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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분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월
평점 :
그의 부드럽고 자신만만하고 느긋한 태도를 보자 무슨 마법을 부렸는지 늘 유쾌하고 멋져 보이던 고등학교 시절의 남자아이들이 떠올랐다. 학생회장을 하면서 인기 최고인 치어리더나 고적대장 여자친구의 숭배를 받던 아이들. 이 아이들은 굴욕이라는 것을 몰랐다. 그러나 나머지 우리에게는 아무리 쫓으려 해도 달아나지 않고 머리 위에서 윙윙대는 파리나 모기처럼 굴욕이 따라다녔다. 도대체 진화의 원리는 무슨 생각으로 백만 명 가운데 한 명만 내 앞에 서 있는 이 아이처럼 만들어놓은 것일까? 다른 모든 사람이 자신의 불완전함을 돌아보게 한다는 것 외에 이런 잘생긴 외모가 무슨 역할을 한단 말인가? 나도 외모의 신에게 완전히 버림받았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이 귀감이 될 만한 인물이 제시하는 가혹한 기준에서 보자면 상대적으로 평범해질 수밖에 없었다. 마치 내가 기형으로 전락하는 기분이었다. 나는 이야기를 하면서도 일부러 그를 보지 않으려 했다. 그의 이목구비는 완벽했으며, 그의 생김새는 사람을 초라하게 만들고, 수치스럽게 만들고, 그래서 의미심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