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체통과 이주홍 동화나라 빛나는 어린이 문학 5
이주홍 지음, 김동성 그림 / 웅진주니어 / 2006년 8월
평점 :
품절


어린시절 까만 밤이 되면 할머니의 품에 자리를 잡고 할머니께 이야기를 해달라고 조르던 내 모습이 이 책을 읽어내려 간 후 떠올랐다. 지금처럼 책이 많던 시절도 아니였고 책을 사볼만큼 넉넉한 집안이 아니였으며 한글을 떼지도 못했던 그 때 내 이야기 창고는 할머니밖에 없었다. 할머니의 옛날 이야기는 들어도 들어도 끝이 없었고, 같은 이야기를 들어도 행복하기만 했다. 할머니께서 내게 들려주셨던 이야기를 언젠가 나도 내 딸에게 들려주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그 시절의 아련함과 따뜻함까지 함께 들려주고 싶다는 바램을 마음 속에 담아두었다. 잊지 말자고 다짐했음에도 이야기는 잊고 말았지만 그 따스한 느낌만은 잊지 않았다.

 

그림책과 동화책을 좋아해서 읽는다고 읽었음에도 할머니께서 들려주셨던 이야기처럼 아련한 옛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동화책을 만나기란 쉽지가 않았다. 아마도 요즘 그림책들은 현대적이라는 느낌이 강해서 할머님께서 들려주시던 그 시절의 풍경들과 따스한 이야기를 찾기가 힘이 든 건지도 몰랐다. 동화책을 읽다가 할머니를 떠올리는 횟수가 많아질 수록 할머니께서 사시던 그 시대에도 동화가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던 중에 이 책을 만났다. 표지 속 여자아이의 모습은 나와도 먼 시절의 복장일 듯하다. 아마도 우리 할머니의 어린시절 쯤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혹시 내용도 할머니께 들었던 같은 빛깔의 이야기이지 않을까란 기대에 부풀어 글자와 그림에 눈을 빛내며 읽어내려갔다. 읽는 내내 나는 할머니 품 속에 있는 포근함을 느꼈고 그 품에서 그랬던 것처럼 키득거리며 웃기도 했으며 슬픈 내용이 나오면 가슴 속 울림에 놀라서 할머니의 가슴 속에 더 파고드는 것처럼 책에 얼굴을 묻기도 했다.

 

책은 세가지 동화들이 나온다.

 

#북치는 곰

-설날 아침 장난기 많은야광귀 가족들이 올해도 어김없이 모여 앉아 회의에 들어갔다. 장난꾸러기 가족인만큼 이번에도 인간세상에 내려가 장난을 치기위해 치밀한 작전을 세우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해가 갈수록 인간들도 야광귀가족의 장난을 알아채고는 대비를 철저히해서 장난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이들의 장난은 바로 설날밤이면 집집마다 내놓은 신발을 신어본 후에 맞는 것이 있으면 신고 돌아오는 것이었다. 하지만 설날밤이면 설빔으로 받은 신발이 있을지도 모르는 데 인간들이 그렇게 호락호락 신발을 내줄리 없지 않은가 그래서 인간들은 신을 방안에 들여놓기도 하고 문 위에 체를 걸어두어서 야광귀가 체의 구멍을 세느라 새벽이 되는 지도 모르게 만들기도 했다. 아버지도 실패하고 형들도 실패한 야광귀 집안 체통이 말이 아니다. 이때 등장한 막내 똘똘이는 이름에 걸맞게 똘똘하게 가족들에게 자신이 신발을 가져온다고 말하고는 지상으로 내려가 신발 도둑소동을 벌이는데......

 

-똘똘이가 신발을 훔치기 위해 소동을 일으키는 것을 보며 나도 모르게 키득거리며 웃으며 예전에 할머님께서 들려주시던 옛 이야기가 떠올렸다. 설날이면 도깨비들이 발이 추워서 신발을 자주 훔쳐갔다는 이야기에 신발을 내놓자니 훔쳐갈 것 같아 방에 신문지를 깔아놓고 신발을 올려놓고 자던 생각이 나기도 했다. 이 동화에서는 하늘세상에 사는 야광귀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장난도 치고 덜렁거리기도 하다는 것을 똘똘이를 통해 알려주고 있다. 그러나 이런 야광귀들의 장난은 웃어넘길 수 있는 장난이어서 인간에게 해를 입히지 않는 우리에게 친근한 존재로 다가온다.

 

#은행잎 하나

-성덕사 큰 절 옆에 늙은 은행나무 한 그루가 서있다. 늙은 은행나무는 힘이 들어도 가을이기에 자식들에게 차례차례 노란 옷을 챙겨입혀주기 시작했다. 노란 옷을 가라입은 형제들은 멋진 옷을 자랑이라도 하듯 바람에 실려 하늘로 날라갔다. 드디어 막내 혼자만 남아 엄마가 옷을 가라입힐려고 하자 막내는 옷을 입다말고 엄마와 떨어지기 싫다고 투정을 부린다. 엄마는 막내를 달래며 추운 겨울 잠시 따스한 곳에서 쉬다가 내년 봄에서 만나자며 달래준다. 착한 막내는 엄마의 말을 듣고 자신이 떨어질 곳을 찾다가 지난 봄에 엄마를 잃고 나무 아래에 울고 있던 아이를 떠올리며 그 아이에게 떨어지고 싶다고 말하며 그 아이를 찾기로 하는데......

 

-엄마 품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가야하는 은행잎을 보며 어린시절 엄마와 함께 살지 못했던 나처럼 태어나 어미개의 젖을 떼고 나면 다른 고으로 가는 강아지들을 보고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떠올랐다. 나에게는 할머니께서 계셨지만 강아지들은 할머니들도 없이 멀리 다른 곳으로 떠난다는 게 어린 나이에는 그렇게 불쌍해보일 수가 없었다. 간혹 뒷집이나 옆집이 새끼 강아지를 데리고 가면 틈이 날 때마다 몰래 강아지를 어미한테 갖다 놓고는해서 할아버지께 꾸중을 듣기도 했던 일이 떠오른다.

노란 은행잎의 씩씩함과 자신의 마음의 상처를 감싸며 다른 아이의 마음의 상처를 보듬어주려는 마음이 가슴을 찡하게 만들기도 했다. 노란 은행잎은 분명 지금도 어디선가 마음의 상처가 있는 아이에게 날아갈 준비를 하고 있을거란 생각이 든다.

 

#우체통

-숙희네 집 앞에 빨갛게 생긴 이상한 물건이 생겼다. 그 이상한 물건을 숙희는 기웃거리며 무엇에 쓰는 물건일까 궁금해하며 그 앞에 주저앉아 관찰을 시작했다. 어떤 분이 무언가를 이상한 물건에 집어넣자 "땅"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며 물건이 텅텅 비어있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럴수록 그 물건의 쓰임새가 궁금해서 엄마에게 달려가 물어보자 엄마는 편지를 넣는 우체통이라고 알려주었다. 그제야 고개를 끄덕인 숙희는 일본에 계신 아버지가 보낸 편지를 쳐다보며 자신도 아버지에게 편지를 보낼 생각을 했어요. 일본으로 간 아버지의 편지가 끊긴지도 오래되어 숙희는 아버지가 걱정되어 자기가 먹고 싶은 개떡에 글씨를 쓸 줄 몰라 아버지가 보낸 편지를 개떡 위에 올려 끈으로 묶어 우체통에 넣는다. 우체통은 다리가 없으니 우체통 밑으로 긴 길이 나있을거라고 생각한 숙희는 그 길로 편지가 갈거라 믿는데.....

 

-숙희의 정겨운 사투리와 아버지를 생각하는 따뜻한 마음과 어린아이의 호기심에 빙긋한 미소가 피어오르기도 했다. 우체통에 밑으로 땅 속으로 길이 나서 편지가 오고 가고 할거란 상상은 지금 생각해도 기발한 상상력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이 쓰임새를 모르는 물건을 보고 그 쓰임을 짐작할 때면 웃음이 터지기도 하고 놀라기도 하며 아이들의 상상력에 나 역시도 그랬나라며 기억을 더듬어 보기도 한다. 또한 일본에 가서 고된 일을 하고도 집으로 돈 한푼도 보내지 못한 당시의 시대상이 나타나 마냥 웃음만 지을 수는 없는 이야기이다. 요즘 아이들은 일제시대의 우리나라 사정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가볍게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며 자연스레 대화를 유도하는 것도 좋을거란 생각이 든다.

 

#수채화를 보는 것 같은 일러스트

책은 페이지마다 그림이 그려져 있어 그림들이 눈 앞에 펼쳐지는 듯한 느낌이 들게 했다. 그리 화려하지 않은 색채를 사용하여  따스함이 물씬 묻어나는 그림이 글들과 어우러져 책의 분위기를 한층 더 따스하게 만들어주었다.

 

 

#마치면서

이 책을 읽으며 나는 할머니의 따스한 목소리와 품의 온도가 생각났다. 이런 이야기를 기다려왔으면서도 찾으려는 생각을 먼저 하지 못한 것에 반성을 하게 된다. 동화는 지금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예전에도 있었으며 그 예전에도 분명 좋은 동화들이 많았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된 것을 반성하면서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시대의 따스함이 고스란히 묻어있으며 그 시대의 아픔도 묻어있는 동화가 우리나라의 동화가 갖는 소중한 모습이 아닐까한다. 좋은 이야기만이 아닌 그 속에 슬픔도 묻어나기에 아름답고 따스하게 다가오는 이 동화는 진주를 품은 조개를 닮아 빛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 어린이 문학 대표작가들의 책을 찾아보겠다는 결심과 함께 아이들에게도 기회가 생길 때마다 읽어주어야겠다는 다짐을 가슴에 담아 놓았다. 할머니께서 내게 들려주셨듯 나도 아이들에게 들려주며 받은 사랑을 전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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