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녀의 독배 - 그 가능성은 이미 떠올렸다
이노우에 마기 지음, 이연승 옮김 / 스핑크스 / 2019년 5월
평점 :
절판


어느 지방의 마을, 절대 권세가의 큰아들 결혼식 날, TV 생중계 포함 수많은 하객이 지켜보는 가운데 신랑, 신부와 그 일가족 총 여덟 명이 모여 전통 혼례 방식에 따라 술잔 하나에 술을 가득히 따른 후 차례대로 조금씩 돌려마시는 '술잔 돌리기' 예식을 치른다. 하지만 십여 분 뒤, 술을 마신 여덟 명中 남자 세 명만 사망하는 참사가 발생한다. 원인은 비소 중독, 즉 독살이다. 죽은 세 남자 사이에는 징검다리 형식으로 다른 사람들도 마셨다. 어찌 이런 일이 가능할지...그야말로 불가사의한 사건이다. 누군가의 지능적인 범죄인가 아니면, 마을에 전설로 내려오는 가즈미님의 저주인가.

그리고는 사건 관계자들이 한데 모여 열띤 추리 대결을 펼친다. 파란 머리 탐정의 옛 제자인 초딩 탐정이 한 사람을 용의자로 지목하여 추리의 포문을 열자 이에 뒤질세라 자기방어적인 새로운 가설이 등장하고...그렇게 서로를 의심하는 저마다의 가설 파티가 시작된다. 전원 공범설, 단독범설, 2인 공범설, 시간차 트릭설...등등 그 와중에 '개 고의 난입설'이라는 명칭에 뿜었다. ㅋㅋ 다섯 개의 가설을 비교, 검증해 보는 시간은 즐거웠지만 반복된 패턴이 조금은 단조롭고, 가즈미님의 전설과 두 쪽에 할애된 저택 약도의 활용도가 적은 점은 아쉽다. 그리고 그래봤자 정작 범인은 뜻밖의 장소에 존재한다. 그렇게 전반부가 끝나고...

후반부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와 장소로 무대가 꾸며진다. 정말 말도 안 되는, 만화에서나 나올법한 이유로 징검다리 독살 사건의 관계자들이 다시 모이고 조직 보스의 일당과 '기적의 존재를 믿는' 파란 머리 탐정 간의 본격적인 추리 대결이 시작된다. 마치 협객이 일대일로 무술 대결을 벌이듯 장광설의 허세와 고난이도 액션이 춤을 추고...이것은 무협지인가 추리소설인가. 전반부가 몸풀기였다면 후반부는 본 게임이다. 

보스 일당의 기상천외한 가설과 황당무계한 트릭이 제시되고, 그때마다 탐정은 '그 가능성은 이미 떠올렸다.'라는 시그니처 멘트와 함께 논리적인 추론으로 물리친다. 가설과 반박이 반복될 때마다 범인과 사건의 진상이 요동치고...작가는 단순한 추리 대결에 저마다의 입장차를 내포한 다양한 인과관계를 집어넣어 극적 효과를 노린다. 그리고 이것이 멋지게 적중한다. 이야기는 보다 입체감이 있고, 예상치 못한 인물과 반전이 등장하면서 본격 추리물의 짜릿함을 쉴 새 없이 경험한다.

그리고 마침내, 탐정은 지금까지 언급됐던,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가설을 도표로 정리해 하나하나 일일이 조목조목 따져 부정한다. 그리고 남는 것은 기적의 증명인가? 마지막으로 모든 것이 마무리된 뒤 우연찮게 드러나는 사건의 전모는 개인적으로 썩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그전까지가 신나고 좋았다.

어쨌든 머리에 쥐가 날 정도로 재밌게 읽었다. 이런 글을 쓴 작가가 천재가 아닐지 의심이 들 정도로. 이 작품은 "2017 본격 미스터리 베스트 10" 1위와 2017년 본격 미스터리 대상 후보에 올랐다. 그리고 이게 끝이 아니다. 탐정은 사건이 종료되자마자 오랜 인연의 종지부를 찍기 위해 카바리엘 추기경을 만나러 이탈리아로 떠난다. 그곳에서 기적을 증명하려는 최후의 대결이 기다리고 있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당탐정사무소 사건일지 - 윤자영 연작소설 한국추리문학선 5
윤자영 지음 / 책과나무 / 2019년 5월
평점 :
품절


<교동회관 밀실 살인사건>에서 인연을 맺은 추리 작가 당승표와 전직 경찰 나승만이 다시 뭉쳤다. 이번에는 탐정사무소다. 그들은 의기투합해서 자신들의 성을 딴 나당탐정사무소를 차린다. 마치 권상우, 성동일 주연의 한국 추리 영화 <탐정- 리턴즈>처럼...그리고 경찰도 포기한 사건들을 해결한다. 젊은 당승표는 뛰어난 추리 두뇌로 수사를 이끌고, 노련한 나승만은 풍부한 경험과 인맥으로 조력한다.

윤자영 작가는 현직 고등학교 과학 선생이다. 그래서 그의 작품에는 과학을 베이스로 한 다양한 트릭이 등장한다. 서술 트릭이나 심리 트릭보다는 물리적(기계적) 트릭이 들어간 본격 추리물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안성맞춤 작품이다. 이 책에는 나당 콤비가 활약하는 여섯 개의 사건이 중단편 형식으로 수록되어 있다.

1. 시체고치 - 도르래 살인사건 : 도르래와 바벨, 빨랫줄을 이용, 공중에 매달려 마치 고치처럼 기묘한 자세로 교살된 연쇄살인사건. 그러한 기묘한 자세에 그런 심오한 과학적 트릭이 숨어있을 줄이야...범인은 살인사건 건수로부터 대충 짐작은 했다. 힌트는 아가사 크리스티 여사의 작품이다. 그나저나 신기하다. 그런 살인 수법이 가능하다니...나도 당장 도르래, 바벨, 빨랫줄로 실험해 보고 싶다 ㅎㅎ

2. 황 영감 살인사건 : 땅부자 황 영감이 자신의 임시 거처에서 살해당한다. 최근에 건물을 판 대금 10억 원은 사라지고 없다. 사건을 수사하던 나당 콤비에게 고딩 아들의 석연치 않은 죽음을 밝혀달라는 의뢰가 들어온다. 100여 쪽 분량에 여러 사건, 다양한 얘기가 거미줄처럼 얽혀있어 조금은 복잡하다. 살해 트릭을 포함한 본격 추리와 동기를 부각시키는 사회파 추리가 잘 조화된 느낌.

3. 의문의 도박판 사건 : 사기도박으로 수억을 잃었다는 노인의 의뢰로 당 탐정은 사기도박의 실체에 뛰어든다. 그리고는 거액의 도박판이 벌어지는데... 영화 <타짜>의 한 장면을 보는 듯 긴장감이 팽팽하다. 첨단 기법과 의외의 반전이 이 단편의 또 다른 재미이다.

4.  김민영 탐정 데뷔 사건 : 탐정사무소의 새 식구가 된 김민영은 노부인의 친자확인 의뢰건으로 산부인과의 시험관 시술 뒤에 숨겨진 비밀스러운 음모와 배경을 밝혀내는데...작가가 스릴러에도 상당한 조예가 있음을 보여준 단편. 긴장감, 몰입감 100%로 재밌게 읽었다.

5. 왕 게임 사건 : 탐정사무소 식구를 인질로 잡고 당 탐정과 벌이는 왕 게임. 일본 만화 <도박묵시룩 카이지>에서 읽은 유명한 심리 카드 게임이다. 왕(king)은 시민(citizen)을 이기고, 시민은 노예(slave)를 이긴다. 하지만, 노예는 왕을 잡아먹는다. 돈이 없던 카이지가 게임에 질 때마다 귓속에 장착된 특수 송곳이 5밀리씩 윙~ 하는 굉음을 내고 고막에 가까워지고...기겁하는 카이지는...아니 이게 아니지 ㅎㅎ 상대편의 과학적 트릭을 빛나는 기지로 밝혀낸 당 탐정은 드디어 최후의 결전지로 향한다.

6. 최후의 대결 :  곤지암 폐병원의 밀폐된 공간에서 전작에서 보여주었던 '그'가 기획한 최후의 실존 서바이벌 추리게임이 펼쳐진다. 사람이 연이어 죽어나가는 가운데 범인과 설계자는 누구인가? 흥미로운 설정과 의외의 반전이 이 단편의 포인트. 

너무 재밌어서 하루 만에 후딱 다 읽었다. 추리도 추리지만 연작 형태의 단편들이 기승전결식으로 이어져 뒤로 갈수록 흥미를 배가시킨다. 그게 이 책의 장점이다. 요즘 한국 추리물을 보면 트릭과 반전보다는 유려한 필치, 섬세한 문장력으로 감성을 자극하는 스토리텔링에 무게를 두는 경향이 있는데, 그런 의미에서 트릭을 기반으로 한 본격추리물을 발표하는 윤자영 작가와의 만남이 즐겁다. 아무래도 과학 전공이다 보니 트릭 개발에 많은 도움을 받지 않을까 싶다. 꾸준히 활동하면 이쪽 분야로는 독보적인 입지를 굳히리라 기대해 본다. 척박한 국내 추리물 시장에서 윤자영 작가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내는 것은 그러한 이유에서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자와 나오키 1 - 당한 만큼 갚아준다 한자와 나오키
이케이도 준 지음, 이선희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19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거품 경제가 한창이던 1988년, 게이오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한자와 나오키는 뱅커로서의 부푼 꿈을 안고 도쿄중앙은행에 입사한다. 그렇게 15년간 본사 융자 파트에서 대기업을 상대하던 한자와는 1년 전, 오사카 서부 지점 융자 과장으로 근무처를 옮긴다. 하지만 그곳에서 그에게 커다란 시련이 닥친다.

임원 승진 및 본사 영전을 위해 실적에 목을 맨 지점장이 무리하게 중소기업인 서부오사카철강에게 5억 엔 대출건을 추진하고... 불과 6개월도 안돼 회사가 도산하자 품의전 분식회계를 못 알아챘다는 이유로 그 책임을 고스란히  한자와에게 떠넘긴다. 검토할 시간도 안주고 속전속결로 밀어붙인 지점장 때문에 자칫하다간 한자와의 은행원 경력이 끝날 수도 있는 인생 최대의 위기. 본사로부터의 강력한 징계 압박과 나 몰라라 발뺌하는 지점장을 뒤로하고 과연 한자와는 이 난국을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가.

<은행원 니시키 씨의 행방>, <하늘을 나는 타이어>로 우리에게 친숙한 나오키상 수상 작가 이케이도 준의 금융 엔터테인먼트 소설이다. 국내 출간된 작가의 전작 두 권은 모두 재밌게 읽었는데 무엇보다도 해박한 경제 지식을 바탕으로 한 탁월한 스토리텔링이 이 작가의 장기이다.

이 책의 주인공 한자와는 사택에 살며 아내와 초등 아들을 둔 평범한 가장이자 직장인이다.  하지만 이번 사태로 인해 회사의 전방위적 압력과 아내의 등쌀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하지만 그에게 닥친 시련은 그를 더욱 강하게 만든다. 그리고 모든 책임을 떠넘기며 모르쇠로 일관하는 지점장과 한통속으로 자신을 옥죄는 본사 고위직에 울분이 폭발한다. 오냐~ 당한만큼 갚아주마 ~

궁지에 몰린 한자와의 유일한 해결책은 부실 채권 회수밖에 없다. 서부오사카철강의 도산으로 연쇄부도를 맞은 하청업체 사장과 힘을 합쳐 종적을 감춘 사장의 행방을 추적하고, 회사의 매출입 결산서와 개인 입출금 내역서 등을 조사해 돈의 흐름을 추적한다. 그러한 일련의 역추적 과정을 통해 단순한 도산이 아닌 수년간 비밀리에 계획된 가증스러운 범죄임을 밝혀낸다. 그것도 예상치 못한 사람이 깊이 연루되어 있는... 사건의 진상을 모두 파악한 한자와의 통쾌한 반격이 시작된다.

책을 읽는 내내 거대 조직의 불합리한 압박에 일개 행원으로서 당당히 맞서는 한자와의 패기 넘치는 모습을 손에 땀을 쥐며 응원하게 된다. 사건이 해결되는 부분에서는 일종의 카타르시스까지 느낄 정도로 통쾌하다. 괜히 드라마로 제작되어 일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끈게 아니다. 특히, 라스트신에서 상대방을 단죄하는 대신 자신의 출세의 장으로 역이용하는 한자와의 대범한 기지와 처세술이 인상적이다.

이 책의 미덕은 자칫 딱딱하고 어려울 수 있는 금융 미스터리를 흥미진진한 엔터테인먼트 요소와 미스터리 기법을 가미해서 쉽고 재미나게 풀어쓴 것이다. 거품 경제 시대를 관통하는 은행이라는 조직의 생리를 엿보는 것이나, 친숙하지만 의미는 정확히 모르는 다양한 금융 관련 상식이나 용어를 알게된 것도 부가적인 즐거움이다. 이 책은 총 4권으로 이루어진 <한자와 나오키> 시리즈의 제1권이다. 이번 사건을 멋지게 해결한 전리품으로 차장 승진과 본사 영전을 이룬 한자와에게 또 어떤 스펙터클한 모험이 기다리고 있을까. 벌써부터 그의 행보가 궁금해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스터리 아레나
후카미 레이이치로 지음, 김은모 옮김 / 엘릭시르 / 2019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매년 연말 방송되는 TV 게임 추리쇼 <미스터리 아레나>. 올해는 10주년을 맞아 누적된 상금 이십억 엔을 놓고 미스터리 마니아들이 참가해서 열띤 추리 대결을 펼친다. 아레나는 경기장, 공연장을 의미하니 <미스터리 아레나>는 '추리 경기장'쯤으로 해석하면 될 듯. 그리고 참가자들 앞에 드디어 문제가 제시된다.

"폭우가 내리고 다리가 끊겨 고립된 별장에서 별장 주인이 피살체로 발견된다. 현장에는 매년 열리는 모임 참가차 모인 미스터리 연구회 소속 회원들밖에 없다. 전형적인 클로즈드 서클 무대에 범인은 당연히 이 중에 있다."

사건의 발단부터 전개 과정은 다중 시점으로 서술되고, 추리 게임 참가자들은 단 한 번의 기회로 범인과 논리적인 추리 근거를 제시해야 된다. 너무 일찍 정답을 외치면 빈약한 정보와 섣부른 판단으로 실패 확률이 높고, 반대로 너무 늦게 버저를 눌렀다가는 다른 참가자에게 정답을 뺏기는 낭패를 맛본다. 기회는 오로지 단 한 번. 참가자들의 신중한 추리 대결이 펼쳐지는 가운데 과연 사건의 진상과 최후의 승자는 누가 될 것인가.

한마디로 유쾌한 추리게임 쇼다. 참가자 한 명이 정답을 외치고 다른 방으로 퇴장하면 다른 참가자가 그 가설을 반박하며 새로운 가설을 제시한다. 그다음 사람은 또 다른 반박과 새로운 범인을 제시하고... 마치 1929년에 발표된 앤서니 버클리의 다중 추리의 걸작 <독 초콜릿 사건>을 보는 듯하다.

서술 트릭은 기본이고 1인 시차 트릭, 다중 인격 트릭, 남녀 오인 트릭, 투명인간 트릭, 일인이역 트릭, 이인일역 트릭 등 본격 미스터리에서 나올 수 있는 오만가지 트릭이 총출동한다. 거기에 남녀 관계, 공범 여부, 별장의 비밀 구조 등 머리 쓸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선 문제편의 등장인물 간의 감정선, 이해관계 포함 모든 동작과 대사, 지문 하나하나에 온 신경을 집중해야 한다. 열네 명의 참가자들이 제각각 풀어놓는 열네 개의 가설을 전후 사정을 대입시켜 검증하며 읽다 보니 머리에 쥐가 날 지경이다. 이 책을 쓴 작가도 대단하고, 열심히 따라가는 독자도 정말 열일한다.

그렇게 문제편과 해답편으로 다소 단조롭게 전개되던 이야기가 결말부에서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전혀 예상치 못한 전개다. 이건 평범한 추리쇼가 아니다. 거대한 흑막이 숨겨져있는... 그리고 밝혀지는 문제편 사건의 진상은 글쎄...암만 주최측의 농간일지라도 썩 개운치가 않다. 호불호가 갈린다고나 할까... 얼핏 보면 녹스의 십계에도 위배되는 것 같기도 하고...암튼 오랜만에 두뇌를 풀가동해서 재밌게 읽었다. 벌스턴 선공법, 레드헤링 같은 본격 미스터리에 관한 새로운 용어를 접한 것도 부가적인 즐거움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무증거 범죄 추리의 왕
쯔진천 지음, 최정숙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9년 4월
평점 :
절판


우리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용의자 X의 헌신>에 열광한 이유는 트릭을 수반한 추리소설적 완성도도 높지만 무엇보다도 순애보를 앞세워 독자의 심금을 울리는 드라마틱한 스토리텔링에 있을 것이다. 중국 추리소설 3대 인기 작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작가의 '추리의 왕' 시리즈의 시발점인 이 작품은 여러 면에서 '중국판 <용의자 X의 헌신>'이라 불릴만하다. 천재 학자 간의 대결 구도라는 인물 설정도 그렇고, 타인을 위해 증거를 조작하고 자신을 희생하는 스토리 등 유사점이 많다. 후기에도 있듯이 작가는 <용의자 X의 헌신>을 읽고 많은 영감을 받은 듯 싶다.

줄거리는 크게 특정한 증거만 반복해서 남기며 신출귀몰하는 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을 추적하는 이야기와 두 젊은 남녀의 피치 못한 불운한 살인을 목격하고 증거를 조작해서 그들을 도우려는 한 남자의 이야기로 흘러간다. 그리고 그 틈 속으로 이 시리즈의 주인공인 전직 경찰 출신 수학자가 등장한다. 교묘한 트릭으로 증거를 조작해 두 남녀를 법망으로부터 보호하려는 천재 법의학자. 예전 동료가 연루됐음을 눈치채고 사건에 깊숙이 개입하는 천재 수학자. 감추려는 자와 밝혀내려는 자의 숨 막히는 두뇌싸움이 볼만하다.

범죄가 이루어지는 사회적 동기와 그 인물을 탐구하는 사회파 추리의 재미는 물론 정교한 트릭과 날카로운 추리가 어루어진 본격 추리의 재미도 있지만 이 책의 장점은 무엇보다도 극적 긴장감을 유지시키는 드라마틱한 전개에 있다. 8년 전 실종된 부인과 딸을 찾는 법의학자의 기구한 사연과 두 남녀를 도우려는 이유, 졸지에 살인자가 되어 경찰의 포위망에 안절부절하는 두 남녀, 희미한 단서로부터 차근차근 범죄의 실체에 접근해가는 천재 수학자.

등장인물간 자신의 신념과 철학, 가치관 등에서 오는 내적 갈등과 고뇌, 자기방어적 행동들이 서로의 입장 및 이해관계와 상충되면서 손에 땀을 쥘 정도로 긴장감이 넘친다. 과연 이 작품의 결말은 어떻게 마무리될까. 굳이 옥에 티를 찾자면, 그렇게 사건 수사와 법의학에 정통한 범인이 피해자의 핸드폰에 들어있는 음성을 녹음해서 알리바이 조작에 사용했다면 당연히 오리지널 음성을 삭제하던지 핸드폰을 파쇄했어야 하지 않을까.

밝혀지는 연쇄 살인의 동기를 보면 인간적 연민이 들 정도로 측은한 면도 있지만 한편으론 개인의 목적을 위해 타인의 목숨을 희생시키는 이기적인 욕심의 발로라서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 책에도 수차례 나오지만 목적이 어떻든 살인과 범죄는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찬호께이의 <13.67> 이 빅 히트를 친 이후로 중화권 추리소설을 제법 접할 기회가 생기는데 이 책을 포함해 재미와 완성도가 높은 작품들이 많아 무척 만족스럽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