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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리쉬 페이션트 - [초특가판]
안소니 밍겔라 감독, 줄리엣 비노쉬 외 출연 / (주)다우리 엔터테인먼트 / 2005년 3월
평점 :
품절
영화에 등장하는 이미지와 그 의미들
; 동굴 속의 벽화, 수영하는 사람들, 물의 이미지
1. 세월 (시간과 영원, 그리고 갈구)
최초의 시계가 물시계였듯이 끝없이 영원히 영속되는 흐르는 강물처럼 물은 시간을 비유하는 표현으로 자주 사용되었다.
시작과 끝이 없이 단지 하염없이 흘러만 가는 물결….


그 물과 동화되길 원하는 수영하는 사람들은 시간을 초월하고 싶은, 과거와 미래의 경계를 허물고 싶어하는 항상 '현재진행형'을 갈구하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아마도 물 속에 몸을 담그면 마치 물결의 리듬을 타고 현재가 영원히 지속될 것 같은 그 느낌은 자궁 속에서 헤엄을 쳤던 생명의 태동기부터 인간의 가장 오래된 욕망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비옥했던 평야를 사막으로 변화시켜버리는 세월의 거대한 힘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인간의 한계를 더욱 실감나게 한다.

동굴에서 홀로 죽어 가는 캐서린의 모습.
(현실주의자-알마시-가 도움을 청하러 떠나고 나서, 영원을 바라며 벽화의 그림을 모사 했던 이상주의자는 쓸쓸히 죽어간다.)

램프의 불빛이 희미해지면서 벽화의 그림도 점점 보이질 않는다.
어둠으로 가득 찬 인간의 현실 속에서 영원은 죽음을 통해 찾아오는 것일까?
영원(the forever)을 의미하는 '물'을 사회론적 관점에서 해석해 본다면 전쟁의 시작을 목전에 두고 현재의 평화가 영원히 지속되길 바라는 시대적인 희망사항을 나타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2. 재생 (정화와 소생, 그리고 화해)
홍수(Hard Rain≒War)가 휩쓸고 간 세상에 남겨진 것은 오직 '공허' 뿐.
물의 파괴적인 힘에 모든 것이 사라졌지만 노아의 방주를 통해 새로운 세상이 열리게 되듯이, 물은 재생을 위한 통과의례의 이미지가 있다.
물을 통한 세례의식, 아킬레스를 무적으로 만들었던 목욕 등은 과거보다도 더 강하게 만들어주는 매개체로서의 이미지를 나타낸 것들이다.
비행기와 벽화그림이 겹쳐지는 영화 오프닝 장면은 물의 소생과 화해 이미지로 세상의 평화가 다시 재건되길 바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담은 인류애의 표현으로 해석된다.

캐서린이 마지막 숨이 다하여 눈을 감을 때까지 응시하는 동굴 속 벽화는 자신을 두고 떠나는 알마시를 용서하고 정사(Love Affair)로만 끝날 뻔했던 두 사람의 소원했던 사랑에 대한 정화와 화해의 의미가 담겨 있다.
침대에 누워있는 영국인 환자의 눈동자에도 자신의 책장에 꼽힌 수영하는 사람들의 그림이 들어온다.

물 속을 헤엄치며 온몸을 깨끗이 씻어 내어 사막의 먼지-기억-를 훑어내고 지나간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친구가 죽는 일이 없었을 것이고, 캐서린과 사별하지도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역사를 신봉했던(너무나도 역사에 미쳐있었던 히틀러처럼) 현실주의자는 결국 이상주의자로 개종되어 간다. (理想=아리스토텔레스의 idea)
3. 죽음
물의 이미지에는 영원과 생성의 의미와는 반대로 죽음의 의미를 나타내기도 한다.
은밀하고 어둠으로 둘러쳐진 동굴 속에서 캐서린은 죽음을 맞이하고 그녀의 죽음 옆에는 수영하는 사람들의 벽화가 따라온다.


또 그녀의 시신을 실은 비행기 위에 수영하는 사람들 벽화의 실루엣이 겹쳐지면서 그녀의 시신마저도 격렬한 불꽃으로 화하고 만다. 결국 동굴 속의 벽화는 죽음을 나타내는 복선이 되어버린다.
신화와 전설 속에서는 기네비어의 시신이 누워있는 꽃으로 수놓은 관이 물 위로 표류하고 자신의 모습에 취한 나르시스는 물 속으로 몸을 던진다.

죽음에는 슬픔과 고통의 눈물(tear)이 뒤따르지만 정작 죽음을 맞이하는 이에게는 평화와 안식이 부여되기도 한다. 죽음은 모든 속박으로부터 자유롭게 해주기 때문이다.

캐서린이 죽지 않고 과연 살아 남았다 해도 과연 두 사람의 사랑은 지속될 수 있었을까?
사회 속에서 느끼는 주홍글씨의 두려움은 둘째 치고라도 제프리의 죽음에 대한 스스로의 양심에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