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할린 아리랑 한울림 작은별 그림책
정란희 지음, 양상용 그림 / 한울림어린이(한울림)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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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만 다녀오면 2천엔을 벌 수 있다는 일본 순사의 말만 믿고, 흥만이 가지 않으면 아버지가 대신 가야한다는 말에 고향을 떠났습니다. 떠나고 싶지 않았지만 강제로 끌고 갈 수도 있다는 말에 무거운 발걸음을 떼고 트럭에 올랐습니다. 목적지도 모른 채 부산항에서 이 커다란 배에 옮겨 타고 도착한 곳은 사할린입니다.

하루 12시간 넘게, 몸이 아파도 탄광에서 일해야 했습니다. 2년을 채우고 집으로 돌아가겠다는 말에 돌아오는 것은 모진 매질 뿐이었지만 언젠가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일념으로 버텼습니다.볼품없는 식사, 가축우리 같은 숙소도 참아 냈습니다.

도망치다가 잡혀와 죽기 직전까지 몽둥이질을 당하고 독방에 갇힌 힘든 순간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흐느낌 같은 ‘아리랑’ 노래 덕분이었습니다.

마침내 1945년 일본이 패망하고 해방이 되었습니다. 고향으로 갈 수 있다는 희망에 만세를 불렀지만 돌아오는 것은 끔직한 일이었습니다. 일본군은 사할린을 떠나기 전 자기들이 저지른 일들을 감추기 위해 조선인을 학살했습니다. 사람들이 희생되는 순간 흥만은 굴을 파고 숨어 목숨을 건졌지만 고향에 돌아 올 수 없었습니다. 귀국선이 온다는 소식에 부두로 향했지만 일본인들은 자기들끼리만 떠났습니다. 사할린에 강제로 끌려간 조선 사람을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강제로 끌고 갈 땐 ‘너희도 일본 사람이야.’ 하며 꾀어내더니

전쟁에 패하자 ‘너희는 조선 사람이야.’하며 자기들만 서둘러 도망쳤다.”

사할린에 남겨진 사람들은
4만 3천 명입니다. 고향에 돌아갈 날만 기다렸던 사람들은 고향을 기억하기 위해 한글 학교를 열었고 기쁜 날도 슬픈 날도 ‘아리랑’을 부르며 다시 돌아올 고향을 꿈꿨습니다. 가고 싶어 간 곳이 아니었지만 그 곳에 남겨졌습니다. 돌아 오고 싶지만 돌아올 수 없는 고향이 되었습니다.

​세대가 바뀌어도 기억하는 조국의 말과 노래, 우리는 그 분들을 기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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