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백 - 소유할 수 없는 자유에 관한 아홉 가지 이야기
바히이 나크자바니 지음, 이명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6년 10월
평점 :
품절


한 권의 책을 읽기 위해 시간은 얼마나 필요한가? 책을 읽는다는 이야기를 할 때면 가끔 사람들에게 이런 질문을 받게 된다. 그런 질문은 나를 난처하게 만들기도 한다. 답이 없기 때문이다. 읽는 동안 술술 읽히는 책도 있으며, 술술 읽혔지만 읽고 나서 생각하는 시간이 더 길었던 책도 있었다. 또한 읽는 내내 한 문장, 한 단어, 한 글자를 꼼꼼히 읽게 만드는 책을 만나 긴 시간을 읽어야 했던 책도 있다. 이 책 <새들백>이 내게는 그런 책이었다. 나도 모르게 한 페이지를 읽는 동안 집중하고 나면 다음 페이지를 읽기까지 물 한 모금을 마시며 생각을 정리해야 했고 노트를 옆에 두고 시험공부를 하는 것처럼 끄적이기도 했으며 놓친 것이 없나를 확인하기 위해 앞부분으로 돌아갈 때도 있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가슴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었다. 사막의 뜨거운 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가고 우물 속 물의 찰랑거리는 소리가 가슴 가득 차올라온다. 그 느낌은 내 몸을 떠나 하늘로 자유로이 올라갔다.

 

오랜만이다. 책을 꼭꼭 씹어 먹으며 본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책 읽기를 한 것은. 아니 어쩌면 처음인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꼭꼭 씹었음에도 작가의 의도를 짐작하는 것조차 조심스럽고 이 책에 대한 내 생각을 적어내려가는 일이 어렵다는 생각이 드는 책은 처음이다. 내 이가 부실한 탓이라는 생각만 든다. 책에 나오는 순례자처럼 이가 하나밖에 남지 않은 것도 아닌데도 내 이로 씹어서 속으로 삼킨 책의 내용은 꼭꼭 씹히지 못해  어느 것은 덩어리로 내려갔고 어느 것은 반만 씹힌채 삼켜버린 것도 있는 것 같다. 책을 제대로 먹지 못한 안타까움에도 내 배는 불러있다. 이 책을 읽었다는 것만으로도 배가 부른다. <새들백>은 얕은 지식의 내게는 어렵기도 했지만 독특한 구성은 끝까지 내게 책을 읽히기에 충분했으며 궁금증과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그리고 새들백 속에 들어있는 것은 내게 읽은 것 이상의 감동을 주었다.

 

새들백이 무엇인지 나는 책을 통해 알았다. 새들백은 가죽으로 만든 가방이다. 주로 사막에서 여행을 할 때 어깨나 낙타의 등에 올려 짐을 운반하는 수단으로 쓰는 가방이다. 그럼 이 가방이 왜 제목으로 정해졌을까란 내 의문은 책을 읽어가며 풀려나갔다. 새들백을 통해 이어지는 9명의 이야기는 신기하게도 시작점도 마침점도 새들백이다. 그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이 책이 우리에게 종교적 근원을 통해각각의 인물들이 인생의 전화점이 될 새들백을 던져놓으면서 도를 구하고 자신이 살고 있는 인생의 의미를 찾는 여정을 담고 있다는 설명을 들었음에도, 읽는 내내 그 물음을 머리 속에 넣었음에도 도를 찾지는 못했다. 아! 찾기는 찾았는데 제대로 찾았는지와 그 깊은 속뜻을 모른다고 해야하겠다. 처음에는 찾지 못했으니 두고 읽으며 찾으면 된다는 생각에 두번째 이 책을 읽을 때는 얼마만큼 베일을 벗길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한겹씩 베일을 벗기는 묘미가 있는 책이 바로 <새들백>이다.

 

#24시간 동안 일어난 9개의 사건들, 단서는 새들백.

-하나의 존재를 만났다는 이유로 인해 9명의 삶이 달라지기 시작한다. 사막에서 새들백이 도난 당하고 24시간동안 누군가는 죽었으며 누군가는 살아남았다. 이 정도만 한다면 이것은 추리소설이 될 것이다. 실은 나도 추리소설이란 느낌으로 책을 쫓아가며 흥미를 느꼈고 책에서 손을 뗄 수가 없었다. 이 책이 추리소설과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죽은 사람들이 모두 행복하게 죽었다는 것과 나머지 살아난 사람들도 전과는 다르게 영혼이 충만한 삶을 살게 된 것이다. '그들은 누구이며, 어떻게 행복하게 죽음을 맞이 할 수 있으며 우리가 그토록 바라는 영혼이 충만한 삶을 살 수 있는 걸까?'라는 질문이 하나 더해지며 책은 9명의 이야기를 통해 이것의 비밀을 조금씩 알려주고 있다.

 

하나의 소재로 9가지 이야기를 끌어낸다는 것도 신기하지만 그 이야기들이 헛점없이 서로 잘 이어져 있다는 것에 놀랐고 또한 그것이 서로 다른 이야기를 담고 있고 같은 결말이 아니라는 점에서 작가가 기울였을 노력과 놀라운 상상력과 구성력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예전에 봤던 영화 <PM11:14> 에서 그 시간에 딱 맞추어 사건이 일어날 수 밖에 없도록 만든 구성에 소름이 돋았던 적이 있었는데 이 책은 그것보다 더 잘 맞추어져 있다. 조각으로 봤을 때는 전혀 맞지 않을 것 같은 조각들이 신기하게도 작가 바히이 나크자바니의 손에서 마술처럼 맞아떨어졌다.

 

#9명의 사람들, 그 속에서 나를 보다.

-책의 배경은 19세기 중반 메카와 메디나사이의 사막길이다. 그곳을 지나치는, 혹은 그곳에서 머문 9명의 이야기이다.  도둑도 있었고 그 도둑의 두목, 사기꾼, 갑부의 딸로 환상을 보는 신부, 그 신부의 노예, 그 노예를 사랑한 성직자, 순례자, 거짓 탁발승까지 이  9명은 직업도 다르고 태어난 나라도 다르고 종교도 달랐다. 그런 그들에게 새들백은 같은 영향을 주었다. 그 강도가 크거나, 혹은 작거나 했을 뿐이지.

 

그 아홉명을 보며 내 모습을 보는 건 인간의 근본은 모두 같기 때문이 아닐까란 생각을 해본다. 인간이란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기에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에서 나의 삶과 닮은 점을 보기도 한다. 특히나 삶에 대한 의미를 찾지 못해 회의를 느끼는 순례자의 이야기와 부를 쫓는 두목의 이야기, 생을 살면서 여러 삶을 살다가 결국은 인간으로 죽을 수 있어 행복했던 환전상이야기는 내가 갖고 있던 삶의 불안을 어느 정도 공감하게 해주었다. "그대는 살아있는 증거요."라는 울림의 소리는 내가 살아있는 증거로 남아야 함을 강렬하게 내 가슴에 새겨졌다.

 

우리는 자신을 알고자 하고 생의 의미를 알기를 갈구하고 그 몸짓은 어떤 형태로든 멈추지 않고 움직이고 있다. 이 책에 나오는 9명의 사람들 역시 그러했다. 삶을 갈구하는 것은 인간의 숙명이므로 책 속의 사람이건 책 밖의 사람이건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들에게 새들백이 그 가르침을 알려주는 진귀한 보따리였다면 우리에게는 이 책이 진귀한 보따리가 되어줄 것이다. <새들백>은 책 속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손에 들려있는 <새들백>처럼 책 밖에도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나를 감동시킨 작가의 문체와 사막의 광활함.

-이 책은 작가의 데뷔작이란 말에 놀랄만큼 독특한 문체와 묘사가 돋보인다. 사막을 배경으로 하기에 모래폭풍이 몰아치는 장면을 묘사하는 부분에서는 눈 앞에 모래폭풍이 부는 것 같았다. 뜨거운 모래사막과 불어오는 한 줄기 바람, 밤이면 수없이 빛나는 별들,사막의 오아시스이자 인간의 영혼을 정화해주는 우물등 사막의 곳곳을 작가는 아름답게 묘사해놓고 있다. 사막의 황폐함은 인간을 혹사시키기도 하지만 그것을 통해 인간은 삶의 의미를 생각하며 욕망을 버릴 수록 자신의 영혼이 채워짐을 느낄 것이다. 또한 사막 속에 숨겨진 오아시스는 인간에게 신이 주는 선물이다.

 

#마치면서

-구도(求道)를 위한 책이라고 했지만 한번에 모든 것을 얻을 수는 없을 것이다. 구도의 첫번째 길은 욕심을 버리는 것이 아니겠는가. 첫번째 책 읽기로 내가 얻은 것은 책이 내게 주려고 했던 것에 비해 미미한 것일 것이다. 그러나 책을 덮는 순간 책은 내게 수고했다고 우물의 맑은 물 한잔을 건네주었다. 그 정도면 수고했다고 말이다. 그 따스한 손길에, 맑고 시원한 물 한잔에 내 머리와 가슴은 책을 기억할 것이고 그 기억이 날 때면 책이 내게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듣기 위해 귀를 기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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