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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미스터리 2012.봄 - 35호
청어람M&B 편집부 엮음 / 청어람M&B / 2012년 2월
평점 :
품절
봄과 함께 다가온 [계간 미스터리 2012년 봄호]. 일단 표지가 산뜻하니 이쁘고 좀 더 미스터리 잡지 느낌이 들어 맘에 드네요. 이번 봄호 역시 국내외 단편들을 필두로 대담, 콩트, 에세이, 특별 기고, 재판 참가기. 십자말 풀이 등 다채로운 내용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두 개의 특집 코너가 있는데 하나는 [추리문학관 20주년 기념 김성종 소설가 대담]이고 또 하나는 권경희 작가의 [그림자재판 참가기]입니다. 먼저 손선영 작가가 진행한 김성종 大작가와의 대담을 읽다보니 저도 모르게 어릴적 시절로 돌아가게 됩니다. 저와 형은 학창시절 김성종 작가의 책을 목이 빠져라 기다렸고 출간 즉시 모두 사서 보았습니다. 지금도 어머니의 "저녁 먹어라~"하는 소리를 뒤로 하고 제 방에서 <제5열>의 라스트씬에 흠뻑 빠져있던 때가 생각나네요. 뭐니뭐니해도 김성종 선생님의 대표작은 대하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 하드보일드 <제5열>, 그리고 대하 추리소설 <최후의 증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부산 추리문학관 설립 20주년을 축하하고 오래오래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권경희 작가의 [그림자재판 참가기] 역시 저의 시선을 끌었습니다. 2008년 1.1일에 시행된, 사법의 민주적 정당성을 강화하고 투명성을 제고함으로써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사법제도의 확립을 위하여 민이 배심원 자격으로 형사재판에 참여하는 '국민참여재판'. 재판 시작부터 형량 결정까지 재판 전과정에 국민이 배심원으로 참여하는 장면이 무척 흥미진진하고 유익했습니다. 사건사고에 늘상 친숙한(?) 추리소설 애독자가 좀 더 적합한 배심원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기회가 되면 한 번 참가해보고 싶네요.

마침 <연문기담>, <백사도>를 끝내고 김내성의 <마인>을 읽는 중인데 백(白) 씨가 무려 네 명이나 등장합니다. 이상우 선생님의 <김내성과 흰 백 미스터리> 에세이 내용이 공감이 가네요. 오현리 선생님의 <영화와 추리소설>도 재밌었습니다만 조금 최신 영화쪽으로 소개를 해줬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환살인의 핵심 장단점을 콕 찝어 보여준 <교환살인>(노원)과 마치 시트콤같은 시크한 결말을 유도한 이상우 선생님의 <진짜 용기> 이 두 콩트로 두뇌에 가벼운 예열을 하고는 드디어 본격적으로 추리 단편들을 만나러 갑니다.
시대를 달리한 국내 최고의 추리소설가 두 분이 등장하는 <김성종과 김내성>(김상윤)은 독특한 발상과 위트있는 전개로 인해 신선미가 넘쳤고 <구제역 소동>(김용상)은 구제역에 관한 정의, 파급등 교육적인 측면과 함께 진원지를 추적하는 해프닝를 다룬 재미난 작품었으나 미스터리 요소가 조금은 부족한 느낌입니다.
<목련이 피었다>에서 인상깊게 읽은 본격 추리 단편 <노끈>에서 맹활약했던 월셔 홈즈와 라왓슨 콤비가 재등장한 <사람과 로봇 실종사건>(김재성)>은 두 콤비와의 재회가 반가운 반면 사건 도입 부분이 거의 축략된 채 사건 해결후 홈즈의 설명만 따라가야하는 전개로인해 독자가 추리에 동참하지 못한 점이 아쉽더군요.
'나는 가수다'에서 뜬 모가수와 스티븐 킹의 <미저리>를 적절히 연상시키는 <사랑보다 깊은 상처>(김차애)는 여성작가 특유의 심리 묘사가 잘 살아있는 수작 스릴러였고, 20년전 딸을 잃은 노파와 그 범인을 변호하는 변호사와의 심리 대결이 돋보인 <아이의 뼈>(송시우) 역시 호러적 색채에 차분하면서도 오싹한 여운을 남긴 인상적인 작품이었습니다.
제목부터 요상한 <팔선연회투안>(오현리)은 중국 문화에 관심이 많은 저자의 팔선 관련 이색 미스터리물입니다. 마격남 (馬格南, Magnum) 44, 아가사 격리사체(阿加莎 格里斯滯, Agatha Christie)같은 말들이 웃음을 자아내게 하네요.
혼자 읖조리는 자서전 스타일의 <유희교실>(이대환)은 흥미로운 이야기 전개에 비해 미스터리적 긴장감이 조금 부족하달까요. 하지만 2011년 가을호에서 재밌게 읽은 <위험한 호기심>의 홍성호 작가가 쓴 <B사감 하늘을 날다>는 역시 저를 실망시키지 않더군요. 재미난 스토리, 논리정연한 전개, 트릭도 괜찮았고 결말도 깔끔했습니다.
풍족하게 들어있는 국내 단편 여덟 편을 읽어보니 모두가 작가 나름의 특색있는 미스터리를 표방하고 있으나 제가 좋아하는 본격 (정통) 추리가 별로 없어서 조금 아쉬웠습니다. 그만큼 기발한 트릭을 앞세운 정통 추리물을 쓰는 게 쉽지않은 모양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사랑보다 깊은 상처>, <아이의 뼈>, <B사감 하늘을 날다>를 우수작으로 꼽고 싶네요.
가장 관심이 있었던, 그 유명한 기서 <흑사관 살인사건>의 저자 오구리 무시타로의 추리 단편 <실낙원 살인사건>을 등장 인물과 건물 배치도까지 일일이 그려가면서 정신 단단히하고 초집중해서 읽었습니다. 하지만...역시...어렵더군요. 친숙하지 않은 옛 문체와 단어에 해부학, 화학, 물리학등 온갖 생소한 지식까지 더해져 이해도는 겨우 20퍼센트 정도...사놓기만 하고 아직 읽지않은 <흑사관 살인사건>을 한숨을 쉬며 바라보게 됩니다만... 그래도 <흑사관~>을 앞두고 좋은 예방주사 맞은 기분입니다.
조동신 작가가 소개한 [2011년 4분기 주요 추리소설] 코너에 실린 아홉 권의 책 가운데 여섯 권을 읽었네요. 읽은 책들은 반가운 맘에 리뷰하는 재미로, 아직 안 본 책들은 호기심을 가지고 바라보게 됩니다. [십자말 풀이] 퀴즈의 빈칸에 정답을 써나가는데 웬만하면 아는 문제들인지라 '나도 이제 조금씩 내공이 쌓이나 보다'란 생각에 절로 흐뭇해지더군요. 근데 세로 9번 문제는 정답이 한 칸 모자르는 것 같습니다만. '2012년 에드가상 후보'에 히가시노 게이고의 <용의자 X의 헌신>이 포함됐네요. 국내 작가분들에게도 좋은 자극제가 되기를 바랍니다.
2012년 봄호도 저를 배신하지 않았습니다. 짧막한 추리 단편들과 각종 재미난 기사들을 읽으며 잠시나마 일상의 무료함과 답답함을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한국 추리소설에도 따스한 봄날이 찾아오길 바라며 다가올 여름호를 기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