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1 중국, 세계를 발견하다
개빈 멘지스 지음, 조행복 옮김 / 사계절 / 2004년 4월
평점 :
절판



<1421년>은 분명히 가치 있는 책인데, 반면에 허점도 많은 책이다. 명의 환관 정화가 수만명의 선원을 데리고 조공무역을 위해 아프리카 동해안까지 도달했다는 기록까지만 정설로 인정되어 있는 것을 확장한데서 이 책은 출발하는데, 휘하의 4개 함대가 이윽고 갈라져 하나는 파타고니아의 마젤란 해협을 세계 최초로 발견하고 태평양을 횡단, 또 하나는 그린란드를 한바퀴 일주하고 아이슬란드와 아조레스 군도를 발견하고 마침내 북극을 통해 베링해협을 거쳐 귀환한다. 또 다른 함대는 북아메리카 곳곳을 누비며 태평양 연안에 중국의 식민지를 건설했다... 그래서 콜롬부스와 마젤란이 세계를 일주하기 전에 모두 중국의 선단들이 전 세계를 누볐고, 유럽인들은 중국인들의 지도를 가지고 했던 항해를 다시 한 것에 불과하다.

...뭐 이런 내용이 되시겠다.

솔직히 좀 황당무계한데, 작년에 나온 <유전자 인류학>에도 보면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일부 유전자가 중국 광동인들의 것과 일치한다는 결과를 인용하면서 의문을 제기한 것과 연관해 보자면 이해가 안 되는 바도 아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중국 난파선이 발견되고, 또 명대 도자기가 실제로 발굴되었으니 물증도 있겠다, 조선의 <강리도>에 아프리카의 희망봉이 자세히 묘사되어 있고, 피리 레이스 같은 모험가들의 지도에 나오는 남극의 지형 등이 당시 중국이 아니면 어느 누구도 탐험할 힘을 갖지 못했다... 등등 여러가지 방증을 이리저리 묶고 엮어서 흥미있는 책을 만들어 냈다.

나로서는 이 책에 대해서 할 이야기가 무진장 많지만, 우선 드는 생각은 생물학 원서 두께만한 이런 책을 기획하고 집필할 만한 사람이 한국에는 왜 없느냐 하는 (정수일 씨는 무하마드 깐수이므로 제외 -0-b) 것이다. 아무래도 시야가 좁아서 그런 게지 (물론 이 책은 엄밀히 말해 인문학의 범주에서 조금 벗어나 있다). <잃어버린 문명을 찾아서>라던가 <총, 균, 쇠>, <생태 제국주의>같은 책들 말이다. (이리저리 봐도 정수일 교수의 <신라-서역 교류사>는 20세기 한국 인문학의 빛나는 결실 중 하나다)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은 어째서 정화의 중국 함대는 유럽만 빼고 전 세계를 다 돌았던가 하는 점이다. 그리고 많은 부분 물증 없이 저자의 심증만으로(특히 북극횡단이라던가 그린란드 일주 같은 가장 믿기 힘든 여정) 1차 사료에는 전혀 없는 선단의 항로를 추정하는 과정에서 아예 소설적 요소가 개입되기도 하며, 전문학자 출신이 아닌 저자의 오리엔탈리즘적 몰이해도 간간이 드러난다. (예를 들면 도교는 중국 밖으로 한 번도 전파된 적이 없다, 등등)
어쨌거나 한 번 읽어보면 손에서 놓기 힘들만큼 재미있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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