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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고령화 가족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4월
평점 :
엄마는 여전히 별말이 없었다. 내가 하는 일이 어떻게 되어가는지, 어쩌다가 집으로 들어오게 되었는지에 대해 한마디도 묻지 않았다. 대신 화장품을 팔러 밖으로 부지런히 돌아다니는 와중에도 꼬박꼬박 끼니를 챙겨주었다. 나는 누에처럼 엄마가 차려놓은 밥을 먹고 다시 방으로 기어들어가 잠을 잤다.
언젠가 오함마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다 온 집 안에 비린내가 진동한다며 투덜댔다. 엄마가 방금 전 프라이팬에다 큰 자반고등어 한마리를 구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나는 식탁에서 밥을 먹고 있었는데 퍼뜩 그 장면을 어디선가 본 것 같은 기시감이 들었다. 그리고 곧 그것이 오래 전, 집에서 자주 벌어지던 소동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버지를 포함해 식구들은 모두 비린 것을 싫어했다. 하지만 나는 유독 고등어나 갈치 같은 비린 생선을 좋아해 엄마는 식구들의 거센 항의에도 불구하고 순전히 나를 위해 자주 고등어를 굽곤 했던 것이다. 그제야 나는 상위에 올라와 있는 반찬들이 모두 어릴 때 내가 좋아하던 것들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욱국과 고들빼기김치, 조개젓과 감자조림, 뱅어포 등 무엇 하나 특별하달 게 없는 음식들이었지만 이십 년이 넘은 그때까지도 엄마는 내가 좋아하는 음식들을 잊지 않고 용케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순간, 나는 갑자기 코끝이 찡해져 식탁 위에 고개를 박고 서둘러 수저를 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