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산조각
정호승 지음 / 시공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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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시어로 예쁜 시를 쓰는 정호승 작가의 우화 모음집입니다.

중학생 친구들과 한국 단편 소설 수업을 하며 작가님의 <항아리>를 읽었었는데요. ‘어떤 상황에서든 언젠가는 특별한 무엇인가가 되고 싶었던’ 항아리를 닮은 존재들이 주인공이 되어 이야기를 들려 줍니다. 그래서 우화소설집이네요. ​

지금 내 현실은 힘들지만 참고 버티다보면 의미있는 것이 될거라 믿은 바위, 동종, 부처상, 나무, 수의, 댓돌 등 수많은 사물과 동식물은 저마다의 가치를 갖고 싶어합니다.
어떤 순간에도 실망하거나 포기하지 말라는 작가의 메시지는 이렇게 표현됩니다.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을 얻을 수 있고 그렇게 또 살아가면 된다는 거죠.

​힘들면 그만 두고 싶고 잠시 쉬고도 싶은데 왜 포기하지 말라는걸까요?

​예리한 칼날을 갈아대느라 내 몸이 닳아 없어질까 걱정하는 댓돌에게 먹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너를 보호할수록 넌 아무 데도 쓸모없는 존재가 되는거야.
(중략)
우리는 각자의 몫대로 쓰이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어. 나는 먹물을 생산해내는 역할을 해야 하고, 넌 칼 가는 역할을 해야 하는거야. 그게 우리 존재의 가치야“

누군가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그럴싸한 멋진 자리에 있고 누군가는 내 자리에 만족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아무도 원하지 않는 자리로 내몰리기도 합니다.

​<선암사 해우소> 야생 차밭의 작은 바윗돌은 원래부터 그 자리에서 쭉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해우소 기둥 받침이 되어 세상 가장 더러운 것들에 뒤덮히게 됩니다. 그런 바윗돌에게 스님이 들려주시는 이야기는 이해하기 쉽지 않습니다.

견딘다는 것은 희생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희생한다는 것은 자비를 실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세상에 희생 없는 자비는 없다.

그 희생의 댓가는 무엇인지, 바위는 아직 다 깨닫지 못합니다. 왜 하필 내가 희생해야하는지 이해하기 힘들지 않을까요? <낙산사 동종>은 이해했을까요?

맑은 종소리로 세상 사람들의 고민을 다 해결해주던 동종은 세상에서 자기가 가장 잘 났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부터 나보다 사람들의 주목을 더 받는 의상대 소나무가 눈엣가시입니다. 그 눈엣가시가 사라지도록 큰 불이 나길 바랐는데, 그런 마음으로 종을 울린 것이 이리도 큰 댓가를 치를지 몰랐습니다. 남이 불행하게 되기를 바라고 원하는 것은 결국 나를 헤치는 불길이 되어 버립니다.

길지 않은 이야기 한 편씩 읽어 나가며 ‘에휴 착하게 살라는 잔소리를 많이도 해놓으셨구나’ 싶다가 나도 모르게 마음이 말랑말랑해지더니 맑아집니다.

​선암사 해우소가 바위를 만나고 싶고 낙산사에 가 녹아내린 동종을 만나고 싶습니다. 그리고 우화집 속 존재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다시 읽어 주고 싶어집니다.

​버텨라, 언젠가는 쓰임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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