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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랑일까 - 개정판
알랭 드 보통 지음, 공경희 옮김 / 은행나무 / 2005년 11월
평점 :
앨리스가 어떤 사람이냐고 물으면, 사람들의 입에서는 대뜸 '몽상가'란 말이 나왔다. 문명과 그에 따른 회의주의란 외피 아래에서, 그녀의 눈빛은 꿈꾸는 듯, 현실에서 벗어나 영원히 다른 세상으로 빠져든 사람처럼 초점을 잃었다. 옅은 초록 눈동자에는 상실감과 불완전한 갈망이 섞인 우수가 깃들어 있었다. 그녀는 어색하고 조금은 수줍게, 어지러운 세상에서 진부한 존재에 의미를 불어넣을 무언가를 찾아 헤맸다. 그리고 아마 시대 탓이겠지만, 이런 자기초월에 대한 갈망은 [신학적으로 말해서] 사랑이라는 관념과 같은 것으로 자리 매김하게 되었다.
앨리스는 ‘관계’라는, 의사 불소통의 우스운 연속을 익히 잘 알면서도, 인정할 수 없을 정도로 열정에 대한 믿음을 지니고 살아왔다. 식품점 통로에서 이걸 살까 저걸 살까 망설일 때, 통근 열차에서 신문 부고 난을 훑어보는 순간, 청구서 봉투에 붙이려고 달착지근하면서도 쌉싸래한 우표에 침을 바를 때와 같은 뜻하지 않은 순간에 자신의 반쪽을 만나리라는 생각을 유치하지만 고집스럽게 잃지 않았다.
냉소도 지겹고 본인과 타인의 결점만 찾아내는 것도 지겨워진 그녀는, 다른 사람을 향한 감정에 휩싸이고 싶었다. 선택의 여지 따위가 없는, 한숨지으며 “하지만 그이와 내가 정말 어울릴까?” 하고 물을 새도 없는 상황에 맞닥뜨리기를 바랐다. 분석이나 해석 따위가 불필요하고, 물을 필요도 없이, 상대가 자연스레 존재하는 상황을.
상대의 짙은 눈빛이나 세련된 정신세계 때문이 아니라 저녁 내내 혼자 일기수첩이나 들여다보고 싶지 않아서 연애를 하려고 하는 것은 낭만적인 사랑 개념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일이다. 자기 문제를 홀로 직시하지 않으려고 다른 사람의 문제를 끌어들이는 것보다 더 혐오스런 일이 있을까? 하지만 보람도 없이 지치도록 탐색한 끝에, 상상력을 길러주는 존재와 주택 대출금 부담을 함께 짊어지기로 한다면 그것은 용서[적어도 이해]받을 만한 일이다. 그 사람은 우리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버리지 않을 만큼 좋은 사람이어야 한다. 그의 굽은 등과 특이한 정치적 견해, 새된 웃음소리는 무시할 수 있어야 하며, 우리는 더 나은 상대가 나타나리라는 희망을 간직할 수 있다.
앨리스는 사랑을 이런 실용적인 의미로 생각하기 싫었다. 수영장에서 우연히 만난 인물과 사귀는 것은 마뜩지 않았다. 그건 생리적, 심리적 필요라는 미명하게 사교계의 불량품들과 비겁하게 타협하는 거니까. 일상생활에 미묘한 농담(濃淡)이 필요하긴 해도, 어른의 세계에는 초월이란 개념이 끼어들기 어려워도, 그녀는 시인들과 영화인들이 미학의 마법 공간에서 아름답게 그려낸 영혼의 결합 같은 관계가 아니면 타협하지 않을 작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