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이 사랑에 대해 말해줄 수 있는 모든 것 - 진화인류학자, 사랑의 스펙트럼을 탐구하다
애나 마친 지음, 제효영 옮김 / 어크로스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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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과학자들을 보면, ‘참 피곤하게 사는 것 같다’ 싶다. 뭔가 대상이 나타나면 ‘도대체 이것은 무엇인가?’ 적절한 몇 마디로 정의하고 명확히 정체를 밝혀야 직성이 불리는 사람들.

가끔 명쾌한 통찰에 감탄이 나올 때도 있지만, 이번처럼 ‘사랑이 무엇인가’를 설명하려고 시도한다니. 누가봐도 명쾌한 답이 나오기 힘들 것 같은데, 그래도 과학적으로 어떻게든 설명해보려고 애를 쓰는 모습이 참, 과학자답다.

저자는 사랑이 가진 모습들을 10가지 측면에서 설명한다. 인간의 생존 문제로서의 사랑, 중독적인 측면의 사랑, 부모자식간 애착관계의 사랑, 우정, 유전학적이로 접근한 사랑, 사회적인 의미의 사랑, 독점적인 사랑, 신과의 사랑, 통제수단으로서의 사랑, 변화의 동기가 되는 사랑 등등. 호르몬을 가지고 설명도 하고, 역사•문화적인 이유를 들이대기도 한다.

그야말로 물고뜯고 맛보고 즐기면서 아주 탈탈 털어내듯 사랑이라는 개념을 요리한다. 더 이상 사랑에 대한 논의는 없을 거라는 듯 정신없이 이야기가 흘러가는데, 결론은 딱 이 한 마디다.

사랑은 모든 것이다.

아, 이 허무함을 어쩌란 말인가. 이렇게 될 줄은 알고 있었지만, 알면서 당하니 더 속이 쓰리다. ㅋㅋㅋ

잠시 허탈했다가 이런 생각도 들었다. 이렇게 다양한 측면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랑이라면, 지금 내가 품고있는 마음의 어떤 장면도 사랑의 한 조각 일지도 모르겠다는. 그 아름답고 훌륭하다는 사랑이라는 녀석이 내 안에도 어느 새 들어와있을지 모른다는 엉뚱한 생각에 울컥한다. 감사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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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미래에서 온 과학자에게 하고 싶은 질문을 이것으로 정했다. “당신은 어떤 사랑을 하고 있습니까?”
나는 딱 하루만 다른 사람의 사랑을 경험해보고 싶다. 그 사람이 친구, 가족, 자녀, 연인, 신에게 어떤 사랑을 느끼는지 알고 싶다. 우리가 사랑이라고 말하는 것이 전부 다 같은 것인지 우리는 알 수가 없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사랑을 경험할 기회가 생긴다면 사랑이라 불리는 것이 어떤 것인지, 우리가 각자 느끼고 경험하는 것이 비슷한 범위 내에 있기는 한 건지 조금이나마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과학이 사랑에 대해 말해줄 수 있는 모든 것 | 애나 마친, 제효영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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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과 즐겁고 생산적인 대화를 나누는 법 - 의심을 생산하는 시대에 살아남기 위한 철학적 대화 실험
리 매킨타이어 지음, 노윤기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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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왜 이런 사람들 이야기를 읽고있어야 하지? 싶어서 중간에 책을 덮고싶었으나 중간쯤에 나오는 유전자조작농작물에 반대하는 사람들 이야기에서 멈짓 할 수밖에 없었다. 나도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막연한 두려움과 과학기술에 대한 불신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읽다보니 갑자기 생각났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에 대해서는 지구상 모든 사람들이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는데, 언젠가 어디서 작금의 기후문제는 모두 다 누군가의 음모이며 조작으로 인한 것일 뿐 싹 다 거짓이라는 말을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었다.

아,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구나 신기했는데, 미국에선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꽤 있는 모양이다. 화석연료 사용에 대해서도 과거 트럼프 대통령부터 크게 위험을 인지하지 못한 태도를 보여 환경단체 뿐 아니라 국제사회에서 많은 비난을 받았던 사실이 있다.

우리 주변만 해도 코로나백신의 효과를 불신해서 접종을 피하는 사람들이 있다. 저자는 유전자조작농산물을 꺼리는 사람들, 백신을 불신하는 사람들, 기후변화위기를 무시하는 사람들을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들과 함께 묶어 과학기술을 불신하는 사람들로 묶어서 설명한다.

요점은 분명하다. 이들이 가진 부정확한 정보를 대신할 바른 정보를 제시하고, 상대의 말을 들어주는 태도로 접근해야 한다는 거. 그들을 마주대하는 불쾌감과 불편함 너머 그들이 설득되었을 때 우리 모두에게 돌아올 혜택이 더 크기 때문에. 가장 좋지않은 것은, 서로에게 귀를 막고 존재하지 않은 척 무시하는 것이라지 않는가.

평소 읽던 책이랑 너무 다른 분야라서 생소했지만, 덕분에 자극이 된 느낌이다. 이런저런 사람들이 함께 사는 지구. 참 넓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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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드는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자 하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둘 다 과학을 믿는다. 하지만 우리가 친구로 지낸 시간 동안 ‘이성에 대한 신뢰’ 대(對) ‘자연에 대한 신뢰’에 대해서는 근본적으로 이견을 보여왔다. GMO를 둘러싼 대화에서도 나는 그를 설득하지 않았고 그도 나를 설득하지 않았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결론이 있다. 공감, 존중, 경청은 우리가 서로의 믿음을 바꿀 수 있는 기회를 획득하는 유일한 덕목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신뢰와 상호 존중의 맥락은 이 대화를 가능하게 한 유일한 요소였다. 전화를 끊기 전에 나는 그의 주장들에 대해서도 더 고민해보기로 약속했다.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과 즐겁고 생산적인 대화를 나누는 법 | 리 매킨타이어, 노윤기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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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에 수놓은 이야기 아르테 한국 소설선 작은책 시리즈
구병모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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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해인가 뭔가 새로운 변신, 달라진 나를 꿈꾸며 타투를 해보기로 결심했었다. 너무나 뜬금없이 어느 날 갑자기. 결국 주말을 이용해서 시내 모처의 타투샵에서 ‘운동량-충격량 관계식’을 조그맣게 팔꿈치 안쪽에 새겨넣었다. 조금 희미해지긴 했지만 여전히 남아있다.

피부에 무엇인가가 새겨진다는 것은 심장에도 새겨지는 거라고, 마치 상흔처럼. 몸에 입은 고통은 몸과 영혼을 떠나지 않는다고 작가는 말한다. 책에 등장하는 상처입고 연약한 인물들은 자신의 마음을 위로하고 지켜줄 부적처럼 이런저런 타투를 몸에 새긴다. 그들이 처한 상황과 아픔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생생하고 구체적인 묘사에 나도 당덜아 마음이 아렸다.

고통을 감내하고 타투를 새기며 아직 우리에겐 기대볼 언덕이 남아있음을 믿어보기를. 조금만 용기내서 한 발 더 내딛어 볼 마음이 꺾이지 않게 조곤조곤 힘을 북돋아주는 듯 했다.

올드한 느낌의 만연체 문장속에 힙한 표현들을 담아 다소 언발란스하면서 삐딱한 냉소를 표현하는, 그야말로 구병모식 개성이 돋보인다. 그녀의 디테일함과 구체적임이 짧은 소설 안에서도 여전히 살아있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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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두 번 다시 이런 식으로 연락하지 마시라고 못 박아두지는 않았으나 시미는 어느 정도 예감하고 있었다. 앞으로 만날 일이 없으리라는 것을, 만나지 못하리라는 것을. 이번에는 전남편의 차단 때문이 아니라 다 자란 아이 자신의 의사에 따라. 아이가 엄마를 가장 필요로 했던 시기는, 이미 끝나버렸으므로. 이제는 엄마라는 이름이 무조건적인 경애보다 부담인 나이가 되어버렸으므로. 여자친구는 있는지, 학점은 잘 챙기고 있는지 따위도 묻지 못했다. 만약 아이가 결혼이라는 것을 한다면, 시미는 결혼식장에 혼주는커녕 손님으로도 입장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사실 몸에 문신 두어 개 정도 남기고 그것이 의외로 맘에 들지 않아 낭패하더라도, 아이가 그걸 보고 소스라치거나 연세에 맞지 않게 주책이라고 눈살 찌푸릴 일도 없을 테고. 그런 퉁명스러운 대화라도 나눌 수 있는 모자 관계가 애당초 형성되지 않았음을, 모른 척하고 싶었던 현실을 시미는 뒤늦게 인식했다.

심장에 수놓은 이야기 | 구병모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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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바키 문구점
오가와 이토 지음, 권남희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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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사람들을 들여다보면 참 ’많이 독특한‘ 점 때문에 매번 놀랜다. 작은 것 하나도 그냥 넘기지 않고 말 그대로 ‘혼을 갈아넣는다’는 표현이 딱일 정도로 상대방에게 정성을 다 하고 세심한 마음에 있다.

특히나 대를 이어가는 가업에 있어서는 더욱 그런것 같다. ‘전문화’되어있는 ‘장인’이라는 생각. 기술적인 측면 뿐만 아니라 사람의 마음까지 생각하는 그 치밀함과 사려깊음에 감탄만 연발하게 된다.

이 책에는 편지를 대신 써주는 대필가로 대를 이어가는 할머니와 손녀딸이 주인공이다. 이들이 만나는 사람들의 사연 또한 기상천외하다. 돈을 빌려줄 수 없다는 거절의 편지, 부부의 이혼을 알리며 결혼을 축하해주었었던 지인들에게 보내는 감사의 편지, 선생님께 보내는 사랑편지, 이제부터 의절하겠다는 것을 알리는 편지 등등. 그때마다 대필가로서 편지를 적을 종이의 종류, 글씨체, 사용할 필기구와 잉크나 먹의 농도, 사용할 우표의 종류까지 세심하게 차별하여 선택한다.

전체적으로 파스텔톤의 아름다운 풍경화를 보는 듯한 아련하고 따뜻한 느낌이었다. 처음엔 너무나 뻔하게 보이는 소설이라는 생각에 펼쳐볼 생각을 하지않고 미뤄두었던 책인데, 마음이 말랑말랑해지고 싶을 때 찾아보면 효과 만점일 듯하다. 뭐, 마냥 착하고 아름답기만한 이야기가 살짝 싫증난 분들은 좀 더 묵혀뒀다 읽기를 권하고 싶다. 너무나 일본스러운, 서정성에 충실한 구조와 내용을 담은 책이라서 식상하다는 느낌도 받을 수 있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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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편함을 들여다보니 편지가 한 통 들어 있었다. 우표는 붙이지 않은 걸 보니 직접 와서 넣은 것이리라.
보낸 사람은 이름을 확인하지 않고도 바로 알았다. 큐피다. 색종이를 뒤집어서 직접 만든 봉투에는 컬러풀한 색연필로 ‘포포에게’라고 쓰여 있었다.
그 옆에는 받는 사람 이름보다 큰 글씨로 ‘귀하’라고 쓰여 있다.
단, ‘포(ポ)’는 원래 오른쪽 어깨에 붙어야 할 작은 동그라미가 왼쪽 어깨에 붙었고, ‘시(し)’는 방향이 바뀌었다. 큐피는 거울 글씨의 달인이다. 최근 이 근처로 이사 온 다섯 살짜리 여자아이다.
빨리 보고 싶은 마음을 참을 수 없어서 그 자리에 선 채 스티커를 뜯었다. 봉투 안에서 달콤한 향이 훅 번졌다. 초콜릿 포장지 가득 글씨를 커다랗게 썼다.
뒷면에는 빨간색과 초록색 매직으로 싱싱한 튤립 그림을 그렸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다시 읽고 싶어지는 편지였다. 그때마다 내 마음속에도 튤립이 잔뜩 핀다.

츠바키 문구점 | 오가와 이토, 권남희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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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들의 부엌 (인사이드 에디션)
김지혜 지음 / 팩토리나인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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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서점 겸 레지던스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쳐다보기만 해도 뭔가 신령스런 기운이 느껴지는 마이산이 배경이 되는 소설이라니. 그 동네를 아는 사람이 글을 썼구나, 내가 아는걸 아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빙긋 웃음이 났다.

마이산 인근의 작은 서점 겸 숙소, 말 그대로 북 스테이라니. 사무실을 떠나 낯선 곳에 여장을 풀고 뭔가 창조적인 일에 몰두한다는 거, 참 멋진 설정이다. 간혹 보이는 예술가들을 위한 ‘레지던스’ 그런 느낌.

각자의 사연을 품은 사람들이 여기 북 스테이로 모여든다. 인물들의 사연보다 인물들간 대화나 군데군데 인용된 베스트셀러들의 제목과 구절들이 눈길을 끌었다.

특히 개인적으로는 [가재가 노래하는 곳]에 대한 언급이 가장 흐뭇. 책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등장인물들이 책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때 끼어들고 싶어서 입이 근질거릴 수도 있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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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훈은 2년 전 《가재가 노래하는 곳》을 처음 읽었을 때, 마리를 떠올렸다. 그때만 해도 마리가 지훈의 삶에 재등장하지 않았던 때였다. 지훈은 어느 하늘 아래 있을 마리를 상상하며, 이 책이 마리를 찾아가길 소망했다.

지훈은 알았다. 마리가 이야기 속의 광활한 늪지대에서 비로소 편안해질 거라는 걸. 카페나 와인 바에서 몇 시간 상대방과 떠드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위로를 받게 될 거라는 걸. 카야가 마리 곁에서 말없이 노을이 지는 것을 함께 바라보며 앉아 있어 줄 거라는 걸. 늪지에 해가 내려앉고, 온통 붉은빛으로 물드는 쓸쓸하고 외로운 시간을 함께할 거라는 걸. 책을 만나면 마리는 마음을 털어놓을 친구가 생길 거라는 걸. 카야에게는 뭐든 말해도 된다는 걸…….

책들의 부엌 | 김지혜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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