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세포로부터 - 우리 안의 우주를 탐험하는 생명과학 오디세이
벤 스탠거 지음, 양병찬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4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모처럼 과학적인 사고를 하면서 뇌에 주름이 몇 가닥 그어지는 것만 같은 흐뭇한 느낌을 갖게 하는 책을 읽었다. 한 마디로, ’세포‘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을 한 번에 훑어주는 책.

모든 생명은 단 하나의 세포에서 출발했다는 명제에서부터 출발해서 세포분열과정에 대한 설명, 이런 과정을 효과적으로 연구하는 방법을 발견한 과학자들의 이야기, 유전, 줄기세포, 암, 그리고 재생의학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세포와 관련된 현대과학의 전반적인 부분을 다 아우르고 있다고 봐도 좋을 듯 하다.
뒤로 갈수록 전문적인 설명이 많아져서 이해하기 힘든 내용도 있긴 했지만, 우리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생명과정이 질서정연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점을 설명하면서 그 시작이 작은 세포 하나였음에 감탄하는 저자에게 나도 덩달아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나 감탄한 부분은, 과학서적임에도 군데군데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나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리나>의 구절들이 멋들어지게 인용된다는 점이다. 특히 <멋진 신세계> 중에서 인간을 하나의 세포로 복제해서 모두 똑같은 사람으로 ’찍어내는‘ 부분이 그대로 옮겨져있어서 흥미로웠다.

“ 올더스 헉슬리는 『멋진 신세계』에서 인간 복제가 일상화된 가상의 문명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소설의 초반에서 그는 소위 ‘보카놉스키 공정Bokanovsky process’을 사용해 대량의 동일한 개체를 생성하는 공장의 모습을 묘사한다.

‘ 공장장은 “보카놉스키 공정”이라고 반복해서 말했고, 견학 온 학생들은 작은 노트에 밑줄을 그었다. 하나의 난자, 하나의 배아, 한 명의 성인. 이것이 정상이다. 하지만 보카놉스키의 알은 싹을 틔우고, 성장하고, 분열한다. 여덟 개에서 아흔여섯 개까지 싹이 트는데, 모든 싹이 완벽하게 형성된 배아이며, 모든 배아는 온전한 크기의 성인으로 성장한다. 전에는 한 명만 자랐던 곳에서 아흔여섯 명의 인간이 성장하는 것이다. 진보란 바로 이런 것이다. ’ ”

또 하나, 저자의 의견 중에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바로 생물학적 문해력biologycal literacy에 대한 것이다.

과학기술이 발달하고 특히나 ‘생명’에 대한 연구가 늘어나면서 윤리적·재정적·의학적 위험과 이점의 비교검토 과정이 반드시 필요한데, 요즘같은 정보 과부하시대에 전체 연구의 부분을 이루는 모든 단위에서 이런 과정을 엄격하게 따르기란 쉽지않은 현실이라는 것, 또한 새로 발견한 과학적 지식을 더 넓은 사회가 소화하고 실생활에 반영하기란 더욱 어려운 일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기술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에 대한 합의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러한 논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이러한 과정을 ‘생물학적 문해력’이라고 칭하고, 생물학적 문해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 와 있다고 강조한다.

말랑말랑한 소설들만 주로 읽다가 과학자들의 집념어린 실험과 새로운 발견에 대한 이야기, 특히 관찰을 통해 새로운 가설을 설정하고,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서 이리저리 궁리하고 연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으니 짜릿하고 흥분되는 느낌에 기분이 좋아졌다. 신선하고 지적인 자극 덕분에 대뇌피질과 시상하부가 모처럼 마구 활성화되는 느낌.
________

신체와 세포에 관한 무지는 우리의 이해를 왜소하게 만든다. 하지만 호기심 많은 이들에게 이러한 지식의 격차는 오히려 환영할 만한 일이다. 무지와 이해의 경계, 지도가 제대로 그려지지 않은 곳을 탐색하며 느끼는 흥분, 결국 그것이 연구의 가장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부분이니 말이다. 호기심은 인간을 동물계의 독특한 존재로 부상시킨다.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생물은 인간이 유일하다. 그 자체로는 아무런 실익이 없는 질문이지만, 우리는 이런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는 존재다. 지식에 대한 탐구는 인간의 타고난 권리다.

과학적 연구, 가설을 세우고 실험을 설계해 이를 검증하고자 하는 노력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만족스러운 일이요, 역사와 기술과 유연한 사고의 결합을 필요로 하는 창의적인 행위다. 그리고 최고의 과학, 아니 모든 과학은 하나의 단순한 고백에서 시작된다. “나는 모른다.”

하나의 세포로부터 | 벤 스탠거, 양병찬 저

#하나의세포로부터 #벤스탠거 #웅진지식하우스 #과학서적 #세포이야기 #독서 #책읽기 #북스타그램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압살롬, 압살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99
윌리엄 포크너 지음, 이태동 옮김 / 민음사 / 201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윌리엄 포크너,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 읽고나서 웃기고 재미있는 작품을 쓰는 작가인줄 알았더니 이번에 읽은 <압살롬, 압살롬!>은 완전히 다른 작품이었다. ‘미국의 제임스 조이스’라고 하더니, 역시 단번에 이해하기엔 다소 복잡하고 어려운 면이 많았다. 이번 작품에서는 노예제도 속 미국 남부 백인사회의 추악한 현실, 백인남자들에 의한 흑인여성 성착취, 그러면서도 흑인의 피가 자기 가문에 섞이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 가까운 거부감 등이 주로 다뤄지고 있다. 미국 남부의 한 마을에 미스테리한 백인남자 토머스 사트펜이 등장하면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되고, 이후에 갑작스런 살인사건, 몇 대에 걸친 관련인물들의 등장으로 이야기가 복잡해지면서 흡사 추리소설 읽는 듯 독자들에게 하나씩 하나씩 소설의 힌트들을 던져주며 이야기를 꿰어맞추도록 한다.

예전에 페트릭 스웨이지가 출연했었던 미니시리즈 드라마 <남과 북>에서 였던가? 아름다운 백인 여성이 부유한 거대농장의 주인과 결혼했었는데, 흑인아이를 낳는 바람에 비밀리에 아이를 빼돌리고 쉬쉬하는 장면이 나왔던 기억이 난다. 당시에는 이게 무슨 상황이었던가 궁금했는데, 이후에 <패싱>같은 소설을 읽고보니 이해가 됐다.

작품 뒤에 추가된 ‘계보’를 훑어보기만 해도 얼마나 가족관계가 얼기설기 복잡한지. 사건의 발단인 ’토머스 사트펜‘은 ’흑인의 피가 섞이지 않았다‘는 장인의 말만 믿고 결혼했던 부인에게서 흑인자녀를 보게되자 아내와 자식을 버리고 이혼하고 미국으로 돌아와 가난하지만 젊잖은 백인가정의 조신한 딸 엘렌과 다시 결혼한다. 그는 엘렌과의 사이에서 헨리와 주디스라는 남매를 낳는다. 대학에 간 헨리가 사귄 찰스 본이라는 남자가 주디스와 약혼하려는 것을 서트펜이 반대하면서 그동안 베일에 가려졌던 서트펜의 과거가 드러나기 시작하고, 사 년 후 헨리가 찰스 본을 살해하면서 새로운 비극이 닥쳐온다.

가난하고 불우하게 자란 사트펜은 큰 부자가 되어 자신의 아들에게 거대한 농장을 물려주는 꿈을 가진 사람이었다. 전쟁에서 패하고 돌아와 아내가 병으로 죽고 아들도 살인사건에 연류되어 행방불명된 상황에서 심지어 처제에게 청혼했다 실패하기도 한다. 초조해진 사트펜은 아들을 낳아야겠다는 일념으로 급기야 자신의 수하 워시 존스의 어린 손녀를 임신시키기도 한다. 그렇게 딸을 낳았지만 하루만에 사망한다. 이렇게 추하게 이어오던 사트펜 가문에서 가장 마지막에 남는 자손은 결국 백인보다는 흑인의 피가 더 많이 섞인 존재였다는 것이 아이러니. 사트펜 가문의 몰락은 결국 노예제도라는 울타리 안에서 거리낌없이 흑인들을 착쥐하면서 부조리한 행태를 거듭하던 추악한 남부사회의 몰락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소설의 말미에 토머스 사트펜의 자손들인 찰리-헨리-주디스 사이의 근친상간 위기와 살인사건 과정이 설명된다. 죽음을 불사하면서까지 결혼을 강행하겠다고 주장한 헨리가 남긴 사진 펜던트 속에는 헨리의 흑인 정부와 아들의 사진이 들어있었다는 사실 또한 경악스럽다. 그 사진을 주디스에게 남긴 헨리의 마음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어쩌면 자기의 죽음을 통해 흑인사회에 미안함을 표하고 용서를 바라는 마음이었을지도.

이렇게 오래되고 뼈속깊이 새겨진 흑백인종간의 지난한 역사, 깨끗하게 해결되기는 쉽지 않을것 같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아직까지도 미국 사회 안에 존재하는 흑백갈등에는 분명 드러내놓고 설명할 수는 없지만 없애기도 어려운 이유가 있을거라는 생각도 들고. 그럼에도 윌리엄 포크너처럼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사과하고 변화를 촉구하는 움직임은 계속되어야 할거라는 지지도 함께 하게 된다. 대단한 작가.
________

우리에게는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입니다. 모든 것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명예도 긍지도 없고, 사 년 전 신으로부터 버림받은 후로는 신도 없습니다. 신은 그것을 우리에게 알려 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을 따름입니다. 신발도 의복도 없고, 그것들을 가질 필요도 없고, 곡식을 거둘 땅도 없거니와 식량도 필요 없어집니다. 그리고 신도 명예도 긍지도 없을 뿐만 아니라 아무것도 문제 될 것이 없어지고, 있는 것은 다만, 승리이건 패배이건 아랑곳없이 생존만을 위해서 숲 속이나 들판에서 나무뿌리와 풀을 파헤치는 옛날의 지각 없는 육체뿐입니다.

압살롬, 압살롬! | 윌리엄 포크너, 이태동 저

#압살롬압살롬 #윌리엄포크너 #민음사 #독서 #책읽기 #북스타그램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조너선 사프란 포어 지음, 송은주 옮김 / 민음사 / 200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 이토록 아름답고 절절한 상실과 소통에 대한 이야기가 또 있을까. 9.11 테러로 아빠를 잃은 소년 오스카가 우연히 발견한 꽃병 속 열쇠를 가지고 아빠의 자취를 찾아 떠나는 여정, 그리고 드레스덴 폭격으로 사랑하는 연인과 가족을 잃고 말까지 잃은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숨바꼭질 같은 사랑이야기. 소설은 이 커다란 두 가지 이야기가 묘하게 겹쳐지면서 알쏭달쏭 퍼즐을 맞춰가는 느낌으로 진행된다. 지루하지 않게 사진과 낙서들, 빨간펜으로 수정된 원고들이 사이사이에 첨부되어 신선한 충격을 주기도 하는. 독특한 형식의 소설이다.

내일이 있을거라는 근거없는 확신을 가지고 모든 것을 다음으로 미루는 사람들에게, 갑작스럽게 모든 것을 상실하고만 사람들이 해주고 싶은 말은 단 한 가지였다.

“ 오스카.
내가 모든 것을 잃기 전날 밤도 여느 밤과 다를 바가 없었단다.

내가 언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한번도 말하지 않았지.
그녀는 내 언니였어.
그 얘기를 할 기회가 한번도 없었어.
언제나 그럴 필요가 없었어.
그날 밤만 밤이었던 건 아니니까.
게다가 사랑하는 사람한테 어떻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겠니?

너에게 지금까지 전하려 했던 모든 이야기의 요점은 바로 이것이란다, 오스카.
그 말은 언제나 해야 해.
사랑한다,

할머니가. ”

소설 속에 등장하는 또 하나의 결이 다른 상실. 아빠를 잃고나서 방황하는 자신과는 달리 새로운 남자친구를 사귀고 잠깐씩 웃기도 하는 엄마를 보며 배신감을 느끼는 오스카. 그는 사실 무너져가는 빌딩안에서 자신에게 전화를 걸었던 아빠에게 차마 답하지 못하고 그냥 있었다는 사실을 혼자서만 꼭꼭 숨기고 마음의 상처로 담고있던 소년이었다.

이후에 아빠가 마지막 순간에 ‘건물 밖으로 나왔으니 안심하라, 집에 가고있는 중이다’라는 거짓 안부전화를 했었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엄마의 말을 듣고 오스카는 자신과 비슷한 비밀을 안고 끙끙댔을 엄마를 측은해하며 동병상련의 마음이 된다.

상실이 그저 비탄으로 끝나버리면 남아있는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닐까. 어떤 의미에서는 상실이 다른 사람들과의 소통의 창구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고로 가족을 잃은 론 아저씨와 서로 위로하며 친구가 된 오스카의 엄마도 그렇고, 아들의 상실로 헤어져있던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다시 만나게 되는 사건도 그렇고.

마지막에 무너지는 빌딩에서 뛰어내리는 누군가의 연속사진을 거꾸로 돌려보며 그 사람이 하늘로 올라가는 모습을 구현하는 장면은 정말 압권이었다. 그저 사진만으로 눈물 폭탄, 감격의 도가니를 만들어 낼 줄 이야. 오스카처럼 상실을 비탄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비상하는 계기로 삼아 다시 일어서서 일상을 살아갈 수 있게 힘을 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읽으면서 어쩐지 오래전에 가슴 뛰면서 읽은 니콜 크라우스의 <사랑의 역사>와 비슷하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작가 조너선 샤프란 포어와 니콜 크라우스가 부부였던 당시에 집필된 소설이었다는. 이후에 둘은 이혼했지만, 정말 당시에 미국 문학계에 혜성같이 나타난 작가 커플로 유명했었다는 기사를 읽었다. 알고보니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도 조너선 샤프란 포어의 작품이었다. 세상에.
_______

“음, 지금 「모나리자」를 그린다든가, 암을 치료한다든가 하는 얘기를 하고 있는 게 아니란다. 그저 모래 알갱이 하나를 1밀리미터 옆으로 옮기는 얘기를 하고 있는 거야.” “그래서요?” “네가 그 일을 하지 않았더라면, 인류의 역사는 그때까지 흘러왔던 대로 죽 진행되었을 테지…….” “으흠?” “하지만 네가 그 일을 한다면, 그러면……?” 나는 침대 위에 일어서서 손가락으로 가짜 별들을 가리키며 소리를 질렀다. “제가 인류 역사의 진행 과정을 바꾼 거예요!” “바로 그거야.” “제가 우주를 바꿨어요!” “네가 해냈어.” “전 신이에요!” “넌 무신론자잖아.” “전 존재하지 않아요!” 나는 침대 위로 펄썩 쓰러져 아빠의 팔에 안겼다. 우리는 함께 신나게 웃어댔다.

개정판 |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 조너선 사프란 포어, 송은주 저

#엄청나게시끄럽고믿을수없게가까운 #조너선샤프란포어 #민음사 #독서 #책읽기 #북스타그램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거대한 괴물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3월
평점 :
품절


간만에 폴 오스터. 이제 그의 대표작 5편을 다 읽었다. 이번 작품 <거대한 괴물>의 원제 〈리바이어던Leviathan〉아 무엇인가 했더니, 토마스 홉스가 개인을 삼켜 버리는 거대한 권력이라고 정의한 것이었다.

욥기에서는 리바이어던을 혼돈과 무질서한 동물로 표현하는데, 홉스는 이 리바이어던이 그 누구도 억누를 수 없고 항상 자기 맘대로 존재한다고 묘사되는 것에 주목했다. 홉스는 이러한 세상에서 통치와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막강한 권력의 소유자, 곧 사람들을 복종시킬 수 있는 존재인 ’국가(state)‘가 욥기에서 묘사된 리바이어던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다.

소설 <거대한 괴물>에서 폴 오스터는 개개인의 의지가 운명의 힘에 휩쓸릴 때 얼마나 허약하고 무력한지를 보여 주려는 상징으로 제시하고 있다.
정의감에 불타는 촉망받던 젊은 작가가 보수적인 시류를 타고 점차 몰락하면서 마주하게 되는 좌절, 사랑하는 아내를 향한 책임감과 배신감 사이를 오가는 갈등, 자신의 욕망에 떳떳하지 못하고 간교한 수를 쓰려는 자신의 모습에서 오는 자괴감과 실망 등등. 작품속 인물 삭스는 이런 갈등 사이어서 고민하다 결국 자신의 처음 순수했던 이상을 따라 테러리스트로 변신하여 ‘위스콘신에서 폭사한 남자’, ‘리드 디마지오를 살해한 남자’, ‘자유의 유령’이 되었다.

액자소설의 형태를 취하고 있어서 처음 읽을 때는 줄거리를 따라가기 복잡한 면이 있었지만, 폴 오스터 특유의 영화같은 전개와 생생한 인물설정이 너무나 흥미로웠다.

특히 중요한 여자 캐릭터 ’마리아‘의 행적을 설명하는 부분이 눈길을 끌었다. 누군가를 계속 따라다니며 사진을 찍고 취재하면서 그 대상에 대한 이런저런 것을 상상하며 전기를 작성한다거나 심지어 탐정을 고용해서 자신을 감시하게 하면서 스스로 생활 속에서 긴장감을 느끼는 캐릭터. 그의 다른 소설 <뉴욕3부작> 속의 상황과 비슷하다.

폴 오스터는 <달의 궁전>이나 <공중 곡예사>에서도 그랬지만, 미국의 네이티브 어메리칸, 인디언 문제에 대해서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작품속에 언급하기도 하고, 사회문제에 대한 생각을 많이 담아내는 작품을 많이 써왔다. 야구에 대한 애정도 여기저기 마구 드러나는데, 역시나 이번 작품에서도 하고많은 무기 중에서 ‘야구 방망이’가 등장하는 부분이 있어서 괜히 웃음이 났다.

과연 무엇이 옳은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에 대한 고민은 항상 끊이지 않는 소재인듯. 식상할 수도 있는 주제 같지만, 때마다 다른 플롯 다른 설정에서 새로운 느낌을 주기위해 고민하는 작가라는 생각.
________

나는 그 돈을 디마지오가 하려고 했던 일을 하기 위해서뿐 아니라 나 자신의 신념을 표현하기 위해, 내가 믿는 바를 실행하기 위해, 내가 전에는 결코 할 수 없었던 일을 하기 위해 쓸 작정이었어. 갑자기 내 삶이 의미가 있는 것처럼 보이기 시작하더군. 지난 몇 달 동안만이 아니라 내 모든 삶이, 맨 처음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그건 기적적인 합류점, 동기와 야망의 놀라운 접합점이었지. 나는 통합적인 원칙을 찾아냈고, 그 하나의 개념이 내 부서진 단편들을 한데 모아 줄 거였어. 평생 처음으로 나는 완전해지는 것 같았지.

거대한 괴물 | 폴 오스터, 황보석 저

#거대한괴물 #폴오스터 #열린책들 #독서 #책읽기 #북스타그램 #리바이어던 #Leviathan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흰 개
로맹 가리 지음, 백선희 옮김 / 마음산책 / 2012년 8월
평점 :
품절


1968년 미국의 68혁명 당시를 체험한 로맹 가리의 수기 소설. 그야말로 미쳐돌아가는 세상이다. 흑인과 백인의 인종문제 뿐만 아니라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다른 무엇이라도 수단으로 삼아 함부로 사용해도 괜찮다는 막가파식의 폭력의 논리들.

수세기 동안 당해온 폭력을 폭력으로 되갚으려는 흑인,
죄의식 때문에 생각의 균형을 잃고 흑인을 무조건 옹호하는 백인,
자기 피부색을 만능열쇠처럼 내세워 먹고사는 ‘직업 흑인’,
돈으로 죄의식에서 해방되려는 백인,
백인의 죄의식을 이용해 돈을 뜯어내는 흑인,
기부금을 내며 생색내고 싶어 안달하는 할리우드 스타,
흑인이 저지르는 모든 범죄를 영웅 행위로 포장하는 흑인,
모두가 보는 앞에서 ‘흰 개’를 불태우자는 백인,
겉으로는 흑인 인권 운동에 앞장서면서 흑인 폭동에 겁먹고 ‘흰 개’를 곁에 두고 싶어하는 백인…….

인간은 원래부터 이기적인 동물인가. 등장하는 인물들 모두 다 노골적으로 자신이 욕망을 위해서 달려가기만 한다. 이 와중에 훈련받은 대로 주인을 공격하고나서 순간 멍해진 흰 개의 모습이 너무나 마음아프다.
________

개는 단숨에 내게 달려들었다. 나는 손목을 한 번 물리고 뒤로 굴렀다. 내 목덜미가 벽에 부딪쳤다…….
나는 고개를 숙인 채 주먹을 앞으로 내밀고 기다렸다.
그런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내 앞에서 나는 내 어머니의 눈을, 충직한 개의 눈을 보았다.
바트카는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쓰러진 동료들이 내 곁에서 죽어가는 것도 보았지만, 절망과 이해할 수 없음과 고통의 표현이 어떠할지 떠올리고 싶을 때면 이 개의 눈길을 더듬는다.
녀석은 갑자기 고개를 들더니 비통한 울음을 울었다. 캄캄하고 슬픈 울음이었다.
그러곤 바로 밖으로 사라졌다…….

흰 개 | 로맹 가리, 백선희 저

#흰개 #로맹가리 #마음산책 #독서 #책읽기 #북스타그램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