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는 미국과 소련으로 대표되는 동구권과 서구권의 갈등이 절정에 달하던 냉전시대였다. 베트남 전쟁의 패전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헐리웃은 '람보', '코만도' 등과 같은 새로운 유형의 전쟁 히어로물을 쏟아내면서 전 세계에 헐리웃 컨텐츠를 확산시켰다.
'람보' 시리즈를 통해 1980년대 최고의 박스오피스 스타로 떠오른 실베스터 스탤론의 출세작은 1975년에 발표한 '록키'였다. 무명복서가 세계 타이틀 매치에 도전하는 단순해 보이는 스토리이지만 뒷골목을 전전하던 '록키 발보아'가 자신을 둘러싼 어려움을 극복하고 마지막 라운드 종이 울릴 때까지 황소처럼 버티는 불굴의 의지는 당시 베트남 전쟁으로 어수선하고 가슴 속의 상처를 입은 미국인들에게 큰 희망을 안겨 주었다. '록키'를 통해 아카데미 작품상이라는 인생 최대의 영광을 얻은 실베스터 스탤론은 이후 '록키' 시리즈와 더불어 '람보'시리즈로 미국을 뛰어넘어 전 세계 박스오피스에 막대한 영향력을 미치는 거물로 성장하게 된다.
1980년대 중반 동서 냉전시대의 시계추는 서서히 미국 쪽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한다. 막강한 경제력과 자본을 앞세워 공산주의 대표되는 세력들에 비해 힘의 우위를 입증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헐리웃이라는 거대한 문화 컨텐츠는 전 세계 영화팬들을 부지불식 중에 서서히 세뇌시키고 있었다.
냉전시대를 소재로 한 다양한 영화들이 쏟아져 나왔는데 '록키' 시리즈도 예외는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소련을 대놓고 노골적으로 비꼬는 장면들이 나오는데 다시 떠올려보니 약간 손발이 오그라드는 장면들도 꽤 있는 듯 싶다. 하지만 그 당시엔 그런 묘사가 통하였다.
1,2편의 성공에 힘입은 '록키' 시리즈는 3편부터 박스오피스 오락물로 성격을 바꾸기 시작했다. 3편에는 가운데 머리털만 있는 그 유명한 '미스터 T' (국내에선 TV 시리즈 물 'A 특공대'의 BA 캐릭터로 널리 잘 알려져 있다.)를 강력한 도전자로 내세워 오락성을 강화했고, 그 전략은 주효했다. 또한 '록키3'에 삽입된 주제곡 'Eye of Tiger'도 영화와 더불어 엄청난 히트를 기록했다.
'록키 4'에서는 소련인 복서를 내세운다. 무서운 펀치력을 지닌 소련 복서 드라고 역으로 등장한 돌프 룬드그렌은 이 영화 한편을 통해 전 세계 영화팬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 주었고, 이후 '마스터 오브 유니버스(히맨)','레드 스콜피온','유니버셜 솔져' 등의 영화를 통해 1990년대 초까지 액션 스타로 명성을 떨치게 된다.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지닌 드라고는 미국에서 펼쳐진 전 세계 헤비급 챔피언 아폴로와의 논 타이틀 매치에서 강력한 펀치로 결국 아폴로를 죽음으로 내몰게 된다. 이에 자극받은 록키는 드라고와의 한판승부를 다짐하게 되고 다시 놓았던 복싱 글러브를 잡게 되고 '죽음의 땅' 소련으로 향하게 된다.
훈련장면도 상당히 대조적으로 편집되서 나온다. 약물과 기계적인 힘을 빌려 훈련하는 드라고의 모습과 생자연 속에서 거의 원초적으로 훈련하는 록키의 모습을 대조시킨 장면을 통해 소련을 은근히 디스하고 있으며 아예 드라고와 록키의 시합 도중 쉬는 시간에는 경기가 뜻대로 풀리지 않자 당시 소련 서기장이었던 고르바초프와 똑같이 생긴 사내가 정부 고위급 인사로 등장하여 드라고를 멱살잡는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 지금보면 상당히 오그라드는 장면들인데 당시에는 그렇게 흥미진진할 수 밖에 없었다.
드라고의 살인적인 펀치에 록키는 넉다운 직전까지 가지만 늘 그렇듯이 불굴의 의지로 버티고 결국 드라고를 링 위에 눕히게 된다. 그러면서 미국 성조기를 온 몸에 칭칭 휘감은 록키는 마지막 승리의 소감을 밝히는 장면에서 갑자기 평화의 사절로 변신하여 '미국과 소련이 함께 잘 살아보세'를 외치면서 영화는 막을 내린다.
미국과 소련 복서의 맞대결이라는 흥미진진한 소재를 오락성을 최대한 가미하여 재미를 잘 살린 '록키4'는 1985년 겨울 북미 박스오피스를 석권하면서 북미 흥행수익 1억 2천만불이 넘는 대성공을 거두었는데, 그 기록은 복싱을 소재로 한 영화들 중 최고의 흥행성적으로서 지금도 깨어지지 않고 있다.
필자는 이 영화를 초등학교 시절 동네 비디오 가게에서 당시 최고의 트렌드였던 복제 비디오 테이프로 빌려서 집에서 친구들과 함께 신나게 열광하면서 보았다. 그런데 이 영화는 1985년 국내에 수입금지가 되었다가 2년여가 지난 1987년 7월에 스카라 극장에서 개봉하였다. 수입금지된 이유는 무척이나 황당하다 못해 '많이 당황스럽다.' 미국과 소련의 갈등을 너무 노골적으로 묘사해서 민족의 대사였던 1988 올림픽을 앞두고 미수교 국가들에게 악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는 것이 사유였다.
이미 동네 비디오 가게에서 대여 1위를 달리고 있던 영화를 2년여가 지나서 개봉한 탓에 '록키4'는 서울에서 92,000여 명밖에 동원하지 못하였다. 이미 볼 사람들은 다 봤기 때문에. 어처구니 없는 수입금지 탓에 국내에서 제대로 빛을 보지도 못하고 막을 내린 영화 '록키4'는 복싱을 소재로 한 영화들 중 가장 오락성이 뛰어난 블록버스터 영화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