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한 번이라도 그냥 믿어줄 순 없어? 그게 안 돼?"
엄마가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서서 지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넌 이보다 잘 살 수 있는 애였어. 똑똑하고 밝고, 너 같은 애가 내딸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어."
"지금 내가 사는 모습이 그렇게 엄마 마음에 안 차?"
내가 울컥해서 말하자 엄마가 당황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 말이 아니잖아. 엄만 네가 더 잘 살았으면 하는 거지."
"엄마, 이게 나한텐 최선이야. 나보다 더 똑똑한 사람들 이 세상에널리고 널렸어. 나 그렇게 특별하지 않아. 지금 직장도 내 능력에 과분한 곳이야."
"직장 얘기만 하는 게 아니잖아."
"엄마, 그만해."
"알았어."
엄마는 그렇게 말하고 속도를 높여 걸었다. 대화가 진행될수록 서로에게 좋을 게 없다는 것을 엄마도 알 테니까.
엄마는 일평생 내게 기대하고, 실망했다. 너 정도로 똑똑하고 너 정도로 배운 사람이라면 응당 자신은 꿈도 꿔보지 못한 삶을 사는 게 마땅하다는 것이 엄마의 주장이었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가진 것별로 없는 그와 결혼한다고 했을 때 엄마는 내게 크게 실망했지만, 내가 결혼을 하고 정상 가족을 꾸린다는 사실 자체에 만족하는 것으로마음을 돌렸다. 엄마는 사위를 살뜰히 챙겼다. 우리가 우리의 가족을잘 굴려나가서 남들 보기에 그럴듯한 모습으로 살기를 기대했다.

나는 엄마의 그 작은 기대마저도 충족시키지 못했다. 엄마를 철저히 실망시켰다. 엄마에게 인정받기를 기대하고 번번이 상처받기보다는 내 일에서 인정받고 친구들에게 지지를 받는 것으로 충분하다는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머리로는 아는 일을 내 가슴은 잘 받아들이지 못했다. 자식은 엄마가 전시할 기념품이 아니야. 마음속으로는 그렇게 소리치면서도, 엄마의 바람이 단지 사람들에게 딸을 전시하고싶은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마음이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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