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너의 사회과학 - 우리 삶과 세상을 읽기 위한 사회과학 방법론 강의
우석훈 지음 / 김영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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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에 우석훈 저, '나와 너의 사회과학'을 읽었다. 저자는 한 챕터가 시작되기 전에 자기 생각의 발전을 위해 숙제로 쪽글을 하나씩 적으라고 요구하고 있는데, 그에 대한 숙제로 글을 하나 적었다. 저자는 2강의 "착해지기 vs 똑똑해지기" 장에서 사회문제의 해결을 위해 착해져야 하는지, 아니면 똑똑해져야 하는지를 묻고, 집단적으로 함께 똑똑해져야 한다는 자신의 생각을 기술하고 있는데, 아래는 이 주제에 관한 나의 쪽글이다
 


 

착해지기똑똑해지기중 나는 어느 쪽에 더 적합한가?

 사회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착해지는 것이 필요한가, 아니면 똑똑해지는 것이 필요한가? 모두가 만족할만한 정답은 둘 다 필요하다는 답변이다. 선함이 없는 똑똑함은 히틀러를 낳고, 똑똑함이 없는 선함은 악에게 역사의 패권을 넘겨주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의 두 가지 선택지 중 하나만을 선택해야 한다면 나로서는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사회문제는 다양하며, 따라서 선함을 통해 해결되어야 하는 문제가 있고, ‘똑똑함을 통해 해결되어야 하는 문제도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기술적 성격을 띠는 사회문제는 똑똑함을 통해 해결되는 경우가 많다. 문제의 성격 자체가 선악의 판단을 전제로 하지 않고, 효율성과 전문지식을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정치, 외교, 경제적 성격을 띠는 사회문제는 문제의 올바른해결을 위해 선함을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부류에 속하는 사회문제의 해결에는 언제나 사람에 대한, 그리고 옳고 그름에 대한 일정한 가치판단을 전제로 하며 나름대로의 올바른 가치판단을 내리기 위해서는 똑똑함만이 아닌 선함도 필수적으로 요구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라크 전쟁은 똑똑함악함의 조합물의 결과가 아닐까? 미군은 특유의 똑똑함을 이용해 적은 숫자로 천만 명이 넘었던 적에게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동시에 최소 십만 명이 넘는 무고한 시민들을 죽였는데, 이러한 결정을 내리게 된 가치판단의 기저에는 석유 자원의 확보나 경제적 이득, 국제적 패권 유지 등 똑똑한 계산이 밑받침되었겠지만 동시에 선함에 대한 감각은 없었던 것이 아닐까? 따라서 똑똑함선함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나로서는 도구적 이성만으로는 궁극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윤리적 판단을 요구하는 사회문제가 많이 있기에 착해지기가 더욱 필요하다고 본다. 사실 역사를 돌아볼 때, 인류가 이전 시기보다 더 많은 지식을 얻고 똑똑해졌다고 해서 사회문제가 이전 시기보다 줄어들었던 적은 없었다. 국제연합 식량농업기구에 따르면 전세계적으로 8억 명이 기아에 허덕이고 매일 2 5천명이 굶주림으로 사망하고 있다. 또한 기술이 발전할수록 전쟁을 통해 죽는 사람의 숫자는 더욱 늘어나고 있다. 왜 사람들의 교육수준이 높아지고 이전 시대보다 더 똑똑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사회문제는 해결되고 있지 않으며, 혹은 오히려 더 심각해져 가는가? 그러므로 나는 사람의 본성의 악함에 대한 깊은 성찰이 동반되지 않은 사회이론은 사회문제의 핵심을 비껴갈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물론 사회과학의 임무는 사람을 착하게만드는 것은 아닐 것이다. 사회과학은 학문이기에 사람의 교화보다는 사람들을 똑똑하게 만들어 주기 위한 도구이다. 그러나 사회 현상의 기저와 인간들의 행동 이면에 숨겨져 있는 진실들을 파헤침으로써 사람들에게 새로운 이해와 인식을 제공하여 결과적으로 착한혹은 바람직한방향으로 그 마음을 움직일 수는 있을 것이며, 이것이 이루어진다면 사회과학의 목표는 충분히 달성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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