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사막을 사박사박
기타무라 가오루 지음, 오유아 옮김, 오나리 유코 그림 / 황매(푸른바람) / 2004년 5월
평점 :
품절


 

<달의-사막을

  사박-사박

  고등어-조림이

  지나-가네요->

'사박사박'이란 단어가 내 눈길을 잡았다. 제목을 보는 순간 고향 바닷가 모래 위를 맨발로 걸었던 어린시절이 생각났다. 그때 내 발걸음에서도 사박사박이란 소리가 났을까라는 생각으로 책을 들고 한참이나 추억에 잠겼다. '사박사박'이란 단어가 주는 기분좋은 느낌에 책의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무조건 용서해주기로 후한 점수를 줄만큼 반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런 내 후한점수에도 상관없이 책의 내용은 스스로 더 높은 점수를 받았다. 제목보다 더 후한 점수를 줄 수밖에 없는 내용과 아기자기한 파스텔빛 그림들을 눈으로 읽어내려가며 책장을 넘길 때마다 사박사박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책을 읽다보면 나만 이 책을 알고 있으면 참 좋겠다라는 책이 있다. 이렇게 예쁜 책을 누군가에게 알려주지 않고 나만 알고 있는 아름다운 이야기로 남았으면 좋겠다는 욕심을 부리고픈 책이 있다. 귀여운 작은새를 만난 느낌의 책이여서 내 품에서 떠나지 않게 붙잡아두고 싶은 책이 바로 이 책이었다. 하지만 작은새에게는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을 전해주는 것이 더 기쁜 일이 될거란 생각에 책을 읽고 나서 몇자 적어본다. 책은 반짝반짝 찬란하게 빛나는 보석보다는 은은하게 따뜻한 빛깔을 내는 보석을 더 좋아하는 내게 보는 것만으로, 만지는 것만으로 따뜻함을 전해주었다. 이 따뜻함이 다른 사람에게도 전해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건 추운 계절이 다가오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책은 10살인 사키와 그의 엄마와의 일상을 10가지 작은 이야기로 담고 있다. 아빠없이 사키를 키우는 엄마는 매일 밤 사키에게 이야기를 들려준다. 책을 읽으면서 엄마의 목소리가 내 귀를 울리는 것처럼 느껴졌고 어느 새 나도 10살짜리 어린아이가 되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어린시절 엄마에게 들었던 이야기가 별로 없었던 내게 사키의 엄마는 내가 갖고 싶었던, 되고 싶었던 엄마의 모습이었다. 딸을 품에 안고 '사박사박' 소리가 날 것 같은 재밌고, 때로는 가슴 뭉클하고, 아름다운이야기를 들려주는 엄마와 그 엄마의 품에안겨 스르르 잠드는 어린 사키를 보며 속으로 조용히 말해본다. '잊으면 안돼, 사키. 너와 엄마가 했던 이야기를 어른이 되서도 잊으면 안돼.'라고.

 

#이 책의 냄새는?

-책을 읽다보면 책 속의 글자들이 냄새로 변해 코끝을 간지럽힐 때가 있다. 이 책의 냄새를 쫓아가보니 내 어린시절이 나왔다.  어린시절 부모님이 함께 일을 하셔서 집에 늦게 들어오시는 경우가 많아 일부러 친구들과 늦게 집으로 돌아오고는 했다. 친구들이 밥 먹으라고 부르는 엄마의 목소리를 따라 가버리면 혼자서 그 내려앉은 어둠이 무서워 막 뛰기 시작했는데 집이 보이기 시작할 때 코끝에 밥 냄새가 맡아지고 환하게 켜진 집의 창문이 보이면 가슴이 그렇게 두근거릴 수가 없었다. 나역시도 엄마가 집에 오셨다는 그 행복한 두근거림은 밥냄새로 먼저 알 수 있었다. 그 행복한 밥 냄새에 코끝은 왠지 모를 알싸함과 행복감을 함께주었다.  

 

책에서는 배를 은근히 간지럽히는 그런 밥냄새가 난다. 엄마가 밥을 하시고 그 옆에서 뒹굴고 있으면 밥냄새에 배가 간지운 느낌이 들면서 행복에 빠져들고는 했다. 언제까지고 계속 될 것만 같은 그 포근하고 평화로운 느낌의 냄새가 이 책에서 맡아졌다. 아마도 사키와 엄마의 대화가 어른이 되어 잊어버린 어린시절에 꿈꾸었던 순수함과 소소한 이야기들을 떠올리게 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열가지 색의 무지개를 본 적 있니?

-10개의 소소한 이야기는 각기 다른 빛을 내고 있다. 배를 붙잡고 웃어야 하는 빛깔의 똥배르만무지개도 있고 까만 밤하늘의 빛나는 별을 닮은 전갈무지개도 있고 가슴을 찡하게 하는 강물무지개처럼 여러가지 색깔의 무지개들이 모여 이 책으로 이어져있다. 어렸을 적 무지개의 색을 구분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었다. 분명 색이 다르긴 한데 그 경계선이 어딘지 몰라 무지개를 그리면서 고민에 빠지던 때가 있었다. 책은 그런 무지개를 닮았다. 서로 다른 색으로 이루어진 무지개는 맞는데 위의 색과 아래색의 경계를 찾기 힘들만큼 서로의 이야기에 잘 녹아 들어가있다.

 

여우비가 내린 후의 깨끗한 하늘과 푸른 숲속의징검다리가 되어주는 무지개를 떠올리게 하는 책은 어린 시절에 만지고 싶어 무지개가 떠있는 곳으로 쫓아가던 어린아이의 마음을 고스란히 담아주고 있다. 그렇다고 어린아이를 위한 책이라고 생각하면 안된다. 실은 책은 어른을 위한 책이다. 어른이 되어 잊고있었던 어린 날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며 우리 마음에 창문을 달아주고 싶은 작가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책이다.

 

#마치면서

참 좋았던 책임에도 무슨 이야기를 전해야 이 책의 따스함과 빛남을 제대로 말할 수 있을지 쓰면서도 걱정이 되었다. 종이마다 써진 글자들은 그럴리가 없는데도 마치 편지에 담긴 것처럼 꾹꾹 눌러쓴 것 같은 정성과 아련함이 묻어나고 귀엽지만 화려하지 않은 그림은 따라 그리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켰고 그 그림 속으로 들어가 사키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싶은 갈망을 느끼게 했다.

그런 책이었다. 마음을 열고 청량한 바람을 불러일으키며 그 한가운데서 동그랗게 웃고있는 사키를 떠올리게 하는 책. 사키의 올망졸망한 모습과 어른이지만 아이의 미소를 가지고 있을 사키의 엄마의 모습을 상상하며 내 글을 통해 그것이 전달되지 않으면 어떡하나라는 걱정이 앞선다. 그런 걱정들을 뒤로하고 단 하나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절대 후회하지 않을 무지개를 볼 수 있을 거라고  약속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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