철학적 사유가 서양 정신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동양 문화로부터 서양 문화가 격리되면서 서양 정신이 가질 수 있었던 다른 가능성을 상실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서양 사상의 기원을 회고하는 일이 “유럽 중심적인 고립 상태로 이끌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고대 문명이 그렇듯 서양 철학 역시 동방 세계에서부터 비롯되었다는 주장이 있다. 이 책에서는 조프리 로이드의 말을 인용하여 “그리스인의 관념이 대부분 이집트와 바빌로니아, 히타이트 등지의 신화로부터 직접 파생된 것이 아니라, 어떤 원형이 있었고, 이로부터 여러 상이한 변주들이 유래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라고 해명한다.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라는 프리즘을 통해 걸러진 자연철학자들의 견해는 신화적 사유에서 벗어나지 못하거나 아직 미성숙한 것으로 치부되곤 했었다. 그러나 옮긴이가 지적했던 것처럼 (소크라테스) “‘이전’이라고 해서 소크라테스에 도달하기 전의 낮은 단계라는 것을 의미하지도, 반대로 더 우수한 단계라는 것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게다가 이들 철학자들 중엔 소크라테스, 플라톤과 당대에 살았던 사람들도 있어서 시간적인 구분으로도 딱히 정확한 규정은 아니다. 굳이 이렇게 구분한 것은 오로지 아테네를 중심으로 그리스 철학의 절정기를 누렸던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와 대비하기 위해서일 뿐이다.

그리스 식민지를 중심으로 한 자연철학자들은 자연을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이해하고자 애썼다. 저자가 이 책을 통해 전달하고자 했던 목적 중의 하나는 그들의 자연과학적이고 통합적인 측면을 부각시키는 데 있었다. 그들은 그리스 최초의 수학자, 천문학자, 기상학자, 예술학자, 생물학자, 의학자들이었으며 의미심장하게도 현대에 와서는 종합적이고 통합적인 학문의 지형도가 그려지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앞서 이 책의 장점으로 명쾌하고 평이하게 설명되었다는 것을 이야기했지만, 쉽고 단순하게 기획되고 서술된 철학서가 그리 드문 것은 아니다. 이 책은 철학서가 지녀야 할 학문적 엄격함은 유지되면서도, 현대적 사유와의 호흡을 강조하였다는 점이 강점이다.

불멸의 현재성이라고 해야 할까. 각각의 철학자들이 남긴 단편적 사유의 흔적은 빠짐없이 근현대의 철학적 거장이나 자연과학자들의 사상과의 맥락에서 되살아나며, 난해한 고대 철학의 관점이 상당히 간결하고 명확하게 전달된다. 무려 25세기 이전의 고대 철학자들이 가졌던 문제의식이 현대에서도 공유된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들의 사유에 몰입할만한 동기를 부여하게 된다. 다시 말해 철학적 사유의 현재성을 제시한다는 것이 이 책의 가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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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세계 최강이 아니라면? - 미국을 제대로 보기 위한 가치 있는 가정들 라면 교양 1
김준형 지음 / 뜨인돌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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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네 가지 역사적 가정을 통해 미국이 세계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강력하고 광범위한, 그리고 지속적인 패권을 유지하는 이유에 대해서 검토하고 있다.

그런데 이 책에서 미국이 세계 최강국의 지위를 유지하게 된 원인과 결과에 대해 살펴보고 있는 까닭은 무엇인가. 결론부터 이야기한다면 책 말미에 나와있는 것처럼 "미국이라는 거대한 존재가 붕괴될 경우, 그 후폭풍을 어떻게 피할 수 있" 는지에 대한 우려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역설적으로 미국이 전지구적 패권을 상실하고 몰락할 경우 경착륙을 걱정해야 하는 것은 (아쉽게도) 지금 우리가 현실적으로 상정할 수 있는 가장 선호할만한 패권국의 모습을 미국에서 찾을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조심스레 단정해 본다. 때로는 수많은 문제를 일으키지만 정작 존재하지 않는다면 (국제적인 당면 과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미국을 필요로 할 수밖에 없는 딜레머가 존재하는 것이다.

종종 반미주의자라는 '오해'를 받아왔다는 저자는 세계 대전을 통해 세계 최강의 패권국가로 등극한 미국의 헤게모니가 어떻게 구성되고 유지되었으며 현재 위기를 맞고 있는지 친절하고 평이한 문체로 풀어나간다.

20세기부터 현재에 이르는 국제 정치사를 미국 중심으로 소개하는 내용 자체로는 사실 새롭다고 할 수는 없지만, 네 가지 가정을 통해 흥미롭게 논의를 진행한다는 점이 돋보인다.

국부(國父)인 워싱턴이 그토록 강조했던 고립주의 정책을 정립한 먼로 대통령 이래 미국의 외교정책은 제1차 세계 대전을 전후로 해서 본격적으로 변모하게 된다. 그것은 전적으로 타의에 의했다기보다는 오랜 모색과 준비 끝에 이루어졌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늙고 쇠약한 유럽을 대신하여 국제적 헤게모니를 획득하게 된 미국은 소련과 공산주의 국가를 적대적 파트너로 규정하며 자신들의 정치적 헤게모니의 성격을 확고하게 하였으며 스스로의 정체성을 정립하게 된다. 이것은 자신들의 패권적 행태에 대한 정치적 알리바이를 제공할 기회도 된다. 마치 볼테르가 신을 "실제 존재하지 않더라도 반드시 존재해야 하는 개념"으로 판단한 것과 유사하다. 미국의 패권을 확고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서방 민주주의로 대표되는 문명 세계를 위협하는 일종의 바바리안 세력이 필요했던 것이다.

미국에 대한 우리의 이중적인 시각은 미국이 세계에 미친 영향과 기여 때문이다. 저자가 "미국의 역할은 나폴레옹이 전쟁을 통해 프랑스혁명의 정신을 전 유럽에 퍼뜨린 것과 비슷하다"고 본 것은 전적으로 옳다. 미국은 이제까지 볼 수 없었던 강한 힘을 가진 "조직폭력배"의 모습이면서 동시에 "소프트 파워를 통한 세련된 지배로 자발적 복종을 이끌어낸 국가"였다.

기만적인 모습으로 비쳐지기도 하지만 정교하고 세밀한 모범국가 이미지를 나름 유지했던 미국은 냉전 시기의 파트너였던 소련이 붕괴하면서 그동안 유지했던 장점을 점차 상실하게 된다. 그 정점은 아무래도 9·11 사태 이후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침공으로 이어지는 주니어 부시의 네오콘 시대가 될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미국이 아닌 다른 강대국이 패권을 차지했다고 하더라도 "관대한 지도력으로 세계를 감동시키는" 윤리적인 패권 국가의 모습을 발견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패권의 본질은 다른 나라를 정치적·경제적·군사적으로 압도하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의 딜레머는 정치적 경제적 패권이 약화되는 것을 군사력으로 돌파하고자 하지만, 이전에 미국이 성공적으로 수행했던 이미지 메이킹과 다이나믹한 외교전략이 뒤따라주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이처럼 변모한 국제 정치의 지형을 감안할 때, 한국의 선택은 무엇인가. 저자는 전략적 모호함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혈맹 수준의 과도한 군사적 유대보다는 낮은 수준의 동맹을 유지해서 동아시아 정세에 유연하게 반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가 정확하게 지적한 것처럼, 미국 사회의 저력은 "이념적 쏠림이 있을 때마다, 이를 견제하려는 내부의 비판적 지식인들이 항상 존재했다는 사실"에 있다. 우리를 종종 감동시키는 미국의 강점이 바로 이것이다. 미국과 한국의 건강한 미래 관계는 이같은 균형 감각의 회복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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