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휘소 - 못다 핀 천재 물리학자 청소년인물박물관 3
이용포 지음 / 작은씨앗 / 2006년 8월
평점 :
절판


이휘소박사의 잔잔한 미소의 표지를 보는 순간 가슴이 따끔했다. 그 웃음이 너무 따뜻해서 놀람과 동시에 이분은 지금 이 세상에 살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 머리를 스쳐지나갔기 때문이다. 저렇게 따뜻한 웃음을 가진 분이 내게는 어렵고 차갑기만한 과학을 공부하신 분이라는 믿기지 않았다. 왠지 과학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는 말을 들으면 꼬장꼬장한 모습이 떠오르곤 했는데 이 책에 있는 이휘소님의 사진을 본 순간 이런말이 실례가 될지는 모르나 천진난만한 아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온 우주가 진통을 겪어야만 생겨날 수 있지. 하지만 풀꽃은 온 우주에게 감사할 줄 아는 것 같은데 인간들 중에는 자신이 생겨나기 위해서는 온 우주가 동원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알게 되었다 해도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더구나."

 

한 아이가 태어났다. 온 우주가 진통을 겪어서 태어난 아이가 있다. 이휘소는 부모님이 모두 의사인 집안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의사집안이지만 부모님은 검소하셨고, 가난하고 아픈 사람을 위할줄 알았으며 자식에 대한 사랑이 지극했다. 이휘소가 먼 타국땅에서 열악한 조건에서도 열심히 공부할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자신을 사랑해주던 가족때문이었을 것이다. 아프고 병든 사람을 위하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고 자란 휘소도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어린시절부터 호기심이 넘쳐났고, 세상 모든 것에 궁금증을 갔던 휘소는 어머니의 설명으로도, 책 속의 해답만으로도 만족할 수 없는 아이였다. 책 속에서 답을 찾지말고 질문을 찾기 위해 책을 읽으라던 어머니의 말씀에 책을 읽던 아이 휘소. 

 

이휘소만큼 시대를 잘못 태어난 사람이 또 어디있을까라는 안타까움이 든다. 그는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했고, 공부 하고자하는 열망이 넘쳐났지만 그가 태어난 시대는 그를 뒷받침해줄 버팀목이 되지 못한 시대였다. 더 배우고 싶었기에, 더 많은 사람을 위하는 과학자가 되고 싶었기에 서울공대 화공과에 수석 입학한 뒤 2학년 때 미국 마이애미대로 유학을 갔다. 그곳은 그의 열정을 태우기에 충분했다. 공부밖에 모르던 그는 단기간에 펜실베이니아대에서 입자물리 이론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 후 본교와 뉴욕주립대, 시카고대 교수 등을 지내며 노벨물리학상 수상을 의심하지 않는 과학자가 되었다. 그러나 그는 42세의 나이로 죽고만다. 정말 덧없이 죽고 말았다.

 

책에는 그의 연구한 분야에 대해서는 그리 자세히 나오지 않는다. 이휘소를 인간으로 보는 것을 원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이휘소에 대해 다시 알려주고 싶었던 것이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로 그를 얼마나 오해했던가. 그는 핵물리학자가 아니였다. 그는 아인슈타인의 연구를 미국이 핵전쟁을 하는데 사용한 것에 분노했고 과학이 국가들의 권력다툼에 쓰이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그는 모든 사람에게 좋은 과학을 연구하고 싶었다. 소립자연구를 하면서 그는 세상에 물질들이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작은 알갱이로 나눠지는 것을 보면서 전 세계의 사람은 모두 형제라는 생각을 갖게 되고 전쟁은 불필요한 거라 생각한다. 그는 부모님처럼 사람을 위하는 과학자가 되고 싶었고, 그렇게 되기 위해 더욱 열심히 연구하고 진리를 탐구해갔다.  

 


<"휘소야, 파란 바닷물에 빨간색 잉크 한 방울이 떨어지면 어떻게 되지?"(중략)

"잉크는 곧 사라져서 눈에 보이지 않게 되지.
눈에 보이지 않게 되었다고 아주 사라진 걸까? 바닷물에 떨어진 빨간 잉크는 눈에 보이지 않을 뿐 사라진 것은 아니란다. 잉크는 바닷물이 되어 온 바다를 떠돌게 되지. 생각해 보렴, 얼마나 신나겠어. 고래의 뱃속을 탐험하기도 하고 하늘의 구름을 떠돌다 비가 되어 사막의 낙타 혹 위에 떨어져 그 낙타를 타고 사막을 여행할지도 모르지.
휘소야, 죽는다고 해서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건 아니란다. 모양을 바꿀 뿐이지.">

 

 

하지만 덧없는 그의 죽음은 그의 소망을 가로막았다. 그가 어머니와 주고받던 편지 안에는 어머니에 대한 그의 사랑과 존경 그리고 함께 있지 못한 그리움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엄마가 죽는 것이 싫어 죽지 않는 약을 만들겠다는 이휘소 박사는 그렇게 사랑한 어머니를 두고 죽었다. 어머니의 대한 사랑이 가슴에 넘치고 넘치던 그는 하늘나라에서도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리고 있을까.

 

노벨상이 눈앞에 보일만큼 훌륭한 과학자가 되서 이제 겨우 조국에 할 일이 생겨 좋아했던, 돈이 없어 어머니를 뵙지 못해 보고픔으로 타국생활을 해야했던 그가 이제야 어머니를 마음대로 볼 수 있는데 죽고 말았다. 그는 세계가 먼저 알아주었던 사람이었다. 조국에서는 그를 알아주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그의 가슴 속에는 항상 조국이 있었것만 우리는 그것을 미처 알아봐주지 못했다. 이렇게 뒤늦게 그의 진실을, 그의 가치를 알게 되서 다행이라고 해야할까, 아니면 죄송하다고 말해야할까. 대체 누구에게 죄스러움을 빌어야할까. 그는 이제 없다.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기 위해 영주권신청도 미루고 미뤄서 한 이휘소 박사에게 한국은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죄송하다는 말도 할 수 없는 안타까움이 밀려든다. 그를 이제라도 알게 되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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