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한 빛깔의 종이가 책을 감싸고 있다. 불투명한 종이, 종이라고 부르기도 모하고 비닐이라고 부르기도 애매모호한 그런 종이가 아련한 느낌으로 쌓여있다. 아마 저 불투명함 때문일 것이다. 속이 보일듯 보이지 않는 저 불투명함이 책을 펴보기도 전에 아련하게 만든다. 저 푸른 잎의 정체도 나는 몰랐기에 더욱 애매모호함으로 시작된 책이다. 책을 몇 페이지 넘기고 나서야 책을 감싸고 있는 저 싱싱한 잎들이 아디안텀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오사키 요시오의 책은 하나 읽어보았다. 파일럿 피쉬. 이 작가의 두 번째 책 역시 첫 번째와 마찬가지로 제목으로 내용을 상상할 수 없게 한다. 짐작도 할 수 없기에 책 앞에 나는 무방비다. 파일럿 피쉬에서는 겨우 울음을 참아내었었다. 입술을 깨물고 주먹을 꼭 쥐고는 떨리는 입가로 행복한 웃음을 지었었다. 아프고 아렸던 기억들도 모두 소중한 것이었다고 말해주던 야마자키의 손길에서 나는 겨우 울음을 참아냈다.
겨우 참아낸 울음을 석달이 지난 지금, 이 책에서 쏟아내야했다. 이 책의 중반부부터 이를 악물어도 주먹을 쥐여봐도 눈에서 먼저 후두둑 떨어지고 말았다. 이렇게 울게 될 것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고 싶었던 이유는 몸만 껑충하게 자란 아이어른인 내가 위로받고 속 시원히 울고 싶었기 때문이다. 몸만 껑충자라서 마음과 몸의 조각이 딱 들어맞지 않은 그 공간으로 바람이 불어들기 시작했고, 그 바람에 나는 몸도 마음도 지친 상태였다. 요시오작가의 책에는 애써 나를 위로 하지 않는데도 위로를 받게 된다. 마치 힘들었던 내게 수 많은 위로의 말보다 머리를 쓰다듬어 주던 손길에 울게 되고 위로받는 것처럼 그의 소설은 내게 따스하게 머리를 쓰다듬는 손이다. 이 책에서 내가 받은 위로는 파일럿 피쉬보다 더 따스했으며 더 강렬했다.
<아디안텀 블루>에는 파일럿 피쉬에 나온 야마자키가 나온다. 그는 10년은 젊어졌으며 여전히 발기하게 만드는 애로잡지 편집장이다. 하지만 그는 파일럿 피쉬의 야마자키를 알지 못한다. 10년이나 젊은 그는 파일럿 피쉬의 자신과 이름이 같은 그와는 상관없이 살아가고 있다. 서로 다름에도 따스한 마음을 닮았으며, 유약한 방향치라는 것도 닮은 채로 서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책의 중반부터 울었기에 책에서 놓친 것이 있을까 좋은 부분을 적어둔 페이지의 글들을 노트에 옮겨 적는 방법을 먼저하였다. 궁금증이 나는 부분, 좋았던 부분들을 옮겨 적으며 책에서 나오는 어느 부분하나 작가가 말하려고 하는 것과 어긋나는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잘 맞춰진 조각이다. 같은 모양의 퍼즐조각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닌 서로 다른 모얌임에도 <아디안텀 블루>라는 책에 딱 들어맞는다. 작가가 이 책의 어느 한 구절, 한 글자에도 정성을 들여서 책에 모두 필요한 부분으로 만들어 낸 것 같다. 한조각도 없으면 완성되지 못하는 책으로. 마치 우리가 살아오면서 만난 사람들, 잊혀진 사람들, 잊지 못한 사람들 그리고 기억과 추억들이 우리 몸에 딱 맞아 어느 조각하나 버릴 것이 없는 것처럼 말이다.
아디안텀의 잎을 하트 모양으로 보는 이도 있다고 한다. 내가 이 책을 읽고 이 식물을 찾아서 봤을 때 이 잎은 천사의 날개로 보였다. 요코의 등에 달려있을 아름다운 날개. 그녀의 날개는 분명 하얀 것이 아닌 초록 아디안텀의 잎을 닮았을 것이다. 그녀가 그토록 아끼고 사랑했던 화분이었으므로. 요코는 책의 주인공 야마자키의 여자친구였다. 서로 몸과 마음을 붙이고 있어도 틈이 있는 것 같아 그 틈을 생각할 때면 요코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깨달아 행복한 야마자키는 그녀를 온전히 사랑했다. 그녀가 떠나고 아디안텀 화분만이 남았다. 그는 아디안텀 화분을 살리기 위해 물을 매일 분무기로 뿌리고 영양제를 주고 그늘을 만들어준다.
왜 그녀는 아디안텀을 사랑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르기 힘든 아디안텀. 저 싱싱한 초록의 잎을 가지고 있음에도 저 화분은 빛을 좋아하지만 강한 빛에 약하다. 그늘 속에서 저토록 빛을 닮은 색을 내는 것이다. 그늘은 좋아하지만 그렇다고 너무 습한 곳은 안된다. 까다롭기로 소문난 아디안텀은 스스로 자신이 살 곳에 적응을 한다고 한다. 적응하지 못하면 죽고 마는 것이다. 그것이 '아디안텀 블루'이다. 힘들고 아픈 시간을 겪어내고 우울함을 이겨낸 아디안텀만이 살아남게 되는 것이다. 잔인해보이지만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이 서 있는 곳에서 최선을 다하고 사는 것이 아디안텀의 강인한 생명력이다. 아마 요코는 그래서 이 화분을 좋아했을 것이다. 강인함, 환경을 탓하기 보다는 살려고 애쓰는 것에 노력을 기울이는 아디안텀을 사랑했으며 그녀도 그렇게 살려고 노력했다.
물웅덩이를 좋아하는 여자가 있다. 자신의 눈에 비치는 세상이 물웅덩이에 비친 세상처럼 보인다는 여자가 있다. 뿌옇게 세상을 보는 자신의 삶에서 실상에 가까운 남자를 발견하고 행복해하는 여자가 있다. 그녀의 이름은 요코.
언제 사랑이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고 사랑에 빠져버린 남자가 있다. 그녀를 위해 테러리스트가 되는 것도 망설이지 않는 남자가 있다. 그녀가 사라졌다는 이유만으로 그의 몸을 이루는 퍼즐들이 모두 산산조각 나버려 백화점 옥상에 와서 담배만 피는 남자가 있다. 그녀가 두고간 화분을 열심히 기르는 남자가 살기 위해 수족관을 산다. 뿌연 물이 투명해지면 그의 상처도 투명해지리라 믿는 남자가 있다. 그의 이름은 야마자키 류지.
남편이 죽었음에도 결혼반지를 끼고 다니는 여자가 있다. 평온한 삶을 살다가 남편이 죽는 사고로 삶이 통째로 흔들려버린 여자가 있다. 자신의 집으로 오는 방향과 반대편 전철로 뛰어든 남편을, 남편과 같은 날 자살한 자신의 친구를 용서할 수 없는 여자가 있다. 남편의 죽음으로 세상과 동 떨어져있는 삶을 살고 있지만 백화점에 오면 자신도 사람들이 사는 곳에 있다는 것에 안도감을 갖는 여자가 있다. 그녀의 이름은 히로미.
책은 야마자키의 시선으로 진행된다. 야마자키의 담배연기가 눈에 보이는 듯 했고, 아디안텀 화분에 분무기를 뿌리며 살아달라고 외치고픈 야마자키의 마음이 느껴지는 듯했다. 야마자키는 울부짖지 않았다. 힘들어도 도와달라고 외치지 않았다. 혼자서 속으로 울부짖고 속으로 울고는 했다. 그의 그런면으로 인해 책은 극히 감정이 제한되어있지만 그렇기에 그 제한된 감정을 고스란히 내가 떠안아야 했다. 다행이었다. 야마자키를 대신해서, 요코를 대신해서 울 수 있었던 것은 정말 다행이었다고, 독자인 내가 해줄수 있는 일을 주어서 고마웠다. 그들의 아픔의 무게가 내 눈물로 인해 줄어들리가 없겠지만 그거라도 할 수 있다는 것에 이기적이게도 내 마음의 짐만 덜어졌다. 그들의 아픔은 고스란히 남은채.
요코와 야마자키, 그리고 히로미를 통해 상실이라는 것을 생각해본다. 정말 소중했던 사람이 사라진 것은 어떤 아픔일까. 그건 이별과는 분명 다른 것이다. 이별을 했어도 사랑한 사람이 있었다. 그 때 나를 견딜 수 있게 해준 것은 같은 하늘아래 그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것조차 허락하지 않는 이별이라면 견딜 방법을 몰랐을 것이다. 아마 야마자키보다 훨씬 더 무너졌을 것이다. 야마자키는 그것을 견디어 내고 있는 것이다. 아디안텀 블루를 이겨낸 아디안텀이 되기 위해, 자신안에 살고 있는 요코를 죽이지 않기 위해 그는 살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가을의 문턱에서 가을의 냄새가 물씬 나는 책을 만나 마음의 아픔이나 힘듬을 덜어내었다. 사람은 누구나 살아가면서 아디안텀 블루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아디안텀 블루에서 도망치고자 하면 살아남을 수 없다. 그 아픔이나 고난을 고스란히 이겨내야 살아남을 수 있다. 자신의 상처를, 아픔을 작가는 피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조개가 진주를 만드는 것처럼 그런 아픔들이 그 사람을 더 성장하게 만들것이라고 말한다. 어느 하나 쓸모없는 기억이나 시간은 없다는 것을 그는 이 책에서 다시 한번 보여주고 있다. 이렇기에 오사키 요시오가 좋다. 내가 힘들어 하는 이 시간도 사실은 지금 나를 성장시키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에 열심히 살아가게 만들어준다. 이것이 그가 바라는 거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가을의 시작에 만난 이 책, 참 좋은 선물을 받은 것 같다.