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닌의 입당구법순례행기 (入唐求法巡禮行記)
엔닌 지음, 김문경 옮김 / 중심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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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닌의 '입당구법순례행기'를 읽었다. 장보고 시대 일본 승려가 견당사신 행렬에 끼어 당나라로 오다가 배는 좌초하고 거지꼴이 되어 목숨만 겨우 건진다. 용케 살아나 신라인 통역과 신라방 사람들의 도움으로 이리저리 유랑하다 다시 일본으로 가려는데, 신라 사람들은 밤중에도 오가는 바다 날씨에 일본배 혼자 풍랑에 휩쓸려 또 엉뚱한 곳에 닿는다. 알고보니 장보고 대사의 당나라 본거지 적산법화원이다. 신라 사람들의 도움으로 밥과 옷을 얻어먹고 입고 법회도 참석하며 겨울을 나다 한 신라 스님의 도움으로 화북의 명찰 오대산행을 결심한다. 구도 일념 하나로 흉년이 든 화북 일대에서 동가숙 서가식하며 거의 거지꼴로 빌어먹다 천신만고 끝에 도착해서는 다시 이미 오대산에 와 있던 신라 사람들의 도움을 받는다. 이후 오대산에서 4년을 보내다 당의 서울인 장안에 도착해 입이 딱 벌어지고, 마침내 9년의 세월이 지나 일본으로 돌아가려니 배도 선원도 없다. 장보고 대사의 도움으로 신라 선원들로 구성된 신라 배를 얻어타고 청해진에 들러 일본으로 구사일생 돌아가게 된다. 천대까지는 아니지만 갖은 쌩고생 다 하고 돌아갔더니 일본에서는 거의 신처럼 우러러 떠받들고 새 종파의 시조가 된다. 장보고가 염장에게 암살되기 2년 전이다. 기행문 내내 일부러 자제하는 기색이 역력하지만 신라 사람 없었으면 처음부터 끝까지 불가능했을 일정이다. 신생 국가 일본에 대한 애국심으로 당나라 조공행렬에 참석한 5개국 중 일본 순서가 2번째라고 자부하는데 알고보니 1번째는 동남아 태국 먼 구석의 남조국이라는 듣보잡 나라다. 신라 발해는 벌써 따로 접견 다 끝났고 2군들만 불러모아 놓은 자리였다. 당나라 유학생 급제자 수석을 놓고 신라 발해가 다툴 때 일본은 자국의 배 한 척 없어 신라 배를 빌려타고, 당나라 도착해서는 해안가에 널린 신라사람들 공관에 얹혀 밥 빌어먹고 다니던 시절 얘기다. 초주 해주 등주 북해 오대산 장안 가는 곳 마다 도대체 신라 사람 없는 데가 없다. 당시 산동반도의 장보고 산하 적산법화원은 매일 수계식 인원이 200명 이상에 1천석 수확이 나오는 장원이 딸린 대규모 무역기관이었다는 묘사가 나온다. 돌아간 엔닌은 장보고 대사의 은혜가 골수에 사무친다며 눈물 젖은 편지를 보내고, 일본에는 적산법화원의 이름을 따 '적산대명신 장보고'를 모시는 신사까지 생긴다. 이 모든 얘기가 국사책에는 딱 한 줄 나온다. 그 많던 신라방 신라원 사람들은 다 어디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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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 보병 2023-06-17 18: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고보니 어디서 본건데 고구려 백제 신라와 고려가 우리가 학교에서 배워서 알고 있는 것과는 다르게 한반도가 아니라 실제로는 중국대륙의 동쪽에 위치해 있었다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