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탄생 - 현상과 실재, 인식과 진리, 인간과 자연에 던지는 첫 질문과 첫 깨달음의 현장
콘스탄틴 J. 밤바카스 지음, 이재영 옮김 / 알마 / 2008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그리스의 철학자 콘스탄틴 J. 밤바키스의 『철학의 탄생』은 흔히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로 규정되며 탈레스로부터 데모크리토스까지 이어지는 우주론 중심의 자연철학자들의 철학적 견해를 비교적 명쾌하고 평이하게 설명하고 있는 책이다.

저자는 그리스의 철학적 사유가 서양 정신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동양 문화로부터 서양 문화가 격리되면서 서양 정신이 가질 수 있었던 다른 가능성을 상실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서양 사상의 기원을 회고하는 일이 “유럽 중심적인 고립 상태로 이끌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고대 문명이 그렇듯 서양 철학 역시 동방 세계에서부터 비롯되었다는 주장이 있다. 이 책에서는 조프리 로이드의 말을 인용하여 “그리스인의 관념이 대부분 이집트와 바빌로니아, 히타이트 등지의 신화로부터 직접 파생된 것이 아니라, 어떤 원형이 있었고, 이로부터 여러 상이한 변주들이 유래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라고 해명한다.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라는 프리즘을 통해 걸러진 자연철학자들의 견해는 신화적 사유에서 벗어나지 못하거나 아직 미성숙한 것으로 치부되곤 했었다. 그러나 옮긴이가 지적했던 것처럼 (소크라테스) “‘이전’이라고 해서 소크라테스에 도달하기 전의 낮은 단계라는 것을 의미하지도, 반대로 더 우수한 단계라는 것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게다가 이들 철학자들 중엔 소크라테스, 플라톤과 당대에 살았던 사람들도 있어서 시간적인 구분으로도 딱히 정확한 규정은 아니다. 굳이 이렇게 구분한 것은 오로지 아테네를 중심으로 그리스 철학의 절정기를 누렸던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와 대비하기 위해서일 뿐이다.

그리스 식민지를 중심으로 한 자연철학자들은 자연을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이해하고자 애썼다. 저자가 이 책을 통해 전달하고자 했던 목적 중의 하나는 그들의 자연과학적이고 통합적인 측면을 부각시키는 데 있었다. 그들은 그리스 최초의 수학자, 천문학자, 기상학자, 예술학자, 생물학자, 의학자들이었으며 의미심장하게도 현대에 와서는 종합적이고 통합적인 학문의 지형도가 그려지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앞서 이 책의 장점으로 명쾌하고 평이하게 설명되었다는 것을 이야기했지만, 쉽고 단순하게 기획되고 서술된 철학서가 그리 드문 것은 아니다. 이 책은 철학서가 지녀야 할 학문적 엄격함은 유지되면서도, 현대적 사유와의 호흡을 강조하였다는 점이 강점이다.

불멸의 현재성이라고 해야 할까. 각각의 철학자들이 남긴 단편적 사유의 흔적은 빠짐없이 근현대의 철학적 거장이나 자연과학자들의 사상과의 맥락에서 되살아나며, 난해한 고대 철학의 관점이 상당히 간결하고 명확하게 전달된다. 무려 25세기 이전의 고대 철학자들이 가졌던 문제의식이 현대에서도 공유된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들의 사유에 몰입할만한 동기를 부여하게 된다. 다시 말해 철학적 사유의 현재성을 제시한다는 것이 이 책의 가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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