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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
J.M.G. 르 클레지오 지음, 홍상희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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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사막은 멀다. 
평생토록 사막은 멀어서 또 넓어서 발걸음을 잡아 끈다.
그 아침에 일어나 바다를 미칠 듯이 그리워한다.

갈 수 없는 곳
혹은 아주 먼 옛날에 내가 가졌던, 지금의 나에게는 보여주지 않는 기억
잔잔한 파도치듯 흔들리는 낙타의 등 위에 
내가, 하늘이, 그리고 태양이

언제고 이 세상이 좁다고 생각되면 
나는 땀을 비오듯 흘리며 투박한 리듬에 몸을 맞추어
눈이 멀도록 강한 햇살 아래 검은 차양을 치고 노래하고 싶었던,
이 책은 그런 기억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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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닌의 입당구법순례행기 (入唐求法巡禮行記)
엔닌 지음, 김문경 옮김 / 중심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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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닌의 '입당구법순례행기'를 읽었다. 장보고 시대 일본 승려가 견당사신 행렬에 끼어 당나라로 오다가 배는 좌초하고 거지꼴이 되어 목숨만 겨우 건진다. 용케 살아나 신라인 통역과 신라방 사람들의 도움으로 이리저리 유랑하다 다시 일본으로 가려는데, 신라 사람들은 밤중에도 오가는 바다 날씨에 일본배 혼자 풍랑에 휩쓸려 또 엉뚱한 곳에 닿는다. 알고보니 장보고 대사의 당나라 본거지 적산법화원이다. 신라 사람들의 도움으로 밥과 옷을 얻어먹고 입고 법회도 참석하며 겨울을 나다 한 신라 스님의 도움으로 화북의 명찰 오대산행을 결심한다. 구도 일념 하나로 흉년이 든 화북 일대에서 동가숙 서가식하며 거의 거지꼴로 빌어먹다 천신만고 끝에 도착해서는 다시 이미 오대산에 와 있던 신라 사람들의 도움을 받는다. 이후 오대산에서 4년을 보내다 당의 서울인 장안에 도착해 입이 딱 벌어지고, 마침내 9년의 세월이 지나 일본으로 돌아가려니 배도 선원도 없다. 장보고 대사의 도움으로 신라 선원들로 구성된 신라 배를 얻어타고 청해진에 들러 일본으로 구사일생 돌아가게 된다. 천대까지는 아니지만 갖은 쌩고생 다 하고 돌아갔더니 일본에서는 거의 신처럼 우러러 떠받들고 새 종파의 시조가 된다. 장보고가 염장에게 암살되기 2년 전이다. 기행문 내내 일부러 자제하는 기색이 역력하지만 신라 사람 없었으면 처음부터 끝까지 불가능했을 일정이다. 신생 국가 일본에 대한 애국심으로 당나라 조공행렬에 참석한 5개국 중 일본 순서가 2번째라고 자부하는데 알고보니 1번째는 동남아 태국 먼 구석의 남조국이라는 듣보잡 나라다. 신라 발해는 벌써 따로 접견 다 끝났고 2군들만 불러모아 놓은 자리였다. 당나라 유학생 급제자 수석을 놓고 신라 발해가 다툴 때 일본은 자국의 배 한 척 없어 신라 배를 빌려타고, 당나라 도착해서는 해안가에 널린 신라사람들 공관에 얹혀 밥 빌어먹고 다니던 시절 얘기다. 초주 해주 등주 북해 오대산 장안 가는 곳 마다 도대체 신라 사람 없는 데가 없다. 당시 산동반도의 장보고 산하 적산법화원은 매일 수계식 인원이 200명 이상에 1천석 수확이 나오는 장원이 딸린 대규모 무역기관이었다는 묘사가 나온다. 돌아간 엔닌은 장보고 대사의 은혜가 골수에 사무친다며 눈물 젖은 편지를 보내고, 일본에는 적산법화원의 이름을 따 '적산대명신 장보고'를 모시는 신사까지 생긴다. 이 모든 얘기가 국사책에는 딱 한 줄 나온다. 그 많던 신라방 신라원 사람들은 다 어디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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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 보병 2023-06-17 18: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고보니 어디서 본건데 고구려 백제 신라와 고려가 우리가 학교에서 배워서 알고 있는 것과는 다르게 한반도가 아니라 실제로는 중국대륙의 동쪽에 위치해 있었다네요
 
산해경
정재서 역주 / 민음사 / 199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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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고전 중에서도 황당무계한 면에서 주역과 자웅을 겨루는 유명한 책이다. 산경과 해경으로 나누어서 각각 동서남북 어디 몇 백 리를 가면 무슨 나라가 있는데, 동에서 서까지 모두 5억10만 몇 보의 거리고, 태양이 10개가 뜨고, 거기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무슨 짐승이 있는데 몇 개의 머리에 몇 개의 꼬리가 달렸고, 중국인 아니랄까봐 짐승마다 '이걸 먹으면 어디에 좋다'는 설명이 꼬박꼬박 달려있다. (이 점이 어쩌면 제일 웃긴다) 해외동경 편에서는 군자국, 청구국, 대인국 등의 나라가 등장하는데, 워낙 다른 책에 인용이 많이 된 부분인지라 설명은 이미 접해본 것들... (이들 나라 모두는 조선을 지칭하는 것들이다) 이 책을 읽으려고 생각한 이유는 바로 산해경이 고대 중국인들의 상상력의 큰 원천이 되었기 때문이다. (노신은 어렸을 적 산해경을 탐독하며 꿈을 키워 나갔다고 했다... 그런데 대개 무슨 나라에는 머리 8개 달린 뱀이 살고 이것의 가죽을 벗겨 차면 사악한 기운을 막아준다 등등인데?) 암튼 지명 비정도 되지 않은 수많은 나라들(그것도 대부분이 어디 어디서 출발해 동으로 4백리에 한 나라, 다시 동으로 2백리에 한 나라, 다시 북으로, 동으로... 나중엔 어디쯤인지 감도 안 온다)을 거치다보면 드는 의문은 다만 한 가지. 이것들이 정말 실존했던 곳인데 다만 중국인들의 관념으로 설명이 안 되어서 신화적으로 기술된 것인지, 아니면 이들 중 대부분이 다만 막연한 상상력의 산물인지 (예를 들면 여자만 사는 나라라던가, 외다리 외팔을 가진 사람들만 사는 나라라던가, 암튼 수없이 많다) 도대체 알 수 없다는 점이다. 현대 중국에서는 각각 두 가지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연구가 되었는데, 당연히 양자 모두 문제점이 있다. 특히 산해경에 등장하는 모든 지명을 실명으로 간주하고 지도에 비정한 다음 중국의 영역에 끌어들이려는 일부 학자들의 시도는 정치적 의도가 강한 것이므로 위험하기까지 하다. 산해경은 대단한 책이다. 중세 서양인들이 막연히 지구 끝에는 용이 살고 불을 뿜는다는 식의 단편적인 세계관만을 가졌다면, 고대 중국인들은 아주 세밀히, 그것도 혀를 내두를만큼 상세하고 리얼하게, 그러나 한편으로는 용 이야기보다는 몇 배나 더 황당한 이야기들을 3만자에 걸쳐서 줄줄이 써 놓았다. 이거야말로 정말 놀랍지 않은가. 만약 진정한 동양의 판타지가 성립하려면, 산해경은 그 대단한 원천이 될 수 있다고 본다. 96년판 정재서 교수 완역판. (번역 무난하다. 최근에 이 사람이 중국신화 안내서를 썼는데, 이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혹자는 이 책을 지리서라고 하고, 또 누군가는 이 책을 무서(巫書)라고도 하고, 또 다른 이는 심지어 동식물학 도감으로 생각할 정도로 산해경에 대한 평가와 논의는 분분하다. 사마천도 감히 이 책에 대해서는 논의를 삼가겠다고 말했을 정도로 어떤 의미에선 참 대단한 책이다. 한편에서는 산해경이 중국 주변의 민족들의 희귀한 풍습을 마치 동물처럼 묘사했다 하여 중화주의의 폐해를 지적하지만, 또 다른 일각에서는 산해경이야말로 동이계의 고전이며 신조토템신앙의 발현(상상의 동물과 식물에 대한 수많은 묘사들)을 들어 상고시대 무속의 산물이라고 한다. 모두가 보는 눈이 다를 뿐. 다만 이런 생각은 해 볼 수 있다. 시기는 좀 다르지만, 로마인들이 지중해 곳곳으로 뻗어나갈 때 갈리아며 북아프리카 등지의 생활상에 대해 아주 꼼꼼하고 실리적인 묘사로 일관했다면, 기원전 4세기경 중원에 국한해 살던 한족이 넓은 중국대륙 전체로 뻗어나가면서 접한 드넓은 산천, 사람들의 습속은 그들로서는 도저히 곧이곧대로 소화해낼 수 없을 정도의 방대한 다양성을 지니고 있었지 않았나 하는 추측이다. 따라서 어느 정도의 신화적 비현실적 묘사는 필수적이었다고 할 수도 있다. 그리고 바로 그 과정에 개입되어 현실과 인식의 간극을 메워준 상고시대 중국인들의 상상력이 가깝게는 시경과 주역에서부터 멀리는 노신과 현대의 중국문학에까지 끊임없이 변주되어 오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철학이며 음악과 미술도 고대인들의 세계관을 구성하는 요소로서 중요하지만, 한족이라는 작았던 한 집단의 연속적 팽창이라고도 요약할 수 있는 중국의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산해경이란 이 터무니없는 책이 지금 우리가 가늠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커다란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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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지니 2021-02-24 05: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원전 4세기 한족은 누구를 말하는 건가 한나라 이전이니 한족은 우리 한민족밖에 없고 댕그리시조 조선을 세운 북방 유목민임
웃기게도 유방은 이들의 이름으로 국호로 삼고 정작 한이라고 알려진 이 위대한 종족에 훙노라는 원한맞힌 이를을 붙임
서양은 지금도 한이라고 부르나
기억상실한 한국인은 지들 조상을 흄노라고 말함
 
간도는 누구의 땅인가 살림지식총서 140
이성환 지음 / 살림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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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도 문제에 관한 한 이 책은 작지만 대단히 알찬 내용을 담고 있다. 간도문제가 촉발된 역사적 배경과 한국-중국 양국의 갈등과 분쟁, 그리고 한국의 외교권을 강탈한 일본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만주의 권익과 간도 영유권을 교환한 1909년의 조약에 이르기까지 시간적 순서에 따라 조목조목 간도 문제를 다양한 각도에서 접근하고 있다. 한편 간도의 조선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파견된 이범윤이 중국의 압력에 대항해 현지 주민들로 구성된 약 500명의 사포대를 결성해 국토를 사수하기 위해 노력하였다는 점은 이 책을 통해 늦게나마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다. 이범윤은 이어 러시아군과 연합해 항일운동을 전개해가며 그 뒤로 간도지방이 조선독립운동의 주무대가 되는 과정에도 커다란 기여를 했음을 알 수 있었다. 한편 국제법적으로 간도가 중국의 배타적인 영토가 될 수 없는 이유를 20세기 초에 한-중-일-러 4국간에 이뤄진 각 조약문의 해석을 통해 명쾌하게 짚어내고 있다. 이 책의 가장 훌륭한 부분이 아닐까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헌법 제3조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로 한다'는 사실상 오늘날에 와서는 무의미한 이 조항이 간도문제에 있어 우리의 발목을 잡는다는 중요한 사실을 간과하지 않고 후반부에 언급하고 있다. 개인적인 견해로도 역시 헌법제3조의 경우 삭제하거나 혹은 저자가 제안한 상해임시정부 임시헌법 제2조를 따르거나, 아니면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 외에 따로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지역을 포괄한다는 규정을 추가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문고판인데다 크기도 작아 부담없는 한편, 간도 문제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을 제고하고 향후 통일 이후를 대비하여 한국의 권익을 적극 보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러한 연구 성과물들이 앞으로도 추가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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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
J.M.G. 르 클레지오 지음, 최수철 옮김 / 문학동네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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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 살아가며 간직하는 무수한 기억의 단편들 중에서도, 멋진 항해의 기억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그대로 남는 것이다. 그의 머리 속에서 바다와 파도, 구름의 색채감과, 팽팽하게 바람을 받으며 펼쳐진 돛의 인상은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생생히 남는다.
르 클레지오는 대단한 소설가다. 책장을 넘기는 것 만으로 그 모든 체험이 마치 나의 기억이 된 듯 경탄을 안겨주는 이 작가는 항해의 뜨겁고 차가운 맛을 모두 아는 사람은 아니지만, 사람의 기억은 단어보다 이미지에 의존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는 단지 단어를 구성해 하나의 연속된 이미지를 만들었을 뿐이지만, 그것이 마음 속에서 어떤 울림을 갖는지 미리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작가는 그를 제외하면 아주 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조금 전, <우연>을 다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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