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도는 누구의 땅인가 살림지식총서 140
이성환 지음 / 살림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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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도 문제에 관한 한 이 책은 작지만 대단히 알찬 내용을 담고 있다. 간도문제가 촉발된 역사적 배경과 한국-중국 양국의 갈등과 분쟁, 그리고 한국의 외교권을 강탈한 일본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만주의 권익과 간도 영유권을 교환한 1909년의 조약에 이르기까지 시간적 순서에 따라 조목조목 간도 문제를 다양한 각도에서 접근하고 있다. 한편 간도의 조선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파견된 이범윤이 중국의 압력에 대항해 현지 주민들로 구성된 약 500명의 사포대를 결성해 국토를 사수하기 위해 노력하였다는 점은 이 책을 통해 늦게나마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다. 이범윤은 이어 러시아군과 연합해 항일운동을 전개해가며 그 뒤로 간도지방이 조선독립운동의 주무대가 되는 과정에도 커다란 기여를 했음을 알 수 있었다. 한편 국제법적으로 간도가 중국의 배타적인 영토가 될 수 없는 이유를 20세기 초에 한-중-일-러 4국간에 이뤄진 각 조약문의 해석을 통해 명쾌하게 짚어내고 있다. 이 책의 가장 훌륭한 부분이 아닐까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헌법 제3조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로 한다'는 사실상 오늘날에 와서는 무의미한 이 조항이 간도문제에 있어 우리의 발목을 잡는다는 중요한 사실을 간과하지 않고 후반부에 언급하고 있다. 개인적인 견해로도 역시 헌법제3조의 경우 삭제하거나 혹은 저자가 제안한 상해임시정부 임시헌법 제2조를 따르거나, 아니면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 외에 따로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지역을 포괄한다는 규정을 추가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문고판인데다 크기도 작아 부담없는 한편, 간도 문제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을 제고하고 향후 통일 이후를 대비하여 한국의 권익을 적극 보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러한 연구 성과물들이 앞으로도 추가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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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
J.M.G. 르 클레지오 지음, 최수철 옮김 / 문학동네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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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 살아가며 간직하는 무수한 기억의 단편들 중에서도, 멋진 항해의 기억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그대로 남는 것이다. 그의 머리 속에서 바다와 파도, 구름의 색채감과, 팽팽하게 바람을 받으며 펼쳐진 돛의 인상은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생생히 남는다.
르 클레지오는 대단한 소설가다. 책장을 넘기는 것 만으로 그 모든 체험이 마치 나의 기억이 된 듯 경탄을 안겨주는 이 작가는 항해의 뜨겁고 차가운 맛을 모두 아는 사람은 아니지만, 사람의 기억은 단어보다 이미지에 의존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는 단지 단어를 구성해 하나의 연속된 이미지를 만들었을 뿐이지만, 그것이 마음 속에서 어떤 울림을 갖는지 미리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작가는 그를 제외하면 아주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조금 전, <우연>을 다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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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지프의 신화
알베르 까뮈 지음, 이가림 옮김 / 문예출판사 / 199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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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서 다시 굴러떨어지는 바위를 바라보며 산 아래로 말없이 내려가는 순간에 시지프스의 말 없는 기쁨이 있다고 까뮈가 썼는데 현실도피의 가장 극적이자 강력한 수단인 자살만을 부조리한 운명의 대척점에 두었던 그가 소극적 현실도피의 가능성을 생각해 보지 않았을 리 없지만 시지프스가 왜 자살하지 않았는지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언급하지 않았다. 물론 그는 신화 속에서 영원히 벌을 받게 되어 있으니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면 그만이지만 돌이 아래로 굴러내려 가는 동안 산 위에서 보온병에 담긴 커피라도 한 잔 하고 있으면 되는 것 아닌가. 하다못해 담배는 한 대 피울 수 있을 것...
돌 따위 아무래도 좋다. 어딘가는 있겠지. 어디로 굴러내려갔던 천천히 찾자고. 어디 가서 박혔는지 알려고 바위 뒤를 따라서 달려내려 가야할 필요는 없으니까. 시지프스의 고원을 상상한다.
그는 더 이상 바위가 어디로 굴러떨어질까 고민할 필요가 없다. 높고 평평한 고원에서 축구공 삼아 놀면 그만이다. 기대 자도 좋다. 이쯤 되면 알베르는 비웃는다. 관념의 상징을 멋대로 조작하지 말라고. 그럼 나는 시지프스의 입장에서 반론한다. 원래 상징은 내 마음대로라고. 이제 그 신화의 바위는 형벌이나 운명이 아니라 달력 갈피 사이마다 아주 조금씩 쌓이는 먼지 같은 것이라고.
그러나 까뮈는 다시 말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계는 영겁의 세계와는 무관하며, 고통에 대한 인식은 늘 즉물적인 것이라고. 내가 또 말한다. 웃기지 마라. 어설픈 쇼펜하우어 흉내내지 마라. 그래서 나와 까뮈 사이에 논쟁이 벌어지고 격해지고 마침내 둘이 서로 잡아뜯고 싸울 때쯤 바위는 저절로 아래로 굴러내려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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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의 고독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4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조구호 옮김 / 민음사 / 199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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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목욕하는 동안에는 아무도 죽지 않는다>를 읽었다. 제목이 암시하는 반어적인 의미를 알고 싶으면 <백년 동안의 고독>을 읽으면 된다. 그렇다. 이 소설은 마치 수호지에 등장하는 반금련의 이야기만을 따로 뽑아낸 본격 성애 문학 <육포단>처럼 <백년 동안의 고독>에서의 절세 미녀인 레메디오스의 이야기다.

<백년 동안의 고독>에서는 레메디오스가 목욕하는 장면을 훔쳐보기 위해 낡은 지붕위로 올라갔다가 그녀와 이야기까지 하던 도중 지붕이 무너져 추락해 죽는 남자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 남자는 결국 레메디오스가 목욕이 끝나자마자 죽었다. 소설의 작가 마크 빌라는 이 레메디오스를 바라보는 수많은 남자들 중의 한 명이 되어 1인칭 주인공 시점에서 이야기를 시작하지만, 마르케스의 소설이 주는 정치적 메세지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오직 바라보는 시점의 거리에 따라 한 여인이 얼마나 다양하게 조명될 수 있는지의 문제와 그 소설적 형상화에만 그의 시선을 집중했다.

그렇지만 이 소설은 성애문학은 아니다. 오히려 심리소설에 가깝다고 할 이 소설의 시대적 배경 또한 마르케스의 그것이 아니라 20세기 후반으로 설정되어서, 미국으로 대표되는 자본주의 세력의 침입이 마콘도에 미치는 파장을 묘사했던 <백년 동안의 고독>에서 출발한 소설이 마찬가지로 짊어져야 하는 문제에 대해 대답을 회피하고 있다. 마크 빌라는 어디까지나 개인의 감정과 그 흐름에 대해서만 천착하는 작가인 것이다.

이러한 시점이 '문학은 사회를 반영한다'는 낡은 믿음을 철두철미하게 무시하고 있다는 점이 최근까지도 기존의 평론가들에게 이 소설이 그렇게 폄하되었고 악평을 받았던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심리소설 <그녀가 목욕하는 동안에는 아무도 죽지 않았다>는 20세기 라틴아메리카 문학에서도 이처럼 독특한 지위를 점유하고 있는 작품으로서 이제야 한국에 소개되는 것은 오히려 늦은 감이 있다. 행간에서 묻어나오는 작가의 인간적인 것들에 대한 동경과 삶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성찰들은 단순히 한 여자를 바라보고 있는 젊은 남자의 애타는 심적상태를 서술하는 데 있어서 성별을 초월하여 독자의 깊은 공감을 이끌어낸다.

사건 전환의 국면마다 효과적인 복선을 도입해 작은 노력으로도 커다란 반전을 곳곳에 숨겨놓은 재주는 이 작가의 역량이 명백히 과소평가되어 왔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녀가 목욕하는 동안에는 아무도 죽지 않았다>는 지금껏 남미 문학의 거장이라 불려왔던 마르케스에서 출발했지만 마크 빌라는 청출어람으로 그를 능가하고 있다. 꼭 한 번 읽어봐야 할 책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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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1 중국, 세계를 발견하다
개빈 멘지스 지음, 조행복 옮김 / 사계절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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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1년>은 분명히 가치 있는 책인데, 반면에 허점도 많은 책이다. 명의 환관 정화가 수만명의 선원을 데리고 조공무역을 위해 아프리카 동해안까지 도달했다는 기록까지만 정설로 인정되어 있는 것을 확장한데서 이 책은 출발하는데, 휘하의 4개 함대가 이윽고 갈라져 하나는 파타고니아의 마젤란 해협을 세계 최초로 발견하고 태평양을 횡단, 또 하나는 그린란드를 한바퀴 일주하고 아이슬란드와 아조레스 군도를 발견하고 마침내 북극을 통해 베링해협을 거쳐 귀환한다. 또 다른 함대는 북아메리카 곳곳을 누비며 태평양 연안에 중국의 식민지를 건설했다... 그래서 콜롬부스와 마젤란이 세계를 일주하기 전에 모두 중국의 선단들이 전 세계를 누볐고, 유럽인들은 중국인들의 지도를 가지고 했던 항해를 다시 한 것에 불과하다.

...뭐 이런 내용이 되시겠다.

솔직히 좀 황당무계한데, 작년에 나온 <유전자 인류학>에도 보면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일부 유전자가 중국 광동인들의 것과 일치한다는 결과를 인용하면서 의문을 제기한 것과 연관해 보자면 이해가 안 되는 바도 아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중국 난파선이 발견되고, 또 명대 도자기가 실제로 발굴되었으니 물증도 있겠다, 조선의 <강리도>에 아프리카의 희망봉이 자세히 묘사되어 있고, 피리 레이스 같은 모험가들의 지도에 나오는 남극의 지형 등이 당시 중국이 아니면 어느 누구도 탐험할 힘을 갖지 못했다... 등등 여러가지 방증을 이리저리 묶고 엮어서 흥미있는 책을 만들어 냈다.

나로서는 이 책에 대해서 할 이야기가 무진장 많지만, 우선 드는 생각은 생물학 원서 두께만한 이런 책을 기획하고 집필할 만한 사람이 한국에는 왜 없느냐 하는 (정수일 씨는 무하마드 깐수이므로 제외 -0-b) 것이다. 아무래도 시야가 좁아서 그런 게지 (물론 이 책은 엄밀히 말해 인문학의 범주에서 조금 벗어나 있다). <잃어버린 문명을 찾아서>라던가 <총, 균, 쇠>, <생태 제국주의>같은 책들 말이다. (이리저리 봐도 정수일 교수의 <신라-서역 교류사>는 20세기 한국 인문학의 빛나는 결실 중 하나다)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은 어째서 정화의 중국 함대는 유럽만 빼고 전 세계를 다 돌았던가 하는 점이다. 그리고 많은 부분 물증 없이 저자의 심증만으로(특히 북극횡단이라던가 그린란드 일주 같은 가장 믿기 힘든 여정) 1차 사료에는 전혀 없는 선단의 항로를 추정하는 과정에서 아예 소설적 요소가 개입되기도 하며, 전문학자 출신이 아닌 저자의 오리엔탈리즘적 몰이해도 간간이 드러난다. (예를 들면 도교는 중국 밖으로 한 번도 전파된 적이 없다, 등등)
어쨌거나 한 번 읽어보면 손에서 놓기 힘들만큼 재미있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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