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증거 범죄 추리의 왕
쯔진천 지음, 최정숙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9년 4월
평점 :
절판


우리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용의자 X의 헌신>에 열광한 이유는 트릭을 수반한 추리소설적 완성도도 높지만 무엇보다도 순애보를 앞세워 독자의 심금을 울리는 드라마틱한 스토리텔링에 있을 것이다. 중국 추리소설 3대 인기 작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작가의 '추리의 왕' 시리즈의 시발점인 이 작품은 여러 면에서 '중국판 <용의자 X의 헌신>'이라 불릴만하다. 천재 학자 간의 대결 구도라는 인물 설정도 그렇고, 타인을 위해 증거를 조작하고 자신을 희생하는 스토리 등 유사점이 많다. 후기에도 있듯이 작가는 <용의자 X의 헌신>을 읽고 많은 영감을 받은 듯 싶다.

줄거리는 크게 특정한 증거만 반복해서 남기며 신출귀몰하는 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을 추적하는 이야기와 두 젊은 남녀의 피치 못한 불운한 살인을 목격하고 증거를 조작해서 그들을 도우려는 한 남자의 이야기로 흘러간다. 그리고 그 틈 속으로 이 시리즈의 주인공인 전직 경찰 출신 수학자가 등장한다. 교묘한 트릭으로 증거를 조작해 두 남녀를 법망으로부터 보호하려는 천재 법의학자. 예전 동료가 연루됐음을 눈치채고 사건에 깊숙이 개입하는 천재 수학자. 감추려는 자와 밝혀내려는 자의 숨 막히는 두뇌싸움이 볼만하다.

범죄가 이루어지는 사회적 동기와 그 인물을 탐구하는 사회파 추리의 재미는 물론 정교한 트릭과 날카로운 추리가 어루어진 본격 추리의 재미도 있지만 이 책의 장점은 무엇보다도 극적 긴장감을 유지시키는 드라마틱한 전개에 있다. 8년 전 실종된 부인과 딸을 찾는 법의학자의 기구한 사연과 두 남녀를 도우려는 이유, 졸지에 살인자가 되어 경찰의 포위망에 안절부절하는 두 남녀, 희미한 단서로부터 차근차근 범죄의 실체에 접근해가는 천재 수학자.

등장인물간 자신의 신념과 철학, 가치관 등에서 오는 내적 갈등과 고뇌, 자기방어적 행동들이 서로의 입장 및 이해관계와 상충되면서 손에 땀을 쥘 정도로 긴장감이 넘친다. 과연 이 작품의 결말은 어떻게 마무리될까. 굳이 옥에 티를 찾자면, 그렇게 사건 수사와 법의학에 정통한 범인이 피해자의 핸드폰에 들어있는 음성을 녹음해서 알리바이 조작에 사용했다면 당연히 오리지널 음성을 삭제하던지 핸드폰을 파쇄했어야 하지 않을까.

밝혀지는 연쇄 살인의 동기를 보면 인간적 연민이 들 정도로 측은한 면도 있지만 한편으론 개인의 목적을 위해 타인의 목숨을 희생시키는 이기적인 욕심의 발로라서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 책에도 수차례 나오지만 목적이 어떻든 살인과 범죄는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찬호께이의 <13.67> 이 빅 히트를 친 이후로 중화권 추리소설을 제법 접할 기회가 생기는데 이 책을 포함해 재미와 완성도가 높은 작품들이 많아 무척 만족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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