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시골 의사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20
프란츠 카프카 지음, 이덕형 옮김 / 문예출판사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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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주인공 그레고르는 늙은 부모님과 여동생이 있는 젊은 남자이다. 또한 혼자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는 장본인이기도 하다. 어느 날 아침 잠에서 깨어나자 그는 자신이 흉측한 벌레로 변해버린 것을 발견하고, 곧이어 가족들도 벌레로 변해버린 그레고르를 발견한 후 놀라 그를 방에 가두어 격리시키며 살아나간다. 수입을 마련하기 위해 가족들은 각자 일을 시작하면서 집에 하숙인들도 두게 되는데, 어느 날 하숙인들은 평소 바이올린 연습을 하던 여동생 그레테에게 바이올린 연주를 부탁한다. 여동생의 바이올린 연주에 큰 애착을 가지고 있던 그레고르는 여동생의 연주를 진정으로 이해해 줄 사람은 자신 밖에 없다는 생각에 벌레의 모습으로 자신의 방에서 기어나가게 되고, 벌레의 갑작스런 출현에 놀란 하숙인들은 하숙 계약을 해지하겠다고 통보한다. 이 때문에 그레고르에 대한 가족들의 분노는 극에 달하여 계속 이렇게 가만 놔둘 수는 없다, ‘저것’을 쫓아내버려야 한다는 고함을 지르게 되고, 자신의 방으로 쫓겨난 채 가족들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레고르는 곧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그 후 가족들은 이제 자신들 스스로도 충분히 앞날을 꾸려나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하숙인들을 내보낸 후 희망에 차 앞날을 계획하며 나들이를 떠난다.

소설의 내용 자체는 사람이 벌레로 변하는 등 지극히 비현실주의적인 모습을 띄고 있지만, 정작 그 내용을 통해 읽히는 카프카의 인간관은 극히 현실주의적인 것으로 보인다. 즉 그는 그가 뼈저리게 느꼈던 인간의 현실에서의 모습을 그레고르를 통해 보이고자 했던 것 같다. 주인공은 벌레가 되어버림으로써 생계를 책임지는 역할을 더 이상 수행하지 못하게 되자 가족에게 무가치한 존재로 전락해버린다. 당장 먹고 살아야 하는 경제적 필요에 의해 자신의 희구하는 바를 이루지 못한 채 계속적으로 원하지 않는 직업에 종속당하여 살아가는 인간(그레고르는 자신의 직업을 싫어하지만 가족 부양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일을 한다), 그리고 이러한 효용가치를 잃게 되었을 때 가장 친밀한 관계인 가족에게서조차 소외당하고 ‘벌레’로서 취급받게 되는 현실. 처음에는 가장 극진하게 그레고르를 보살피던 여동생 그레테는 시간이 흐른 뒤에는 그레고르를 경멸하며 멸시하는 사람으로 변해버린다. 소설은 비록 3인칭 시점으로 쓰여있지만, 이 책의 독자들은 그레고르와 자신을 동일시하게 된다. 자신이 벌레가 되었을 때, 즉 자신이 사회가 요구하는 경제적 효용가치를 잃게 되었을 때 경험하게 되는 타인의 자신에 대한 태도와 시선의 부당함, 인간 존재 자체가 쓸모없고 무가치한 것으로 되어버리는 상황의 부조리함을 카프카는 독자로 하여금 느끼게 하고 싶었던 것 같다.

벌레의 특징은 의사소통 불가성과 흉칙한 외모가 아닐까? 만약 이 사회 속에서 우리 중의 누군가가 의사소통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되고 흉칙한 외모를 갖게 된다면 그는 가장 친밀한 인간 공동체인 가족 내에서조차 인간으로서 응당 받아야할 대접을 정말 받을 수 있을까 하는 것이 카프카의 물음이 아닌가 싶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성경의 가르침이나 인간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하라던 칸트의 정언명법은 이런 순간에서도 지켜질 수 있을까? 이에 대한 카프카의 답변은 어떨까? 그의 답변은 소설의 결말로서 제시되어 있는데, 소설은 그레고르가 자신이 가족들에게 무가치하다는 것을 깨달은 후 죽음을 맞이하고 가족들은 나아지는 생계의 전망에 희망차게 나들이를 나서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즉 그의 대답은 부정적이다. 카프카는 지극히 현실적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대답도 부정적으로 제시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그레고르 자신이 애정을 가지고 생각했던 가족에 대한 마지막 명상은 허전하고 평화로웠다고 카프카는 기술하는데, 평화로운 것은 체념했기 때문이며 허전한 것은 그가 가족의 일원으로서 응당 받아야 했을 그 무엇 - 사랑과 관심과 의사소통과 인간적 교류 - 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그레고르가 죽은 후 가족이 미래를 계획하며 함께 나들이가는 것으로 희망차게 끝나는 장면은 아들이자 오빠였던 그레고르의 죽음 내지는 부재에 대한 아무런 슬픔이나 고통의 느낌 없이 그가 없이도 아무 문제없이 즐거워하는 가족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오히려 허망하게 느껴진다.

경제적 가치가 곧 그 인간의 가치가 되어버리는 자본주의 사회의 일면에 대한 카프카의 묘사와 진단은 그것이 단지 소설 속의 가상적인 모습만이 아닌 냉엄한 현실 세계의 진실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무섭다. 가족으로부터의 외면은 공포 영화 속에 나오는 귀신보다 더 공포스럽고 가혹하다. 이익의 창출을 위해 사람이 안중에 없는, 이익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서만 사람이 가치가 있는 저열한 가치관이 지배적인 사회 속에서 나 자신이 벌레가 되지 않고, 타인을 벌레로 만들어버리지 않기 위해 우리가 해야할 것은 무엇일까? 카프카는 적극적 의미에서 인간의 추구해야 할 바가 무엇인지에 관해서는 아직 뚜렷한 대답을 얻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변신을 읽으며 얼마전 알게 된 어느 후배 생각이 났다. 그 친구는 선천적으로 장애가 조금 있어서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말을 하면 어물어물하는 식으로 표현이 되어 말하는 내용을 잘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데 그의 가족들은 그런 그를 부끄러워해서 늘 그를 집 안에만 가두어 놓고 밖으로 함께 데리고 나가기를 부끄러워했다고 한다. 벌레로 변해버린 그레고르를 부끄러워하는 가족들의 소설 속 모습을 보며 이 친구가 연상이 되었던 것이 미안해졌다. 그리고 바보같은 생각으로 멀쩡한 사람을 벌레로 만들어버리는 우리들의 모습이 부끄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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