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네 가지 역사적 가정을 통해 미국이 세계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강력하고 광범위한, 그리고 지속적인 패권을 유지하는 이유에 대해서 검토하고 있다. 그런데 이 책에서 미국이 세계 최강국의 지위를 유지하게 된 원인과 결과에 대해 살펴보고 있는 까닭은 무엇인가. 결론부터 이야기한다면 책 말미에 나와있는 것처럼 "미국이라는 거대한 존재가 붕괴될 경우, 그 후폭풍을 어떻게 피할 수 있" 는지에 대한 우려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역설적으로 미국이 전지구적 패권을 상실하고 몰락할 경우 경착륙을 걱정해야 하는 것은 (아쉽게도) 지금 우리가 현실적으로 상정할 수 있는 가장 선호할만한 패권국의 모습을 미국에서 찾을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조심스레 단정해 본다. 때로는 수많은 문제를 일으키지만 정작 존재하지 않는다면 (국제적인 당면 과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미국을 필요로 할 수밖에 없는 딜레머가 존재하는 것이다. 종종 반미주의자라는 '오해'를 받아왔다는 저자는 세계 대전을 통해 세계 최강의 패권국가로 등극한 미국의 헤게모니가 어떻게 구성되고 유지되었으며 현재 위기를 맞고 있는지 친절하고 평이한 문체로 풀어나간다. 20세기부터 현재에 이르는 국제 정치사를 미국 중심으로 소개하는 내용 자체로는 사실 새롭다고 할 수는 없지만, 네 가지 가정을 통해 흥미롭게 논의를 진행한다는 점이 돋보인다. 국부(國父)인 워싱턴이 그토록 강조했던 고립주의 정책을 정립한 먼로 대통령 이래 미국의 외교정책은 제1차 세계 대전을 전후로 해서 본격적으로 변모하게 된다. 그것은 전적으로 타의에 의했다기보다는 오랜 모색과 준비 끝에 이루어졌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늙고 쇠약한 유럽을 대신하여 국제적 헤게모니를 획득하게 된 미국은 소련과 공산주의 국가를 적대적 파트너로 규정하며 자신들의 정치적 헤게모니의 성격을 확고하게 하였으며 스스로의 정체성을 정립하게 된다. 이것은 자신들의 패권적 행태에 대한 정치적 알리바이를 제공할 기회도 된다. 마치 볼테르가 신을 "실제 존재하지 않더라도 반드시 존재해야 하는 개념"으로 판단한 것과 유사하다. 미국의 패권을 확고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서방 민주주의로 대표되는 문명 세계를 위협하는 일종의 바바리안 세력이 필요했던 것이다. 미국에 대한 우리의 이중적인 시각은 미국이 세계에 미친 영향과 기여 때문이다. 저자가 "미국의 역할은 나폴레옹이 전쟁을 통해 프랑스혁명의 정신을 전 유럽에 퍼뜨린 것과 비슷하다"고 본 것은 전적으로 옳다. 미국은 이제까지 볼 수 없었던 강한 힘을 가진 "조직폭력배"의 모습이면서 동시에 "소프트 파워를 통한 세련된 지배로 자발적 복종을 이끌어낸 국가"였다. 기만적인 모습으로 비쳐지기도 하지만 정교하고 세밀한 모범국가 이미지를 나름 유지했던 미국은 냉전 시기의 파트너였던 소련이 붕괴하면서 그동안 유지했던 장점을 점차 상실하게 된다. 그 정점은 아무래도 9·11 사태 이후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침공으로 이어지는 주니어 부시의 네오콘 시대가 될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미국이 아닌 다른 강대국이 패권을 차지했다고 하더라도 "관대한 지도력으로 세계를 감동시키는" 윤리적인 패권 국가의 모습을 발견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패권의 본질은 다른 나라를 정치적·경제적·군사적으로 압도하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의 딜레머는 정치적 경제적 패권이 약화되는 것을 군사력으로 돌파하고자 하지만, 이전에 미국이 성공적으로 수행했던 이미지 메이킹과 다이나믹한 외교전략이 뒤따라주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이처럼 변모한 국제 정치의 지형을 감안할 때, 한국의 선택은 무엇인가. 저자는 전략적 모호함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혈맹 수준의 과도한 군사적 유대보다는 낮은 수준의 동맹을 유지해서 동아시아 정세에 유연하게 반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가 정확하게 지적한 것처럼, 미국 사회의 저력은 "이념적 쏠림이 있을 때마다, 이를 견제하려는 내부의 비판적 지식인들이 항상 존재했다는 사실"에 있다. 우리를 종종 감동시키는 미국의 강점이 바로 이것이다. 미국과 한국의 건강한 미래 관계는 이같은 균형 감각의 회복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