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에 수놓은 이야기 아르테 한국 소설선 작은책 시리즈
구병모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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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해인가 뭔가 새로운 변신, 달라진 나를 꿈꾸며 타투를 해보기로 결심했었다. 너무나 뜬금없이 어느 날 갑자기. 결국 주말을 이용해서 시내 모처의 타투샵에서 ‘운동량-충격량 관계식’을 조그맣게 팔꿈치 안쪽에 새겨넣었다. 조금 희미해지긴 했지만 여전히 남아있다.

피부에 무엇인가가 새겨진다는 것은 심장에도 새겨지는 거라고, 마치 상흔처럼. 몸에 입은 고통은 몸과 영혼을 떠나지 않는다고 작가는 말한다. 책에 등장하는 상처입고 연약한 인물들은 자신의 마음을 위로하고 지켜줄 부적처럼 이런저런 타투를 몸에 새긴다. 그들이 처한 상황과 아픔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생생하고 구체적인 묘사에 나도 당덜아 마음이 아렸다.

고통을 감내하고 타투를 새기며 아직 우리에겐 기대볼 언덕이 남아있음을 믿어보기를. 조금만 용기내서 한 발 더 내딛어 볼 마음이 꺾이지 않게 조곤조곤 힘을 북돋아주는 듯 했다.

올드한 느낌의 만연체 문장속에 힙한 표현들을 담아 다소 언발란스하면서 삐딱한 냉소를 표현하는, 그야말로 구병모식 개성이 돋보인다. 그녀의 디테일함과 구체적임이 짧은 소설 안에서도 여전히 살아있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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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두 번 다시 이런 식으로 연락하지 마시라고 못 박아두지는 않았으나 시미는 어느 정도 예감하고 있었다. 앞으로 만날 일이 없으리라는 것을, 만나지 못하리라는 것을. 이번에는 전남편의 차단 때문이 아니라 다 자란 아이 자신의 의사에 따라. 아이가 엄마를 가장 필요로 했던 시기는, 이미 끝나버렸으므로. 이제는 엄마라는 이름이 무조건적인 경애보다 부담인 나이가 되어버렸으므로. 여자친구는 있는지, 학점은 잘 챙기고 있는지 따위도 묻지 못했다. 만약 아이가 결혼이라는 것을 한다면, 시미는 결혼식장에 혼주는커녕 손님으로도 입장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사실 몸에 문신 두어 개 정도 남기고 그것이 의외로 맘에 들지 않아 낭패하더라도, 아이가 그걸 보고 소스라치거나 연세에 맞지 않게 주책이라고 눈살 찌푸릴 일도 없을 테고. 그런 퉁명스러운 대화라도 나눌 수 있는 모자 관계가 애당초 형성되지 않았음을, 모른 척하고 싶었던 현실을 시미는 뒤늦게 인식했다.

심장에 수놓은 이야기 | 구병모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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