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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비탈의 식인나무 ㅣ 미타라이 기요시 시리즈
시마다 소지 지음, 김소영 옮김 / 검은숲 / 2014년 8월
평점 :
품절
본격 추리 매니아로서 요코미조 세이시, 아야츠지 유키토, 미쓰다 신조, 우타노 쇼고등 여러 추리 작가를 좋아하지만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작가는 '신본격 추리소설의 대부' 시마다 소지이다. 내가 이 작가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의 작품이 결코 평범한 소재나 구상에서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현실 세계에서 일어나지 않을 법한 이야기들을 현실의 공간에 접목시켜 놀라운 스토리를 창출해낸다. 독자로 하여금 이것이 현실인지 가공의 세계인지 헷갈리게끔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교묘히 넘나드는 일루전(illusion) 효과를 가장 잘 사용하는 작가가 아닌가 싶다. 작가의 이러한 작풍은 그의 대표작들인『점성술 살인사건』,『기발한 발상, 하늘을 움직이다』,『북의 유즈루, 저녁 하늘을 나는 학』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번 작품 역시 '사람을 잡아먹는 거대한 식인 나무'라는 공포스럽고 괴이한 소재로 독자를 찾아온다. 멀리 스코틀랜드에서 어린 소녀를 난도질해서 시멘트벽에 묻어버리는 엽기적인 사건을 시작으로 사람을 매달고 삼켜버리는 식인 나무의 등장까지 그야말로 독자의 간담을 서늘케하는 소재이다. 사람을 잡아먹는 식인 나무라니... 현실성과 논리성이 최대의 미덕인 추리의 세계에서 가당키나한 설정인가. 하지만 시마다 소지는 역시 추리 소설의 대부답게 이 오싹하고도 기괴한 소재에 풍부한 스토리텔링과 기상천외한 트릭을 버무려 놀랄만큼 재미난 추리 장편을 완성한다.
평범한 사람은 진입조차 어려운 기형적인 거인의 집. 그 안에 파묻혀 숨겨진 소녀의 시체의 행방, 이천년을 살아온 거대 녹나무에 매달린 참혹한 시체와 그 나무 안에서 발견된 네 구의 시체. 페인가 서양관 지붕에 기묘한 자세로 죽은 사람등 독자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충격적이고 엽기적인 사건이 줄을 잇고...명탐정 미타라이 기요시와 왓슨역의 이시오카가 이 거대한 녹나무에 얽힌 범상치않은 범죄의 진상을 추적한다.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일단 분량 (634쪽)이 넘 길다. 10명 남짓한 소수의 등장 인물이지만 주요 무대가 되는 제임스 페인가의 역사와 가족 구성원에 대한 설명, 페인가 주변 및 거대 녹나무에 대한 묘사, 탐정 미타라이가 사건에 발을 들여놓게된 계기, 작가의 해박한 지식을 자랑하는 듯한 동서양의 다양한 참수 기술 소개등 주변 정황 설명에 다소 많은 분량을 할애하는 느낌이다. 사건의 본질을 제외한 부분을 과감히 축소시켜 분량을 좀 줄였더라면 좀 더 스피디하고 흡입력있는 긴장감이 팽팽이 감도는 독서가 되지 않았을까.
밝혀지는 사건의 진상에서 다소간은 만화스럽고 운에 의존하며 현실적 실행 가능성에 의구심이 드는 부분도 존재하지만 역시 추리소설의 대부답게 사건의 이면에는 심장이 오그라들 정도의 섬뜩하고도 놀랄만한 이야기가 숨어 있다. 선과 악이 공존하는 한 인간의 추악한 내면을 바탕으로 페인가의 어두운 역사와 저주받은 혈통이 불러운 참극, 독자를 놀래키는 기상천외한 트릭과 예상밖의 범인 그리고 한 인간의 기구하고도 처절한 삶의 참회록까지...
역시 나를 실망시키지 않는 멋진 작품이었다. 읽는 내내 동양과 서양 그리고 과거와 현재의 시공간을 바삐 오가며 한 편의 오컬트적이고 짜릿한 추리 여행을 즐긴 느낌이다. 바로 전에 출간한『이즈모 특급살인』에서 잃어버린 점수를 한순간에 만회했다고나 할까. 그가 집필한 모든 작품이 국내에 번역되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