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어릴 적은 아니었고 나름대로 가치관(?)이 잡혀가던 국민학교(당시 표기법을 따르자면) 5학년 시절. 나는 국민학교 5학년이던 1986년 봄에 집에 새로 들여온 VTR 덕분에 영화 삼매경에 빠져들게 되었다. 영화와 더불어 매주 수요일 밤 10시 55분 MBC에서 방영해주던 초특급 블록버스터 외화 시리즈 '맥가이버'를 예약 녹화한 후 다음 날 방과 후 친구들과 함께 집에서 '맥가이버'를 보면서 그만의 기상 천외한 발명품에 감탄하곤 하였다. 성우 배한성 아저씨의 코 맹맹한 목소리가 맥가이버란 인물과 캐릭터를 더욱 빛내주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당시만 해도 양지운, 배한성과 같은 성우 아저씨들의 주가도 꽤 높았다. 외국 인기 드라마에서 주인공들의 목소리를 더욱 멋있게 포장해주는 목소리와 더불어 뛰어난 연기력을 발휘해 준 덕분에...
'맥가이버'와 더불어 1986년 4월 26일 일요일 저녁 10시 KBS 1TV 명화극장에서 방영해 준 '슈퍼맨2'도 내가 가장 아끼던 예약녹화 소장목록 이었다. 녹화하고 나서 틈만 나면 '슈퍼맨2'를 돌려보며 빨간 망토 아저씨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곤 하였다.
1985년 여름 극장가를 뜨겁게 달구었던 '람보2'도 동네 비디오 가게에서 지금으로 따지면 다운로드 영화처럼 온 동네를 장악했던 복제 비디오로 빌려봤는데, 1년전 피카디리 극장에서 상영한 화면을 그대로 캠코더에 복사해서 녹화한 화면이라 자막도 극장 자막 그대로 생생하게 보곤 했다. 복제 비디오 영화들은 CIC 비디오가 나오기 전까지 동네 비디오 가게의 막대한 캐시카우 역할을 맡았었다. 당시 어처구니 없는 이유로 수입이 금지되었던 '빽 투더 퓨처', '록키4' 등의 헐리웃 블록버스터 영화도 극장에서 개봉하기 전에 복제 비디오 테잎을 통해 접할 수 있었다.
복제 비디오 영화의 저급한 화질에 질렸는지 국민학교 5학년 겨울방학을 맞아 부모님께 극장에서 영화 한 편 보게 해달라고 간절하게 졸라댔고, 결국 허락을 받을 수 있었다. 대신 어머니의 가이드 하에서 말이다. 사실 종로 일대 극장가 가는 길이 워낙 생소했던 탓에 어머니의 가이드가 없었으면 상당히 헤맸을 것이다. 극장에서 보기로 한 영화는 허리우드 극장에서 개봉한 '킹콩2'였다. 어머니, 동생과 함께 지하철 3호선을 타고 종로 3가역에서 내리니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사람들 품에 파묻혀 종로 3가역 출구로 나서는 동안 출구 바로 밑에 영화 포스터 들이 일렬로 쭉 진열되어 있었다. 우리 일행 앞에 연인 한 커플이 포스터에 나와 있는 성룡 얼굴을 보면서 "그래 이 사람이 나온 거야" 하면서 진한 기대감을 표시하고 들뜬 걸음을 재촉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난 출구를 나서기 직전에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다 '킹콩2'를 보러 가면 과연 원하는 조조 영화를 볼 수 있을까 내심 걱정하였다. 그러나 출구를 나오니 그 많은 인파들이 갑자기 영화 '십계'에서 바닷물이 갈라지는 것처럼 두 갈래로 갈라지는 장면을 목격하였다. 두 갈래로 갈려진 사람들의 목적지는 다름 아닌 종로 3가에서 마주보고 위치한 피카디리 극장과 단성사였다.
피카디리 극장에선 1970년대부터 90년대 초반까지 국내 극장가를 주름 잡았던 성룡이 주연한 '용형호제'가 맞은 편 단성사에선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초기 연출작이자 여전사 시고니 위버를 스타덤에 올려놓은 '에일리언2'가 상영되고 있었다. 숫자의 우열을 가릴 수 없을 만큼 구름인파가 극장 앞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처음 접해보는 진풍경에 어안이 벙벙해져 있었지만, 우리 일행은 영화 시간에 맞추기 위해 바쁜 걸음을 재촉하였다. 상당히 꽤 많은 거리를 걸어가다 보니 공원이 보였고, 그 공원을 끼고 허름한 식당들이 즐비해 있는 골목을 지나서 발견한 것은 구멍가게 같이 단촐한 매표소였다. 거기서 표를 끊고 바로 극장입구가 나오겠거니 생각했는데,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까지 올라가야 극장에 도달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아주 어릴 적 기억이 희미한 시절 이후 처음으로 찾아온 종로 일대의 극장의 구조가 꽤나 낯설고 특이해서 뇌리에 선명하게 남을 수 밖에 없었다.
엘리베이터에는 안내를 맡는 여직원이 함께 탑승하였고, (당시 신세계, 롯데 등 시내 주요 백화점에도 엘리베이터에 항상 안내 여직원이 탑승하였다.) 엘리베이터는 극장을 향해 올라갔다. 극장으로 향하는 동안 어떤 아저씨 한 분이 여직원에게 원래 조조 시간표가 10시 40분이었는데 왜 11시 30분으로 바뀌었냐고 물었더니 그 여직원의 대답은 상당히 명쾌하였다. "사람이 없어서요."
허리우드 극장에 도착하기 직전 목격했던 피카디리와 단성사 극장의 풍경과는 사뭇 대조되는 분위기였다. 4층에 내리니 뻥뚫린 옥상 공간에 극장이 덩그러니 놓여져 있었다. 참으로 특이한 구조였다. 매진은 아니었지만 당시 1200석의 허리우드 극장은 빈자리가 그다지 눈에 뜨이지 않을 정도로 거의 꽉 들어차 있었다.
영화는 생각보다 지루하였다. 막판에 결정적인 액션장면은 모두 가위질이 되었고, 킹콩은 자신의 새끼 킹콩 옆에서 장렬한 최후를 맞이하는 장면이 불쑥 튀어 나왔다. 20년이 훨씬 지난 후에 케이블 TV에서 우연히 '킹콩2'를 보게 되었는데 생각 외로 엽기적인 잔혹한 장면들이 많이 나왔었다. 그러다보니 연소자 관람가 등급을 받기 위해 당시 영화 수입사는 자진해서 잔혹한 장면들을 도려낸 듯 싶었다.
영화보다 더욱 인상 깊었던 것은 은근한 낭만이 느껴지는 허리우드 극장 만의 분위기였다. 영화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에서 주현과 오미희의 그레이 로맨스가 펼쳐진 무대로도 등장했던 허리우드 극장은 1970년대, 1980년대 국제극장과 더불어 흥행 영화들을 대거 상영하면서 꽤 많은 관객들을 모았던 곳이다. 그런데 1980년대 후반에는 대한극장, 단성사, 피카디리, 국도, 중앙, 서울 극장등에 다소 밀리는 분위기였다. 1996년 씨네21이 진행한 극장 만족도 조사에서는 단성사와 더불어 시설이 더러운 악명높은 극장으로 뽑히는 불명예를 안기도 하였다. 하지만 1997년 3개관 짜리 멀티플렉스로 변신하면서 다시 관객을 끌어모을 조짐을 보인다. 그러나 1998년 제대로 된 멀티플렉스 극장 CGV가 오픈한 이후 허리우드 극장은 2000년대 접어 들면서 관객들의 관심 속에서 멀어지게 된다.
지금은 실버 상영관이 자리하고 있다. 낙원상가는 구조가 참 특이하다. 1층은 뻥 뚫려 있어서 상가 건물 아래로 도로가 형성되어 있다. 그리고 낙원상가로 진입하는 골목에는 사람 사는 정겨운 냄새가 느껴지는 족발집과 각종 선술집들이 자리하고 있다. 낙원상가는 악기 전문점으로 악기 매니아들에게는 성지와도 같은 곳이다. 1960년대 후반 오픈 당시에는 예식장과 볼링장, 그리고 허리우드 극장 등이 함께 자리하여 지금으로 따지면 멀티 플렉스처럼 놀거리가 한데 모인 곳으로 각광을 받았었다. 바로 뒤편에는 국내 최초의 주상복합 아파트 낙원 아파트가 자리해 있는데 당시에는 꽤 유명한 연예인들이 살았다고도 한다.
요즘은 잘 찾지 않게 되는 낙원상가와 허리우드 극장이지만 만약에 리모델링을 한다면 허리우드 극장 입구 앞에 놓여있는 옥상 공간에 저렴한 재즈바가 운영되면 어떨까 싶다. 석양이 지는 모습을 보면서 도심 속에서 야외 재즈공연도 즐기고 시원한 생맥주 한잔과 함께 한여름의 운치를 그윽하게 느낄 수 있는 낭만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뒤에 위치해 있는 낙원 아파트도 대대적으로 리모델링을 해서 변신하면 이전의 전성기 못지 않은 새로운 매력을 풍길 수 있을거란 생각도 들게 된다. 만약 내가 꿈꾸는 작가로서의 삶이 실현되는 그 때, 낙원상가 옥상 위에 재즈바가 조성되고 낙원 아파트가 새롭게 리모델링 된다면 낙원 아파트에 작업실을 마련하고 잠 못드는 일요일 밤마다 도심 속의 낙원상가 옥상에서 재즈와 생맥주의 여유를 즐기는 그런 삶을 꿈꿔본다. 잠 못드는 일요일 밤에 내 멋대로 주절주절 읊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