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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들
플로렌스 냅 지음, 강아름 옮김 / 문학동네 / 2026년 9월
평점 :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면서 이름을 갖는다. 스스로 이름을 정하는 사람은 없다. 부모가 지어 준 이름을 평생 사용하기도 하고, 마음에 들지 않거나 사주와 운명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시간과 비용을 들여 개명하는 사람도 있다. 이름에는 누군가의 바람과 기대가 담기기도 하고, 때로는 그 이름을 가진 사람의 삶에 특별한 의미가 부여되기도 한다.
김춘수 시인의 「꽃」에는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비로소 의미 있는 존재가 된다는 구절이 있다. 이름이 불리는 순간 한 사람은 특별한 존재가 되는 것일까? 이름이 그 사람의 삶을 결정하는 것일까?
플로렌스 냅의 《이름들》은 아들의 이름을 정하는 한순간에서 시작한다.
코라는 통제적이고 폭력적인 남편 고든과 살아간다. 그녀는 아들만큼은 남편과 다른 삶을 살기를 바란다. 남편이 자신의 이름을 물려주어 고든 주니어라고 부르려 하자 코라는 자신이 원하는 줄리언이라는 이름을 생각한다. 딸 마이아는 동생에게 베어라는 이름을 지어 준다. 아들은 세 가지 이름으로 불리며 각각 다른 삶을 살아간다.
이야기의 설정은 흥미롭다. 오래전 예능 프로그램에서 선택의 순간마다 '그래, 결심했어!'를 외치며 서로 다른 인생을 보여 주었던 것처럼 말이다. 이름을 정하는 하나의 선택이 세 갈래의 인생으로 이어지고, 각각의 삶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펼쳐진다.
하지만 세 가지 이름이 서로 다른 삶을 만들어 냈다고 해서 이름 자체가 운명을 결정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코라가 원하는 이름을 붙였을 때, 마이아가 동생의 이름을 지어 주었을 때, 그리고 고든이 자신의 이름을 물려주었을 때 달라지는 것은 이름만이 아니다. 그 이름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둘러싼 환경과 관계가 달라지고, 고든이라는 거대한 틀에서 벗어나거나 그 안에 머무르는 과정이 달라지는 것이다.
코라가 아들에게 붙여 주고 싶었던 줄리언은 '하늘의 아버지'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고든처럼 가족을 통제하고 자신의 뜻을 강요하는 사람이 아니라, 젠틀하고 타인을 존중하는 사람으로 자라기를 바랐던 것은 아닐까. 아들이 아버지의 이름을 물려받아 아버지의 삶을 반복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마이아가 제안한 베어라는 이름도 눈여겨보게 된다. 코라는 자신이 원하는 이름을 고집할 수도 있었지만 딸의 의견을 존중하고 싶어 했다. 이미 아빠의 강압적인 태도 속에서 자기 생각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마이아에게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선택할 기회를 주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고든은 코라를 학대하는 과정에서 그녀가 부족하고 보호받아야 하는 존재인 것처럼 만든다.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할 능력이 없는 사람처럼 대하며 점점 무력하게 만든다. 그런 고든과 달리 코라는 자녀들이 주체적인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바랐던 것 같다. 아들은 아버지와 다른 사람이 되기를, 딸은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존중받는 사람이 되기를 바랐을 것이다.
어쩌면 코라는 자유를 꿈꾸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고든에게 지배당하고 학대받는 삶이 아닌, 자신이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는 삶 말이다. 아들에게 다른 이름을 주고 싶었던 마음에는 남편과 다른 삶을 물려주고 싶은 바람뿐 아니라 자신이 살아 보지 못한 삶에 대한 갈망도 담겨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선택의 순간을 만난다. 그때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게 될 수도 있다. 선택하지 않은 삶이 어떤 모습이었을지는 알 수 없다. 때로는 그때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후회하기도 하고, 그때의 선택이 참 잘한 일이었다며 스스로를 칭찬하기도 한다.
《이름들》은 하나의 선택에서 출발해 서로 다른 세 가지 삶을 보여 준다. 이름이라는 참신한 설정이 흥미롭지만, 책을 덮고 나니 이름보다 삶을 결정하는 선택의 순간들이 더 오래 남는다.
어떤 이름으로 불리느냐보다 중요한 것은 어떤 삶을 살아가느냐가 아닐까. 누군가가 정해 놓은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스스로 선택하고, 그 선택에 책임지며 살아가는 것. 코라가 자녀들에게 바랐던 삶도 그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이름으로 살아간다. 그 이름에 담긴 누군가의 기대와 바람을 넘어 자기 삶의 주인이 되는 것. 어쩌면 그것이 코라가 아들에게, 그리고 딸 마이아에게 전하고 싶었던 가장 큰 바람이었을 것이다.
다 읽고 표지를 보니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인다.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